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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언론재단과 KAIST는 언론인을 대상으로 과학디플로마-항공우주분야 연수를 5개월 동안 진행했습니다. 그 마지막 프로그램으로 연수단 10명은 지난 8월 21일부터 열흘간 유럽을 돌며 ESA(유럽우주기구) 최대조직인 ESTEC, 유럽 최대 항공우주기업 EADS 핵심 자회사인 아스트리움과 에어버스 등을 방문했습니다. 유럽 항공우주기술의 현주소를 담은 현장 리포트를 3회에 걸쳐 연재합니다 [편집자말]
 중국 최초로 우주 유영을 하기 위해 중국 유인우주선 선저우 7호 밖을 나오면서 중국 국기를 흔들고 있는 우주선 미션커맨더 자이 지강. 중국 CCTV영상 촬영
 중국 최초로 우주 유영을 하기 위해 중국 유인우주선 선저우 7호 밖을 나오면서 중국 국기를 흔들고 있는 우주선 미션커맨더 자이 지강. 중국 CCTV영상 촬영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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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흑 같은 우주와 둥근 지구를 배경으로 유유히 헤엄치는 우주인의 모습은 우주를 향한 인류의 오랜 꿈, 그 자체다. 지난달 27일 TV 화면으로 중계된 중국 선저우7호 우주인들의 우주 유영 모습이 바로 그랬다.

인류 최초의 우주인 가가린을 시작으로 1969년 달 착륙 등 '유인 우주탐험'의 엄청난 선전효과는 지난 수십 년간 우주개발의 중요한 원동력이었다. 우리나라 역시 '위성보유국' 대열에 들어 지난 십여 년간 수차례 인공위성을 쏘아올린 성과를 거뒀음에도, 올해 초 첫 우주인 이소연씨 배출로 인공위성사업이 우주인 사업으로 그 의미가 다소 퇴색한 느낌이다.

지난해 10월 달 탐사위성 창어1호 발사 성공에 힘입어 2017년 달 탐사와 2020년 독자적 우주정거장 건설을 목표로 내건 중국은, 1960년대 우주 경쟁이 한창이던 미국과 옛 소련의 모습을 연상시킨다.

중국보다 4년 앞서 달에 탐사위성을 보낸 유럽이지만 중국에 비하면 오히려 느긋해 보인다. 미소 냉전시대와 같은 국가주도형 우주개발에서 벗어나 인공위성 제작 산업화나 민간GPS '갈릴레오' 등 보다 실용적인 면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기 때문이다.

'선전효과'보다는 '실리'... NASA의 유럽식 대안, ESA

8월 22일 유럽에 도착한 연수단 일행이 가장 먼저 찾아간 곳은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근교에 있는 ESTEC(유럽우주연구기술센터)이었다. ESA(유럽우주기구) 최대 기관답게 큰 규모와 첨단시설을 자랑하는 이곳에서 우리를 가장 먼저 맞은 것은 17개 회원국 깃발들이었다.

한 눈에 다국적 우주개발기구임을 알 수 있었다. 실제 2000명에 이르는 ESA 직원들 역시 절반만 이곳에서 근무하며 나머지는 프랑스 파리에 있는 ESA 본부를 비롯해 독일·이탈리아·스페인 등 주요 회원국에 흩어져 있다.

흔히 ESA는 그 역할이나 규모면에서 NASA(미 항공우주국)에 비교된다. 하지만 외형만 놓고 보면 적수가 안 된다. 2008년 한 해 예산만 따져도 172억 달러(약 18조) 대 44억 달러(약 5조), 인원은 20만명 대 2000명으로 NASA가 각각 4배, 100배나 많다. 그럼에도 ESA는 일개 국가가 아닌 전 유럽을 아우르는 우주기구로서 위상과 권위를 갖고 있다.

 국제우주정거장 ESA 우주실험실 '콜롬부스' 실제크기 모형.
 국제우주정거장 ESA 우주실험실 '콜롬부스' 실제크기 모형.
ⓒ 김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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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TEC 테크니컬 홍보 책임자인 미셀 발은 "NASA는 유인 부문이나 군사 목적이 크기 때문에 우주 관련 예산을 단순 비교하기는 어렵다"고 말한다. 이 대목에서 NASA와 ESA의 결정적 차이를 발견할 수 있다.

미국 NASA나 일본 JAXA, 프랑스 CNES 등 각국 우주기관들이 개별 국가의 이해를 대변한다면, ESA는 순수민간기구로서 평화적인 목적만 지향한다. 군사적 목적은 전혀 없느냐는 질문에 발은 "군사적 목적 포함시 국가적 이해관계가 걸려 협력이 어렵다"고 답했다. 군수분야와 직결돼 각국의 이해관계가 첨예한 항공우주분야에서 협력을 이끌어 내려면 가장 중요한 원칙일 수밖에 없다.

ESA는 심지어 EU와도 독립적으로 운영된다. 실제 ESA 회원국 가운데는 EU 회원국이 아닌 노르웨이와 스위스가 포함돼 있고 비유럽국가인 캐나다 역시 협력국가로 참여하고 있다

NASA와 ESA의 차이를 캐묻자 농반 진반, 이런 대답이 돌아온다. NASA 프로젝트는 매년 의회에서 심의를 받아야 하기 때문에 도중에 중단되기 쉽지만, ESA에선 프로젝트 선정 과정이 까다로운 반면, 일단 결정되면 15년 정도 장기간 진행을 보장한다는 것이다.

이는 다국적 기구로서 ESA의 독특한 의사결정구조를 함축한다. ESA 모든 회원국을 아우르는 위원회(Council)를 2년마다 열어 프로젝트를 결정하는데 현재 50여개 프로젝트가 진행 중이라고 한다. 주변 국과의 경쟁이나 대중의 즉각적 관심에 대처하기엔 불리해 보이지만, 중장기 계획과 꾸준한 예산지원이 필수인 우주개발 특성을 감안하면 오히려 장점인 셈이다.

ESA에서 또 하나 눈길을 끈 것은 '투자한 만큼 얻어간다'는 철저한 실용 논리였다. 크고 작은 많은 나라들이 여러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지만 그 결실까지 똑같이 나누는 것은 아니다. 기초과학 분야처럼 의무 참여 프로젝트의 경우 모든 회원국이 GNP 비율에 따라 투자하며, 투자한 만큼 결과물을 돌려받는다고 한다. ESA 직원들 역시 각 국의 투자금에 비례해서 국적별로 숫자가 할당될 정도다. 회원국들의 적극적인 투자를 끌어내려는 훌륭한 유인책인 셈이다.

선택 프로젝트는 각 회원국별로 자국 산업에 유리한 곳에 집중 투자하는데, 역시 투자 규모에 합당한 결과물을 받게 되며, 산업 적용 가능한 계약 따내기에 유리하다고 한다. 각 프로젝트 결과물에 대해선 투자한 회원국이 6개월간 독점 소유권을 지니며 이후 일반에게도 공개한다고 한다.

SMART-1이 한국 행성 탐사에 주는 교훈

 유럽 최초의 달 탐사위성 SMART-1. 2003년 9월 발사된 SMART-1은 2005년 달 공전을 시작했고, 18개월간 작업을 마친 후 2006년 9월 달에 충돌함으로써 모든 임무를 훌륭히 마쳤다.
 유럽 최초의 달 탐사위성 SMART-1. 2003년 9월 발사된 SMART-1은 2005년 달 공전을 시작했고, 18개월간 작업을 마친 후 2006년 9월 달에 충돌함으로써 모든 임무를 훌륭히 마쳤다.
ⓒ E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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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우주개발의 관심은 이미 지구를 벗어나 달과 화성 등 행성을 향하고 있다. 유럽 역시 10년 전부터 행성 탐사를 준비해 왔고 지난 2003년 9월 유럽 최초 달 탐사 위성인 SMART-1으로 그 첫 결실을 이뤘다. 이어, 화성에 2014년 도착 예정인 로제타를 발사한 데 이어 수성 탐사 프로젝트도 진행하고 있다.

 인도 달 탐사위성 '찬드라얀' 프로젝트에 참여한 ESTEC 코즈니 박사
 인도 달 탐사위성 '찬드라얀' 프로젝트에 참여한 ESTEC 코즈니 박사
ⓒ 김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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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효충 KAIST(항공우주공학전공) 교수에 따르면 SMART-1 역시 기존 화학식 출력기 대신 전기식 출력기를 사용해 보통 1t이 넘던 연료량을 80㎏ 정도로 파격적으로 줄였다.

전기를 이용한 저출력 때문에 중국 창어1호가 단 12일에 간 거리를 무려 10개월이나 걸려 달 궤도에 도달했지만 효율성이 뛰어나 행성 탐사의 새 경향을 제시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인도의 달 탐사위성 '찬드라얀'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는 코즈니 박사는 한국과 같은 행성탐사 후발국에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선진국의 전철만 밟을 게 아니라 과학적으로 흥미로운 한 분야를 집중적으로 파라는 것. 이웃국가와의 경쟁에 매몰되지 말고 아무도 개척하지 않은 틈새를 찾으라는 지적이었다.

이러한 사례는 우리나라에서도 찾을 수 있다. 한원용 한국천문연구원 우주과학연구부장은 과학기술위성 1호가 원자외선 분광기(FIMS)를 이용, 우리운하 전체의 고온가스 분포도를 만들어 세계 과학계에 큰 반향을 일으켰던 사례를 들기도 했다. 후발 위성으로서 정밀도는 떨어지는 반면 광시야란 경쟁력을 십분 발휘한 경우에 해당한다.

우리나라 역시 첫 우주인 탄생을 계기로 2020년 달 탐사를 목표로 준비에 나섰다. 이에 앞서 미 NASA가 주도하는 '국제 공동 달 탐사 네트워크(ILN)' 참여도 그 밑거름이 될 전망이다. 어떤 길이 됐든 '선전효과'에 앞서 실리를 따지는 유럽식 우주개발은 이제 막 발돋움을 시작한 우리에게 좋은 모델임에 틀림없다.

우주개발기술 산업화 모델, EADS 아스트리움과 스팟 이미지

 독일 프리드리히스하펜에 있는 EADS 아스트리움에서 위성 제작 모습.
 독일 프리드리히스하펜에 있는 EADS 아스트리움에서 위성 제작 모습.
ⓒ 김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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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TEC에 이어 방문한 독일 프리드리히스하펜과 프랑스 툴루즈의 EADS 아스트리움에선 이런 우주개발의 성과를 산업적으로 어떻게 활용되고 있는지 보여주는 좋은 사례였다.

역시 프랑스, 독일, 스페인 방산업체가 통합해 2000년 탄생한 유럽 최대 항공우주기업 EADS는 한국과의 교류도 활발한 편이다. 이곳은 2004년 KOMPSAT-2 제작을 앞두고 한국항공우주연구원(KARI)에서 연구원을 직접 파견한 바 있고 이후 국내에서 직접 위성을 제작 조립하는 데 기술적 밑거름이 됐던 곳으로 유명하다.

아스트리움은 이처럼 자체적으로 위성을 개발하는 한편, 세계 각국 정부나 기관의 의뢰를 받아 위성을 제작하는 사업을 진행하고 있었다. 특히 툴루즈 캐날 존은 흡사 인공위성 공장이라고 부를 만한 곳으로 각국의 아스트리움에서 만든 부품들을 결합해 최종 조립 완성하고 테스트하는 역할을 하고 있었다.

툴루즈에 있는 스팟이미지 본사에선 우리 KOMPSAT-2(다목적실용위성2호-아리랑2호)의 활약상을 볼 수 있었다.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은 지난해 7월 스팟이미지사와 우리나라와 미국, 중동지역을 제외한 나머지 지역의 위성영상 판매대행 계약을 3년간 체결했다.   

스팟이미지는 세계 위성의 지형정보나 이미지를 개인이나 공공기관이 공유할 수 있도록 영상을 가공, 유통, 판매하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SPOT-5 등 프랑스 CNES에서 쏘아올린 위성들뿐 아니라 ESA, 항우연 등과 전략적 파트너십을 맺고 있다. 기존 스팟이미지가 확보한 프랑스 위성들의 해상도가 2m~2.5m 정도인 반면 KOMPSAT-2은 해상도 1m의 우수한 광학 영상을 확보해 판매 비중도 점차 늘고 있다고 한다.

 2007년 12월 11일 유럽 ESA 위성 엔비셋이 촬영한 태안 앞바다 기름유출 사진. 일반 광학카메라가 아니라 특수 레이더(SAR)로 촬영해 검은 기름띠가 뚜렷하게 보인다.
 2007년 12월 11일 유럽 ESA 위성 엔비셋이 촬영한 태안 앞바다 기름유출 사진. 일반 광학카메라가 아니라 특수 레이더(SAR)로 촬영해 검은 기름띠가 뚜렷하게 보인다.
ⓒ E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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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드리히스하펜 아스트리움에서 가장 눈길을 끈 것은 독일의 지구관측위성 Terra-SAR-X였다.

기존 광학관측장비와 달리 전파 신호를 이용함으로써 야간이나 구름에 상관없이 전천후지구관측이 가능한 SAR(Synthetic Aperture Radar) 센서는 2010년 발사예정인 다목적실용위성 5호(아리랑 5호)에 처음 탑재될 예정이어서 관심을 끌었다.

특수 레이더 SAR로 촬영한 위성사진의 위력은 이미 지난해 12월 11일 충남 태안 앞바다 유조선 기름 유출 당시 확인됐다. 당시 유럽 ESA를 통해 뒤늦게 국내에 전해진 태안 앞바다 기름유출 위성사진은 기름띠의 흐름을 한눈에 보여주고 있었다. 이 위성사진을 제때 입수할 수 있었다면 기름띠 사전 차단에 큰 위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아쉬움이 남는 대목이기도 했다.

한편 국내에서도 유럽의 민간 GPS인 '갈릴레오' 참여 가능성에 관심이 높다. ESTEC 측은 갈릴레오를 스페이스시스템과 지상시스템으로 구분하면서, 지상시스템의 경우 한국의 참여 가능성도 있음을 시사했다.


#달탐사#우주개발#ESA#NASA#선저우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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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사회부에서 팩트체크를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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