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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텔 아이리스> 겉표지
ⓒ 이레
오가와 요코의 <호텔 아이리스>는 소위 말하는 ‘SM소설’이다. 오가와 요코의 이름을 아는 사람이라면 상당히 놀랄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오가와 요코의 이름에는 항상 <박사가 사랑한 수식>이 따라오기 때문이다. 그 아름다운 이야기를 쓴 작가가 SM소설을 썼다는 것을 누가 믿겠는가?

마리는 호텔 아이리스에 산다. 아이리스는 호텔이라고 하지만 사실은 시골 마을의 지저분한 모텔 같은 인상이 강하다. 강가에 있어 철을 맞아 장사를 하는 그런 곳이다. 엄마가 운영하는 호텔에서 그녀는 학교에도 가지 않고 잡일을 한다. 마리는 호텔 아이리스 사장의 딸이지만 얼핏 보면 잡다한 일을 하는 아르바이트생 같다. 마리의 삶은, 겨울철을 맞이한 시골 마을의 풍경처럼 따분하다.

‘그’는 F섬에 산다. 러시아어로 된 공문 따위를 번역하고 있다. 또한 자신이 원해서 문학작품을 번역하기도 한다. 그에 대한 소문은 무성하지만 그 중에 좋은 것이라고는 하나도 없다. 마을 사람들은 그를 일컬어 아내를 죽였다고 한다. 그런 소문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그는 종종 F섬을 나온다. 그의 삶은 여름철 땡볕이 내리쬐는 들판 위에 혼자 있는 것처럼 외롭고 고독하다.

마리와 그가 만난 곳은 호텔 아이리스다. 그는 창녀를 데리고 왔었다. 호텔 방에서 창녀는 소리를 지르며 나왔다. 그에 대한 소문이 가뜩이나 안 좋았던 터라 사람들은 다들 안 좋은 시선으로 그를 볼 수밖에 없다. 그런데 단 한명이 다른 시선으로 그를 본다. 마리다. 마리는 그의 목소리와 뒷모습을 기억하게 되고 결국 그에게 빠져든다.

<호텔 아이리스>의 시작은 아이리스라는 단어처럼 부드럽게 시작한다. 아버지를 그리워하는 마리와 사람을 그리워했던 그가 쌓아가는 인연은 나이 차이에도 불구하고 서정적인 아름다움으로 칠해진다. 그런데 어느 한순간, <호텔 아이리스>는 정체를 드러낸다. 서정적인 선율은 온데간데없이, 난폭한 음악이 기습해온다. 그것은 “옷 벗어”라는 그의 말에서 시작한다.

이때부터 <호텔 아이리스>는 ‘SM소설’의 모든 것을 보여준다. <박사가 사랑한 수식>의 작가라고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오가와 요코가 만든 그는 마리에게 온갖 폭행을 가하고 마리는 그것을 받아들인다. 그가 실망하면 어쩌나 하는 생각까지 하면서 말이다. 남자의 명령에 완전히 빠져든 셈이다. 전형적인 SM소설이다.

그런데 이상하다. 보면 볼수록 <호텔 아이리스>에서 그리는 ‘SM’은 선정적이지가 않다. 그 주인공들이 지극히 평범한, 마치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사랑을 하고 그것을 자랑스러워하는 연인처럼 다가오고 있다. 왜 그런 걸까? 오가와 요코가 SM을, 사랑을 표현하는 수많은 방식의 하나로 인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가와 요코는 자신의 생각에 머물지 않고 독자들을 설득하려 한다. 그래서 그들의 행위가 나오게 되는 분위기에 대한 묘사를 충실히 하고, 나아가 그 또한 몸으로 하는 의사소통의 하나임을 적극적으로 알리고 있다. 그것은 성공하고 있을까? 이런 소재를 다루면서 예술성을 앞세워 독자들이 알아서 이해해주기를 바라는 소설과는 확실히 다른 느낌을 주고 있다.

마리는 호텔 아이리스에 살았고 그는 그곳에서 마리를 처음 만났다. 그리고 독자들은 그곳에서 독특한 풍경을 볼 수 있게 됐다. 그 풍경이 어떤 값어치로 매겨질지는 독자들의 몫인지라 함부로 단언할 수는 없다. 다만 한 가지는 말할 수 있다. <호텔 아이리스>는 최소한 ‘SM소설’이라는 말보다는 또 하나의 사랑이야기로 불릴 자격을 지녔다는 것을 말이다. SM소설이라는 단어로 정리해버리기에는 여러 모로 아쉬운 점이 많은 것이다.

호텔 아이리스

오가와 요코 지음, 김난주 옮김, 이레(2007)


태그:#박사가 사랑한 수식, #오가와 요코, #호텔 아이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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