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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 남쪽 3개성 가운데 하나인 운남성. 문명의 발길이 거의 닿지 않는 그 곳은 낙원의 모습으로 다가온다.
 중국 남쪽 3개성 가운데 하나인 운남성. 문명의 발길이 거의 닿지 않는 그 곳은 낙원의 모습으로 다가온다.
ⓒ 최성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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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해남'행 고속버스나 시외버스를 보면 그렇게 까마득하게 보였다. 마산에서 아침에 출발해 광주를 거쳐 외갓집이 있는 나주에 도착하면 이미 해가 떨어질 무렵이었다. 우리를 내려준 버스는 남쪽을 향해 더 달렸다. 그 버스엔 어김없이 '해남'이라고 쓰여 있었다. 바다의 남쪽. 그 때는 그 곳이 도저히 갈 수 없는 머나먼 타국처럼 느껴졌다.

'운남(雲南)'이란 이름을 들었을 때 그랬다. 중국 최남단 3개성 가운데 하나. 그리고 구름의 남쪽. 땅 끝은 항상 신비로운 법이다. 사람의 발길이 닿기 힘든 곳. 그래서 쉬이 문명의 침입을 허락하지 않은 곳. 살아서 가볼지 가늠할 수 없는 그 나라를 <구름의 성, 운남>(최성수, 삶이 보이는 창) 덕분에 구경할 수 있었다.

TV에서 방영한 <차마고도>를 보면서 황홀경에 빠진 적이 있다. 운남은 차마고도가 지나는 땅이다. 암각화처럼 산에 금을 내듯 길이 만들어진 곳이고, 한 번 눈이 오면 언제 길이 뚫릴지 알 수 없는 곳이다.

10년 된 말린 돼지, 새에게 던지는 시체...신기하지 않은 이유

 최성수가 쓴 <구름의 성, 운남>. 1987년 <민중시> 3집에 시를 발표하며 등단한 글쓴이는 그 동안 <장다리꽃 같은 우리 아이들> <작은 바람 하나로 시작된 우리 사랑은> <천 년 전 같은 하루> 등 시집과 소설 <비에 젖은 종이비행기 <꽃비> 산문집 <가지 않은 나무가 큰 그늘을 만든다>, 기행서 <어느 시간 여행자의 일기>를 펴냈다. 지금은 청량고등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다.
 최성수가 쓴 <구름의 성, 운남>. 1987년 <민중시> 3집에 시를 발표하며 등단한 글쓴이는 그 동안 <장다리꽃 같은 우리 아이들> <작은 바람 하나로 시작된 우리 사랑은> <천 년 전 같은 하루> 등 시집과 소설 <비에 젖은 종이비행기 <꽃비> 산문집 <가지 않은 나무가 큰 그늘을 만든다>, 기행서 <어느 시간 여행자의 일기>를 펴냈다. 지금은 청량고등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다.
ⓒ 삶이보이는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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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나 사진기만 갖다 대면 그림인 곳이 운남이다. 하지만 단지 좋은 경치 이야기만 하고자 한다면 좋은 사진기로 찍은 사진 수십 장이면 충분했을 것이다.

지은이는 황홀한 경치에 푹 빠진 뒤에도 이내 그곳에서 사람을 읽어낸다. 이 책엔 수많은 사람들이 나온다. 너무 가난해서 1년 내내 한 가지 옷만 입는 할머니, 갑자기 다가와 "한국 드라마 재밌다"고 말한 뒤 '배시시' 웃으며 사라진 아가씨, 눈이 와서 고립됐는데도 눈싸움하며 신나게 노는 마을 사람들, 사진 한 장에 감동하는 이름 모를 사람들….

운남엔 내셔널 지오그래픽이나 특집 다큐멘터리에서만 볼 것 같은 풍경들이 쏟아진다. 우리가 잊어버렸던, 잊어버린 줄도 몰랐던 어느 시절 사람의 모습이 그 곳에 남아 있다.

그 이들은 다이족, 하니족, 푸이족, 수이족, 모수족, 나시족, 지누어족, 장족 등 낯설기만 한 소수민족들이다.

32세에 18세 아이를 둔 모수족의 뱃사공 아주머니, 과거 모수족은 열세 살이 넘은 남자와 여자들이 모여 축제를 열었다. 축제 자리에서 마음이 맞은 남녀는 하룻밤을 보낸다. 그러나 그 뿐, 남자든 여자든 책임은 없는 축제다.

모수족은 통돼지를 삶아 말린 뒤 필요할 때마다 먹는다. 통돼지는 길게는 10년까지 간다. 죽은 사람의 시체를 토막 내어 새들에게 던져 주는 조장(鳥葬)이라는 풍습을 가진 티베트 사람들, 결혼할 때는 양가 부모에게 결혼 사실을 알리지 않고 사흘이 지나서야 남자쪽에서 중매쟁이를 보내 허락을 얻는 하니족 등 책엔 입이 '딱' 벌어질 만한 독특한 이야기들이 가득하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신기하다' '미개하다'라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는 것은 지은이가 그런 눈으로 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우리가 몇 천 년 전 그랬을지도 모르는 문화와 풍습을 고스란히 이어온 사람들이다.

어쩌면 우리가 잃어버린 진짜 보물을 그네들이 갖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점에서 글쓴이는 경외의 눈길로 바라본다. 유토피아 또는 샹그리라(제임스 힐튼의 소설 <잃어버린 지평선>에서 지상낙원으로 묘사된 도시)가 오버랩되는 것은 그래서다.

요괴로부터 살아나 해와 달이 된 자매, 홍수에서 유이하게 살아난 뒤 세상을 만든 남매, 야크를 살리고 대신 죽은 소년 등 각 부족에 얽힌 설화도 재미있다. 이들 설화를 읽다 보면 세상 사람들은 모두 원래는 한 뿌리라는 게 실감난다. 그 설화 속에서 노아의 방주, 우리설화 해님달님 등 동서양의 옛 이야기들이 고스란히 연상된다.

자연에 순종하며 사는 운남성 사람들, 우리는 잘 사는 것일까?

 위룽쉐산 정상의 바위 절벽. 운남엔 3000-6000m의 높은 산과 바다만큼 큰 호수가 가득하다. 이런 거대한 자연가 더불어 사는 사람들의 마음은 어떠할까.
 위룽쉐산 정상의 바위 절벽. 운남엔 3000-6000m의 높은 산과 바다만큼 큰 호수가 가득하다. 이런 거대한 자연가 더불어 사는 사람들의 마음은 어떠할까.
ⓒ 최성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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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엔 3000-6000m에 이르는 산들이 자주 나온다. 이들 산길을 따라 만들어진 길이 차마고도다. 운남성 남쪽에서 만든 좋은 차를 산길을 따라 티베트까지 운반한 길이 차마고도다. 얼하이라는 호수는 남북길이가 41.5km, 동서 폭이 약 3-9km다. 이 어마어마한 자연 속에서 살아온 운남성 사람들은 강인하고 자연에 순종적인 심성을 갖게 됐다.

차 두 대도 지나가기 힘든 절벽 위를 자동차로 운전하고, 깎아지른 절벽과 절벽 사이를 줄 하나에 의지해 말과 짐을 옮긴다. 폭설이 내린 산길을 자동차만큼 빠르게 걸어가기도 한다. 우연히 그네들을 쫓아가다 몇 발자국 못가 놓친 뒤 혀를 내두른 경험을 글쓴이는 소개한다. 그 사람들은 그 사람들만의 방식으로 살아남았고, 그렇게 살고 있다.

광우병과 멜라민 공포에 벌벌 떨고, 사교육비에 허리가 휘며, 사채에 시달리며 한강다리에 올라가는 우리 삶에 비춰볼 때 운남은 낙원임이 틀림없다. 하지만 이 책을 읽은 사람들 그 누구도 선뜻 운남으로 갈 순 없다. 이미 특급 자본주의 열차를 탄 대한민국호 사람들에게 열차에서 뛰어내린다는 것은 막막함이자 공포일 것이다.

그런 우리들에게 도도히 옛 문화를 지키고 있는 운남성 사람들은 감동이자 위로다. 문제는 운남성도 서서히 허물어지기 시작했다는 사실이다. 중국이 아주 빠르게 산업화하면서 댐이 세워지고 마을은 수몰된다. 시내엔 새 건물들이 들어서면서 도시는 뻔해진다. 돈을 따라 들어온 한족들이 소수민족 춤을 대신 추는 지경이 됐다.

글쓴이가 그린 운남은 그래서 아름다움이되, 아련하고 가슴 시린 아름다움이다. 운남이 지금 모습을 언제까지 지킬지는 누구도 모른다. 이 책이 과거 유산에 대한 기록이 아니라, 지금도 그러한 모습을 담은 보고서이기를 바랄 뿐이다.

"그 때가 되면 지금처럼 한적하고 고즈넉한 지엔수웨이의 모습은 어쩌면 사라질지 모른다. 많은 사람들에 치여 바쁘게 밀려다니다 또 다른 곳을 향해 정신없이 떠나야 할 곳으로 바뀌어 버린다면, 그래서 장가화원의 세월에 퇴색한 풍경조차 찾아볼 수 없다면, 지엔수웨이는 또 다른 번화한 도시의 하나로 남아 있게 될 것이다. 자본은 늘 세상 어느 곳이든 비슷비슷한 곳으로 만들어 버리는 속성이 있으니까 말이다." - 책 중에서

덧붙이는 글 | 운남은 쉽게 가기 힘든 곳이다. 그러나 책엔 각 지역마다 현지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안내가 자세히 돼 있다.



구름의 성, 운남 - 그리운 구름의 남쪽 나라를 찾아서

최성수 지음, 삶창(삶이보이는창)(2008)


#운남#최성수#삶이보이는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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