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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神)들은 사람들에게 음식을 보냈으나, 악마는 요리사를 보냈다.
-톨스토이의 <독서의 수레바퀴> 중


▲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
ⓒ 최후의만찬
먹는다는 것의 성(聖)과 속(俗)

기독교인이 아닌 비신자들은 너무나 유명한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을 볼 때마다 무슨 생각을 할까. 예수가 두 제자에게 일러 다락방에 차린 만찬 자리는 검소하기 그지없다.

예수는 이 자리에서 "이 빵과 포도주는 내 살과 피이니라"라고 했다. 예수는 또 이 자리에서 너희들 중 누군가가 나를 배반할 것이라고 예언했다. 종교인들은 이러한 예수의 말씀에 각각 최후의 만찬의 자리를 달리 해석한다. 어쨌든 이 명화 속 열두제자와 예수가 다 함께 나누는 성찬의 의미는 인간의 조건 중 먹는다는 행복의 의미와 다 함께 모여 음식을 통해 사랑을 나누는 성스러운 만찬의 의미를, 새삼 되새기게 만든다.

혼자 먹는 식사는 먹어도 고프다

의학적으로 혼자 먹는 식사는 소화에 이롭지 못하다는 이론이 있다. 정서적으로도 혼자 먹는 식사는 쓸쓸하다. 즐거운 식사시간이 되려면 가족이나 연인이나 친지와 함께 나누는 것이 좋다고 한다. 영화 <4월의 이야기>의 '우즈키'는 도쿄의 대학으로 이사를 한 뒤, 도저히 혼자 저녁을 먹을 수 없어서 이웃집 여자에게 카레라이스를 함께 먹길 원한다. 하지만 이 청은 거절되고, 혼자 쓸쓸히 저녁을 먹는다.

저녁 식사를 거절한 이웃집 여자는 그게 마음에 걸려 밤늦은 시각에야 다 식은 카레라이스를 먹기 위해 찾아온다. 그 식은 카레라이스를 나누어 먹으면서 두 사람은 비로소 이웃이 된다.

이처럼 낯선 사람과 친해지는 데는 식사를 같이 하는 게 최상의 지름길이다. 종종 "밥 한끼 같이 해요"하고 전화를 하고 밥 한끼 같이 먹기 위해 만난다. 식사를 통해 같이 나누는 것은 음식이 아니라, 곧 사랑을 나눈다는 의미도 된다.

한솥밥 먹는 데서 정 든다

우리 속담에는 음식에 관한 속담이 상당히 많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다", "음식 끝에 맘 상한다", "정승도 먹어야 산다", "배가 부른 거지는 열 부자가 안 부럽다" 등등 대개 먹는 것이 최상이라는 함의를 품은 속담들이다. 하지만 이런 속담들은 먹는 것이 너무 흔한 세상이라, 상징적 차용으로 빌려 쓸 때가 더 많다.

한 지붕 식구들도 각각 식사 시간이 다르고 얼굴 보기 어렵다. 어쩌다 함께 어울려 식사를 하는 식탁 테이블 위에는 실제 먹는 음식보다 남은 음식이 더 많다. 모쪼록 혼자 먹기 위해 만든 귀한 음식도 시간이 지나 먹을 사람이 없으면 냉장고에서 뒹굴다가 쓰레기통으로 향한다. 이웃과 음식을 함께 나누어 먹고 싶어도 예전과 주거 형태가 많이 다르다.

아파트가 대부분인 도시의 이웃은 인터넷처럼 너무 가깝지만 지구 저편에 있는 듯 멀다. 서로 음식 취향이 천차만별의 시대, 이웃끼리 음식을 나누어 먹는 일은 아무래도 요즘 사람들에게는 망설여지는 일이다.

▲ 마네의 '풀밭 위의 식사'
ⓒ 풀밭 위의 식사
신(神)과 함께 식사하다

마네의 그림은 그림에 대해 전혀 관심이 없는 사람에게도 눈에 익은 그림이다. 낙선한 그림의 전시회에서 눈에 띄기 시작했다는 마네의 <풀밭 위의 식사>는 일반적인 식사 개념을 혁명적으로 형상화했다. 때문에 당시 이 그림은 대중의 심한 반발을 불러 일으켰다고 하지만, 보는 시각에 따라서 풀밭 위의 아름다운 누드의 여인과의 식사는 에덴동산을 연상하기 충분하다.

<최후의 만찬>의 '신'과 함께 하는 성찬과 <풀밭 위의 식사>의 '자연'의 품안에서 식사와 사랑을 함께 나누는 '사랑'의 묘사에서 두 작품의 의의는 동일선상에 놓여진다.

일반적으로 서양 사람들의 식사시간은 신과 함께 하는 식사시간이다. 그들은 신에게 감사를 하고 음식을 나눈다. 우리의 경우 기독교인 외 음식 앞에 놓고 기도 하는 사람은 별로 많지 않고, 도리어 "밥 놓고 제사 지내냐 " 질책한다. 그러나 기독교인이 아니라 하더라도 식탁 위에 올라오는 음식물에 대한 감사하는 마음의 기도는 있어야 하지 않을까.

결혼식장의 의미 없는 식사권

"잔칫날 먹기 위해 사흘을 굶는다"는 말이 있다. 옛날 우리 전통 혼례의 풍습은 마을 사람들이 각자 정성껏 만들어온 축하 음식을 가지고 와서, 온 동네 사람들이 음식을 나누면서 신부와 신랑을 축하했다. 그러나 이런 풍습은 전설이 되었다. 결혼 혼례 음식은 전문가에게 대부분 맡겨지고, 결혼식에 초대 된 손님들의 음식은 큰 식당에 일임한다.

인생의 가장 경사스러운 결혼 예식장 부근의 식당 안은 아수라장과 같다. 똑 같은 식사권을 가진, 누구의 축하객인지 알 수 없는 익명의 사람들이 함께 모여 식사를 하다보면, 멀뚱멀뚱 말 한마디도 없이 마주 앉아 먹는 멋쩍은 경우가 왕왕 있다.

초대하는 이가 만든 음식도 아니라서 축하 식사의 의미도 없어서, 식사권을 발부하는 결혼 당사자에게도 부담이고, 축하객에게 버리기도 아까운 식사권의 결혼 답례 문화는 차라리 없는 것이 좋지 않을까.

어머니가 만든 음식이 그립다

매일처럼 들리는 식당에서 밥을 먹게 되면 이 반찬은 혹시 누가 먹던 것이 나오는 것은 아닐까 하고 의심하게 된다. 매일 음식점에서 나오는 음식쓰레기 양이 엄청나다. 이는 국가 손실이며 낭비다. 달맞이 고개에서 큰 불고기점을 하는 모 사장은 주문제가 시급하지만 손님들이 원하지 않는다고 한다.

도리어 주문제로 인해 야박하다는 둥 불친절하다는 불평을 감수해야 하고, 나중에는 아예 찾아오는 손님이 없어 문을 닫을 실정이라, 예전 방식대로 운영한다고 한다. 한해 우리나라 음식 쓰레기를 값으로 환산하면 몇 조원에 달한다고 한다. 가까운 일본의 경우는 주문하지 않은 반찬을 서비스로 내 놓는 법은 없다. 우리의 경우는 덤으로 나오는 반찬의 경우 빈 그릇이 나오기 무섭게 서비스를 요구한다. 그러나 정작 서비스로 나온 반찬은 다 먹지 못해 음식 쓰레기통으로 들어간다.

▲ 고흐의 '감자먹는 사람들'
ⓒ 감자먹는 사람들
감자먹는 사람들 손에는 흙냄새가 난다

고흐의 그림에 관한한 이설이 많다. 누군가 고흐의 <감자 먹는 사람들>을 복제해서 가지고 화상에게 왔다. 그 화상은 가짜 <감자 먹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곧 알아냈다고 한다. 그것은 가짜 <감자먹는 사람들>의 농부의 손과 진짜 고흐의 <감자 먹는 사람들>의 손은 꼭 같았으나, 고흐의 <감자 먹는 사람들>의 농부 손에는 흙냄새가 났다고 한다. 거짓말 같은 이야기지만, 이 고흐의 어두운 그림을 볼 때마다 코끝이 찡해온다.

희미한 호롱불 아래 형제들이 서로 많이 먹으려고 싸우면서 울다가 목이 메는 감자를 먹던 생각을 어쩔 수 없이 나게 만드는, 정말 농민의 손에 흙냄새가 나는 명화다. 자신의 손으로 농사를 짓는 사람들은 흙에서 나온 것으로 지은 음식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이 짙다.

그러나 흙냄새 나지 않는 손들이 가격을 계산한, 식사의 경우는 음식에 대한 감사의 마음도 없을 수밖에 없다. 빠른 시간 내 엄청나게 엥겔지수가 높아진 우리의 음식문화 수준은 예전과 달리 다양화 되어 있다. 대부분의 식당에서 나오는 음식 가지 수도 화려하고 놀라울 정도로 가짓수가 많다. 막상 먹으려면, 젓가락이 가는 음식은 별로 없다. 실제 따뜻한 감자 한 알의 끼니만도 못한 경우도 많다.

도시사막, 낙타들의 저녁식사

일반 식당에서는 위생상, 경제상, 음식 쓰레기를 줄이기 위해서도 주문식단제는 정착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식당에 온 손님들은 주문식단제로 인한 만만치 않게 나오는 가격 때문에 이를 거부한다. 그러나 현행의 식단제는 모순이 많다. 전라도 여행 중 들른 어느 민속 식당에서는, 무려 백가지나 되는 반찬이 나오는 곳이 있었다.

모 방송매체에서 음식점의 식당에서 손님이 먹고 남은 음식을 다시 몇 번이고 상에 내 놓는 장면을 몰래 카메라로 방영해 주어서, 많은 시청자들의 분노를 산 적이 있다. 그러나 그때뿐이다.

예수의 말씀처럼 음식물은 내 피가 되고 살이 된다. 음식물은 소화기관을 통해 피가 되어 우리 몸을 움직이는 에너지. 점심때마다 어느 식당에서 밥을 먹을까 걱정하는 샐러리맨은 많지만, 먹고 남은 음식물의 찌꺼기를 걱정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누구나 먹는 일은 피할 수 없고, 또 회식 등 기타 만남은 먹는 자리에서 대부분 이루어진다. 일부이지만 차량을 이동해서 멀고 먼 산골까지 마음에 드는 식당을 찾는 사람도 많다. 그 멀고 먼 곳까지 마치 낙타가 오아시스에 샘물을 찾듯이, 도시인의 풍요 속의 가난한 식사풍경을, 누가 모래 사막 위에 낙타들의 저녁식사 풍경으로 형상화한다면, 어떤 명화보다 공감은 있지 않을까.

덧붙이는 글 | 음식문화에 대하여


태그:#음식문화, #레오나르도 다빈치, #마네, #고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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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곧 인간이다고 한다. 지식은 곧 마음이라고 한다. 인간의 모두는 이러한 마음에 따라 그 지성이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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