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근로자학자금' 대부 확정자로 선정됐습니다.
 '근로자학자금' 대부 확정자로 선정됐습니다.
ⓒ 조호진

관련사진보기

나이 쉰에 06학번입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08학번인 아들, 딸보다는 선배라는 사실입니다. 06학번 선배로서 두 새내기 아들, 딸에게 대학생활에 대한 오리엔테이션을 실시한 바 있습니다. 참, 요즘 새내기들 버릇없더군요. 그냥 뭉개고 지네들끼리 알아서 잘 하더군요.

늦깎이로 입학했으니 차질 없이 졸업해야겠다고 각오했지만 불가피한 사정으로 1년 휴학하고 2008년 가을 학기에 복학했습니다. 2009년 3학년 1학기 등록 마감일이 지난 20일이었는데 등록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믿는 구석은 있었습니다. 2학년 2학기 복학 때도 산업인력공단(이하 공단)으로부터 '근로자 학자금'을 대부 받아 등록금을 낸 바 있기 때문에 이번에도 학자금 대부가 가능할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ooo님은 학자금 대부 확정자로 선정되셨습니다. 공단 홈피 확인'

오늘(23일) 학자금 대부가 확정됐다는 문자가 도착했고, 공단 홈페이지를 통해서도 확인했습니다. 참 다행입니다. 근로자라는 신분 덕택에 1%의 정책자금을 쓸 수 있는 혜택을 두 번째 누리게 됐습니다.

5학기 가운데 한 학기는 선배와 아내의 도움을 받아 등록금을 냈고 나머지 4학기는 대출로 해결했습니다. 두 차례 빌려 쓴 정부 학자금은 7%대의 높은 이율입니다. 1%대의 근로자 학자금 대출이 있다는 사실을 진즉 알았다면 가난한 학생을 상대로 돈놀이를 하는 정부의 고이율 학자금을 쓰지 않았을 텐데…. 복학을 앞두고 학자금 문제로 고민하면서 퇴근하던 지난 8월 무렵 무가지 석간신문 귀퉁이에 난 정보를 통해 '근로자 학자금'을 알게 됐습니다.

그리하여 나이 50의 06학번 만학도(우리 대학에서는 기분 언짢게 '고령자'라는 명칭을 사용함)는 1300만 원가량의 학자금 빚쟁이가 되었습니다. 빚쟁이가 되면서까지 대학을 다닐 필요가 있느냐고 핀잔할 분들이 충분히 있을 것입니다. 당연합니다. 노동해방을 통해 학벌의 벽을 혁파해야 한다고 믿었던 저 또한 학벌 취득 행위를 개인 신분 상승을 노리는 이기적 행위로 규정한 바 있습니다.

쉰, 06학번의 꿈과 희망은?

 2007학년도 가톨릭대 신입생 오리엔테이션.
 2007학년도 가톨릭대 신입생 오리엔테이션.
ⓒ 가톨릭대학교

관련사진보기


나이 마흔 일곱에 06학번이 될 때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지 않겠습니까. 뒤늦게 아주 뒤늦지는 않았지만 여하튼 뒤늦게나마 꿈과 희망을 이루기 위해서는 제도의 요구에 당당히 맞설 수 있도록 뒷받침을 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이주노동자를 돕는 사단법인에서 일하고 있는 제 꿈은 인생 후반전에 자격을 제대로 갖추고 사회복지 분야에서 일하는 것입니다. 외국인노동자, 다문화 어린이·청소년 등의 분야가 제 시야에 들어오는데 그 가운데 심신이 아픈 어린이들과 함께 지내면 행복할 것이란 생각이 듭니다. 이를 위해 사회복지사 자격취득이 대학생활 제1의 과제입니다.

하지만 제 전공은 '심리학', 입학 당시만 해도 사회복지 전공(부전공 포함)이 가능할 것 같았는데 제가 지원한 인간복지학부가 다른 학부에 통폐합되면서 야간 사회복지학부는 없어지고 말았습니다. 야간대학생(06학번의 가방끈 늘이기 연재를 통해 야간대학생의 설움은 자주 언급될 것으로 예상됨)의 설움이자 비운입니다.

그래서 3학년 1학기 복수전공 신청기간에 필사적으로 도전할 생각입니다. (물론 주간수업을 듣기 위해서는 일터의 양해와 조정이 필요함) 그런데 신청 학생이 많을 경우 성적순으로 끊는다는 것입니다. 아, 그 놈의 성적은 끊임없이 저를 괴롭힙니다. 성적 때문에 제 꿈이 꺾이는 일이 없도록 열심히 공부해야 하겠다고 각오를 다지지만 4학기 동안 평균 점수는 3.0이하입니다.

쉰 줄의 06학번이 1300만 원대 학비 빚쟁이가 되면서까지 가방끈을 늘이려고 하는 데는 천사 같은 목적만 있겠습니까. 이놈의 나라에서 달리는 학벌 때문에 겪은 고통(언어를 순화시켜서 이 정도이지 더 심하게 나가면 '원한')을 누구 말마따나 필설로 다할 수 있겠습니까. 그 이야기도 차츰 해나갈 작정입니다. 여하튼 저에겐 꿈과 희망이 있습니다.

인생역전을 이룬 선배 만학도님들... 평균 3.0 이상을 위하여

- 40대 아줌마 만학도 '올 A+' 꿈 이뤄
- 칠순 '디지털 할아버지'의 자랑스러운 학사모
- 경일대 만학도 불혹에 입학 이순에 졸업

 <한겨레신문>의 만학도 관련 보도
 <한겨레신문>의 만학도 관련 보도
ⓒ 조호진

관련사진보기

졸업시즌이면 어김없이 등장하는 단골 언론보도입니다. 첫 번째 헤드라인에서처럼 올 A+ 학점을 받았다, 또는 장애를 안고서도 평균 4.0을 넘었다는 등의 대목에선 기죽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졸업시즌은 기죽는 시즌입니다.

기막힌 인생유전과 간난신고 끝에 쓴 만학도 선배님들의 학사모는 그냥 학사모가 아니라 눈물의 금자탑 혹은 인생 역전의 월계관이라 불러도 손색없을 것입니다. 선배님들의 졸업을 축하하는 동시에 저 높은 졸업 고지를 향한 제 의지도 불탈 것입니다.

다만, 구로공단 '공돌이' 생활할 때였는데 '어떤 공순이가 안 먹고, 안 써서 이만큼의 저축을 했다, 그러니 너희들도 체제에 불만 갖지 말고 열심히 하면 이렇게 성공할 수 있다' 뭐 이런 투의 보도에 울화가 치밀었던 기억이 묘하게 연결되는 것입니다. 물론, 노숙인 생활 중에 인문학을 공부하면서 재기를 다지는 분들은 존중해야 하지만 그렇게 하지 못한 나머지를 궁지로 몰아선 안 될 것입니다.

여하튼 06학번 새내기 당시엔 '대학졸업'이란 넘지 못할 산맥처럼 아득해 보였는데 어느덧 반환점을 돌아 후반 경주에 이르고 있습니다. 대학 입학하면서 아내에게 두 가지 공약을 내걸었는데 하나는 '열심히 공부하겠음'(이건 뭐 국회의원 공약처럼 모호하게 해놔서 대충 뭉개도 되는데) 둘은 '장학금을 받겠음' 이었는데 현재까지 둘 다 지키지 못했습니다.

두 번째 공약을 이행하기 위해 애쓰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2학년 2학기를 마친 뒤, 성적장학금은 감히 넘볼 수 없었기에 그래도 가능해 보이는 '희망장학금'에 도전했는데 탈락했습니다. 안타까운 한편으론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하지만 곧 죽어도 큰소리는 쳤습니다.

"내가 장학금을 타면 가정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에게 피해를 주는 결과를 불러오는 것 아니냐! 장학금을 못 받는 게 아니라 안 받는 것이다. 학교 측에서 오죽 알아서 장학생을 선정하지 않았겠느냐!"

뭐 이런 식으로 큰소리치다가 아내에게 혼났습니다. 아내 왈 "알았으니까 무사히 졸업이나 하삼!" 이렇게 지혜로운 처방을 내리더군요. 하지만 늦지 않았습니다. 경기 종료 몇 분을 남겨놓고 역전되는 축구, 농구 경기가 한둘입니까! 남은 4학기 동안 학점 역전으로 뭔가 보여주고 싶은 맘 굴뚝같습니다. 이를 위해 이런 다짐의 구호를 머릿속에 새겨야 하겠습니다.

'아내와 아이들이 보고 있다. 졸지 말고 열심히 공부해서 평균 3.0 고지를 넘어서자!'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만학도#학자금#등록금#장학금#학점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