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아~ 괜찮아~"
다큐멘터리 영화 <괜찮아, 앨리스> 상영이 끝나고 관람 소감을 나누는 자리, 진행자가 한 관객에게 마이크를 가져갔다. 그가 머뭇거리자, 관객들은 "말하지 않아도 괜찮아~ 괜찮아~"를 합창했다. 소감을 나누는 동안 "괜찮아~ 괜찮아~"는 수차례 울려 퍼졌다.
윤채빈 순창여자중학교 1학년 학생은 "영화를 보면서 제 이야기를 하는 것 같아 살짝 슬펐다"면서 "영화가 청소년 이야기를 다루면서도, 한편으론 부모님들을 주제로 한 것 같기도 해서... 그래서 오늘 본 내용 중에 있던 대사들, '잘하지 않아도 괜찮아' 같은 대사들을 부모님한테 써먹어야겠다는 생각을 조금 했다"고 말했다.
김수현 복흥중학교 3학년 학생은 우리나라 교육체계에 대한 바람을 진지하게 전했다.
"저는 솔직히 한국의 교육이 청소년들에게 굉장히 겁을 주고 있다고 생각해요. 정작 미래를 보장해 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는데 '공부를 안 하면 실패하게 돼', '공부를 못하면 남들보다 뒤떨어지게 돼' 등의 인식들이 너무 강하게 박혀 있다고 생각이 들고요. 꿈틀리 같은 학교가 너무 적기도 하고... 사람마다 가치관도 다르고, 잘하는 것도 다 다른데 그거를 채워주고 극대화해줄 수 있는 교육체계가 갖춰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객석 꽉 채운 열기... 부모·자녀 등 참석
지난 13일 오후 6시 30분, 전북 순창군내 유일한 영화관인 순창읍 '천재의공간 영화산책'에서 <괜찮아, 앨리스> 상영회가 열렸다. 이번 행사는 '100개 극장 상영 관객추진단'인 구준회 순창교육희망네트워크 사무국장과 순창군청소년수련관 등 청소년단체의 도움으로 열렸으며, 전국 군 단위에서는 이례적으로 진행됐다.
평일 오후라는 시간대에도 불구하고 어린 자녀와 함께한 부부, 학생·교장 등 학교 구성원, 순창교육지원청 관계자, 순창군의원, 주민 등이 영화관 관객석 99석을 모두 채웠다. 영화 상영이 끝나자 관객들은 자신의 경험을 빗댄 소감을 나눴다. 순창군 전체 유·초·중·고 학생 수는 올해 4월 기준으로 2140명에 불과하지만, 우리나라 교육 문제를 진단하는 순창군 관객들의 열정은 뜨거웠다.
이종철 현직 대안학교 고교 1학년 담임교사는 "저희 학교를 선택했으면서도 부모와 아이 관계가 힘든 경우가 의외로 많다"면서 "영화에 나온 아이들 부모님도 우시고 그러는데, 대안학교를 보내면서 부모님들은 아이들이 자유롭게 하기를 바라지만 한편으로속마음은 그러지 못하고, 아이들이 주말에 집에 가면 되게 힘들어서 월요일에 학교 와서 많이 울고 상담을 해도 힘들어 한다"고 전했다.
"학교에서 학생들 상담뿐만 아니라 부모님 직장까지 찾아가서 상담하고 아이들이 행복하게 즐겁게 하고 싶은 거 할 수 있게 해달라고 하면 '그렇게 한다'고 하고도 그게 안 되더라고요. 방금 영화보면서 아이들이 생각나서 울컥했고, 부모님들이 아이들을 믿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전국에 좋은 대안학교들이 많아요. 그런데 꿈틀리 학교도 그렇지만 신입생 모집을 못 해요. 이런 학교를 많이 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자녀를 믿고 그런 학교를 보내면, 제대로 행복을 느끼면 그다음에 무슨 일이든 충분히 할 수 있거든요."
순창군 전체 교육지원을 맡고 있는 임대승 순창교육지원청 교육지원과장은 "저는 대한민국의 교육 시스템에 아주 훌륭하게 적응을 잘해서 '나름 잘 키웠다'라고 얘기를 들음직한 아들과 그 시스템에 적응하지 못하고 지금까지도 방황하고 있는 딸, 이렇게 두 녀석을 키웠다"라면서 상반된 두 자녀에 얽힌 이야기를 전했다.
"한 녀석은 뭐라고 얘기 안 했는데 알아서 그냥 잘해요. 제가 잘 키워서가 잘하는 게 아니고 하고 싶은 게 있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그냥 하고 싶은 거 하나만 쳐다보면서 자기 길을 가는 거예요. 근데 한 녀석은 하고 싶은 것도 없고 자기가 뭘 좋아하는지도 모르고 항상 고민에 빠져 있고 의욕도 많이 없었어요. 그러더라도 옆에서 항상 응원해줬습니다."
임 과장은 "중학교, 고등학교 다니는 애들한테 너의 미래에 대해서 고민을 하고 뭘 해라, 구체적인 꿈이 뭐냐 물어본다는 것처럼 무서운 질문이 없는 것 같다"면서 "그래서 '뭘 해도 괜찮으니까 네가 행복한 삶을 살라'고 응원해줬던 것 같다"고 했다.
"얼마 전 딸아이가 생일 때 본인이 어렵고 힘든 시간을 보냈음에도 '정말 괜찮아'라고 믿어주는 모습이 보였다고 해요. 저한테, 부모 모습에서. '그래서 정말 고마웠다'라고 얘기를 해줬는데... 아까 영화 속 그 말처럼 부모님들이 '괜찮다'고 말만 하지 말고 '정말 괜찮은 모습을 아이들한테 보여줘야 된다'고 생각해요."
"아이들이 정말 행복했으면 좋겠다"
김정숙 순창군의원은 "영화를 보면서, 결과가 설령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 할지라도 정말 괜찮다고 마음속까지 괜찮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면서 "우리 아이들이 불안하지 않게 그리고 또 그 결과에 대해서 좌절하지 않고 다시 시작할 수 있게 우리 부모님들이 정말 진정한 마음의 여유를 찾으시면 좋겠고, 아이들은 어떤 경우에 혼나면 어쩌지, 잘하지 못하면 어쩌지 그런 생각들보다는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했으니까 괜찮아, 그리고 내가 해보는 거야, 이렇게 도전하는 용기를 잃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중학교 1학년 아들과 함께 참석한 최영일 순창군수의 부인 김주하 여사는 "영화를 시작하자마자 중학생 때 아이 이야기가 나오면서 눈물이 너무 났다"면서 "저도 아이를 정말 자유스럽게 키우고 싶어서 시골에 시집 와서 아이를 낳고 키우게 됐는데 막상 아이를 중학생에 보내보니까 현실이 또 많이 달랐다"라고 했다.
"순창에서도 아이들이 경쟁 사회에 있구나, 아이들이 꿈을 펼칠 수 있는 자리가 많이 부족하다는 걸 느꼈습니다. 성장 중심으로 인서울을 향해서 가고 있는 걸 느껴서 공무원의 아내로서 많은 아쉬움이 있었는데요. 정말 열심히 하시는 청소년수련관과 교육청을 많이 들여다보려고 노력했습니다. 공부만이 아니라 문화 교육이나 다른 환경에도 조금 더 관심을 갖는 순창이 됐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아이들에게 쉼표를 선물하고... 정말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
이상은 순창군청소년수련관 관장은 "저는 청소년들이 자발적으로 자신의 삶을 어떻게 출발할 수 있을까, 하고 싶은 걸 어떻게 지원할 수 있을까 고민하고 찾는 과정을 함께하고 있다"면서 "청소년들이 학교 공부에 많이 묶여 있는 게 정말 안타까운 현실인데, 청소년과 함께 하는 현장에서 현재 만족하는 것 그리고 행복한 것, 필요한 것이 어떤 것인지 더욱 고민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전했다.
영화 관람 소감을 나누는 시간이 끝난 뒤에도 곳곳에서는 여러 이야기가 오갔다. 특히 "나는 1년 동안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겠습니다. 절대 공부하지 않겠습니다"라는 영화 대사는 두고두고 주목을 끌었다.
임대승 과장은 학생들에게 "아까 영화에서 공부하지 않겠다고 얘기하는 형, 오빠 봤죠"라고 물으며 이렇게 이야기했다.
"하지만 그 뒤에 단서가 붙었어요. 뭐라고요? '정말 허투루 보내지 않겠습니다'라고요. 뭘 하든 간에 나의 인생에서 1년은 길다면 길 수도 있고, 짧다면 짧을 수도 있는 시간이지만 허투루 보내지 않고 내가 뭔가를 하고 있구나, 또 뭔가를 위해서 숨을 쉬고 노력을 하고 있구나라는 것을 몸소 느끼는 그런 시간들로 자꾸 채워간다면 굳이 우리가 어떤 사람이 되겠다라고 결정짓지 않아도 어떤 사람인가 돼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영화를 본 학생과 주민들은 낮은 목소리로 "쉬어가도 괜찮아", "다른 길로 가도 괜찮아", "잘하지 않아도 괜찮아"를 되뇌었다. 한 학생은 "이러다가 '괜찮아'가 유행어가 되겠는 걸"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순창군에서 상영회를 주관한 순창교육희망네트워트 구준회 사무국장은 마무리 인사말에서 "기회가 된다면, 영화를 만드신 오연호 <오마이뉴스> 대표님과 양지혜 감독님을 순창에 모셔서 다시 한 번 상영회를 추진해보면 좋겠다"면서 "순창의 청소년들이 모두 <괜찮아, 앨리스>를 보고 위로와 도전, 꿈을 갖게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