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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 이야기인데 꼭 내 얘기 같을 때 사람들은 자기도 몰래 눈길을 주게 마련이다. 실제 있었던 이야기가 아닌데 언제든 같은 일이 현실에서도 일어날 수 있다 싶을 때 우리 마음은 이내 동하기 쉽다.

 

그런 일은 사실 늘 벌어지는 아주 흔한 일이다.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양이며 이야기들이 대개 비슷하다. 직장 다니며 겪는 일, 학교 다니는 아이들이 겪는 일, 아이 키우는 부모가 겪는 일, 이 모든 것이 대개 비슷하고 맞닿아 있기 마련이다. 드라마에 푹 빠지게 되는 이유도 따지고 보면 그렇게 현실과 구분하기 어려운 동질감 때문이다. 태어나고 살고 죽기까지 벌어지는 크고 작은 일상은 한국에서나 아시아 어디에서나 크게 다르지 않다.

 

돈을 벌기 위해서 또는 어쩔 수 없는 이런저런 이유 때문에 물설고 낯선 나라에 간 한인들이 있었다. 독일에서 광부로 간호사로 살아가다 이제는 아예 그곳에 터 잡은 이들이 있다. 이름도 낯선 하와이에 가서 생각지 못한 농장 일꾼들이 되어 피와 땀을 바쳐 삶을 일군 이들도 있다. 남북 이산의 아픔 언저리에는 어느 쪽에도 가지 못하고 아예 다른 나라로 간 사람들도 있었다. 타향살이가 주는 것이 무엇인지를 한국인들은 안다, 잘 안다.

 

타향살이가 주는 것이 무엇인지를 아는 것만큼 아니 그 이상으로 중요한 일이 있다. 그것은 바로 타향살이가 주는 '낯선 시선'과 '낯선 마음'이 엮어내는 시린 상처들을 세심히 살피고 보듬는 것이다. 지금 우리에겐 그런 일이 진정 필요하다. 낯설고 낯익은 것을 굳이 구분할 이유가 없을정도로 '낯선 이웃'은 이미 우리 안에 깊숙이 들어와 있으니 말이다. 

 

겪어 본 자만이 제대로 안다, 물설고 낯선 타향살이 이야기

 

하종오 시인은 <국경 없는 공장>(삶이 보이는 창, 2007)에서, 아무 문제없이 돌아가는 삶을 잠시 돌아가 그 삶을 떠받치는(!?) '다른' 삶을 돌아보려 했다. 같은 해에 나온 <아시아계 한국인들>은 늘 같이 입에 오를 정도로 그 무대와 등장인물이 서로 맞닿아 있다. 그뿐이 아니다. 그 무대와 등장인물들이 바로 우리 삶터이며 우리 이웃이다. 그래서 더 살갑고 때론 살 떨릴 정도로 아리기도 하다.

 

내 새끼손가락 아픈 게 남 불치병보다 당장은 더 큰 관심거리이다. 괜한 말 하는 게 아니라 실제로 우리는 남 아픈 사연에 제때 반응하기 쉽지 않다. 방송을 비롯한 각종 수단을 통해 세계 각국 이야기를 듣는 시대에 살아도 우리는 배 아파 동동 구르는 남 이야기를 선뜻 알아채기 어렵다. 그런데 내가 아프고 힘든 가운데 겪은 일들은 어쩜 그리 눈과 귀에 쏙쏙 들어오는지. 하종오 시인의 <국경 없는 공장>은 이런 마음으로 보게 된다. 옛 이야기가 바로 지금 벌어지는 이야기가 되며 남 이야기처럼 보이던 것이 어느새 우리 이야기가 된다.

 

가구공장에 근무하는 미얀마리즈는

전자기타를 매고 서고

피혁공장에 근무하는 네팔리는

베이스기타를 매고 서고

염색공장에 근무하는 인도네시안은

스틱을 잡고 드럼 앞에 앉고

벽돌공장에 근무하는 스리랑칸은

악보를 보며 피아노 앞에 앉고,

무대에 조명등이 켜진다

 

(…)

 

트로트는 규칙적인 기계소리를 잊게 해서 좋고

락은 한자리 서서 일하느라 굳은 다리를 풀어주어서 좋고

재즈는 작업장에서 생채기 난 몸을 들여다보게 해서 좋고

힙합은 서로에게 느낌으로 흘러들게 해서 좋고,

아시안들이 좋아하니 연주를 멈출 수 없다

 

- <국경 없는 공장>에서 '4인조 밴드' 일부

 

다른 얼굴이어도 같은 아픔 있어서 마음이 통하는 것은 참 좋은 일이다 싶으면서도 못내 씁쓸함을 머금는다. 하긴, 그래서 더 힘찬 울음과 울림이 있는지도 모른다. 태어나고 자란 곳이 다르고 말과 습관이 다르다 하여도, 타향살이하며 겪는 일들을 함께 나누는 이들은 잠시나마 이내 이웃이 된다. 말이 필요 없는 '같은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내 아버지와 어머니가 일하시는 곳일지도 모를 일이다. 외국인 노동자들이 일하는 곳이. 오늘 길을 가다 눈길 서로 주고받고 헤어진 어느 외국인 노동자가 바로 내가 늘 지나치는 골목 어느 허름한 가내공장에서 일하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같은 공간을 다녀도 결코 '같은 마음'을 지니지 못했을 그 외국인 노동자가 바로 내 이웃일지 모를 일이다.

 

모르긴 몰라도 1년에 한 번은 반드시 보게 될 외국인 노동자들을 보면서 우리는 잠시라도 그들과 '같은 마음'을 지녀본 적이 있을까. 그냥 잠시 있다 가버릴 사람이기보다 점점 더 늘 보는 가까운 이웃사촌이 되어가는 외국인 노동자들을 보면서 우리는 그들과 한번쯤 마음을 주고받은 일 있을까. 이유도 없이 미안해할 일이 아니겠지만 그렇다고 별다른 생각 없이 잊어버릴 일도 아니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다 우리 이야기이니까.

 

가구공장에서 일하는 인도네시안 둘

논을 가로질러 도시로 향했다

산에서 나무들이 잎을 떨구는 게

나무들에 새들이 날아와 앉았다 가는 게

너무 잘 보이는 늦가을 일요일 오후

깁스한 손가락에 찬바람 들까 봐 겨드랑이에 넣었다

오래 전에 코리아로 수출된다는 원목을 베던

아버지들이 밀림에서 병들어 죽고 나서

원목 켜서 수제 장롱을 만드는 코리아로

얼마 전에 취업해 온 인도네시안 둘

기계톱 다루다가 같이 손가락 잘려 봉합했다

봉급도 석 달치 못 받았다

(중략)

고국에선 전혀 볼 수 없었던 늦가을 풍경에

외국인노동자병원에 진료 받으러 가야 한다는 걸 잊고는

두 인도네시안은 한참 동안 서 있었다 저렇게 아름다운

잎사귀들을 기꺼이 놓아버리는 나무들이 자라는 땅에서

자신들이 홀대받는다는 게 믿어지지 않는다는 듯이

 

- '외국인노동자병원 가는 길' 일부

 

평범하기 그지없는 자잘한 일들에 크게 당황해하는 '낯선 이들'을 보면서 우리는 무심히 고갯짓하며 그냥 지나치기 쉽다. 그가 겪는 문제가 곧 내 아버지와 어머니 삶과 맞닿은 일일 수도 있는데 말이다. 그만큼 외국인 노동자들이 우리와 참 가까운 곳에서 살아가고 있는데 말이다. 다만 그런 일들이 우리 눈에 잘 띄지 않을 뿐이다. 아니, 우리가 그것을 눈여겨 살펴보지 않아서일 가능성이 더 크다.

 

'컨테이너 신혼방'이라는 장시(長詩)를 담은 4부를 포함하여 <국경 없는 공장>은 네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시인은 <아시아계 한국인들>에서처럼 우리 안 깊숙이 들어와 살아가는 '낯선 이웃'을 참 세심히 바라보았다. 잠시 스치는 화면처럼 그렇게 사라져버렸을지 모를 일들을 시인은 붙잡아 올렸다. 그렇게 시인은 '낯선 이야기'를 참 반갑고도 눈물 그득한 '우리 이야기'로 살려내었다.

 

눈 비비고 이른 새벽에 일어나 비좁은 공장으로 향하고 늦은 밤에는 다시 비좁은 방으로 다시 돌아가는 쳇바퀴 같은 삶이 결코 '낯선 이들'의 '낯선 이야기'가 아님을 하종오 시인은 말해준다. '가깝고도 먼 이웃'이 우리 안 깊숙이 있지 않은지 잘 살펴볼 일이다. 우리 스스로 우리 자신을 '낯선 이웃'으로 만들고 있지는 않은지도 살펴볼 일이다.

 

<국경 없는 공장>에서 우리는 '국경 없는 공장'들이 만들어내는 슬퍼서 더 아름답고 아파서 더 기억에 오래 남는 낯익은 이야기들을 참 많이 볼 수 있다. 내일 아침에는 꼭 인사 한 번 나눠봐야겠다, 하고 생각하게 만드는 참 낯익은 '낯선 풍경'들이 시집에는 차고 넘친다. 끝을 모르는 이야기는 그렇게 어제에서 오늘로, 오늘에서 내일로 쉼 없이 이어지고 있다.

덧붙이는 글 | <국경 없는 공장> 하종오 지음. 삶이 보이는 창, 2007.

* 이 서평은 제 파란블로그(blog.paran.com/mindlemin)에도 싣습니다. 오마이뉴스는 본인이 쓴 글에 한하여 중복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국경 없는 공장

하종오 지음, 삶창(삶이보이는창)(2007)


#국경 없는 공장#하종오#외국인 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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