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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상용 선생님의 복직을 기원하는 노란 리본.
 정상용 선생님의 복직을 기원하는 노란 리본.
ⓒ 부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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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13일(금) 서울 구산초 운동장, "축하해요, 졸업을! 사랑해요! 정상용샘!", 구산초등학교 직원 학부모 명의의 현수막이 걸렸다. 학부모, 학생, 지역 시민단체 회원들은 운동장 구석구석과 복도에 '정상용 선생님과 함께 졸업하고 싶어요'라는 노란 리본을 달았다. 노란 풍선을 날리고 싶었지만 비가 오는 바람에 대신한 리본이다.

일제고사에 대한 학부모 선택권을 주었다는 이유로 지난 12월 부당하게 파면된 구산초 정상용 선생님 반 아이들이 특별한 졸업식을 치렀다. 

'선생님을 돌려 달라'며 일주일 만에 탄원서 2000장을 모았던 학부모들은 졸업식을 앞두고 "정상용 선생님께 졸업장을 받고 싶다"며 교장을 찾아갔다. 그러나 학교 측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정상용 선생님은 교사로서, 담임으로서 졸업식장에 설 수 없으며, 특별석을 마련할 테니 손님으로 앉아 있으라는 것.

한 학부모는 "앨범에 6-8반 담임을 2명으로 인쇄한 행정도, 구산초 교장·교감도 맘에 안 든다"며 "졸업식만은 결코 다른 선생님이 대신할 수도 없고, 해서도 안 된다"고 말했다. 이어 "아이들이 다른 선생님에게 졸업장을 받는 것을 원치 않는다"고 말했다.

정상용 선생님도 "졸업식에 꼭 와달라는 아이들의 간절한 눈빛이 떠올랐다"며 ”아이들이 나를 담임으로 생각하고 있는데 졸업식에서도 담임으로 있어 주는 것이 외롭고 힘들었을 때 힘을 주었던 아이들에게 내가 줄 수 있는 가장 큰 졸업 선물"이라며 교문 앞 출근투쟁을 하던 다른 날과 달리 양복을 입고 아이들 졸업식 준비를 했다. 

 파면된 정상용 선생님.
 파면된 정상용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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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과 학부모들은 6-8반 교실이 아닌 4-7반 교실에 모여 앉았다. 학교 측의 반대에 맞서 정상용 선생님과 함께 하는 졸업식을 위해서다.

칠판에는 '6-8반 졸업을 축하드립니다, 소중한 나 함께 살아가는 세상'이라는 글귀와 함께 정상용 선생님이 아이들과 함께 찍은 사진이 들어 간 대형 걸개그림이 걸렸다. 졸업식 분위기를 위해 풍선도 내걸리고, 뒷벽에는 '사랑해요 정상용샘'란 문구가 크게 쓰여 있었다.

교감선생이 들어와 아이들에게 "6학년 8반 교실에서 졸업식을 해야지"라고 말했다. 굳이 그래야 되나 싶은 행동이다. 아니나 다를까 아이들과 학부모들이 "우우", "안돼요"라고 소리를 질렀다.

오전 11시, 같은 학교 이상우 선생님이 사회를 보는 6-8반 아이들만의 특별한 졸업식이 시작됐다. 정상용 선생님과 함께 한 지난 1년의 시간을 돌아보는 영상, 아이들은 까르르 웃기도 하고, 수군수군하기도 했다. 한 달에 한 번씩 정상용 선생님과 체험학습을 했던 자신들의 모습, 할 말도 많을 것이다. 선생님도 지그시 영상을 보고 있다. 그 영상을 보며 선생님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아이들 사진이 올라오고 정상용 선생님이 아이들 한 명, 한명에게 졸업장을 건넸다. 졸업장에는 이런 내용이 담겼다.

"너희들처럼 순수하고 예쁜 마음을 가진 아이들을 만나서 1년을 같이 보낸 것이 내겐 너무 즐겁고 행복한 시간이었다. (중략) 새로 시작되는 우리 앞의 삶을 설레는 가슴으로 맞이하자. 무엇보다 자신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구나. 많이 가지고 높은 자리에 오르기 위해 애쓰라는 말이 아니다. 정말로 소중한 자기 자신을 갈고 닦아 세상에 보탬이 되는 사람이 되길 바란다. 내가 소중한 만큼 내 옆의 친구도 소중하고, 그런 소중한 사람들이 만들어 가는 세상은 얼마나 아름답겠니? 다시 한번 졸업을 축하한다. 6학년 8반 정상용 선생님이."

정상용 선생님은 "멀리서 다니느라 힘들었지"라고 말을 건네기도 하고, 소심했던 한 아이에게는 "너희들이 00만 사랑 한다고 질투하기도 했지"라며 그 아이에게 특별한(?) 애정표현을 아끼지 않았다. 전학 간 아이들 사진이 올라올 때는 "아마 00학교에서 졸업식을 하고 있을 거야, 11월에 전학 갔지만 함께 떠올려 보고 싶어 넣었다"고 말했다.

 특별한 졸업식에 참석한 학무모들.
 특별한 졸업식에 참석한 학무모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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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선생님과 함께 졸업식을 하고 싶다고 했지, 여러 사람이 마음을 모으니까 그 소원대로 되었어. 이제 한 가지만 더 이루면 되는데 잘 될 거야. 선생님이 다시 학교로 돌아오면 약속한 대로 제일 먼저 너희들을 부를게. 너희들이 선생님과 함께 할 때처럼 착하고 예쁜 모습을 간직한다면 중학교에 가서도 칭찬받고, 사랑받는 아이들이 될 거라고 생각해"라고 졸업 축하 말을 건넸다.

학부모 대표로 인사를 한 유 아무개씨는 "학교에 오지 않아도 된다고 해서 자세히 들여다  보지 못했던 아이들의 활동을 영상으로 보니 선생님께 더욱 감사한 마음이 든다"고 말했다.

6-8반 특별한 졸업식을 더욱 풍성하게 해 준 이들이 있다. 구산초 선생님들과 5학년 아이들. 10여명의 선생님들이 나와 아이들을 위해 졸업축가를 불러 주고 재학생들이 졸업가를 불러주었다. 정상용 선생님의 부당한 파면에 가슴아파하며 무언가 도움을 주고 싶어 마련한 자리다.

“꿈꾸지 않으면 사는 게 아니라고 별 헤는 맘으로 없는 길 가려네. 사랑하지 않으면 사는 게 아니라고 설레는 마음으로 낯선 길 가려 하네 가르친다는 건 (배운다는 건) 꿈을 꾸는 것, 가르친다는 건 (배운다는 건) 희망을 노래하는 것."

선생님들이 부르는 노랫말 한마디 한마디가 예사로이 여겨지지 않는다. 선생님께 꽃 한 송이씩을 건넸던 아이들은 졸업식이 끝난 후 누구랄 것도 없이 걸개그림으로 나와 또박또박 글을 썼다. 선생님은 속으로 울음을 삼키고 있을 지도 모르는데 마냥 속없이 웃고 있을까 싶던 아이들이 '복직'이란 말을 새겨 넣는다.

"선생님 꼭 복직하셔서 우리랑 만나요", "선생님 감사하고요 꼭 복직하세요", "선생님 꼭 다시 선생님 하세요!", "선생님 빨랑 복직해서 제일 먼저 초대하셈!"

 정상용 선생님과 제자들.
 정상용 선생님과 제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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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 반 졸업식에 왔다가는 사람들이 "여기야말로 졸업식다운 졸업식을 하네", "이 반은 남다른 끈끈함이 있잖아"하고 간다.

정상용 선생님이 언제 학교로 돌아올 수 있을지 아직 알 수 없다. 하지만 학교에 남아있는 선생님들도, 졸업하는 학생도, 지켜보는 학부모도 모두가 한마음으로 그 시간이 빨리 오기를 기다리고 있다는 걸 다시금 확인하는 졸업식이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은평시민신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일제고사#구산초#정상용 선생님#교육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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