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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세의 노구를 이끌고 스스로 목을 메달며 생을 마감한 강희남 목사. 그는 지난 1920년 전라북도 김제에서 태어나 한신대학교를 졸업한 후 목사가 됐다. 그는 1995년  조국통일범민족연합(범민련) 남측본부 초대의장을 지내고 1998년 남한민족민주운동연합(전민련) 고문,

1980년~1984년까지  한국 기독교농민회 이사장, 그리고 1955년  전북 김제 난산교회 등에서 목회를 시작했고, 지금까지 민중운동을 줄기차게 해 왔다. 그는 유서에서  "지금은 민중 주체의 시대다. 4.19와 6월 민중항쟁을 보라. 민중이 아니면 나라를 바로잡을 주체가 없다. 제2의 6월 민중항쟁으로 살인마 리명박을 내치자"고 적었다.

 

그야말로 보수주의자들이 치를 떨 만큼 제대로 된 '좌파', 소위 '진보'의 본 모습이다. 대한민국의 민주주의 주체를 '민중'으로 규정하는 강 목사. 그는 민중이 주체가 되지 못한다면 나라를 바로 잡을 길이 없다고 믿었다. 그의 죽음이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방법이었음이 또 한 번 충격이다.

 

이미 89년의 인생을 사셨다. 그런 분이 여생이 뭐가 급해서 스스로 죽음을 선택했을까. 물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노무현의 뒤를 따름으로써, 그리고 '자살'이라는 극단을 선택함으로써 자연스럽게 죽을 권리마저 '민중'을 깨우치기 위한 수단과 바꿔버렸다.

 

당신이 보기에 작금의 현실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을 정도로 충격을 좀 줘야할 일이 생긴 것이다. 그게 바로 '리명박'이었다. 생의 마지막 단 한 마디에 '리명박을 내치자'고 하면서 자신의 죽음의 원인과 명분을 밝혔다. 아이러니하게도 목사가 장로를 향해 '리명박을 내치자'고 외쳤다.

 

그만큼 지금 이 시대는 "나만 아니면 돼" 라는 불감증이 심각하다는 말이다. 즉, 경제와 돈, 그리고 개발과 성장이라는 '괴물'에 붙들려서 인간이 살아가면서 가장 중요하게 찾아야 할 가치관, 즉 '인권'이 몰살당하는 것이다. 남의 인권이야 어찌되든, 민초들의 삶과 생계야 어찌되든 하는 기득권과 그 권력을 차지하려는 자들에게 자기 개인의 '인권'을 던져서 하실 말씀을 하신 것이다. 그래서 강 목사는 그 '인권'을 되찾기 위해서 '민중들'이 나서야 한다고 했다.

 

누군가 '生命'이란 '살도록 명령받은 삶'이라고 했다. 그러나 그 생명을 버릴 정도의 귀중한 가치가 있다면 자신의 한 '생명'정도는 어길 수 있는, 그게 바로 '민중의 주체사상'이다.

 

우리나라에서 진보라면 무조건 '친북'을 조건으로 붙이려 한다. 그러나 틀렸다. 그건 진보가 아니다. 다만 '친북'일 뿐이다. 진짜 진보는 그야말로 '성장'보다는 '분배'를 목적으로 탄생하고, '시장과 경쟁' 보다는 '동질과 인권'을 앞세운다.

 

강 목사는 자신의 '목숨'을 던짐으로써 '인권'과 '민중'을 깨우려 했다. 그야말로 그는 성경을 실천에 옮긴 것이다. "친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느니라" (요한복음 15장 13절) 강 목사는 아마도 이 구절을 읽으며 이렇게 해석했나보다. "민중들의 인권을 위해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명이 없다" 고.

 

그는 자신의 목숨을 스스로 끊음으로써 자기 개인의 '인권'을 '민중들의 인권'과 바꿨다. 이게 바로 진정한 '진보주의'다. 90이 가까운 나이에 굳이 '자살'한 목사, 그는 민중의 인권을 외치며 사라졌지만, 이제 남은 과제는 그 '민중'들이 떠안아야 한다.

 

'리명박'과 그의 '사상'을 내 침으로써.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미디어다음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강희남#민중#좌파#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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