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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등산의 맥을 이어 소백산맥 끝자락에 듬직하게 서있는 조계산. 조계산 서쪽에는 송광사, 동쪽에는 선암사가 자리하고 있다. 불교계에서 차지하는 위치나 산사의 아름다움으로는 두 절의 우열을 가리기가 어렵다.

송광사와 선암사에는 명성에 걸맞은 아름답거나 잘 생긴 석탑이나 건축물이 없다. 그러나 사람이 만든 건축물과 자연이 어우러져 만들어 내는 풍경은 우리나라 제일이다.

이런 조화미는 두절의 진입부분부터 펼쳐진다. 계곡을 끼고 돌아가는 길은 고즈넉하여 몇 분을 걸어도 지겹거나 피로하지 않다. 송광사의 청량각과 선암사의 강선루는 이런 길을 더욱 운치있게 한다.

청량각은 무지개다리 하나만으로도 멋진데 그 위에 정자를 지어 올려 멋을 있는 대로 부렸다. 오가는 사람들에게 쉴 자리를 제공하고 절에 들어가기 전에 다시 한 번 마음을 다스릴 여유를 준다.

청량각 무지개다리 하나만으로도 아름다운데 위에 정자를 세워 더욱 아름답게 보인다
▲ 청량각 무지개다리 하나만으로도 아름다운데 위에 정자를 세워 더욱 아름답게 보인다
ⓒ 김정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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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광사에는 청량각이 있다면 선암사에는 강선루가 있다. 지금은 주차장에서 선암사 경내까지 가깝지만 예전에는 그렇지 않았을 것이니 강선루 역시 피곤한 다리를 풀면서 몸을 추스릴 좋은 곳이었을 것이다. 지금은 아쉽게도 굳게 닫혀 들어가 볼 수 없다.

강선루 무지개다리를 타고 오는 선녀를 만날 것 같다
▲ 강선루 무지개다리를 타고 오는 선녀를 만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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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선루를 보고 있으면 승선교를 건너는 오래된 벗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쳐다보는 한 노승이 그려진다.

두 절에서 풍경의 백미를 뽑으라 하면 나는 주저없이 선암사는 승선교 주변을, 송광사는 우화각 주변을 꼽는다.

선암사 승선교, 건봉사 능파교, 안양 만안교, 강경 미내다리, 벌교 홍교 등 대개 우리나라 옛다리는 무지개(홍예)다리다. 무지개다리 중 승선교는 그 자체가 아름답거니와 강선루를 비롯한 주변 경관과 조화를 잘 이루어 으뜸이 아닌가 싶다.

승선교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무지개다리, 강선루가 있어 더욱 아름답다
▲ 승선교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무지개다리, 강선루가 있어 더욱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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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광사 우화각 주변은 풍광이 얼마나 빼어난지 우화각에서 몇 분을 앉아 감상하더라도 질리지 않는다. 서둘러 천왕문을 향해가는 수많은 사람들의 뒷모습을 보고서야 그 자리를 뜰 수 있다.

계곡 물은 '시내를 베고 누워 있다'는 침계루(枕溪樓) 앞을 흘러 우화각을 머리에 이고 있는 능허교 밑을 지나 선비가 탁족을 즐기듯 두 다리를 물에 담근 임경당 앞을 흘러 청량각으로 향한다.

우화각 정경 송광사에서 풍광으로는 제일이다
▲ 우화각 정경 송광사에서 풍광으로는 제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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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암사와 송광사의 진입영역에는 다른 절에서는 볼 수 없는 독특한 것이 있다. 선암사는 삼인당이고 송광사는 척주각(滌珠閣)과 세월각(洗月閣)이다.

삼인당(三印塘)은 강선루를 지나서 일주문을 몇m앞에 두고 오른쪽에 자리한 연못이다. 달걀꼴로 쌓았는데 달걀 노른자처럼 가운데에 둥근 섬이 있고 둘레는 돌로 논두렁같이 쌓았다. 우리의 전통 연못을 표현한 것 같지만 이 들 모두 심오한 불교사상을 나타낸 것이라 한다.

삼인당 계란 모양의 연못, 가운데 둥근섬은 계란의 노른자 같다
▲ 삼인당 계란 모양의 연못, 가운데 둥근섬은 계란의 노른자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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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광사 일주문을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아주 앙증맞은 두 채의 건물이 있다. 척주각과 세월각이다. 죽은 사람의 위패가 절에 들어오기 전에 세속의 때를 깨끗이 씻는 곳인데 남자의 혼은 척주각에서 여자의 혼은 세월각에서 씻는다. 송광사만이 갖고 있는 특이한 건축물이다.

척추각과 세월각 남자의 혼은 척추각에서, 여자의 혼은 세월각에서 각각 세속의 때를 씻는다
▲ 척추각과 세월각 남자의 혼은 척추각에서, 여자의 혼은 세월각에서 각각 세속의 때를 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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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절에서 볼 수 있는 재미있으면서 특이한 것이 경내(境內)에도 있다. 선암사는 심검당의 환기창이고 송광사는 하사당의 솟을지붕이다. 모두 환기 장치와 관련된 것들이다.

심검당의 환기창을 보면 '물 수(水)'와 '바다 해(海)'가 새겨져 있는데 모두 물과 관련이 있다. 자료에 의하면 선암사의 지세가 물이 약하여 화재가 빈번히 발생하여 이를 물로 막아 보려고 '수'와 '해'를 투각하였다 한다.

창파당 심검당의 환기창에서와 같이 이 건물에서도 '해'와 '수'가 장식된 환기창을 볼 수 있다
▲ 창파당 심검당의 환기창에서와 같이 이 건물에서도 '해'와 '수'가 장식된 환기창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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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환기창은 요사채에도 쓰여 그 유명한 선암사 '뒷간' 앞에 있는 창파당 건물에도 있다.
송광사 하사당의 솟을지붕도 역시 환기장치인데 호남지방의 집에서만 볼 수 있는 특이한 지붕양식이다.

하사당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승방건물이다. 대웅보전 뒤편 높은 석축 위에 조성된 수선영역에 있는 건물로 일반인은 출입이 금지되어 있다. 그래도 하사당을 가장 잘 내려다 볼 수 있는 곳은 대웅전 뒤편 언덕 위에 있는 보조국사 부도가 있는 자리다.

하사당의 솟을지붕 지붕위에 환기장치인 솟을지붕을 설치하였다. 전라도 지방의 특이한 집모습이다
▲ 하사당의 솟을지붕 지붕위에 환기장치인 솟을지붕을 설치하였다. 전라도 지방의 특이한 집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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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광사는 진입영역에서 보여 주는 멋을 계속 이어주지 못한 반면 선암사는 진입영역에서 경내, 다시 경내를 벗어나면서 그 멋이 짙어진다.

송광사는 고즈넉하고 넉넉한 진입영역의 분위기가 대웅보전영역과 수선영역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지나치게 규모가 큰 대웅보전이 경내 분위기를 압도하여 약사전과 영산전이 초라해 보인다. 마치 이 건물을 보는 것으로 만족하라는 듯 위압적으로 서 있다.

대웅보전 뒤로 이어지는 수선영역은 석축으로 경계를 이루어 폐쇄적인 느낌을 준다. 물론 송광사는 보조국사 지눌을 비롯하여 열여섯분의 국사를 배출한 승보사찰로 참선공간을 최우선하여 배치한 것을 감안하면 이해할 만하다. 석축의 아름다움을 감상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한다.

송광사 정경 효봉영각 뒤에서 본 정경, 수선영역의 석축이 답답하게 하나 이 곳에 오면 그런대로 시원한 정경을 볼 수 있다
▲ 송광사 정경 효봉영각 뒤에서 본 정경, 수선영역의 석축이 답답하게 하나 이 곳에 오면 그런대로 시원한 정경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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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선암사는 진입영역에서 경내에 이르기까지 오르면 오를수록 멋이 살아나고 경내를 벗어나 자생 차밭까지 가면 그 깊이가 더해간다. 경사지를 따라 낮게 쌓아 올린 축대와 축대 위에 올린 아기자기한 건물들이 짜임새 있게 들어서 있다.

송광사는 여행의 뒷맛을 느낄 만한 여유를 주지 않는 반면 선암사는 여행의 뒷맛을 만끽하게 해준다. 부석사는 조사당으로 이어지는 길이 있고 수덕사는 정혜사로 이어지는 산길이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선암사는 경내 뒤로 이어지는 야생차밭이 있다.

선암사 정경 경내 밖 자생차밭에서 본 정경, 여행을 마무리하기 좋은 곳이다.
▲ 선암사 정경 경내 밖 자생차밭에서 본 정경, 여행을 마무리하기 좋은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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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마디로 표현하기는 어려운 남도의 미는 정녕 무엇인가? 선암사와 송광사 그리고 무위사, 보림사로 이어지는 남도여행을 하면서 어렴풋하게나마 느껴 본다.

화려한 풍광은 없으면서 오밀조밀한 풍경과 그 풍경을 더욱 빛내 주는 역사적인 흔적들, 예를 들어 자연에서 왔으면서 인간의 혼이 담겨 있기에 자연보다 더 강한 우리의 보림사의 석조물들, 답사객을 모두 숨죽이게 하고 어린애로 만들어 버린 눈 맞은 무위사 극락보전, 무지개다리를 타고 오는 선녀를 맞이할 것 같은 선암사 강선루, 점잖은 선비가 탁족을 즐기듯 두 발을 계곡물에 담고 있는 풍경이 있는 우화각은 남도의 멋을 더욱 깊게 한다.


#송광사#선암사#승선교#우화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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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不自美 因人而彰(미불자미 인인이창), 아름다움은 절로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사람으로 인하여 드러난다. 무정한 산수, 사람을 만나 정을 품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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