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인터넷 신문사만 4322곳(2023년 신문산업 실태조사), 레드오션도 이만한 레드오션이 없다. 세상은 바야흐로 콘텐츠의 시대, 뉴스는 물론이고 영화와 드라마, 유튜브 영상과 쇼츠, 커뮤니티 게시글까지 서로 뒤엉켜 보는 이의 관심을 잡아끈다. 조명되지 않는 것이 없을 것만 같은 콘텐츠의 홍수 와중에도 새로이 언론사를 차리고 저만의 색깔이 잔뜩 묻은 무엇을 생산하겠단 이들이 있다. 지난 8월 매체 등록을 하고 첫발을 내디딘
<느린IN뉴스>도 그런 매체다.
발행인 권오진, 편집장이자 취재기자 역할을 맡는 신유정이 손을 맞잡고 시작한 이 매체는 '느린인들의 목소리를 세상에 전하고, 함께 변화를 만들어 나가고자 한다'는 포부를 첫머리에 내세웠다. 이들이 말하는 '느린인'이란 경계선지능인이라고도 불리는 일명 느린학습자, 지적장애인과 비지적장애인의 경계인에 서 있는 이들이다.
IQ(지능지수) 기준 71에서 84 사이에 있는 이가 총 인구 가운데 13.6%, 약 700만 명으로 추산된다. 일상생활을 수행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당사자들이 제도권 사각지대에서 고통을 받고 있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당사자들의 처지에 대한 이해와 공감을 확산하고 궁극적으로 관련 법규 제정에 기여하는 것이 <느린IN뉴스>의 지향이다.
'레드오션' 언론산업, 굳이 창업하는 이유
느린학습자를 위한 언론은 한국사회에 어떤 의미를 갖는가. 기존의 여러 매체와 <느린IN뉴스>의 차별점은 무엇인가. 언론사 입사를 준비하다 돌연 직접 매체를 창간했다는 신유정 편집장과 지난 10월 서울 동대문구에 위치한 '휘카페'서 만났다. 느린학습자 바리스타가 내려주는 커피를 앞에 두고 진행한 인터뷰는 이 작은 언론사가 한국 사회에 존재해야만 하는 이유를 내게 설득해냈다. 그렇다면 다른 이에게도 가능하지 않을까. 이 작은 언론사가 그를 알지 못하던 이들에게 가서 닿을 수 있도록 하는 일, 그것이 이 기사를 쓰는 목적이다.
한 편에 8만 원이라 했다. 기사 한 편당 시민기자에게 지급하는 고료 말이다. 느린학습자를 위한 기사를 제공하는 조건으로 이 매체는 출범과 함께 열다섯 명의 시민기사와 계약을 맺었다. 당초 10명을 구하기 위한 공고에 모두 150명이 넘는 인원이 지원했다고 했다. 설명회와 시민기자 발대식을 거쳐 공식출범한 <느린IN뉴스>에 시민기자가 쓴 기사가 처음 실린 건 지난 10월 11일, 황미경 시민기자의 '세상이라는 바다에 헤엄치는 파랑고래 청년을 만나다'란 기사다.
사회복무요원으로 근무하는 제 아들을 인터뷰한 이 기사에 달린 댓글 하나, '느림을 인정하고 성장해 가는 모습이 정말 멋집니다'. 보통 사람들이 별 어려움 없이 수행하는 일에도 애를 먹는 느린학습자들이 자신의 솔직한 이야기를 세상 가운데 꺼내놓도록 하는 것, 그것이 또한 이 매체의 목적이라 했다. 느린학습자인 제 아들의 이야기를 인터뷰로 꺼내놓기까지 고민과 걱정이 없지는 않았을 터다.
신유정 편집장은 "황미경 시민기자가 앞으로도 청년들 인터뷰를 하고 싶다고 했는데, 첫 번째 기사로 꼭 아들 이야기를 내고 싶다고 말했다"며 "기사가 나가고 독자들의 반응을 접하게 되면서 (시민기자 제도를 운영하길)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전했다.
시민기자 제도를 운영하는 건 결코 쉬운 결정이 아니었다. 어떤 지원도 없이 이제 막 창간한 작은 매체의 입장에서 이 제도를 운영하기 위해 들이는 비용은 곧 부담이 되는 탓이다. 월 1건의 기사에 8만 원씩, 모두 15명의 시민기자에게 지급되는 원고료만 120만 원이다. 1년이면 1000만 원을 넘어가는 큰 돈이다. 고료 책정부터 제도를 운영하기까지 고민이 없지 않았을 터다.
신유정 편집장은 "원고료가 얼마여야 한다는 정해진 기준이 있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공을 들여 쓴 기사에 적절한 대가를 지급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부담을 안고 진행한 것"이라며 "덕분에 공 들인 기사가 나왔는데, 보통 딱딱한 기사하고 다르게 이 기사는 살아 있는 따뜻한 사람이 썼다고 느껴지기도 하고 덕분에 반응이 뒤따랐다고 생각한다"고 평가했다.
차별화되는 기사와 접근법을 고민하며
<느린IN뉴스>는 기존의 매체와 차별화되는 방식으로 언론이 소외시켜온 이들의 이야기를 세상에 전하려 한다. 시민기자들이 작성한 피부에 와 닿는 온도 있는 기사에 더해 여러 가지 방법론을 거듭 고민한다. '쉬운 뉴스'는 다른 매체에선 찾아보기 어려운 <느린IN뉴스> 만의 콘텐츠다. 딱딱한 글을 읽기 어려워하는 느린학습자 독자를 위해 보다 쉽고 가독성 높은 기사를 추구한다.
'뉴진스' 하니가 국정감사에 출두한 소식을 전하며 국회와 국정감사가 무엇인지를 설명하고, 아이돌그룹 멤버가 이 자리에 나선 과정과 그 의미까지를 알기 쉽게 풀어내는 것이 이 매체의 방식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처럼 시민으로서 마땅히 알아야 할 정보를 놓치지 않고 소화하려 애쓴다. 신문기사에선 흔치 않은 존댓말로, 통상 생략되기 쉬운 맥락과 지식까지를 전한다. 누군가는 기사를 따라잡지 못 하고 정보로부터 소외되는데, 그 소외를 해소하는 일 또한 이 매체의 역할인 것이다.
신 편집장은 "느린학습자들은 별 것 아닌 정보에서부터 조금씩 뒤처지다 사회에서 소외되고 스스로 박탈감을 내면화하는 경우가 많다"며 "어떻게 하면 느린학습자들에게 뉴스 접근성을 높여줄까 고민하다 생각한 게 쉬운 뉴스인데 혼자서 이슈를 다 따라가며 다루려니 벅차기도 하고 갈 길이 멀다고 느낀다"고 아쉬워했다.
11월 20일 기준으로, 쉬운 뉴스 코너에 올라온 기사가 벌써 다섯 건이다. '기후위기'와 '딥페이크 범죄',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이며 '뉴진스 하니의 국정감사 출석', '보이스피싱 예방법'까지 최신 이슈부터 느린학습자에게 실제적 필요가 있는 정보를 놓치지 않고 다루려 애쓴 흔적이 역력하다.
느린학습자가 겪는 문제는 많은데 다룰 수 있는 여력엔 한계가 있단 점은 큰 아쉬움으로 남는다. 신 편집장은 "하고 싶은 것, 취재하고 싶은 주제가 정말 많은데 꼭 다뤄야 할 일부터 하루하루 쳐내는 데 급급하다 보니까 처음에 시작할 때 하고 싶었던 그런 취재를 많이 못 하는 게 아쉽다"며 "예를 들어서 심층적인 취재를 하면 느린학습자에 대한 근본적 변화를 만드는 데 조금 더 힘이 될 것 같은데, 인력이 부족해 아직까지 그런 걸 잘 못하고 있는 것 같다"고 토로했다.
그들의 고립보다 우리의 고생이 낫다
엄살 섞인 아쉬움 너머로 <느린IN뉴스>가 작지만 뚜렷한 변화를 일으키고 있단 건 분명해 보인다. 홈페이지 제작 비용에서 상당 부분을 차지했다는 '정보통' 카테고리에 꾸준히 접속자가 있다는 사실도 그렇다. 정보통은 신유정 대표가 특별히 관심을 기울인 항목이다. 시행주체에 따라 각 지자체며 복지단체로 흩어진 느린학습자 관련 정보를 한 자리에서 확인할 수 있도록 한 항목이다. 전국 17개 광역자치단체를 지도와 함께 클릭할 수 있도록 해, 느린학습자와 관련인이 본인이 사는 지역의 관련 정보를 쉽게 찾아볼 수 있도록 했다.
신 편집장은 "제가 직접 일일이 돌아다니며 정보를 찾아 업데이트하는 수고를 들여야 한다는 어려움이 있지만, 보는 사람은 한자리에서 확인할 수 있도록 했다"며 "느린학습자가 정보를 찾고 이런 걸 어려워하는 경향이 있는데 그 어려움을 눈높이에 맞춰 해소해줄 필요가 있지 않나"고 의지를 불태웠다.
이제 막 걸음마를 뗀 <느린IN뉴스>는 선발한 시민기자들과 함께 활발히 기사를 생산해 정보가 갈급한 이들에게 전하고 있다. 신 편집장은 "기존에도 방송국이나 기성매체에서 한두 번씩 느린학습자를 다룬 뉴스를 내보낸 적이 있지만 어쩌다 한 번에 너무 많고 큰 이야기를 다루지 않나"라며 "세세하고 깊게 들여다보며 법제화 같이 보다 심층적인 문제에 진득하게 기여할 필요가 있는데, 그게 우선 우리의 역할이라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더 많은 관심을 당부하며
지난 한 달 여의 취재 동안 신 편집장 또한 인식의 변화를 적잖이 겪었다고 했다. 그녀는 "일을 하면서 느린학습자분들과 계속 만나며 이 일이 중요하단 사실을 새로 깨닫는다"며 "며칠 전에도 국회 토론회에 갔다가 검사를 받고서 제가 느린학습자란 사실을 알게 된 30대 청년분과 대화하게 됐는데, 알바도 계속 잘리고 일을 하는 게 너무 힘들어서 나 혼자만 왜 삶이 이렇게 어려울까를 고민하다 우연히 자기와 같은 이들이 많단 걸 알고 많이 안심이 됐다고 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조금씩 느린학습자에 대한 인식이 생기며 초중고 과정에서 검사를 권하는 경우도 있고, 군대 신검 과정에서 알게 되는 경우도 많고, 언론에 나온 기사를 보며 '이거 내 얘긴데' 깨닫는 분들도 있다"며 "아직은 인식도 부족하고 제도적으로도 갈 길이 멀어서 <느린IN뉴스>가 맡아야 할 역할이 분명히 있다고 본다"고 강조했다.
필요는 분명한데 현실적 어려움이 산적한 상황이다. 무엇보다 매체를 알리고 재정적 어려움을 극복하는 것이 우선순위다. 신 편집장은 "느린학습자 부모님들이 모인 커뮤니티에서 활동하던 분과 함께 매체를 시작해 어느 정도 그 안에서의 인지도는 있는 편"이라면서도 "여전히 스스로가 느린학습자인 걸 모르는 이들이 많고, 그 너머에 있는 일반 시민들에게도 그 존재를 인식하도록 하는 게 필요한데 쉽지 않다"고 아쉬워했다.
인터뷰 말미, 하고픈 말을 묻는 내게 신 편집장은 "현실적으로 매체를 계속 유지할 수 있게끔 많은 관심과 지지가 있었으면 한다"고 쑥스럽게 웃었다. 필요한 목소리가 바로 설 수 있도록 하는 건 결국 시민의 관심이 아닌가. 나는 그 또한 반드시 전해야겠다고 마음먹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