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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4월 마지막 날이다. 아침에 지난해 4월 마지막 날의 '가족메일'을 읽어보고 내 홈페이지 '가족공동체' 방에 올리는 일을 했다. 지난해 4월 마지막 날의 가족메일에는 4월 19일부터 30일까지의 '생활일기'가 소개되어 있는데, '기름과의 전쟁' 관련 기록과 내 신앙문집(3권) 발간· 판매작업 관련 기록들이 주를 이루고 있었다.

아, 지난해 이맘때에는 이런 일들이 있었구나. 이런 실수가 있었구나. 이런 기쁘고 고마운 일들이 있었구나. 갖가지 감회 속에서, 한 가닥 회한 같은 것을 느끼기도 했다.

오늘 오전에는 군복을 입고 홍성엘 갔다 왔다. 대한민국고엽제전우회 충청남도지부 창립 11주년 기념식에 참석하는 일로 다시 군복을 입어야 했다. 나는 고엽제전우회 행사나 모임에 참석할 때는 묘한 껄끄러움 같은 것을 느낀다. 회원 다수의 보수적 성향 때문이다. 중앙본부 지도부의 보수적 성향이 전체 구성원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현상을 느낄 수 있다.

고엽제전우회는 반드시 보수단체여야만 하는가? 이유가 뭔가? 전체 구성원들이 왜 소수 지도부의 성향에 휩쓸려야 하는가? 구성원 개개인은 보수에 대한 개념을 확실히 파악하고 있으며, 스스로 정당성을 확립하고 있는가?

피곤한 의문과 곤혹스러움을 감내하곤 한다. 그럼에도 고엽제전우회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은 구성원들에게 갖는 야릇한 연민 때문이다. 그들은 내가 목숨을 걸고 헤치며 나아갔던 베트남의 정글, 피비린내와 화약 냄새가 낭자했던 전장에서 함께 살아 돌아온 사람들이다. 이제는 거지반 60대 황혼 시절로 접어들었고, 다수가 고엽제 후유증 판정을 받았거나 후유 의증(疑症) 환자로 분류된 신세가 골골한 사람들이다.

그리고 고엽제전우회는 한시적인 단체다. 법률이나 규약에 의해 한시성이 명시된 것은 아니더라도, 자연적으로 한시일 수밖에 없는 운명을 안고 있다. 후진에 의해 보충이 되지 않으니, 언젠가는 완전히 자연 소멸될 수밖에 없는 단체다. 그런 것들이 나로 하여금 이상한 애착과 연민을 갖게 한다.  

오늘 오후에는 은행엘 갔다. 월말이고 해서 유선방송 시청료와 공과금을 내기 위해서였다. 통장에서 돈을 찾아 그것들을 내면서 한가지 '수업료'도 물었다. 순간 수업의 수업료치고는 꽤나 비싼 7만원을 물면서 더러운 기분을 빨리 청산하고자 했다. 1차 납부 기한이 5월 3일까지로 되어 있지만, 코딱지가 살 되는 것도 아니고, 4월에 생긴 일이니 4월 안에 해결하자는 생각이었다.

<2>

지난 23일에 생긴 일이다. 문규현 전종훈 신부님과 수경 스님의 오체투지 순례에 오후 한 나절만이라도 참여하기 위해 오전 10시쯤 서울 합정동의 아이들 자취방을 나섰다. 경기도 평택시 유천1동으로 가기 위해 네비게이션 아가씨에게 길을 물으니 강변북로와 경부고속도로 이용을 제시했다. 길 사정을 모르는 나로서는 그냥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강변북로와 경부고속도로를 이용하면서 얼마나 후회했는지 모른다. 네비게이션 아가씨의 제의를 무시하고 내가 잘 아는 길, 즉 서부간선도로와 서해안고속도로를 이용할 걸 그랬다는 후회였다. 서부간선도로도 대부분이 상습 정체 구간이긴 하지만 강변북로보다는 덜 답답할 터였다. 또 서해안고속도로로 내려가서 평택-안성 간 고속도로를 이용하는 것이 한결 빠르리라는 생각이었다.                 

그건 그렇고, 내가 이미 많이 이용했던 서부간선도로 쪽으로 빠지지 않고 네비게이션 아가씨의 안내대로 강변북로 쪽으로 방향을 잡은 바람에 비싼 수업료를 물어야 하는 일이 생기고 말았다. 합정동에서 양평대교를 건너자마자 오른쪽 길로 빠졌다가 왼쪽으로 방향을 잡았는데, 그 길은 좁은 외길이고 커브 길이었다. 강변북로로 진입하기 위한 길인데, 심한 정체 현상이 빚어지고 있었다.

거북이 걸음으로 그 길을 갈 때 내 휴대폰에서 노랫소리가 났다. 빠르게 달리는 상황이라면, 옆자리에 마누라도 있겠다, 전화 받는 일은 당연히 마누라 몫이었다. 그런데 이 날은 좁은 외길에서 거북이 걸음을 하는 상황이라 내가 전화를 받았다.

태안 성당 사무장의 전화였다. 총회장 결재가 필요한 서류가 있다는 얘기였다. 지금 서울에 와 있다는 것과 오체투지 순례에 참여하기 위해 평택으로 가고 있는 중임을 말해 주었다. 오체투지 투지 순례를 하고 돌아가면 저녁에나 도착할 수 있으니, 재정부장과 주임신부님 사인만으로 우선 처리를 하고 총회장 사인은 내일 하자는 얘기까지 했다.

통화를 끝내고 휴대폰을 내려놓는 순간이었다. 앞을 보니 경찰관이 길가에 서서 내게 손짓을 하는 것이었다. 나는 뭔가를 직감하면서 그의 지시대로 차를 길가로 빼었다. 또 그의 지시대로 길가에서 완만한 언덕길을 10여 미터쯤 내려가니 다른 경찰관이 내게로 오는 것이었다.

운전자 휴대폰 사용 차량과 안전띠 미착용 차량을 잡아내는 경찰관이 따로 있고, 스티커를 발부하는 경찰관이 따로 있는 셈이었다. 그러니까 그들은 정체현상이 빚어지는 좁은 외길 진입로에서 원활한 교통을 위해 거기 있는 것이 아니라, 휴대폰과 안전띠 위반 차량을 잡아내기 위해 가장 좋은 지점에서 그렇게 역할분담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나는 운전자 휴대폰 사용금지 위반으로 적발되었다는 것을 직감했지만, 처음 당하는 경우인 데다가, 휴대폰 사용금지 위반 범칙금이 얼마인지를 전혀 모르고 있었다. 3만원 정도를 예상하고, 그보다 금액이 낮은 안전띠 미착용 정도로 스티커를 발부해주기를 은근히 기대하며, 경찰관에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수고하십니다" 어쩌고 하며 아양을 떨었다. 운전면허증은 지체 없이 내주었다.

나는 정말 경찰관이 융통성을 발휘해주기를 기대했다. 고급 승용차도 아니고 낡은 승합차이니, 더구나 운전자가 나잇살 먹어 뵈는 사람이기도 하니, 그것을 감안하여 40대 중반쯤으로 보이는 경찰관이 온정을 베풀어줄 수도 있으리라고 미리 김칫국을 마셨다.

그런데 경찰관이 떼어준 스티커를 보니 '1차 납부기한 70,000원, 2차 납부기한 84,000원'이라는 금액이 시퍼렇게 찍혀 있었다. 나는 출발하려던 차를 멈추고 스티커 경찰관을 불렀다. "휴대폰 위반 범칙금이 7만원입니까?"라고 물으니 그는 명명백백하게 그렇다고 대답했다.

"칼만 안 들었지, 강도나 다름없구먼."

이런 과한 말이 나도 모르게 내 입에서 튀어나왔다. 아내가 깜짝 놀란 듯이 내 팔을 집적였다. 경찰관은 내 말에 신경 쓰지 않고, 또 한 대 적발된 승용차 쪽으로 발을 옮겼다.

"나는 저 친구들이 정체현상이 빚어지는 좁은 외길 진입로의 교통을 돕기 위해서 여기에 나와 있는 줄 알았어. 그러고 보니 여기는 고기를 쉽게 많이 잡을 수 있는 좁은 물목 같은 곳이야. 오늘 저 친구들 실적이 엄청 좋겠어. 욕이야 많이 먹을 테지만…."

"그래도 저 사람들 너무 욕하지 말아요. 욕을 하면 당신 영혼에 상채기만 생기니까."

"저 친구들이 법률에 근거해서 정당하게 공무집행을 하는 것이니 욕을 할 필요는 없겠지만, 그 공무집행이 경제도 어려운 이 시기에 우리 같은 서민의 목을 더욱 옥죄는 짓이라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야. 기분 정말 더럽군."

"이따가 오체투지로 푸세요. 열심히 오체투지를 하면 그 기분도 풀릴 거예요."

"오늘 중요한 공부를 하나 했어. 정체현상이 빚어지는 이런 외길 진입로 같은 데서는 절대로 휴대폰 사용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 정체현상 때문에 마음놓고 휴대폰을 받았다가는 코 베 가는 현상이 생길 수 있다는 것, 그것을 깨달았어."

"그러니까 수업료 문 셈 쳐요."

"하지만 순간 수업치고는 수업료가 너무 비싸네. 벼룩이 간을 빼먹는 것 같아, 저 친구들이. 아니, 공권력이."

나는 2차 납부기한에 8만4천원을 내면 더 억울할 것 같아 오늘 7만원 범칙금을 납부했다. 은행원들에게 상황 설명도 해주었다. 정체현상이 빚어지는 좁은 외길 진입로에서는 절대로 휴대폰을 사용하지 말라는 말을 했다. 은행원들은 휴대폰 사용금지 위반 범칙금이 7만원이라는 사실에 하나같이 혀를 내둘렀다.


#휴대폰 사용금지#범칙금#진입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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