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특별시교육청 양천도서관을 종종 찾는다. 도서관에서 한 달 한 번씩 하는 독서모임의 진행을 맡으면서 전보다 더 자주 도서관을 찾게 되었다. 이제까진 그저 책을 빌리는 공간일 뿐이었다면, 모임을 기다리며 도서관의 이모저모를 뜯어 살필 일도 생기게 되었다. 도서관이 진행하는 작지만 매력적인 행사들도 그중 하나라 할 수 있겠다.
지난달, 이곳 열람실 한쪽에서 자그마한 행사가 열렸다. 공간은 얼마 차지하지 않았지만 제법 오래 기억에 남는 전시였다. 전시의 제목은 '순간포착 세상에 이런 책이!', 낙서, 오염, 절취 등 오·훼손도서를 전시한다는 설명이 함께 나붙었다. 그를 가만히 살펴보다보니 정말이지 이런 전시가 꼭 필요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사실 일찌감치 했던 생각일 수 있겠다. 도서관에서 책을 빌린 게 벌써 삼십년을 훌쩍 넘었으니 말이다. 공공도서관은 늘 우리 곁에 있지만, 따지자면 결코 당연한 일이 아니다. 시민의 세금으로 집행되는 공공서비스다.
한때는 열악했던 것이 시민의 힘이 커지고 문화증진과 독서보급의 필요가 일어나며 시민 가까이로 다가온 서비스다. 그로부터 오늘의 시민들은 제 돈을 들이지 않고도 양질의 도서를 쉽고 편하게 빌려볼 수 있게 된 것이다.
시민의식 의심케 하는 도서관 책들
그러나 모든 시민이 한 마음일 수는 없는 일이다. 공중도덕이란 말이 무색하게도 오로지 저 하나만을 돌보고 다른 이들을 불편케 하는 이가 주변에 적잖이 있는 것이다. 책을 빌려보다보면 정말이지 상태가 엉망인 책을 쉬이 만날 수 있다. 온갖 방법으로 더럽혀지고 훼손된 책을 보았다. 그 때문에 제대로 된 독서를 할 수 없게끔 상한 사례도 적잖았다.
누가 그런 일을 범하는가. 때로는 정말 못된 인간이라서 그럴 수도 있겠다. 그러나 개중 몇쯤은 몰라서, 주변을 신경쓰지 않아서 그럴 수도 있는 일이다. 서울 양천도서관이 이와 같은 전시를 기획한 건 그런 이들이라도 계몽하여 더 나은 독서환경을 조성하고자 함이겠다.
가장 흔한 사례는 책에 낙서하는 것이다. 밑줄을 긋고 별표를 치고 메모까지 한다. 더 깊은 독서를 하기 위함일 수 있겠다. 저의 감흥을 다른 이와 나누고픈 마음일 수도 있겠다. 그러나 그 모두는 제 생각일 뿐이다. 다른 이는 그로부터 짜증이 나고 방해를 받을 수도 있는 일이다.
자유는 타인의 권리 직전에 멈춘다는 격언도 있지 않던가. 타인을 방해하는 나의 자유는 허락될 수 없는 것이다. 사서는 밑줄 빽빽한 책 위에 '지우개로 널 지울 수만 있다면 백번이고 모두 지우고 싶어'라고 써 두었다. 누가 지우고 싶지 않을까.
밑줄 많은 또 다른 책 위엔 '낙서란 나와 책 사이의 일방적인 대화이다'란 글귀가 쓰였다. 역사학자 E.H. 카의 '역사란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란 문장을 비튼 것이다. 그 센스에 절로 미소가 난다. 그렇다. 도서관 책에게 입이 있었다면 이러한 대화를 허락할 리는 없는 것이다.
다음 사례는 더욱 짜증스럽다. '사람을 짜증나게 하는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글을 중간에 끊는 것이고'라고 쓰인 문장이 인상적이다. 인터넷에서 화제가 된 글귀로, 스스로 두 번째 사례를 들지 않아 그 효과, 즉 짜증을 불러일으킨 명구절이 아닌가. 책장을 절취해 다른 이는 아예 뒷얘기를 볼 수 없도록 한 경우가 그 문장 곁에 놓였다.
책이 훼손되는 흔한 사례로는 음료를 쏟거나 빗물에 적시고, 반려견이 물어뜯은 경우도 있다. '카피'와 관련된 장이 커피로 더렵혀진 사례를 찾아 '카피 단어를 보니 커피가 마시고 싶으셨을까요?'하고 재치 있게 적어둔 글귀가 특히 눈길을 끈다.
'병주고 약주기'란 글이 붙은 전시물도 있다. 책이 금세라도 둘로 갈라질 듯 위태로운 가운데 테이프로 억지로 붙여놓은 경우다. 도서관 측은 '보수가 필요한 책은 직원에게 알려주세요'라고 적어 이 같은 문제에 대응하는 적절한 방법을 전시를 통해 알린다.
또 하나 분통 터지는 사례가 있다. 책 안에 문제가 들어 있는 경우다. 어떤 사용자는 빈칸을 남기지 못하고 직접 문제를 풀어 그 답을 책 안에 적어놓는다. 아예 채점까지도 해두는데, 그러면 다음 이용자는 책을 제대로 이용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학습지나 문제집, 또는 문항이 들어 있는 일반도서 중에서도 이런 경우가 적지 않은데, 이런 일을 벌이는 이들이 대체 어떤 마음으로 도서관 책을 이용하는 것인지 이해하기 어렵다.
책을 냄비받침으로 쓰는 사례도 있다. 표지에 명확히 냄비자국이 난 사례로, 도서관은 이를 전시하며 '책은 냄비받침이 아닙니다!'라는 글귀를 강렬하게 적어두었다. 그 적나라한 모양이 표지를 변질케 해 실소를 자아낼 정도다.
도서관 책을 빌려 처음 상태 그대로 반납하는 건 공중도덕과 관련된 일이다. 공공서비스를 유지하고 공동체를 유익하게 하기 위하여 반드시 지켜야 하는 규칙이다. 그러나 조잡한 이기심으로 이를 망치는 이들이 적잖다.
이번 전시는 자기 잘못이 어떤 결과를 일으키는지, 타인의 시선에서 생각해본 적 없는 이들을 위해 기획됐다. 누군가는 이와 같은 전시를 보고 다시는 전과 같은 잘못을 하지 않으리라 기대한다. 대단한 악인이 아니라 우리 주변의 평범한 이들이 책을 빌려 훼손하고 그대로 반납하고 있을 것으로 추정되기 때문이다.
앞으로 나아질 것을 기대하는 건 멋진 일이다. 도서관이 공중도덕 없는 이를 비난하고 개탄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이렇게 전시를 해 유머를 섞어 알렸다는 게 멋스럽다. 이 글은 그를 응원하는 마음으로 쓰였다. 이건 작지만 멋진 전시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