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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생 집단 성폭행 사건을 접한 첫날, 내 머리 속을 빠르게 스친 소설책이 있었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처럼 아이템만 바뀌었을 뿐 문화적 맥락은 같지 않을까란 짐작이었다. 그렇다면 우리 아이들의 일그러진 성은 어떤 방식으로 생각해보아야 할까?

 

첫째, '어떤 매체로 음란물을 접하였는가?'이다.

둘째, '언제 접하였는가?'이다.

그리고 '음란물을 접하고 소재화하는 것이 초등학생에게 어떤 의미일까? 등이다.

 

점점 어린나이에 음란물을 접한다는 측면에서 성교육의 나이를 낮추는 것을 생각해볼 수 있다. 그리고 음란물을 접하고 소재화하는 과정을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이 되는 과정으로 설명할 수도 있다.

 

하지만 '어떤 매체에 초등학생이 접하느냐'는 문제는 과거와 비교할 수 없는 심각한 문제이다. 그러함에도 기술의 영향력과 파급효과를 기성세대는 가볍게 여긴다. 또는 음란물을 '음란물을 막는 기술'로서 대응하면 된다는 단순한 생각을 품을지도 모른다.

 

그도 그럴것이 음란물도 불법콘텐츠의 일종인데, 이 콘텐츠가 어떤 기술적 배경에서 창조, 복사, 이동, 저장, 재창조 되는지를 입체적으로 이해하는 전문가가 드물기 때문이다.

 

그 단적인 예는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에서 볼 수 있다. 새벽 2시가 넘으면 케이블 방송의 음란성이 늘어난다는 현상에 대한 지적이 나왔다. 그러면 아이들에게 유해한 정보를 차단하기 위한 인터넷 내용등급제, 케이블 방송의 책임성 증가 등 규제 정책이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하지만 과연 케이블을 잡고 인터넷을 잡으면 아이들은 음란물을 보지 않을까?

 

곧 시대를 풍미할 IP-TV, DMB 등으로 1인1방송 시대에는 어떤 규제를 하면 좋을까? 연결되는 노드의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시대에 국가의 통제가 가능할까?

 

안타깝지만 아날로그적 규제정책으로 음란물을 하나도 걸러내지 못할 전망이다. 엉뚱한 곳에 돈만 투자하는 결과를 얻을 것이다. 그 뿐만이 아니다. 아이들은 '당나귀', '짱디스크' 등 다양한 사이트를 이용하여 음란물을 접하고 관계당국은 초등학생의 기술력마저 통제못하는 망신을 당할 것이다.

 

이럴 때일수록 균형있는 규제정책과 '과거 우리사회가 가진 정이 있는 커뮤니티'를 만들어야 한다. 아날로그 공간의 정이 있는 커뮤니티는 산업화와 함께 사라지고 경쟁 속에 우리 아이만, 우리집만, 우리친족만을 생각하는 각박함과 이기심이 디지털 세상까지 암울하게 한다.

 

이럴 때일수록 아날로그 공간의 이웃과 옆집 자녀를 챙기는 커뮤니티를 복원해야한다. 그리고 디지털 공간에서도 '협동하며 서로서로 지켜주는 문화'가 자리잡아야 한다. 악플을 선플로 밀어내려던 문화운동처럼, 음란물에 대한 누리꾼들의 문화적 성숙함이 요구된다.

 

이미 초등학생들이 왕따친구를 괴롭히거나 성적인 학대를 가하는 장면을 동영상으로 찍어 올리는 끔찍한 일(음란 UCC 창작 및 배포)들이 벌어지고 있다. 

 

'빨간 마후라' 등 세상을 뒤집어놓았던 사건들이 벌어진 지 수년이 지났지만, 아날로그적 사고를 가진 기성세대가 내놓는 담론과 정책 그리고 해결방안은 '소잃고 외양간 고치거나', '잠시 성난 바람이 지나길 바라는' 나그네같은 처방들 뿐이었다.

 

가상공간의 음란물을 입체적으로 이해하고 콘텐츠 생산과 소멸 그리고 재생산의 전 과정에서 살펴보는 힘들지만 더딘 성찰을 해야할 때다.


태그:#초등학생성폭행, #음란물, #왕따, #성적학대, #음란UC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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