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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아안..풍 놀이 가아고..고.. 싶어요..."

 

올 가을, 정신지체장애인 이근양(천호동·55)씨의 소원은 소박하기만 하다. 강원도 설악산의 울긋불긋 단풍에 빠지고 싶다는 선천성 정신지체장애인, 이근양씨는 충북 증평이 고향이지만 고향도 가족도 부모·형제도 없다. 오로지 세상에는 이씨 혼자다.

 

가족들에게 버림받고 여기저기 떠돌이 생활을 하면서 강동구와 인연을 맺은 건 지금으로부터 7년여 전.

 

강일지구에 오두막살이를 하던 이근양씨는 강동구 장애인연합회(회장 박근용) 사람들을 만나면서 삶의 활력을 되찾았다. 같은 아픔을 안고 살아가는 장애인 친구들과 함께 하면서 웃음도 되찾을 수 있었다. 착하기만 한 이씨는 주변 사람들로부터 금전적인 피해를 여러 차례 당했다고 한다.

 

10여 년 째 이씨와 인연을 맺어온 한 측근은 “기초생활수급자인 이씨가 안 입고, 안 먹고 모은 쌈짓돈을 빼앗아 가는 몰지각한 사람들 때문에 극심한 경제적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며 이씨의 어려운 상황을 설명했다.

 

이근양씨는 교육을 받지 못해 한글을 모른다. 말도 어눌하기 그지없다. 그래서 일상적인 대화가 어렵다. 그러다 보니 원치 않게 사기를 당하는 등의 절박한 상황에 놓이게 된 것이다. 세탁기도 없어 봉사자들의 도움으로 빨래를 해결하고 끼니 해결도 변변치 못해 이웃에서 가져다주는 밑반찬으로 근근이 식사를 해결하고 있다. 장애수당과 수급자 지원비 등 30여 만원으로 한 달을 살아가는 이씨의 살림살이는 월세, 수도세, 전기세 등을 내고나면 변변한 옷 한 벌, 양말 한 짝 사기 빠듯하다.  

 

그러나 경제적인 고된 생활에도 이근양씨는 늘 해맑게 웃는다. 비록 월세 7만원짜리 지저분하고, 부엌도 없는 방이지만 두 다리 쭉 뻗고 잘 수 있는 집, 외제차 부럽지 않은 자전거, 무엇보다 매일 같이 작업하는 동료들이 있기에 행복하다.

 

그는 매일 아침 8시 천호동에 위치한 강동구 장애인연합회 작업장으로 출근한다. 몇 평 안 되는 액세서리 조립 작업장에서 하루를 보내는 이씨는 직장이 있고 직장 동료가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마냥 좋다. 외로울 틈이 없기 때문이다.   

 

"바압도 맛..있..고, 시이..간도 빠아알리 갑니다."

 

한참을 더듬더듬 거리며 말하는 이씨는 작업장에서 일하면서 말이 많이 늘었다고 한다. 처음 직장 동료들은 그가 하는 말을 전혀 알아들을 수 없었다. 하지만 사람들과 어울리면서 서서히 대화가 가능해졌다. 특히 노래방 가서 노래 부르기를 유별나게 좋아하는 그는 노래방 출입이 잦아지면서 말솜씨도 좋아졌다. 그만의 언어교육인 셈이다. 또 집에 있어봐야 찾아오는 이도 없고 식사해결로 어려운 이씨는 주말에 교회를 나간다.

 

날씨가 추워지면서 이근양씨의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경제위기에 도움을 주는 봉사자나 후원자도 뚝 끊긴 상황에서 긴 겨울을 나려면 당장 기름 값부터가 걱정이기 때문. 게다가 부실한 치아, 침침한 눈 때문에 걱정이 태산이다. 그래도 이근양씨는 오늘 하루도 힘차게 ‘희망의 페달’을 밝으며 천호동 작업장으로 향한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강동송파구 주민의 대변지 서울동부신문 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장애인, #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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