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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히로시마 앞 바다에 보이는 우리나라 화물선
ⓒ 이상기
히로시마 모토우지나마치(元宇品町)에 있는 프린스호텔에서 일어나보니 바닷가 쪽으로 어선과 화물선이 왔다 갔다 한다. 그중에는 우리나라 배인 흥아해운 소속의 화물선도 보인다.

바다가 바로 내다보이는 레스토랑에서 아침식사를 하고 오늘의 목적지인 구레(吳)시 시모가마가리지마로 향한다.

히로시마에서 구레까지는 완전히 해안도로이다. 마츠다 우지나 공장을 지나 니호(仁保) 교차로에서 히로시마 구레도로를 탄다. 덴노를 지나 2380m에 달하는 구레터멀을 지나자 구레시가 나타난다. 구레시는 일본 제일의 군항으로 조선 및 제강공업이 발달한 도시이다.

▲ 육지와 시모가마가리 섬을 잇는 아키나다 대교
ⓒ 이상기
구레시를 지나 동쪽으로 약 30분쯤 가자 아키나다(安藝灘) 대교가 나타난다. 이 다리는 육지와 시모가마가리지마를 연결하는 연육교로 세토나이카이에서 꽤 유명한 다리이다. 다리를 지나 다시 몇 굽이 마을과 산을 돌아가더니 10분도 안 되어 우리의 목적지 시모가마가리의 쇼토엔(松濤園)에 도착한다.

▲ 조선통신사 자료관이 있는 쇼토엔 대문
ⓒ 이상기
쇼토엔에는 조선통신사 자료관인 고치소 이치방칸(御馳走 一番館)을 중심으로 이 있는 곳으로 통신사 숙소로 쓰였던 램프관, 일종의 검문소인 고세키쇼(御番所), 도자기관이 있다.

우리 일행은 먼저 통신사 자료관인 고치소 이치방칸으로 들어간다. 고치소란 접대소 또는 초대소에 해당하는 말이며, 이치방이란 가장 좋은 집이라는 뜻이다. 일본에 간 통신사들이 이곳에서 접대를 가장 잘 받았다는 뜻이 된다.

문을 들어가자 두 기의 석장승이 우리를 맞이한다. 왼쪽으로 건물 입구에 우리말로 된 인사말이 눈에 들어온다. 그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국제교류라는 말이 요즈음에는 흔해졌지만 600년 전부터 외국과의 교류에 있어 중요한 역할을 했던 곳이 가마가리 섬이다.

아키주에 있는 가마가리 접대소는 일본에서 최고였다. 이에 당시의 선린우호를 기념하기 위해 도야마 현에 있던 아리가와(有川) 저택을 이곳에 옮겨 조선통신사 자료관을 만들었다.

▲ 조선통신사가 탔던 배를 축소 복원한 모습
ⓒ 이상기
▲ 정사의 배와 이를 끄는 일본 배들의 모습
ⓒ 이상기

자료관에 들어가 처음 문에 띤 것은 조선통신사들이 탔던 배 모형이다. 뱃전에 우리 식의 단청을 하고 베의 앞과 뒤에 두 개의 돛을 달았다. 설명에 따르면 서울대학교 명예교수인 김재근씨가 실제 정사선의 1/10 크기로 만든 모형이다. 이곳을 지나간 통신사의 배는 모두 6척이었으며, 대선이 2척, 중선이 2척, 소선이 2척이었다.

대선 두 척에는 정사와 부사가 타고 중선 한 척에는 종사관이 탔다. 나머지 중선 한 척과 소선 두 척에는 화물을 싣고 하급 관리들이 탔다. 그리고 대선에는 약 120명 정도의 인원이 탈 수 있었고, 중선에는 100명, 소선에는 50명 정도의 인원이 탈 수 있었다. 그러므로 모두 6척에 500명 내외의 인원이 탑승했다고 볼 수 있다.

▲ 통신사 정사의 모형: 당상관으로 홍포를 입었다.
ⓒ 이상기
바로 옆에는 통신사들이 묵었던 방이 있으며 다다미가 깔려 있어 아주 깨끗해 보인다. 벽에는 족자가 걸려 있고 병풍이 세워져 우리의 방 같은 느낌이 든다. 방 옆에는 성신교린(誠信交隣)의 주역이었던 정사, 부사, 종사관의 모습이 실물처럼 만들어져 세워져 있다. 정사는 붉은색, 부사는 푸른색 관복을 입었고, 종사관은 하늘색 도포를 입고 있다.

그 옆에는 또 조선통신사가 배를 타고 가는 모습의 그림이 있다. 그림을 보면 정사선을 앞에서 중선이 끌고 이 중선을 다시 두 척의 소선이 끄는 양상이다. 또 다른 한쪽에는 이들 통신사가 배에서 내려 빨간 카펫을 지나 숙소로 가는 장면이 축소모형으로 만들어져 있다. 옛날 가마가리의 모습을 그린 그림 사로승구도와 비교해 보니 당시의 상황이 어땠을지 짐작할 수 있다.

▲ 왼쪽 히로시마에서 가운데 가마가리를 거쳐 오른쪽 도모까지 표현한 해도
ⓒ 이상기
그리고 또 조선통신사의 길이라는 지도도 볼 수 있다. 이것은 세토나이카이의 섬과 항로를 그린 옛 지도로 쓰시마 섬에서 오사카까지 자세히 묘사되어 있다. 나는 그 중 히로시마에서 도모노우라까지 우리가 찾아갈 곳을 자세히 살펴 보았다. 그러나 지도의 표현양식이 지금과는 달라 통신사들의 항로를 파악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림과 지도를 종합해 보면 당시 세 개의 접안용 다리를 세웠고, 배가 이곳 가마가리에 정박했던 것이다. 사신 일행은 이곳 접대소에서 묵었고, 쓰시마 번주는 지금의 고세키쇼(御番所)에 머물렀던 것으로 추정된다. 고세키쇼는 에도 막부에서 운영하는 일종의 검문소로 주민들의 이동을 통제하는 곳이었다. 그리고 하급 관리들은 주위에 분산 수용되어 숙식을 했다.

▲ 쇼토엔 밖으로 바다와 섬이 보인다.
ⓒ 이상기
이곳 자료관에는 유물들이 전시되어 문과 창문이 차단되어 밖을 내다보기 어렵지만 숙소로 쓰였던 옆의 요시다 저택에 들어가 밖을 내다보니 그 경치가 참 좋았다. 담 밖으로 바다가 내다보이고 바다 건너편으로 가마가리 섬이 보인다. 정원에는 해송 이 적당한 크기로 자라고 돌과 석등이 잘 어울린다. 글줄이나 읽을 줄 아는 통신사 관리들이 이곳에서 시를 한 수 읊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사로승구도에 나타난 가마가리

▲ 산 앞에 객사가 있고, 그 앞에 세 개의 잔교가 세워져 있다.
ⓒ이상기

사로승구도(槎路勝區圖)란 1748년 조선통신사의 화원이었던 이성린(李聖麟)이 그린 화첩이다. 사로승구도란 일본에 배를 타고 가는 길에 만난 훌륭한 풍경을 그린 그림이라는 뜻이다. 사로승구도 10번째 그림의 대상이 바로 이곳 가마가리(蒲刈)이다. / 이상기

덧붙이는 글 | 16명으로 구성된 가족 여행단의 일본여행기이다. 이츠쿠시마 신사와 히로시마 원폭돔을 보고, 이제는 우리 조상들의 흔적인 통신사 유적을 찾아간다. 이를 통해 400년의 간격을 두고 우리 조상들과 만나게 된다.


#구레#아키나다 대교#시모가마가리지마#쇼토엔#조선통신사 자료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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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분야는 문화입니다. 유럽의 문화와 예술, 국내외 여행기, 우리의 전통문화 등 기사를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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