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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을 듣는 것만으로도 시골 정취가 물씬 풍기고 정감이 가는 마을이 여럿 있습니다. 흔히 농도(農道)라는 전라도에 500미터가 넘는 첩첩 산들로 둘러싸인 전라도 곡성 땅 목사동면(木寺洞面)도 그 중 한 곳입니다.

충의의 고장이라는 글귀는 고려 충신 신숭겸이 태어난 곳임을 자랑하고 있다.
▲ 목사동면 표지석 충의의 고장이라는 글귀는 고려 충신 신숭겸이 태어난 곳임을 자랑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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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천 승주, 주암과 맞닿은 동쪽과 남서쪽으로는 해발 763미터의 희아산과 뾰족한 첨탑 모양의 해발 580미터 아미산이 버티고 서 있고, 유일하게 트인 곳이 있다면 보성강에 면한 북쪽뿐인 땅입니다. 산이 많은 만큼 깊은 골짜기마다에서 흘러내린 목사동천이 보성강과 합류하는 곳의 좁디좁은 무논이 이 고장이 지닌 들판의 전부입니다.

기실 '목사동'이라는 별난 이름도, 전라도답지 않게 높은 산들로 에워싸인 마을의 지형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온통 산뿐이다 보니 다른 고장과 통하는 길이 다 막혀 있고, 왕래하는 사람들이 많지 않으니 깊은 산 속 조용한 곳을 찾는 수도승들에게는 안성마춤인 곳이었을 겁니다.

아미산 아래 천태암(天台庵)을 제외하면 흔적조차 사라져 전설 같은 얘기로 남았지만, 본디 이 고장 산에는 모두 18개의 절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18개의 절이 있는 마을'이라는 뜻으로, 파자(破字) 형식을 빌려 붙인 이름이 바로 '목사동'입니다. 목(木)은 십(十)과 팔(八)을 합한 글자인 까닭입니다.

최근 동상을 세우는 등 정비 작업이 한창이다. 사방이 산으로 에워싸여 있어 조금은 답답한 느낌을 준다.
▲ 목사동면 구룡리에 있는 용산재 전경 최근 동상을 세우는 등 정비 작업이 한창이다. 사방이 산으로 에워싸여 있어 조금은 답답한 느낌을 준다.
ⓒ 서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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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성강을 건너 목사동면 소재지에 들어서면 솟대와 함께 '충의의 고장'이라는 글씨를 새긴 표지석을 만나게 됩니다. 한적하기 이를 데 없는 궁벽진 곳에 이런 거창한(?) 수식어를 붙인 까닭은 고려 충신 신숭겸 장군이 이 고장 출신이기 때문입니다.

후백제와의 패권 다툼의 고빗길이었던 공산 전투에서 위기에 처한 고려 태조 왕건을 대신해서 목숨을 바친 신숭겸은 장절공이라는 시호을 받고 평산 신씨의 시조가 되었으며, 엄격한 유교 사회였던 조선에 와서도 명장이자 충신으로 추앙을 받아 곳곳에 사당이 세워졌습니다.

전남 기념물 제56호로 지정된 목사동면 구룡리 비래봉 중턱의 용산재(龍山齋)가 신숭겸의 탄생지이며, 동상이 세워지는 등 최근 정비 사업이 한창입니다. 이곳 외에도 심신 수련을 위해 즐겨 찾았다는 동리산 태안사가 지척이고, 무예를 닦을 때 말을 매어두었다는 계마대(繫馬臺) 등 신숭겸과 관련된 유적들이 곳곳에 남아있습니다.

신숭겸이 무예를 수련할 때 말을 묶어둔 곳이라고 전한다. 현재 죽곡을 거쳐 압록 가는 18번 국도 변에 있다.
▲ 신숭겸의 계마대 신숭겸이 무예를 수련할 때 말을 묶어둔 곳이라고 전한다. 현재 죽곡을 거쳐 압록 가는 18번 국도 변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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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동면에는 신숭겸과 관련된 것을 제외하면, 버려진 듯 널브러진 고인돌 몇 기가 보성강을 따라 남아있을 뿐 이렇다 할 문화재도 없고, 곡성 죽곡면(竹谷面)과 순천 주암면(住岩面)을 잇는 18번 국도만 남북으로 유일하게 나 있을 뿐 교통 조건도 열악하여, 여느 농촌에 견줘도 쇠락해 가는 속도가 더 빨라 보입니다.

명색이 행정구역 상 면(面)이라지만, 전체 인구가 대도시의 한 학교 학생 수보다도 적은 1700여 명에 불과하고, 그나마 대부분이 노령 인구일 뿐 10대 청소년들은 아예 없다시피 해 중학교는커녕 변변한 초등학교조차 없습니다. 또한 웬만한 농촌이면 다 서는 5일장도 이곳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현실 등은 그것을 증명하고도 남습니다.

지난 9월 태풍 나리가 제주도와 남해안을 강타하면서 초당 2천톤의 물을 방류하는 통에 인근 농경지가 순식간에 수몰되는 피해를 입었다.
▲ 보성강 상류의 주암댐 전경 지난 9월 태풍 나리가 제주도와 남해안을 강타하면서 초당 2천톤의 물을 방류하는 통에 인근 농경지가 순식간에 수몰되는 피해를 입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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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록 낙후한 목사동이 얼마 전 큰 물난리를 겪었다고 합니다. 아무리 둘러봐도 산밖에 보이지 않는 곳에 웬 물난리인가 싶었지만, 우연찮게 들렀던 피해 현장은 한참의 시간이 흘렀음에도 깊은 생채기가 그대로 남아있었습니다.

목사동면 소재지에서 용산재 방향으로 접어들어 보성강에 면한 시멘트 포장길을 따라가니, 자갈로 덮여버린 밭과, 물이 흥건한 채 누런 벼들이 싹을 틔운 채 드러누워 있는 논이 보였습니다. 또, 온갖 쓰레기가 아름드리나무 줄기에 엉킨 채 달려있고, 족히 몇 십 년은 돼 보이는 나무들조차 뿌리가 들린 채 한쪽 방향으로 눕혀진 모습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노파 한 분이 건질 것 하나 없어 보이는 논두렁에 쪼그려 앉아 있는 모습은 화창한 가을 하늘 아래에서도 무척 초라하게 보였고, 이웃으로 보이는 주민 한 사람과 서로를 다독이듯 나누는 사투리 짙은 푸념조차 처량하게 느껴졌습니다.

물고기를 가둬 길렀음직한 보성강변 웅덩이에는 양수기가 거꾸로 처박힌 채 자갈돌만 가득하고, 그곳으로 난 시멘트 도로조차 곳곳이 부서지거나 패여 있어 통행 자체가 위험해보이기까지 합니다. 대체 얼마나 큰 물이 들이닥쳤길래 이런 지금껏 이런 참혹한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일까.

인근 콘크리트 도로가 부서지면서 자갈이 주변 농경지를 덮었고, 물에 잠긴 논에서는 어김없이 벼들이 드러누웠다.
▲ 자갈이 덮어버린 논 인근 콘크리트 도로가 부서지면서 자갈이 주변 농경지를 덮었고, 물에 잠긴 논에서는 어김없이 벼들이 드러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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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심스럽게 말을 건넸더니 낫을 든 노파는 욕설인지 체념인지 한숨 소리 가득한 푸념을 늘어놓았습니다. 제주도와 남해안을 휩쓸었던 태풍 '나리'로 인해 이곳에서 채 30리도 떨어져 있지 않은 주암댐이 '일언반구 없이' 다짜고짜 수문을 열고 엄청난 양의 물을 쏟아내는 통에 논이고 밭이고 순식간에 잠겨버렸다고 합니다.

물론 아무리 황급한 상황이었다고 해도 댐 관리자가 강 유역 주민들에게 적잖은 영향을 줄 게 뻔한데 '일언반구 없이' 수문을 열지는 않았을 겁니다. 규정에 따라 주민들에게 몇 시간 전에 각종 미디어를 통해 미리 알리고 나름대로의 대책을 세워 이런저런 주문을 했을 겁니다.

예상치 못하게 기상이변에 준하는 엄청난 비바람이 몰아쳤으니 어쩔 수 없었다는 댐 관리자의 하소연을 마냥 탓할 수만은 없는 노릇입니다. 더구나 '법에 따라' 했으니 우리에게 죄를 묻거나 책임을 덮어씌울 수 없다는 말도 당사자의 입장에서는 '뻔뻔한' 주장이라 매도할 수는 없습니다.

벼가 드러누운 채 싹이 터 버린 '쓸모 없어진' 논을 바라보며 두 노인이 막막하게 한숨을 내쉬고 있었다.
▲ 시름에 잠긴 두 노인 벼가 드러누운 채 싹이 터 버린 '쓸모 없어진' 논을 바라보며 두 노인이 막막하게 한숨을 내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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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 번 양보해서 그렇다고 해도, 그들에게서 따뜻한 '사람 냄새'를 느끼기란 어렵습니다. 아무리 '법대로 하자'라지만 사람, 그것도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 앞에서 그런 말을 하는 것은 무언가 빠진 듯 공허하고 비인도적인 느낌마저 갖게 합니다.

수자원 관리 전문가인 그들이 초당 2천 톤의 물을 순간 방류했을 때 댐에서 멀지 않은 곳의 농경지가 어떻게 될 것인가는 누구보다도 잘 알았을 겁니다. 순간 방류양이 그 정도라면 긴급하게 몇 시간 전에 알려봐야 주민 그 누구도 딱히 손쓸 수 없다는 것을 또한 모르진 않았을 겁니다.

다양한 경우의 수를 감안하고 무엇보다도 인근 주민들의 삶을 고려하여, 댐이 만수위에 이르기 전 치밀한 계획을 세워 시행하질 못하고, 막상 최악의 상황이 닥치니 규정에 따라 어쩔 수 없다는 말만 되뇌는 것은 전문가답지 못할 뿐더러 비겁하기까지 한 변명입니다.

보성강변 물고기를 길렀을 법한 웅덩이 곳곳이 쓰레기와 자갈에 덮인 채 양수기가 뒤집힌 채 나뒹굴고 있다.
▲ 폐허가 된 유원지의 모습 보성강변 물고기를 길렀을 법한 웅덩이 곳곳이 쓰레기와 자갈에 덮인 채 양수기가 뒤집힌 채 나뒹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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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참히 쓸려버린 농경지에 대한 (늘 그렇듯, 배상이 아닌) 보상 여부와 감정 액수를 떠나 주민들이 받은 마음의 상처와 댐 관리자를 비롯한 공무원들을 향한 불신은 치유되기가 쉽지 않아 보입니다. 이번 물난리로 막대한 피해를 입은 듯 얼굴을 잔뜩 찌푸린, 길에서 만난 한 주민이 혀를 끌끌 차며 건넨 쓴소리가 자꾸만 마음에 걸립니다.

"너무 억울하다며 배상이든, 보상이든 해 달랬더니, 지방자치단체와 협의해서 일정 부분 보상이 될 수 있도록 최대한 노력할 것이지만, (댐 관리자들이) 규정에 조금도 어긋나지 않게 했으므로 '배상'이라는 말은 잘못된 표현이라 합디다. 다들 어떻게든 빠져 나갈 구멍만 찾을 뿐, 정작 주민들 걱정은 눈꼽만큼도 하지 않는 것이죠. 모르긴 해도 사무실에만 앉아 펜만 굴릴 줄 알았지, 그들 중에서 댐의 코앞인 이곳을 둘러본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을 걸요."

덧붙이는 글 | <목사동 찾아가는 길>
호남고속도로 석곡 나들목->구례, 압록 방향으로 진행->목사동1교에서 우회전->목사동면소재지(평호 마을)

제 홈페이지(http://by0211.x-y.net)에도 실었습니다.



태그:#목사동면, #태풍 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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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미뤄지고 있지만, 여전히 내 꿈은 두 발로 세계일주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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