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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양황궁.  죄인을 심문하던 곳. 우삭문을 지나면 감옥이 있다.
▲ 심양황궁. 죄인을 심문하던 곳. 우삭문을 지나면 감옥이 있다.
ⓒ 이정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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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명수가 돌아갔으나 소현의 마음은 편치 않았다. '세자의 뜻을 용장군에게 전하겠다'는 정명수의 말이 마음에 걸렸다. 본의와 다르게 전해질 수도 있다. 궁지에 몰린 용골대가 자신에게 '유리하게 해석할 수도 있다'라고 생각하니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뜬눈으로 밤을 새운 이른 아침, 정명수가 다시 찾아왔다.

"압송해온 죄인들을 형부에서 심문할 것이니 세자는 사신과 함께 참석하시오."

소현은 사은사 신경진과 함께 형부(刑部)로 들어갔다. 단상 중앙에 질가왕이 좌정하고 좌우에 용골대, 피파박시, 가린, 범문정이 앉아 있었다. 평소에 따뜻한 시선을 보내주던 질가왕을 보는 순간 조금은 안심이 되었다. 질가왕은 소현세자와 봉림대군이 부왕 병문안 차 일시 귀국할 때 잔치를 베풀어주고 노자까지 마련해준 왕이다.

소현은 신경진과 함께 단상 맨 끝자리에 앉았다. 오늘의 심문은 도르곤이 주재할 예정이었으나 그는 금주 전선에 있다. 서부전선은 전투가 치열하다. 언제 돌아올지 모른다. 전선에서 돌아오면 심문할 계획이었으나 기다릴 수 없다는 강경파가 밀어붙여 서둘러 심문이 열리게 된 것이다.

김상헌, 신득연, 조한영, 채이항이 목에 철쇄(鐵鎖)를 두르고 끌려나왔다. 김상헌의 두 손은 결박되어 있었지만 당당했고 눈초리는 살아있었다.

목에 쇠사슬이 감겨 있었지만 마음까지 감을 수는 없었다

남팔(南八) 남아(男兒) 사(死)이언정 불가이불의굴의(不可以不意屈矣)
웃고 대답하되 공(公)이 유언감불사(有言敢不死)
천고에 눈물진 영웅 몇몇 인줄 알리오
- 김상헌

'사나이 죽을지언정 불의에 굴복할쏘냐. 천하의 영웅호걸은 피눈물을 먹고 자랐으니 웃으며 대답하되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으리'라고 읊조리는 것만 같았다. 비록 목에 쇠사슬이 감겨 있었지만 김상헌의 마음까지 감을 수는 없었다.

세자와 김상헌의 눈이 마주쳤다. 오가는 시선에서 애증이 교차했다. 김상헌이 묶인 두 손을 가지런히 모으고 목례를 했다. 소현도 머리를 상하로 움직이며 가볍게 답례했다. 그리고 소현이 먼저 시선을 거두었다. 심장이 멎는 듯해서 더 이상 바라볼 수 없었다. 신하의 두 손이 묶여 있어도 풀어줄 수 없는 세자. 자괴감이 엄습해왔다.

먼저 조한영을 앞으로 끌어냈다.

"너는 무슨 일로 소를 올렸느냐?"
"임금이 오랫동안 병환으로 신하들을 접하지 않아 국사가 혼란스러우니 궐내에 누워서라도 자주 대신과 접촉하여 나랏일에 대한 강론을 하시도록 청했을 뿐입니다. 나는 정축년에 과거를 보아 급제하였고 수군을 징발할 때는 병조 낭관 직책으로 군사를 선발하였습니다. 거기에 다른 생각이 없었음은 이것으로도 알 수 있습니다."

조한영을 들어가라 이른 심문관이 신득연을 불렀다. 잔뜩 겁먹은 신득연이 심문관 앞에 섰다.

"계사를 올려 우리에게 인부와 말을 보내지 못하게 한 것은 무슨 까닭이냐?"
"우리나라에서 먼 길에 조달할 수 없음을 염려하여 그 값을 은으로 들여보내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나는 상국에서 이미 징발령이 내려졌는데 품정(稟定)하지 않고 대가를 보내는 것은 경솔하니 반드시 아뢴 뒤에 명령대로 따르는 것이 마땅하다고 의견을 낸 것이니 이는 일을 신중히 하자는 뜻에 불과합니다. 어찌 그 사이에 반대하는 의견이 있었겠습니까."

신득연에 이어 채이항의 심문이 계속되었다.

"너는 무슨 일로 소를 올렸느냐?"
"시골에 사는 사람이라 국가의 일은 참여할 수 없습니다. 다만 부역이 무거운 것을 괴롭게 여겨 균평하게 하라는 뜻을 상소하였을 따름입니다."

"소위 부역이라는 것은 어떠한 일들을 가리켜 말하는 것이냐?"
"우리나라에서는 전지(田地)를 계산해서 부역을 내는데 전지를 측량한 뒤로 세금과 쇄마(刷馬)에 대한 부담이 전에 비해 늘었기 때문에 그 폐단을 상소로 진달했을 뿐입니다."

1차 심문을 마치고 가슴을 쓸어내리고 있는 신득연을 다시 불러냈다.

"조한영·채이항 두 사람이 말한 바가 이와 같은데 네가 당초에 한 말과 어찌 서로 맞지 않느냐?"
"이것은 내가 재신(宰臣)으로 심양에 있을 때의 일입니다. 용골대 장군이 엄하게 묻기에 다만 전해들은 말을 말하였을 뿐이지 상소 가운데 사실이나 의견은 실로 정확하게 알지 못하였습니다."

"모르는 일이라면 무엇 때문에 고발하였는가? 의주에서 나한테 말한 것이 있는데 네가 감히 이렇게 말하느냐?"

역관 정명수가 눈을 부릅뜨고 눈동자를 굴렸다.

"정말 그 소를 보지 못하였고 다만 전해들은 것을 말하였을 뿐입니다."

신득연의 안색이 하얗게 변하며 극구 변명했다. 이윽고 김상헌 차례다.

반말 투의 역공에 역관도 당황, 순화된 언어로 통역하다

"국왕이 남한산성에서 내려올 때 왜 따라오지 않았느냐?"
"병이 위중하여 모시고 가지 못했을 뿐이다."

목에 철쇄가 드리워져 있지만 카랑카랑한 목소리였다.

"병이 위중했다면서 왜 가까운 곳에 있지 않고 춘천을 경유하여 새재 넘어 먼 곳으로 갔느냐?"
"병이 조금 낫기를 기다려 비로소 령(嶺)밖으로 내려갈 수 있었다."

"병이 나은 뒤에 임금을 뵙지 않고 바로 안동으로 내려간 것은 무슨 까닭이냐?"
"나이 70세면 벼슬에서 물러나는 것이 본래 옛 법이다. 늙고 병들어 벼슬할 수 없기 때문에 그렇게 하였을 뿐이다."

"관작을 받지 않고 교지를 돌려보낸 것은 무슨 까닭이냐?"
"처음부터 벼슬을 제수한 일이 없다."

"우리가 수군을 징발할 때 반대하는 소를 올린 것은 무슨 까닭이냐?"
"임금과 신하 사이는 아버지와 아들 사이와 같으니 모든 생각을 말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몸은 비록 늙고 병들었으나 어찌 임금을 사랑하는 마음이야 없겠는가. 비록 내가 한 말이 있었으나 나라에서 수용되지 않았으니 너의 나라 일이 내 말 때문에 이루지 못한 것이 무엇이냐?"

반말투의 반문이다. 심문관들의 추궁에 굴복하거나 꺾이지 않았다. 이미 마음을 비우고 죽기로 작심한 몸, 김상헌의 기개는 조금도 변함이 없었다. 통역을 담당한 역관 정명수가 김상헌의 태도에 감복하여 형부의 관원에게 통역할 때 '너의 나라' 라는 말을 '이곳'이라고 고쳐 격노시키지 않으려고 하였다. 질가왕이 여러 사람들과 머리를 맞대고 수근 거렸다.

"김상헌은 과연 망가망가."

질가왕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청나라 사람들의 사고방식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인간은 누구나 목숨이 하나다. 죽음은 모든 것의 종말이다. 그런데 살려달라고 무릎 꿇고 빌어도 살려줄까 말까한데 고개를 빳빳이 세우고 '나 때문에 너희가 욕심을 채우지 못한 것이 무엇이냐?'고 되묻고 있으니 기가 차다는 것이다.

'망가망가' 조선의 유행어가 되다

승전보는 빨리 전해진다 했던가. 결과와 상관없이 질가왕이 '망가망가'를 되뇌었다는 소식은 천산산맥을 넘어 순식간에 압록강을 건넜다. 오량캐의 수장이 우월적 상황에서 '망가망가'를 토로했다는 것은 승리로 받아들여졌다. 한반도에 들어온 '망가망가'는 삽시간에 조선팔도에 퍼졌다. 그것은 청나라의 위세에 숨죽이던 조선 백성들에게 가뭄 끝에 단비와도 같았으며 울분의 자기 위안이었다.

오늘날 망가는 일본 만화(漫画)의 일본어(まん-が)이고 한국에서는 야한 만화의 은어로 통용되고 있지만 망가(望哥)는 만주어로 '매우 어렵다'는 뜻이다. 칠척장신의 거구가 오척 단신의 꼬마를 들배지기로 매다 꽂으려다 실패하고 샅바를 놓으며 푸념하는 심정을 내포하고 있다. 이후, '망가망가'는 인구에 회자되어 조선의 유행어가 되었다.

한량들이 사대(射臺)에서 활쏘기를 하다가 화살이 과녁에 맞지 않으면 '망가망가'를 외치며 아쉬움을 표했고 백성들은 윷놀이나 고니를 두다가 제대로 안되면 '망가망가'를 연발했다. 심지어 어린아이들이 공기놀이를 하다가 마음대로 안 되어도 '망가망가'를 소리 지르며 웃음을 터트렸다. 이러한 유행은 조선후기사회를 관통하여 일제시대까지 이어졌다.

질가왕, 범문정, 용골대가 숙의에 들어갔다.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드디어 판결이 나왔다.

"조한영이 상소하여 임금에게 자주 신하들과 접촉하라고 청한 것은 반드시 좋지 못한 일을 도모하려는 것이다, 채이항이 부역이 번거롭고 과중하다고 말한 것은 반드시 청국에 대한 세폐(歲幣)와 군량과 수군의 징발에 관한 일을 가리켜 한 말이다. 신득연은 마부와 말을 보내라고 할 때 계사를 올려 군병 징발을 방해하여 기한 안에 오지 못하게 하였다.

김상헌은 도리에 어긋나는 논의를 어지럽게 펴서 국가를 위태롭게 만들어 백성이 편안하지 못하게 하였다. 황제께서 친히 삼전도에 납시어 조선의 죄를 문죄만하고 너그럽게 용서하여 주셨으니 마땅히 성심으로 순종해야 할 것인데 아직도 뉘우칠 줄 모르고 예전의 버릇을 계속하고 있으니 그 죄가 무겁다. 네 사람 모두 사형에 해당한다."

판결이 내려졌다. 김상헌은 고개를 들어 하늘을 쳐다보았다. 푸른 하늘에 흰 구름이 동쪽으로 흐르고 있었다. 사형? 두렵지 않았으나 나라가 걱정이었다. 허나, 사형을 선고 받은 몸, 하늘의 뜻이라 받아들이고 싶었다. 쇠사슬을 목에 걸고 두 손을 뒤로 묶인 김상헌, 신득연, 조한영, 채이항은 북관으로 이동하고 소현은 세자관으로 돌아왔다.


태그:#소현세자, #김상헌, #질가왕, #용골대, #망가망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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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事實)과 사실(史實)의 행간에서 진실(眞實)을 캐는 광원. 그동안 <이방원전> <수양대군> <신들의 정원 조선왕릉> <소현세자> <조선 건국지> <뜻밖의 조선역사> <간신의 민낯> <진령군> <하루> 대하역사소설<압록강>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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