[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상근기자들이 취재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에피소드 등을 자유로운 방식으로 돌아가면서 쓰는 코너입니다.[편집자말] |
푸른색 넥타이를 맨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붉은색 넥타이의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마주 섰다. 살짝 어색하게 웃던 두 사람은 이내 손을 잡았다. 이 대표는 약속도 했다.
"국민의힘, 또 민주당이 해야 될 제일 중요한 일, 민생을 챙기는 일, 더 안전한 나라를 만드는 일, 또 미래를 더 밝게 개척하는 일이 모두에게 주어진 책임 아니겠나. 할 수 있는 일, 또 하고자 하는 일들을 제안해주면 가치적으로 대립되는 것이 아닌 한 최대한 협조하겠다."
이어 이 대표는 이태원참사특별법과 전세사기특별법 처리 필요성을 언급했다. 그는 "(한 비대위원장이) 정치를 하고자 하는 근본적인 이유를 아마 이렇게 말씀하신 것 같은데, 함께 이 어려운 상황들을 개선해 나가고, 국민들께 희망도 드리고, 국가의 미래에서도 정치를 국민들이 걱정하지 않도록 미래에 대해서도 우리가 함께 노력해 가면 좋겠다"고도 했다.
그런데 거대 양당이 '함께 노력'할 수 있는 사안은 더 있다. 중대재해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법)과 선거제다.
그들이 노력할 수 있는 두 가지
중대재해법은 2021년 1월 제정 당시 50인 미만 사업장에는 2024년 1월 27일부터 적용하기로 했다. 하지만 전면 시행 시기가 다가오자 여권과 재계는 다시 '2년 유예'를 주장하고 있다. 지난 27일 유의동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은 당정협의에서 "현장에선 여전히 준비가 부족하다며 중대재해법 유예와 정부의 지원 확대를 요청했다. 이런 상황을 외면하고 법을 시행하면 입법 취지를 살릴 수 없고 범법자만 양성하는 심각한 부작용만 초래할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민주당은 표면적으론 반발하고 있다.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홍익표 원내대표는 11월 23일 ▲정부의 미진한 준비 사과와 관계자 문책 ▲중대재해법 확대 시행 2년 유예시 지원방안 ▲이후 전면 적용한다는 경제단체의 약속 등 '3대 선결 조건'을 제시하며 "이를 바탕으로 중대재해법 논의를 시작하겠다"고 말했다. 약 한 달 뒤인 12월 28일, 홍 원내대표는 "조건이 하나도 충족이 안 됐다"면서도 "정부가 좀 노력을 했으면 좋겠다"며 협상의 '여지'를 남겼다.
정의당은 "국민의힘에게 자꾸 시간을 벌어주는 민주당"이라고 일갈했다. 강은미 원내대변인은 논평에서 "정부여당이 제대로 법 시행을 준비하지 않았음을 사과하면 노동자들에게 안전 장비가 제공되는가. 2년 후에는 진짜 시행하겠다는 근거 없는 경제단체의 약속이 있으면 노동자들의 기본적인 안전수칙이 지켜지는가"라며 "민주당이 차일피일 입장을 미룬다면 국민들은 결국 국민의힘과 손잡기 위한 명분을 쌓는 것으로밖에 볼 수 없다"고 비판했다.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나진 않는다. 3년 전, 민주당은 여야 합의 처리를 명분 삼아 처벌대상을 줄이고, 제재수위도 낮추고, '중대재해기업 처벌 등에 관한 법률'에서 '기업' 두 글자도 뺐다. 준비 부족의 책임 중 절반도 그들 몫이다. 법 제정 이후 2022년 5월 9일까지는 문재인 정부였다. 그러나 당시 정부는 직업성 질병의 범위를 축소하고 노동계가 요구한 '위험작업시 2인 1조 원칙'도 없는 시행령을 내놓는 등 또 한 발 후퇴했다. 집권여당, 민주당 내 반대 목소리는 미미했다.
선거제는 어떨까. 여의도에는 여전히 병립형 비례대표제로의 회귀를 점치는 이들이 적지 않다. 거대 양당은 이해관계 앞에선 매번 손을 잡은 전력이 있다. 연동형 비례제는 정당 득표율에 따라 총 의석 수를 배분하기 때문에 지역구 의석을 많이 가져간 정당이 비례 의석을 받기 어렵다. 국회가 4년 전 정당 득표율의 절반만 반영하는 '준연동형'을 만들고, 이마저도 30석만 적용하는 '캡'을 씌우고, 양당이 위성정당까지 만들며 의석을 독식하려 한 이유다.
그런데 현재 국민의힘에겐 이준석 신당, 민주당에겐 이낙연 신당이란 변수가 생겼다. 아직 나비의 날갯짓이 어떤 바람을 불러일으킬지 알 수 없다. 하지만 현행 제도가 유지된다면, 두 당이 비례 선거에서 유의미한 성적을 거둘 경우 각 진영의 분화를 가져올 수 있다. 교섭단체 구성이 가능한 20석을 확보하는 상황까지 빚어지면 국회 작동방식도 확연히 달라진다. 언젠가부터 세상을 바꾸려는 정치 말고 기득권을 지키는 정략에만 매몰돼 공생해온 거대 양당이 원치 않을 시나리오다.
또 한동훈 비대위원장과 이재명 대표에게는 보다 명확한 이유가 있다. 공천권이다. 한 비대위원장은 지난 26일 취임사에서 "다양한 생각을 가진, 국민께 헌신할, 신뢰할 수 있는, 실력 있는 분들을 국민들께서 선택할 수 있게 하겠다"며 대대적인 물갈이를 예고했다. 이를 위해선 지역구뿐 아니라 비례 공천에서도 공간이 필요하다. 물론 한 비대위원장은 준연동형이어도 위성정당을 만든다면 얼마든지 비례 공천권을 행사할 수 있지만, 병립형으로 돌아갈 때 모양새가 더 깔끔하다.
민주당의 경우 지역구 현역만 151명이다. '영입인재위원장' 이재명 대표가 새 인물을 발굴해도 전략공천 가능한 곳이 많지 않다. 현재 불출마를 선언한 지역구 의원은 6선의 박병석, 4선의 우상호, 그리고 초선 오영환과 홍성국, 이탄희 의원 정도다. 위성정당을 만들지 않는다면 영입인재를 비례로 내보낼 길도 없기 때문에 병립형은 민주당도 혹할 수 있는 선택지다. 여기에 더해 이 대표가 '총선 지휘'를 명분 삼아 병립형 회귀를 전제로 비례 출마를 검토한다는 고약한 소문도 돈다.
'국민'이란 말에 가려진 것들
한동훈 비대위원장은 "정치인은 국민의 공복이지 국민 그 자체가 아니다"라며 '선민후사(先民後私)'를 말했다. 이재명 대표는 수시로 "정치는 정치인이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국민이 하는 것"이라고 얘기한다. 이 대표가 존경하는 루스벨트는 "우리의 목표는 통합적이고 영속적인 국민 생활의 보호, 바로 거기에 있다(1941년 1월 6일 의회연설)"고 했다. 한 비대위원장이 인용했던 처칠은 "과거와 현재가 싸우도록 내버려 두면, 미래를 잃게 된다(1940년 6월 18일 의회연설)"고 했다.
재계의 어제와 오늘을 내세워 '다음에'만 반복한다면, 일하는 사람들의 내일은 안전할 수 있을까.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이쪽도 저쪽도 싫다'는 국민에게 '둘 중 하나만 찍으라'고 제도를 바꾼다면, 정치는 국민을 위해 복무하는 일이 아니라 정치인을 위한 것으로 전락하지 않을까.
'가치적으로 대립되지 않는 사안에 협조한다'는 말과 '야합'은 동의어가 아니지만 '여의도 사투리' 용법은 다른 걸까. 두 당수가 중대재해법과 선거제를 두고 손 잡는 순간, 모든 의심은 확신이 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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