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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8일 서울시청 앞에서 있었던 대학생 등록금 시위는 평화롭게 마무리되었다. 광장에서 울려 퍼지는 구호와 휘날리는 여러 단체의 깃발들 속에 랩과 댄스 그리고 퍼포먼스와 시가행진으로 이어진 이 날 시위는 마치 합동 대학 축제처럼 젊고 역동적인 행사였다.

 

그리고 '등록금 문제 완전 해결과 교육 공공성 실현을 위한 범국민 대행진'이라는 캐치프레이즈는 과거 정치적 민주화에서 이제 교육과 '경제적인 민주화'로의 변화된 학생들의 목소리로 지나가던 시민들의 눈길을 끌었다.

 

반면 이 날 "불법 시위로부터 시민들을 보호 하겠다"는 경찰은 300명의 체포전담반을 포함해서 시위대 인원의 거의 두 배 가량인 진압반을 동원해 오히려 행인들의 통행에 불편을 주어 시민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이번  등록금 시위는 이명박 정부 시대의 첫 대규모 시위일 뿐 아니라 체포전담반을 배치시키겠다는 전날의 발표 때문에 국민들과 언론에 더 많은 관심을 받는 계기가 되었다.

 

평화로운 시위대에 '떼'썼던 경찰

 

여당인 한나라당은 4·9총선 공약으로 반값 등록금을 내걸은 바 있다. 그러나 이번 등록금 시위 때 초대받은 여당은 보이지 않고 대신 체포전담반과 '떼' 지은 진압반으로 대응해 국민들에게 공갈을 친 셈이다.

 

학생들 중에는 3천만원의 전셋집에 살면서 4천만원의 대학 4년 등록금을 걱정해야 하는 학생도 있었다. 그럼에도 건전하고 평화로운 시위에 대한 소모적인 경찰의 과잉대응은 대통령 눈치 보기나 새 정부에 대한 과잉충성 정도로 비난받았다. 하지만 정권에 대한 과잉 충성의 결과는 지난 19일 법무부 업무 보고에서 이명박 대통령의 불법 시위 근절에 대한 발언 중 국민들의 기본권인 집회와 시위의 자유에 대한 폄하발언에 기인한다.

 

그 결과 어제 시청 앞에는 평화시위대 1인에 2인의 진압 경찰과 체포전담제가 배치되었다. 이는 시민들의 불편뿐 아니라 대통령이 그리도 강조하던 작은 정부의 모양새가 아닌 일종의 국력 낭비며 나아가 국민들의 인권에 대한 원초적인 압박감을 조장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누가 금지하는 것을 금지 하는가

 

더욱이 국력낭비라는 물리적 결과보다 더 심각한 것은 지난 19일 법무부 업무 보고에서 "한국은 국민 대부분이 법과 질서보다 떼를 쓰면 된다거나 단체행동을 하면 더 잘된다는 의식을 갖고 있는 것 같다"며 집회와 시위에 대한 국민의 기본권을 ‘떼법 문화’로 몰아 버리는 위험한 발상이 들통나버렸기 때문이다. 이 발언이 여러 시민단체와 국민들의 도마 위에 오른 것은 자칫 헌법에 새겨진 '국민의 기본권에 대한 침해'라는 금지된 발상에 있다.

 

그러나 그날 시청 앞에서 젊은이들이 '등록금 문제 해결과 교육의 공공성 실현'이라는 요구와 시위대 그리고 이에 대응하는 현 정권을 보면서 68문화 혁명 때 "우리는 금지하는 것을 금지한다!"라는 프랑스 학생들의 구호가 연상되었다.


즉 정부 측에서 학생들에게 금지하는 것이 불법 시위라고 한다면, 학생들 측에서 금지하는 것은 비싼 등록금으로 더 이상 대학을 다닐 수 없게 되거나 20대부터 빚 덩어리의 그늘에서 살아야 하는 비현실적인 현실이다.

 

지난 32년 동안 물가가 8배 뛸 때 등록금은 26배가 뛰었다고 한다. 강부자나 고소영 정권은 "그까짓 대학 등록금 정도야‘"하고 체감을 못할 것이다. 미국의 경우를 운운하는 카이스트 대학 총장의 시기적절치 못한 등록금 시위에 대한 비난은 그래서 시위해야 하는 학생들에게는 가소롭게 들린다. 실력이 있는 젊은이가 가난한 집에 태어났다는 이유로 강남의 족집게 과외의 혜택에서 제외되는 것은 넘길 수 있지만 자격을 갖추고도 계속 대학에서 학업을 진행할 수 없어 휴학계를 내고 일자리를 전전하다 빚에 몰리고 다단계 판매의 덫에 걸리는 경우라면 상황은 다르다.  

    

그럼에도 학생들은 불법 시위를 하지 않았으니 이제 정부는 학생들의 요구에 귀 기울여야 할 것이다. 이미 대학이 신자유주의나 시장경제의 잣대에 휘둘리고 있는 것이 잔인한 현실이라 해도 정부조차 100년 대계인 교육을 사기업 경영하듯 하다간 우리 사회에 더 큰 갈등과 불안이 어떤 상태까지 몰고 올지 모른다. 얼마 전 인터넷을 달군 진성고 UCC는 학생들의 불만이 극에 달했음을 보여줬다. 교육과 관련한 이런 정황을 종합해 보면 40년 전 유럽의 문화혁명때 프랑스 학생들이 사회와 정부에 요구하는 형태와 어느 정도 유사하다.  

              

이렇듯 서민들에게 1000만원이라는 공포의 등록금 시대에, 학생들의 등록금 시위와 새 정부의 시위진압에 대한 과잉대응책 중 과연 무엇을 금지해야 할까. 오히려 이번 시위에 참가한 학생들은 40년 전 문화혁명의 주체세력이었던 유럽의 학생들보다 유희적이고 평화로운 시위를 보여 문화적 배경의 차이와 시대에 따른 패러다임의 변화를 실감케 하는 반면, 정부의 대응은 시대의 흐름을 읽어내기는 고사하고 ‘백골단 부활’이라는 대국민 협박용 진압 대응으로 40년 전으로 후퇴한 듯 했다.

 

80~90년대 까지만 해도 대학생들이 부르짖던 정치적인 민주화에서 이제 '경제적인 민주화의 요구라는 진보 과정'에 이명박 정권은 어떻게 감당할 지, 어떤 대안이 있는지 묻고 싶다. 아니, 지난 10년 동안 이룩해 온 정치적인 민주화까지 수포로 만드는 건 아닌지 국민의 한 사람으로 불안하기 까지 하다.

 

부디 신관(新官)이 명관(名官)이길!

 

대학을 안 나온 전 노무현 대통령의 정권 초기에는 시위 진압용 백골단 부활은 고사하고 국민들의 토론 문화를 강조했고 그 여파로 공영방송에서 2060 세대 간의 토론장이라는 가부장적인 우리 사회로서 획기적인 프로그램이 제작되곤 했었다. ‘30대 이상은 아무도 믿지 말라!’라고 했던가. 문화혁명 때 프랑스의 20대들의 유행어처럼 그 자리에서 기성세대들은 젊은 세대의 집중 투하되는 비난을 피할 길이 없었다.

 

CEO출신인 이명박 대통령의 당선 초기 지지율 하락은 노무현 대통령의 지지율과 비교될 뿐 아니라 역대 대통령 중 전무후무한 기록이다. 또한 이 두 정권 초기에 보여준 국민과 소통의지에도 현저한 차이를 드러낸다.

 

효율적이고 실용적인 소통에 선두를 달릴 것 같았던 청와대 새 주인의 컴퓨터는 열흘이 지나도 작동되지 않았다고 하지 않던가. 집권 초기에 국민의 소통 방식에 이 정도로 무심한 태도를 보이던 새 정권은 추가해서 헌법에 보장된 국민들의 집회와 시위에 대한 권리에 과잉 반응까지 하다니. '임기 말기 즈음해서 대통령과 국민은 어떤 관계일까' 하는 필자의 앞선 우려가 부디 무모한 노파심이 되길 바란다.

   

정치적인 민주화 운동으로 지난 10년 동안 불법 시위가 줄어들고 있는 마당에 지난 등록금 시위같은 국민들의 평화적인 시위에 과잉대처 하는 현 정권은 다시 한 번 ‘이 시대에 무엇이 금지되어야 할 것’인지 짚어봐야 한다. 그리고 부디 CEO 출신의 대통령은 국민들이 피와 땀으로 얻은 민주화의 시간도 돈으로 환산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런 맥락에서라도 국민들은 진심으로 ‘구관(舊官)이 명관(名官)’이 아니라 ‘신관(新官)이 명관(名官)’이길 원하고 있다.


#등록금 시위#유럽 문화 혁명#체포전담반 #집회와 시위의 자유#이명박 정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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