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주가 폭락한 날 새로 가게 연 친구

퇴근 무렵인 저녁 7시가 넘었는데도 다니는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다. 불경기라는 말이 실감난다. 먹자골목길이라는 동네건만 식당 안에도 한두 테이블 정도에만 손님들이 간간히 보인다. 초등학교 친구가 호프집을 개업한다기에 몇몇이 가게를 찾아가던 길이었다.

"주식해서 다 까먹었다더니 웬 또 호프집? 용하긴 용하네."
"글쎄 말이다. 이 불황에 무리하는 거 아녀? 다니는 사람들도 없구만."
"권리금도 주고 시작한다던데 집세나 나오려나 모르겠다."

나 역시 친구들 마음과 다르지 않았다. 불안했기 때문이다. 건설자재상을 하면서 몇 년전부터 주식에 손을 대 어느 날에는 가게 수입보다 주식해서 번 돈이 더 많다고 자랑하더니만 무슨 이유인지 몇 달 전 자재상을 정리했다는 소문이 들린 친구였다. 이날(24일)은 마침 주식시장 대폭락의 여파로 코스피 지수가 1,000포인트마저 붕괴된 날이었다(종가지수 938.75. 전일대비 110.96 하락).

지난해 말부터 불거진 미국발 서브브라임 모기지(비우량주택담보대출) 부실 사태로 시작된 글로벌 금융위기 앞에 국내 증시는 그야말로 속수무책으로 무너져 버렸다. 친구놈이 가게를 연다는 날이 마침 이날이었다.

대체 그 반토막은 어디로 날아간 걸까?

주가 그래프 산이 높으면 골이 깉다? 그러나 그 골의 바닥이 어디인지 아는 사람은 지금 아무도 없다
▲ 주가 그래프 산이 높으면 골이 깉다? 그러나 그 골의 바닥이 어디인지 아는 사람은 지금 아무도 없다
ⓒ 서정삼

관련사진보기


갑자기 추워진 날씨만큼이나 이날 주식시장의 대폭락을 바라보던 나는 다가올 두려움에  한기를 느꼈다. 문제는 알 수 없는 두려움이 아니라 단계적으로 닥칠 현실적인(예견할 수 있는) 두려움이었기에 더더욱 겁이 났다. 술을 연거푸 털어넣었지만 취하지도 않는다. 친구들의 웃음소리와 이야기들이 공명처럼 울리면서 순간적으로 잠시 패닉 상태에 들어간다.

불과 작년 이맘때, 그러니까 2007년 10월 31일, 우리나라 주식시장은 코스피 지수가 무려 2,064.85라는 최고치를 경신하면서 온통 축제 분위기였다. 증권사 객장에서는 고객들에게 떡과 음료수를 돌리고 술집에서도, 주변에서도 주식 이야기뿐이었다. '주식(柱式) 팔아 주식(酒食)을 일삼는 일'들이 많았다. 개도 하면 번다는 그 주식을 안 하는 인간은 개만도 못하다는 웃지 못 할 농담까지 돌았다.

하지만 불과 1년 만에 반토막 이상이 날아갔다. 대통령조차 올해 3천 포인트 이상 간다며 웃음 짓던 이놈의 주식이 말 그대로 허리가 동강 부러져 버린 것이다. 고양이가 물고 간 안동 간고등어도 아니건만 달아난 반토막은 어디로 갔는가. '산이 깊으면 골도 깊고 깊은 만큼 반등은 올 것이다'라고 하지만 작금의 상황은 그리 간단하지만은 않은 것같다.

고금리에 경기 침체 그리고 주식시장 붕괴. 그 결과는? 속단할 수는 없다하더라도 답은 보인다. 일반 서민들에겐 더 이상 졸라맬 허리가 없다. 허리띠 돌아가면서 모든 구멍 다 뚫어 조으고 조으며 살아왔는데 이제 웬만큼 허리 가는 사람들의 허리는 몽땅 끊어지게 생겼다. 해외펀드, 국내펀드 할 거 없이 반토막 나고 신용으로 주식을 한 사람들 사이에서는 어느새 '깡통'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린다.

경기침체와 고금리에 이자 납입이 어려운 사람들은 "지금 나 떨고 있니" 상황이다. 곳곳이 지뢰밭이다. 언제 어디서 터질지 모른다. 그러기 때문에 아직도 바닥을 모르는 세 자리 숫자 주식시장이 두렵다.

재정기획부 어느 양반이 그런다. 우리 시장을 믿는단다. 6개월 늦어도 1년이면 되돌릴 수 있는 힘이 있단다. 섣부른 매도는 손실 확정만 지을 뿐이니 자제를 해달란다. 하지만 일반 투자자들의 불안감에 주식형 펀드로부터 현금 인출이 이어지는 '펀드런'까지 발생하면 국내 증시는 겁잡을 수 없게 된다.

그런저런 생각에 머리가 복잡해진다. 나 역시 매달 20일이면 집 담보대출 이자를 내야 한다. 없는 집에 제사온다고 이자 납입일은 브레이크 한 번 밟지 않고 '거침없이 하이킥'으로 잘도 돌아온다.

이러다 정말 나 또한 서브브라임 모기지 신세로 전락하는 건 아닌지 불안하고 초조하다. 주식 한 주 없다고 했지만 사실은 장롱 저 밑 아무도 모르는 주식 계좌가 있다. 현 잔고 안들여다 본 지 오래다.

마누라가 주식 투자해 돈 까먹었다는데도 웃는 이유는?

 24일 오전 장중 주가 1,000선이 붕괴된 가운데 오후 1시 16분 여의도 증권선물거래소 시황판에 코스피지수가 950.74로 표시되고 있다.
 24일 오전 장중 주가 1,000선이 붕괴된 가운데 오후 1시 16분 여의도 증권선물거래소 시황판에 코스피지수가 950.74로 표시되고 있다.
ⓒ 권우성

관련사진보기


"뭔데 머뭇거리노? 빨랑 말해 봐라."

앞자리에서 술 먹던 친구놈이 난데없이 소리를 버럭 지른다. 마누라하고 통화하는 모양이다.

"뭐 주식했는데 오늘 무지 빠졌다고? 이 사람이 정신이 있나 없나. 요즘 같은 때 당신이 뭐 안다꼬 주식을 하는데? 나 참 돌아삐리겠네. 그래 얼마 투자했는데?"

순간 술자리에 찬바람이 분다. 다들 친구놈 입만 쳐다본다. 그러던 순간 그 놈이 갑자기 "푸하하" 웃더니 전화를 끊는다. 아니 저놈이 갑자기 실성을 했나. 마누라가 주식해서 돈 다 까먹었다는데도 웃고 있다.

"야, 너 와 그라노? 마누라가 주식해서 다 까묵었다며? 얼마 갖고 했다는데?"
"하하하. 190만 원으로 했단다. 그래서 내가 껌 사먹은 셈 치고 빨리 정리하라캤다. 아이고 죽는 줄 알았네. 아파트 잔금 넣을 돈 가지고 있었거든."

190만 원밖에 주식 안 한 마누라가 예뻐 보인건가 아니면 190만 원은 돈도 아닌 세상이 되어 버렸나.

주가 1,000포인트가 붕괴된 '마의 금요일'은 지났다. 그러나 장이 열리는 아침 9시가 마치 도살장 도축 시간을 알리는 종소리 같다던 증권사 후배놈의 푸념을 듣고 그냥 웃어 넘길 수만은 없는 요즘이다.

정녕 바닥의 끝은 어디인가. 이제 곧 날씨마저 추워지는데, 눈보라 치는 엄동설한도 올텐데, 우리 서민들은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고금리에 이자 수익이 늘어나 기분 좋으신 분들말고 고금리에 이자 부담만 더 늘어난 나는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지, 그 해답 아는 분 어디 대답 좀 해주세요. 네?


#얼떨결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