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로 징매이고개를 넘어 도서관에 출퇴근하다 보면(지난 8월부터 백수 생활 중...^-^), 예비군훈련장(부대)에서 외부인의 출입을 막기 위해 설치한 철조망을 한참 따라 가야합니다. 부대 앞부터 생태통로 공사로 부산스러운 정상까지 가는 인도 옆 철조망에는, 특히 뾰족한 가시나무가 엉성한 가시철조망의 빈틈을 막아주고 있습니다.
손가락 한마디 만한 가시를 사방으로 뻗친 나무는, 쌍떡잎식물 쥐손이풀목 운향과의 낙엽관목인 탱자나무입니다. 탱자나무는 옛부터 담을 대신한 산울타리로 쓰였고 강화도의 갑곶리와 사기리에서 자라는 탱자나무는 병자호란 때 적군의 침입을 막기 위해 심은 것으로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있다고도 합니다.
경기 이남에 분포하고 중국인 원산지인, 녹슨 철조망보다 울타리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는, 탱자나무에 달린 말그대로 탱글탱글한 열매는 10월이 되자 노랗게 익어가고 있습니다. 지난 여름에는 짙은 초록빛을 띄더니 가을볕을 닮아 그런지 작은 귤처럼 탐스럽습니다. 한 입 꽉 깨물어주고 싶지만, 탱자 열매는 먹을 수가 없습니다. 대신 노란 열매는 건위.이뇨.거담.진통 등의 약으로 쓰인다고 합니다.
아무튼 밤늦게 도서관에서 나와 자동차와 가로등 불빛 이외에는 아무도 없는 탱자나무 길을 홀로 내려오다 보면, 최근 병역 의무를 마치고 3년만에 돌아온 '발라드의 황태자' 조성모의 <가시나무>란 노래가 떠오릅니다. 가슴속에 못난 욕심같이 뻗친 가시가 너무 많아 사랑하는 이의 마음을 둘 곳 없고, 그 가시에 찔려 아파하는 사랑이 새처럼 날아가버렸다는 애달픈 노래 말입니다.
노랫말이 가물가물해 "내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를 되뇌다보면, 제 가슴속의 돋힌 날카로운 가시에 찔려 아파하고 슬퍼하고 기다리게만 했던 잊혀진 줄 알았던 이가 점점 선명하게 떠오릅니다. 탱글탱글한 노란 탱자처럼 작고 귀여운 그녀가 어둠속에서 한줄기 빛과 함께 나타나곤 합니다.
탱자나무를 지날 때면, 일생에 단 한 번 밖에 울지 않는 전설의 새, 둥지를 떠나는 그 순간부터 가시나무를 찾아 헤매다 가장 길고 날카로운 가시에 찔려, 죽음의 고통 속에서 처절하게 우는 가시나무새도 떠오릅니다. 사랑면서 사랑하는 방법을 모르는 이들에게 슬프지만 아름다운 메시지를 전해준 책 <가시나무새> 속의 그녀가 말입니다.
그리고 따사로운 가을볕 아래서 뾰족한 가시에 숨어 사랑과 생명. 우주를 담은 열매를 맺은 탱자나무가 제게 말합니다. 그 아픔과 마음속 가시조차 사랑하고 사랑하라고~
덧. 탱자나무하니까 떠오르는 것 중에 하나. KBS2 TV의 <유머1번지>라는 옛 코미디프로그램에서 고인인 코미디언 김형곤씨가 등장하는 '탱자 가라사대'라는 코너도 떠오릅니다.
당시 거침없이 부조리한 사회와 세태를 풍자해 해학 넘치는 웃음을 주었었는데 말입니다. 요즘 코미디.개그.오락 프로그램에서는 예전처럼 사회풍자 요소(형님뉴스 같은거...)가 거의 보이지 않네요. '리얼'이란 이름을 붙여, 의미없는 몸개그에 막장개그로 헛웃음만 만들어낼 뿐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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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돋힌 가시 속에서 탱자나무는 사랑과 생명. 우주를 담은 열매를 맺었다. |
ⓒ 이장연 | 관련사진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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