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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경식 의문사 사건은 의문사위원회를 거쳐 진실화해위원회에 이르기까지 약 10년간의 조사 활동이 마무리되었다. 이들 국가기관이 내린 결론은 '진실규명 불능'이다. 언제 다시 지난 사건기록들을 들춰서 진상규명을 위한 조사를 할 수 있을지 알 수 없다. 하지만 어머니는 언제일지 모르는 그날을 위해 오늘도 진상규명 의지를 내려놓지 않고 계시다."

'노동해방열사 정경식 동지 전국노동자장(葬)'이 오는 7~8일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과 전국금속노동조합이 중심이 되어 열리는 가운데, 장례위원회가 정경식(1959~1987) 열사의 어머니 김을선(78)씨 심정을 전하며 '진상규명'을 강조했다.

정경식 열사는 민주노조 건설운동을 벌이다 1987년 실종되었으며, 이듬해 창원 불모산에서 산불이 났을 때 유골로 발견되었다. 정경식 열사의 죽음에 대해,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와 진실화해위원회가 2000년대 들어 조사를 벌였지만 '진실규명 불능' 결정을 내렸고, '민주화운동 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 심의위원회'는 지난 8월 23일 그를 '민주화운동 관련자'로 '인정'한다는 결정을 내렸다.

최근 '민주화운동 관련자'로 인정된 고 정경식 노동열사의 장례(전국민주노동자장)를 앞두고,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경남본부에 분향소가 설치되었다.
 최근 '민주화운동 관련자'로 인정된 고 정경식 노동열사의 장례(전국민주노동자장)를 앞두고,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경남본부에 분향소가 설치되었다.
ⓒ 윤성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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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를 비롯한 유가족들은 정경식 열사 죽음의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이 되지 않는다면 장례를 치를 수 없다며 그동안 고인의 유골을 마석 모란공원에 임시보관해 왔던 것.

23년 만에 고인이 '민주화운동 관련자'로 인정된 것은 어머니의 피나는 노력 덕분이었다. 창원 진동에 살았던 어머니는 시장에서 생선 가판을 했다. 정경식 열사는 어머니가 해주는 돼지불고기를 가장 좋아했다고 한다. 당시 아들 정경식 열사는 창원공단 내 대우중공업(현 두산DST)에 다니며 기숙사 생활을 해왔다.

1987년 당시 "며칠째 아들이 회사에 출근하지 않는다"는 말을 듣고 실종되었다는 사실을 안 어머니는 회사와 경찰서를 찾아다니며 "아들을 찾아달라"고 호소했다. 당시 어머니는 대통령과 내무장관, 경찰총장, 치안본부장, 도경국장, 창원경찰서장 앞으로 진정서와 탄원서를 보냈다. 신문광고도 냈다.

장례위원회는 "당시 어머니는 경찰서와 회사에 가서 살다시피 하면서 매달렸지만, 모두 미친 사람 취급하고 아무도 어머니의 말을 들어주지 않았다"고 밝혔다. 어머니는 1987년 7~8월 노동자대투쟁 때 거리로 나섰다.

어머니의 안타까운 사연이 알려지면서 지역에서는 '대우중공업 정경식 실종사건 진상규명대책위원회'(위원장 김석좌 신부)가 결성되었다. 어머니와 대책위는 각종 의혹을 제기하며 진상규명을 촉구했다. 유골은 병원 영안실에 안치되어 있었는데, 1988년 5월 19일 검찰은 '자살'로 결정을 내렸고 경찰은 유골을 강제로 유족들에게 인도했다.

어머니는 유골을 받은 이후에도 아들 죽음의 진상이 규명될 때까지 장례를 치르지 않겠다며 고향 집에 안치하고 매일 아침저녁으로 아들의 원혼을 달래는 제사를 지냈다. 그해 12월 어머니는 아들이 다니는 회사를 찾아갔다가 폭력행위 등 혐의로 마산교도소에 수감되기도 했다.

교도소에 있으면서 어머니는 1주일간 단식하기도 했고, 징역 1년6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고 석방된 뒤에도 진상규명 활동에 매진했다. 어머니는 전국민주화운동유가족협의회(유가협) 회원들과 '의문사 해결'을 촉구하는 활동에 적극 나섰다.

장례위원회는 "어머니는 의문사위가 설립된 이후에도 청산가리를 몸에 지니고 다니시면서 아들을 죽인 범인을 찾지 못하면 자진하겠다며 진상규명 활동을 독려하셨다"고 소개했다.

장례위원회는 "어머니의 바람과는 달리 의문사위와 진실화해위 조사는 10년간의 조사활동에도 불구하고 만족할 만한 결과를 내지 못했다"며 "정경식 열사가 타살되어 제3의 장소에서 유기되었다가 발견되기 직전에 유골로 뿌려졌을 가능성 정도가 조사된 내용이었다. 적어도 정경식 열사가 자살하지 않았음을 뒷받침하는 증거들은 확보된 셈이었다"고 밝혔다.

전국노동자장 7~8일 거행... 양산 솥발산 열사묘역에 안장

23년 전 민주노조 투쟁과정에서 의문사한 정경식 열사의 장례는 전국노동자장으로 거행된다. '노동해방열사 정경식 동지 전국노동자장'은 7일 오후 1시 마석공원에서 열리는 입관식을 시작으로, 8일 오전 8시 30분 민주노총 앞에서 영결식이 거행된다.

그날 오후 고향인 창원 진동마을과 창원 중앙체육공원에서 '노제'를 지내고, 정경식 열사는 영남지역 민주노동열사들이 묻혀 있는 양산 솥발산 열사묘역에 영원히 묻힌다.

민주노총은 "정경식 동지는 1987년 이후 들불처럼 일어났던 노조민주화 투쟁의 참여자였고 그분의 어머니는 20여 년간 의문사 진상규명 투쟁과 노조민주화를 호소하는 투쟁에 항상 앞장서 오셨다"고 밝혔다.

이어 민주노총은 "20여 년간 노동운동·민주화운동 진영과 함께해오시면서 열사의 삶을 알려내고 의문사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을 위해 온 힘을 다 바쳐 투쟁해 오신 어머님과 함께하면서 운동에 자식을 묻은 가족을 위로한다"고 밝혔다.

민주노총은 6~8일 사이를 '추모주간'으로 정하고, 민주노총·금속노조와 민주노총 경남·부산본부에 분향소를 설치하고 조합원들은 '근조' 리본을 달기로 했다.


태그:#정경식 노동열사, #민주화운동 관련자, #민주노총, #유가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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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부산경남 취재를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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