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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덧 살

.. 그 두 댁의 막내아들들인 해민이와 동찬이는 나하고 어찌나 잘 사귀였던지 노상 우리 집에 와 살다싶이 하였었다. 둘이 다 너덧 살씩 먹어서 데리고 놀기 딱 좋았으므로 우리 내외에게는 아주 좋은 심심풀이로 되였었다. 내가 놀리느라고 "해민이 좋은 놈이야 나쁜 놈이야?" 물어 보면 해민이는 언제나 서슴없이 "좋은 놈!" 하고 잘라말하는 것이였다 ..  <김학철-김학철작품집>(연변인민출판사,1987) 305쪽

"두 댁의 막내아들들"은 "두 댁 막내아들"로 다듬고, '하였었다'는 '하였다'로 다듬으며, '되였었다'는 '되었다'로 다듬습니다. "잘라말하는 것이였다"는 "잘라말하곤 했다"나 "잘라말하고 있었다"로 손보면 한결 낫습니다.

 ┌ 너덧 살 (o)
 └ 사오 세 (x)

1987년에 연변인민출판사에서 나온 김학철 님 산문모음 <김학철작품집>이라는 책에 실린 <아름다운 우리 말>이라는 꼭지를 읽습니다. 할배 김학철 님은 이웃집 어린아이 앞에서 '좋은 놈 나쁜 놈' 말놀이를 하면서 아이들이 저희들한테 '놈'이라고 놀리는 줄을 깨닫지 못하는 모습을 보며 캐들캐들 웃는다고 글머리를 엽니다. 이 다음으로는 당신 안사람이 갓 시집왔을 적에는 "진지는요?" 하고 여쭈던 말이 요사이는 "식사……?" 하는 말투로 바뀌어 못내 씁쓸하게 느낀다고 이야기합니다. 다음으로 당신이 쓴 소설 어느 귀퉁이에서 "있에요"라 적바림한 대목을 편집자가 "있어요"로 고쳐 놓아 몹시 언짢았다는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홍명희 님 소설 <임꺽정>을 보면 이 작품에 나오는 사람들이 한결같이 서울말로 "있에요"라 이야기를 나누는데, '-에-'와 '-어-'를 넣을 때 감칠맛이 다른 줄을 편집자들이 몰라서는 안 된다고 꼬집습니다.

곰곰이 생각해 봅니다. 저는 글을 쓰거나 말을 할 때에 가끔가끔 '-셔요'라 쓰거나 말합니다. '-세요'라고는 잘 안 씁니다. 둘은 뜻이 같으나 느낌이 다릅니다. 더 말뿌리를 캐면 또다른 이야기가 있기도 합니다만, '-셔요'가 틀린 말이 아닌데 편집자들은 '안녕하셔요'처럼 적으면 좀이 쑤시는지 자꾸만 '안녕하세요'로 고쳐 놓습니다. 두 말이 느낌과 맛이 다른 줄을 헤아리지 않을 뿐더러, 왜 '-셔요'로 적바림하거나 말하는지를 살피지 않습니다.

김학철 님이 1987년에 중국 연변에서 펴낸 책에 벌써부터 "'식사'는 일본말의 '쇼꾸지'를 직역한 것으로서 우리 민족 고유의 말인 '진지'에 비하면 기품이 퍽 떨어지는 말이다. 억하심정으로 이렇게 내리먹기를 좋아들 하는지. 제 좋은 비단옷을 마다하고 남의 나라에서 들여온 마대옷을 걸치기를 좋아들 하시는지." 하고 적바림하면서 푸념을 합니다. 그러니까, 남녘이든 북녘이든 연변이든, 또는 일본이든 우리 스스로 우리 말 '밥'과 '진지'를 깎아내리거나 내팽개치면서 일본말 '식사(食事)'를 사랑하고 있다는 셈인데, 이렇게 우리 말을 내버리며 일본말을 사랑한 뿌리가 중국조선족한테서도 꽤나 오래되었다는 소리입니다.

 ┌ 너덧 해는 지난 일입니다 (o)
 └ 사오 년은 경과한 사건입니다 (x)

어제 집에서 <길(라 스트라다)>이라는 영화를 보았습니다. 1954년에 나온 영화이지만 이 영화에 자막을 달아 만든 번역판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습니다. 영화를 한창 보고 있는데, 주인공 가운데 하나인 참파노가 밥집이자 술집에 들어가서 주문하기를 "포도주 한 리터"라 외칩니다. 영화 자막을 넣은 이는 "일 리터"가 아닌 "한 리터"라고 적어 놓았습니다.

1930년대 소설을 읽거나 1950년대 산문을 읽다 보면 이무렵 글쓰는 분들은 "일 미터"라는 말보다 "한 미터"라는 말을 즐겨쓰고 있음을 어렵잖이 알아챌 수 있습니다. 오늘날 사람들한테는 "한 미터"는 영 어설프거나 안 어울린다 느낄는지 모르나, "한 미터" 아닌 "일 미터"로 쓴 지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습니다.

"한 사람"일 때에만 '한'이라는 토박이 숫자말을 쓰지 않습니다. 그러나 날이 갈수록 "한 사람"이라는 말투마저 수그러들면서 "일 인"이라는 말투로 바뀌고 있습니다. "한 사람 몫"이나 "한 사람 치"나 "한 그릇"이라는 말투는 거의 자취를 감추었고, 오로지 "일 인분"과 "한 공기"라는 말투만 나돌고 있습니다.

 ┌ 너덧 달을 살펴보지요 (o)
 └ 사오 개월을 주시하지요 (x)

아름다운 우리 말이란 국어사전에서 숨죽이고 있는 낱말들이 아닙니다. 국어사전에서 숨죽이고 있는 아름다운 우리 말 또한 있습니다만, 아름다운 우리 말이란 다름아닌 우리 스스로 수수하게 어깨동무하며 살아가는 동안 오순도순 주고받고 있는 말입니다. 아기, 할머니, 밥, 똥, 보리, 젓가락, 웃다, 살피다, 자다, 참새, 명아주, 콩, 귀, 발바닥, 손톱, 호미 같은 말마디가 바로 아름다운 우리 말입니다.

우리 인사말은 "살펴 가셔요"였지 "안녕히 가세요"나 "바이바이"가 아니었습니다. 하도 아이들을 못살게 굴거나 윽박지르거나 괴롭혔기에 방정환 님이 '어린이'라는 낱말을 새삼스레 만들었는데, 우리한테는 '아이-어른'이라는 좋은 말이 있습니다. 우리 스스로 우리 좋은 말인 '아이'와 '어른'을 올바르고 참답게 가꿀 줄 모를 뿐입니다. 아이다움을 사랑하지 못하고 어른다움을 지키지 못할 뿐입니다. 나이를 먹으며 밥그릇 숫자는 늘었다지만 어른다움을 건사하는 어른이 몇이나 됩니까. 다닌 학교는 많아 가방끈은 길다지만 슬기로운 어른다움을 즐거이 나누는 어른은 얼마나 될는지요.

예부터 익은 벼는 고개를 숙인다 했습니다. 익은 벼가 고개를 숙이는 삶이란, 나 스스로 많이 배웠다고 사람들 앞에서 잘난 말이나 어려운 말을 함부로 뇌까리지 않는 삶이란 얘기입니다. 토박이말이랍시고 사람들이 영 못 알아들을 뚱딴지 같은 말을 갑작스레 캐내어 쏼라쏼라 하는 말이 아름다울 수 없습니다. 미국에서 배운 티를 내고 프랑스에 다녀온 자랑을 하는 말이 아름다울 수 없습니다. 내 아이를 즐거이 껴안으며 나눌 수 있는 말로 내 생각을 나누어야 합니다. 내 어버이하고 스스럼없이 웃으며 주고받을 수 있는 말로 내 뜻을 펼쳐야 합니다.

 ┌ 너덧 사람이 길을 걷습니다 (o)
 └ 사오 인이 도로를 보행합니다 (x)

우리 말은 하나, 둘, 셋, 넷입니다. 한둘, 두셋, 서넛, 너덧이 우리 말입니다. 우리 말은 사람, 사랑, 삶, 살림입니다. 큰사람, 참사랑, 삶터, 살림꾼이 우리 말입니다.

말길은 올바르게 트고, 글길은 참되이 열 노릇입니다. 말삶을 착하게 가꾸고, 글삶을 곱게 여밀 노릇입니다. 함께 살아갈 좋은 말을 고맙게 물려받고 알뜰살뜰 물려줄 수 있어야 합니다.

덧붙이는 글 | - 글쓴이 누리집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cafe.naver.com/hbooks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 글쓴이가 쓴 ‘우리 말 이야기’ 책으로,
<생각하는 글쓰기>(호미,2009)가 있고,
<우리 말과 헌책방>(그물코)이라는 1인잡지가 있습니다.



태그:#살려쓰기, #토박이말, #우리말, #한글, #국어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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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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