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재벌이 경제 발전을 이끈다는 믿음

 

또 다른 K씨는 독실한 크리스챤으로서 자녀를 모두 성직자로 키우겠다고 하나님 앞에 다짐했다고 한다. 그는 자녀들의 뒷바라지를 위해 가업을 정리하고 미국으로 건너가 장기간 불법체류자 신분으로 접시닦이 등을 전전하며 자녀의 교육비를 역 송금하고 끝내 자신의 아들까지 미국에 유학시킨 별난 이력의 소유자이다.

 

그가 처음 미국으로 건너갈 당시만 하더라도 미국인의 눈에 비친 한국인은 미개한 나라의 야만인 수준이었다고 한다. 미국인들에게 한국 하면 전쟁, 고아 같은 모습만 연상할 만큼 한국에 대한 그들의 선입견은 부정적이었다고 한다. 그의 주변에는 몇 년 전 까지만 하더라도 삼성 현대 같은 기업들이 일본 기업인줄 잘 못 알고 있는 사람이 많이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최근 반도체나 휴대전화 자동차 등의 수출이 호조를 띠면서 미국인의 한국에 대한 인식이 상당히 긍정적으로 개선된 것을 느낀다고 한다. 그는 지난 수 십 년 동안 정부의 노력으로도 이루지 못한 국위 선양을 삼성이나 현대 같은 재벌 기업들이 해냈다고 했다. 그는 “국내에서 재벌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을 전혀 모르지 않지만 나라 밖에서 보는 한국 경제는 사실상 재벌들에 의해 견인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K씨 뿐 아니라 해외 여행길에서 한국산 자동차나 한국 기업의 광고를 보고 긍지를 느꼈다는 사람은 상당히 많고, 실제로 무역 의존도가 높은 한국 경제에서 재벌 기업들이 차지하는 비중은 가히 압도적이라 할 만큼 절대적이며 시간이 흐를수록 비중은 더욱 커지고 있는 것이다. 지금과 같은 위기 국면은 아니었어도 서민들이 노무현 정권의 경제 정책에 극심한 불만을 가졌던 이유 중 하나가 [정부의 과도한 규제가 기업이 투자를 기피하게 하는 주요 원인]이라는 믿고 있는 것인데, 사실 이 주장은 친 재벌 친 보수 언론들에 의해 유포된 주장을 비판 없이 받아들인 탓이다.

 

잠깐 개발 독재 시절의 재벌 성장사를 간략하게 살펴보자.

60년대의 한국 기업들은 그야말로 구멍가게 수준이었다. 우리가 수출하는 공산품은 피복이나 가발 같은 경공업 제품이 주류를 이루었었다. 70년대 정부는 중공업 육성과 수출 장려를 위해 재벌기업에 엄청난 특혜를 부여해 주었다. 재벌 기업의 해외 진출을 위해 독일 파견 간호사와 광부들의 급여나 베트남 참전 용사들의 급여를 담보로 정부가 보증을 서주었는가 하면, 공산품의 출혈 수출을 허용하며 기업이 수출에서 낸 적자를 내수시장에서 만회할 수 있는 관세 특혜를 구축해 주었고, 건설회사에는 싼 비용으로 택지를 공급하고 건축하지도 않은 아파트를 미리 분양하여 입주자의 돈으로 건설하는 선 분양 특혜도 허용했다. 이정도의 특혜를 누리는 기업이 성장하지 못하면 오히려 그것이 이상할 만큼 정경유착 시대의 한국 재벌은 땅 짚고 헤엄치기 식으로 급성장해 온 것이다.

 

이러한 개발 독재의 후유증은 지난 97년의 외환위기로 곪아 터졌다. 외환위기 극복 과정에서 정부는 또 다시 재벌 기업에 엄청난 특혜를 제공했다. 무모한 자동차 업계 진출로 유동성 위기를 맞은 삼성 자동차를 르노에 매각하는 과정에서 상장되지 않은 삼성 생명의 주식을 담보로 삼성의 심각한 채무 문제를 해결해 주었으며, 현대차로 하여금 기아차를 헐값에 인수하도록 해 주고, 현대전자가 엘지반도체의 합병을 허용 하는가 하면, 대규모 정리해고가 가능하도록 정부가 대 국민 대 노동자 설득에 나서기도 했으며, 국민들은 외환위기 극복을 위해 장롱 안에 잠자고 있는 달러와 금모으기 운동에 적극 동참하기도 했다.

 

이러한 과정을 보면 재벌 성장의 이면에 노동자와 국민과 희생과 헌신 그리고 중소기업 홀대 같은 그림자가 자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지난 수 년 간 승승장구해 온 반도체나 자동차 수출이 단지 해당 기업의 탁월한 경영 능력 때문이 아니라 그룹 도산이나 해체의 위기를 국가적 차원에서 해결해주고 천문학적 액수의 공적 자금을 투입해 기업의 자금난을 말끔하게 해결해 주었기 때문이다.

 

재벌 성장의 버팀목이 되었던 국가적 차원의 지원이나 공적자금이란 무엇인가?

바로 국민 전체의 희생이며 헌신이며 지원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재벌들은 노무현 정권 시절 걸핏하면 ‘국내의 투자 환경이 나빠서 해외 투자를 고려 중’이라는 파렴치한 주장을 펼치며 출자총액 제한의 완화와 수도권 공장 증설 규제의 해제 등을 집요하게 요구해 온 것이고, 한국의 서민들은 “왜 정부가 기업의 투자를 막느냐?”고 정권을 성토하며 재벌들의 주장에 장단을 맞춰 준 것이다.

 

법치질서 확립에 대한 대중의 인식

 

조금만 상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용산 참사가 잘못된 공권력 투입이 빚어낸 참극이라는 결론에 동의할 것이다. 처음 사건이 터질 당시만 하더라도 대통령이 “과격한 시위 문화..”를 거론한 내용을 빼고 브리핑해야 할 만큼 정권은 크게 긴장하며 여론의 동향을 살피고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정권과 여당은 오만해지기 시작했고 현재는 6명의 목숨을 앗아간 대 참극에 대해 경찰이나 정부 측에서 책임져야 할 사람은 모두 사라졌고, 애먼 전철연 관계자와 폭력시위가 심판대에 오르는 해괴한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이 참극과 관련하여 더더욱 참기 어려운 것은 미국의 예를 들어 법치질서의 확립을 주장하는 것인 데 내가 들은 가장 과격한 주장의 골자는 대략 다음과 같다.

“어떻게 시민이 경찰에게 화염병을 던집니까?

화염병이 뭡니까? 6.25때 탱크를 때려 잡던 대전차 무기입니다. 대전차 무기를 경찰에게 투척하는 것은 국가에 대한 반란과 같습니다. 이걸 경찰이 방어할 수 없다는 말 입니까?

미국 경찰은 검문할 때 함부로 주머니에 손만 넣어도 그냥 발포 합니다. 엄정한 법치질서를 확립해야 합니다.”

이 중에도 ‘미국 경찰의 그냥 발포..’는 소위 외국물을 먹었다는 사람들에게서는 아주 당연한 말처럼 흘러나왔다.

 

이 부분에서 만약 미국에서 무리한 작전 전개 시비가 있는 가운데 이와 같은 대규모 참극이 벌어졌다면 경찰 중 아무도 책임을 지지 않는가를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충돌이 뻔히 예상되는 상황에서 인화 물질로 가득한 농성장에 자진 해산 권고나 중재 시도 한 번 없이 하루 만에 공권력을 전격 투입하는 과정에서 지휘 책임이나 작전 책임을 져야 할 사람이 과연 없는가를 따져 묻자 그들은 “경찰도 법은 지켜야지요..”라며 말꼬리를 흐렸다.

 

제대로 말하자면 ‘경찰도 법은 지켜야’ 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들이 법을 지키지 않아도 공권력을 수호하는 경찰은 반드시 법과 규정을 지켜야만 하는 것이다. 그래야만 법치질서도 서는 것이고 정부의 영(令)도 살아나는 것이다.

 

위로는 대통령으로부터 거의 모든 고위 각료가 불법과 탈법시비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며, 상위권 재벌 기업 대부분이 불법상속과 주가조작 불법비자금 조성 뇌물 공여 등의 전과를 가지고 있는 나라가 세계에 몇 나라나 될 것이며, 소위 민주국가에서 편향된 공권력이 오히려 피해자를 핍박하는 나라가 몇이나 될 것이며, 이런 잘못된 공권력 남용을 오히려 대중이 나서서 두둔하는 기막힌 나라가 지구상에 한국 말고 또 어디에 존재하는지 궁금할 따름이다.

 

 

에필로그

 

다시 K씨 얘기로 돌아가자.

그가 주변으로부터 사람 좋다는 말을 늘 듣게 되는 것은 그의 본성이 착한 탓이기도 하지만 그가 억울한 일을 당해도 화를 낼 줄 모르기 때문이라고 보는 것이 더 정확하다. 그에게 가게 일을 맡겨본 경험으로 비추어 그처럼 성실한 사람이 별로 없다. 그는 성실할 뿐 아니라 정직하며 부지런하여 맡은 일에 대해서 돈 값 이상을 하는 사람이다.

 

하지만 같은 교회에 다닌다는 이유로 그를 싼 맛에 하인처럼 부리던 사람이 ‘나니까 너 같은 장애인에게 일을 주지’라는 투로 농담을 넘어서 비아냥거리는 모습을 종종 보았지만 그는 전혀 화를 내지 않았다. 심지어는 헤어진 의류나 오래된 잡지 같은 처치 곤란한 폐품들을 큰 선심이나 베풀 듯 그의 차에 실어주어도 그는 오히려 고개를 숙이며 감사했다. 한 번은 보다 못해 그에게 물었다.

 

“이 물건 가져다가 뭐에 쓰세요?”

“아..책은 고물상에 가져다주고 옷은 입을만한 것 빼고 나머지는 의류함에 넣지요.

그래도 이렇게 챙겨 주시니 저야 늘 감사하지요.“

 

남에게 받는 것에 익숙해지다 보니 자기가 받는 모든 것이 자기의 능력에 대한 정당한 대가를 누리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를 타인의 보살핌이 없으면 결코 홀로 설수 없는 사람으로 체념하는 모습이다. 절뚝거리는 멀어져 가는 그의 뒷모습이 우리 사회의 여전한 천민자본주의의 밑바탕을 보든 듯 처량스럽기만 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한겨레와 다음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재벌, #정경유착, #살인공권력, #천민자본주의, #노예근성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영화와 음악 오디오 사진 야구를 사랑하는 시민, 가장 중시하는 덕목은 다양성의 존중, 표현의 자유 억압은 절대 못참아,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