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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괜찮다는 말을 가르쳐 주신 어머니
 괜찮다는 말을 가르쳐 주신 어머니
ⓒ 권영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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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오늘 잊지 않으셨죠?"
"뭘요?"
"오늘 어머님 기일이잖아요."

어머니 기일을 챙겨 연락하는 동서의 전화를 받고 당황스러워 몸 둘 바를 몰랐습니다. 실은 까마득히 잊고 있었습니다. 얼마 전까지 어머니 기일이 이맘땐데 하며 씁쓸해 했으면서도 무심코 달력을 넘겼습니다. 그토록 시어머니를 좋아한다고, 보고 싶다고 해놓고, 정작 기일은 기억에서 지워져 있었습니다.

제 어머니가 돌아가신 지 벌써 올해로 10년째입니다. 어머니와 전 8년을 같이 살았고 이별한 지 10년이 됐습니다. 전 어머니께 '괜찮다'는 말을 처음 배웠습니다. 늘 지적하고 따지기 좋아하던 제게 어머니는 제가 잘못을 해도 늘 웃으시며 '괜찮다, 처음엔 다 실수한다'고 하셨습니다. 한 번도, 니가 이런 걸 틀렸고 이건 잘못했다고 말씀하시지 않았습니다.

"아이고, 그라요. 살기 어려워서 우짜요. 돈 있을 때 주시오. 어쩌것소. 힘내서 사소."

언젠가 어머니께 100만원을 꾸고 갚지 못하신 분이 전화를 했는데 어머니는 오히려 힘내서 살라는 격려를 하고 끊으셨습니다. 그 100만원은 제가 결혼하기도 훨씬 전, 어머니께서 식당에서 종일 허리도 못 펴고 종업원으로 일해서 번 돈입니다.

"아니, 엄니. 돈을 어떻게든 달라고 해야지. 그러고 전화를 끊으면 어떡해. 그분 전화번호는 아세요?"
"모르는디…."

"오매 답답해 죽것네. 엄니는 돈을 빌려주고 그 사람 전화번호도 모르면 어떡해? 그 돈 어떻게 받을라고?"
"아야. 이 사람이 돈이 읎다 안 하냐. 오죽 돈이 읎었으면 내 돈을 못갚건냐…."

저는 정말 둔기로 머리를 맞은 듯했습니다. 어머니는 돈을 못 갚는 사람에게 '오죽 돈이 없으면 내 돈을 못 갚건냐'는 말로 그 사람을 이해하셨습니다. 제가 살아온 상식으로는 절대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전 남의 돈을 빌리면 당연히 꼭 갚아야 하는 것이고, 또 빌려준 돈 역시 꼭 받아야 한다고, 그것이 경우 있는 사람의 행동이라고 생각했습니다.

250만원 보증금에 월 15만원 월세를 살았던 시댁

제 시댁은 제가 결혼할 당시 왕십리 꼭대기에서 250만원에 월 15만원짜리 월세를 살고 있었습니다. 상대적으로 잘 살았던 우리 집에서는 제 결혼을 무척 반대했습니다. 친정엄마가 반대를 하다 하다 안 돼서 시어머니를 만나셨는데 그때 엄마는 시어머니께 반하셨습니다. 젊은날 남편을 잃고 6남매를 홀로 키운 홀어머니의 성격이 어떻겠느냐며 걱정하셨는데 제 어머니의 넉넉한 마음을 한눈에 보셨던 겁니다.

"거그가 공심이네 집이요?"
"나가 공심인디…, 누구시당가요?"

"아니, 그새 내 목소리도 잊어부런능가?"
"글씨… 누구시당가요…."

"나여, 나, 그 집 며느리~"
"엣끼 뭐시여."

제가 코를 막고 공심댁을 찾으면 어머니는 번번이 제게 속으셨습니다. 아니 어쩌면 장난치는 며느리에게 속아주셨는지도 모릅니다. 또 혹시나 공심댁이란 고향 이름을 아는 사람인가 싶어 반가운 마음도 드셨겠지요.

그렇게 어머니를 좋아해 놓고, 10년이 되니 어머니를 잊습니다. 잊어야 정상이지요. 어머니를 붙들고 있으면 어머님이 어디 마음 편히 저승에서 쉬시겠습니까. 그래도 어머니 사진을 보면 어머니가 좋아하셨던 홍시나 옥수수를 보면 주책 맞게 눈물이 납니다.

어머니를 벽제에 모셨습니다. 꼭 무슨 때여서 가지는 않습니다. 남편이 때 돼서 안 가면 찜찜해 하는 제게 "어머니가 벽제에 있냐? 우리 마음에 있지"라고 합니다. 그래서 요즘은 아이들을 데리고 그냥 찾아뵙고 싶을 때 갑니다.

 엄마는 우리 안키우고 뭐했냐고 되묻는 두 딸
 엄마는 우리 안키우고 뭐했냐고 되묻는 두 딸
ⓒ 권영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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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에서 누가 가장 훌륭해?"
"할머니."

"누가 너희를 이렇게 훌륭하게 키워줬어?"
"할머니."

"너희는 누구 성격을 닮어야 돼?"
"할머니. 근데 엄마, 엄마는 뭐했어? 우리 안 키우고?"

제 어머니가 저희 딸 둘을 키워주셨습니다. 같이 살았지만 저는 나이도 어렸고 아이를 어떻게 돌봐야 하는지 몰랐습니다. 감기로 열이 심하게 올라도 저는 잠자고, 어머니는 밤새 제 딸의 머리에 수건을 올려놓으셨습니다.   

살다보니 남편이 미울 때도 많고 속썩일 때도 많습니다. 그때마다 어머니를 생각합니다. 말대답도 잘하는 며느리, 따지기 좋아하는 며느리, 음식도 못하는 며느리를 그냥 모양 그대로 봐주셨듯이 저도 남편을 그렇게 봅니다.

'아야… 괜찮다.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이 어디 있다냐… 괜찮다….'

어머니께서 제게 해주신 이 '괜찮다'는 말을 저도 여러분께 나누고 싶습니다. 괜찮습니다. 괜찮습니다. 이 세상에 괜찮지 않은 일은 하나도 없습니다. 다 괜찮습니다. 누구나 실수할 수 있습니다.

저는 지금 행복합니다. 당신도 행복하십시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다음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시어머니#빚#괜찮다#결혼#이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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