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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천시 송광면과 외서면 사이에 있는 천자암에는 수령이 800년쯤 된 두 개의 곱향나무가 나란히 서 있다. 일명 <쌍향수>로, 고려시대에 보조국사(普照國師)와 담당국사(湛堂國師)가 중국에서 돌아올 때 짚고 온 향나무 지팡이를 나란히 꽂은 것이 뿌리를 내리고 가지와 잎이 났다는 전설이 있다.

 

그런데 그 형태가 담쟁이넝쿨처럼 꼬여 12미터를 올라섰다. 사람들은 보물로 지정된 번호인 88호처럼 똑같은 모양새로 꼬여있다고 신기해한다. 또, 이 나무를 한번 만지면 죽은 후에 극락왕생할 수 있다고 믿어 사람들이 많이들 찾는다고 한다.

 

단풍이 물들어 가던 지난 27일, 쌍향수를 보기 위해 길을 나섰다. 천자암 들어가는 길은 순천시 송광면 이읍마을이다. 산 중턱에 천자암이 있고 그 아랫마을이 이읍마을인 셈이다. 그런데 이 마을 이름을 배골이라고도 불렀는데 천자암에서 흐르는 물이 마을 앞을 흐르는 송광천과 합류되는 것이 마치 마을이 물로 둘러 싸여 있는 배 모양이라 하여 그렇게도 불렀다고 한다.

 

이읍이라고 부르게 된 것은 1210년경 고려시대에 여진금국 장종 왕비의 셋째아들 삼정국사가 송광사 천자암에 머무를 때에 마을의 생김새를 보고 앞으로 도읍지가 되겠다고 예언하면서부터 마을이름을 '이읍'이라고 부르게 됐다는데 그만큼 남모르는 비범함이 숨어있는 마을이기도 하다.

 

아래쪽 이읍마을을 지나면 또 하나의 이읍마을이 나오는데 그곳을 상이읍마을이라고 부른다. 아파트로 보자면 1층과 2층인 셈인데 평지인 이읍마을에 비해 경사가 훨씬 더 많이 져 있기에 논 모양새도 계단식이며 농사도 수작업이 많아 훨씬 힘든 곳이다.

 

이날도 한 농부가 벼를 손으로 베고 나르는 모습이 안쓰럽게 보였다. 하지만 마을입구에 세워놓은 표지석에는 지금은 빗물에 다 지워지다시피 했지만 협동의 마을, 범죄 없는 마을 등 심성 곱고 이웃끼리 돕는 정겨운 마을임을 한눈에도 알 수 있었다.

 

천자암 오르는 길은 암자 입구까지 콘크리트로 도로가 나 있다. 하지만 비좁고 경사가 심해 특히 자동변속기가 아닌 차량을 가진 초보자라면 포기하는 것이 낫다. 필자도 스쿠터 (바이크)를 타고 올라가는데 적지 않게 곤란을 겪은 게 사실이다.

 

차량을 주차장에 세워놓으면 약 20미터 정도 자연 돌계단을 올라가야 한다. 그런데 무모하다시피 스쿠터로 좀 위험(?)하게 올라온 것을 아는지 중간에 가다 보니 등에 사람이 웃고 있는 얼굴 모양의 문향이 있는 이름 모를 곤충이 필자를 반겨준다. 그것이 그나마 위안을 줬지만 쌍향수에는 비할 바가 못 됐다.

 

천자암에 도착하니 절 입구에 야상차 나무가 있다. 절과 차는 서로 떼려야 땔 수 없는 관계이니만큼 신기한 모습은 아니지만 대부분 숨겨져 있거나 뒤쪽에 있는데 입구에 있어 정원수로 심어놓은 듯 한 인상이다.

 

법당을 돌아서니 드디어 쌍향수다. 이미 등산객 몇 명이 휴대폰으로 쌍향수를 담기 위해 분주하다. 몇 차례 왔어도 올 때마다 신기함이 있다. 작년 여름, 낙안군 폐군 100년째를 맞아 자전거로 답사할 때도 방문했었는데 그때는 병이 든 모습이었지만 오늘은 시퍼렇게 잎을 쏟아 내놓고 있는 건강한 모습이 필자의 마음을 후련하게 했다.

 

한참을 둘러보고 옆으로 올라가 잎도 만져봤다. 그리고 잠시 기도도 했다. 800년이라는 긴 세월동안 이 고장을 지키고 서 있는 나무 앞에서는 누구나 경건해질 수밖에 없었다. 한참을 그렇게 앉아 있다가 아쉬움을 뒤로 하고 돌아서면서도 자꾸 뒤를 돌아보게 되는 것은 정답게 나란히 서 있는 그 정겨움에 마음이 끌렸기 때문이다.

 

 

낙안군과 낙안군 폐군(廢郡)
현재의 순천시 외서면을 비롯해 낙안면, 별량면 일부, 보성군 벌교읍 그리고 고흥군 동강면, 대서면 일부의 땅은 옛 낙안군이었다. 하지만 101년 전인 지난 1908년 10월 15일, 일제는 항일투쟁무력화, 동학혁명진원지분산, 침략거점도시화를 위해 낙안군 자체를 없애버리고 주민들을 인근 지역 세 곳으로 강제 편입시켰다

덧붙이는 글 | 남도TV에도 실렸습니다


태그:#낙안군, #남도TV, #송광면, #이읍, #쌍향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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