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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존공영

.. 너무 그렇게 역정 내지 마십시오. 우리는 그저 공존공영하고 싶은 생각에서 한 거니까요 ..  <탄 카와이(그림),로쿠로 쿠베(글)/김희정 옮김-라면 요리왕 (21)>(대원씨아이,2008) 67쪽

'역정(逆情)'은 '성'으로 다듬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으레 '역정'을 높임말처럼 여기고 있습니다. '성'은 낮춤말로 여기거나 낮추어 봅니다. 한자로 적는 낱말이라서 높임말이 되고 토박이말로 적는 낱말이라서 낮춤말이 될 까닭이 없습니다. 지난날 권력자들이 한문으로 생각하고 말하고 글쓰며 살아왔다고 해서 권력자를 섬겨야 했던 여느 사람들 버릇 때문에 오늘날까지 한자말을 우러르거나 섬겨야 하겠습니까. 우리가 올바르게 민주주의와 평화와 평등을 바란다면, 여느 자리에서 여느 이웃하고 스스럼없이 나누던 여느 낱말을 한껏 북돋우고 사랑하며 돌볼 수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한 거니까요"는 "했으니까요"나 "하고 있으니까요"로 손질해 줍니다.

 ┌ 공존공영(共存共榮) : 함께 존재하고 함께 번영함
 │   - 공존공영의 길로 나가다 /
 │     상대적인 불가결의 요소를 구비한 공존공영의 두 날개요
 │
 ├ 그저 공존공영하고 싶은
 │→ 그저 함께 잘 살고 싶은
 │→ 그저 함께 잘 되고 싶은
 │→ 그저 함께 잘 지내고 싶은
 └ …

'공존공영'이란 '공존 + 공영'입니다. 국어사전 말풀이를 살피면 '공존'은 "함께 존재"요, '공영'은 "함께 번영"이라 합니다. '共'은 우리 말 '함께'로 풀이해 놓고 있으나, '存'과 '榮'은 따로 우리 말로 풀지는 않고 '존재'와 '번영'이라고만 적어 놓습니다. '존재(存在)'란 '있음'이요, 이 자리에서는 '살다'를 가리킵니다. '번영(繁榮)'이란 "번성(蕃盛)하고 영화(榮華)롭게 됨"을 뜻한다는데, "잘되고 빛난다"는 소리입니다. 그러니까, '공존공영'을 우리 말로 올바르게 옮겨적으면 "함께 살고 함께 잘된다"는 이야기입니다. "서로서로 잘살고 잘된다"는 뜻입니다.

 ┌ 공존공영의 길로 나가다
 │
 │→ 함께 잘사는 길로 나가다
 │→ 서로 잘되는 길로 나가다
 │→ 서로한테 좋은 길로 나가다
 │→ 서로 이바지하는 길로 나가다
 └ …

네 글자 한자말 '공존공영'은 다른 고사성어와는 달리 우리가 익히 쓴 지 얼마 안 되는 낱말입니다.  오늘날은 이모저모 쏠쏠하게 쓰는 네 글자 한자말이라 한다지만, 이 낱말을 언제부터 왜 썼는가를 곰곰이 돌아볼 수 있으면, 우리들 누구나 예부터 널리 써 오던 우리 말투를 차근차근 살리거나 북돋울 수 있지 않으랴 싶습니다.

그러니까, 말 그대로 "함께 살고 함께 잘된다"란 "함께 잘산다"는 이야기입니다. "서로 잘된다"는 이야기입니다. "다 함께 잘산다"는 소리요, "모두모두 잘된다"는 소리입니다. '함께살기'를 하거나 '어깨동무'를 한다는 뜻입니다.

그러고 보면 '다 함께'와 '다 같이'처럼만 쓰고 있는데, 오늘날 사람들 말씀씀이를 헤아린다면 '다함께'와 '다같이'처럼 한 낱말로 삼아도 넉넉하리라 봅니다. '함께-같이'하고는 느낌이나 세기가 다를 '다함께-다같이'이고, 또다른 쓰임새와 말뜻으로 우리 말살림을 늘릴 수 있는 낱말입니다.

 ┌ 함께 잘살기 / 다함께 잘살기
 ├ 같이 잘살기 / 다같이 잘살기
 ├ 모두 잘살기 / 모두모두 잘살기
 └ …

사람들은 우리 낱말을 담은 우리 낱말책을 제대로 들추지 않습니다. 그냥 '국어사전'만 들춥니다. 국어를 갈무리한 사전이 국어사전이라지만, 이 땅에서 찾아볼 수 있는 국어사전치고 "한겨레 낱말과 말투와 말씀씀이와 말쓰임과 말느낌을 고루 견주고 풀이하면서 알차고 넉넉하고 훌륭하고 사랑스레 엮은 책"을 한 가지나마 손꼽을 수 있는지 궁금합니다. 맞춤법이나 띄어쓰기나 표준말을 찾아보는 '참고서' 노릇만 하는 국어사전만 널려 있는 이 땅은 아닐는지요. 말힘을 키우고 말넋을 보듬는 슬기로운 낱말책은 없는 이 땅은 아니온지요.

이런 판이기에 요즈음 학생이든 교사이든 지식인이든 기자이든 여느 어른이든 '국어사전' 말고 '속담사전'이나 '관용구사전'을 나란히 장만해서 함께 들추며 우리 말글을 더 깊고 너르게 익히거나 가다듬으라고 이야기하기 대단히 어렵습니다. 여느 책방에서 찾아볼 만한 속담사전이나 관용구사전도 거의 없고요.

뜻있는 분이 혼자서 일군 속담사전은 몇 가지 있습니다만, 애써 나와 있는 관용구사전에는 우리가 널리 쓰는 모든 관용구를 알뜰히 담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널리 쓰는 관용구 숫자를 갈무리해서 사전으로 엮으면 국어사전보다 훨씬 두툼할 수밖에 없는데, 이런 관용구사전을 펴내도록 나라에서 뒷받침해 주고 있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 공존공영의 두 날개요
 │
 │→ 함께 빛나는 두 날개요
 │→ 나란히 빛날 두 날개요
 │→ 서로서로 보듬는 두 날개요
 │→ 다 같이 어우러질 두 날개요
 └ …

아이들한테 영어를 가르쳐도 괜찮고 한문을 알려주어도 나쁘지 않습니다. 아이들한테 새로운 학문밭을 일깨우고 더 넓고 깊게 온누리를 껴안도록 말밭을 다스리는 일은 좋다고 할 만합니다. 그렇지만, 영어를 가르치든 한문을 알려주든 우리 말과 글을 옳고 바르게 가르치거나 알려주면서 영어와 한문을 다루어야 합니다. 우리 말은 아무렇게나 쓰면서 영어만 잘 가르치면 어떡하겠습니까. 우리 글을 옳게 쓰도록 돕지 못하면서 한문 지식만 쑤셔넣으면 어떡하나요.

집에서, 마을에서, 학교에서, 일터에서, 길에서, 관공서에서, 군대에서, …… 우리들이 여느 자리에 여느 이웃과 동무와 살붙이하고 나누는 말이 옳고 바르게 뿌리내린 다음에 영어요 한문입니다. 여느 자리에서 여느 이웃과 옳고 바르게 말과 넋을 나누지 못하면서 영어 회화 잘하고 한문 지식 많이 쌓아 놓아 보았자 어디에 어떻게 쓰겠습니까. 지식 자랑으로 그치고, 지식 장사꾼으로 치닫지 않겠습니까.

먼저 사람이 되고 지식인이 될 노릇입니다. 먼저 착한 사람이 되면서 대학생이 될 노릇입니다. 먼저 고운 사람으로 우뚝 선 다음 학자가 될 노릇입니다. 먼저 훌륭한 사람 매무새를 갖춘 다음 법관이 되고 국회의원이 되고 회사원이 될 노릇입니다. 먼저 바르고 맑은 사람이 되지 않고서 공무원이 되면 안 됩니다. 먼저 싱그럽고 튼튼한 마음가짐을 추스르지 않았는데 책과 붓을 들면 안 됩니다.

덧붙이는 글 | - 글쓴이 누리집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cafe.naver.com/hbooks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 글쓴이가 쓴 ‘우리 말 이야기’ 책으로,
<생각하는 글쓰기>(호미,2009)가 있고,
<우리 말과 헌책방>(그물코)이라는 1인잡지가 있습니다.



태그:#고사성어, #상말, #우리말, #한글, #국어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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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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