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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택호유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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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산방조제
 아산방조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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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22일(수)

비가 오면 하루 쉬어갈 생각이었다. 그런데 날이 흐린데도 비는 내리지 않는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알 수 없다. 주섬주섬 다시 짐을 싼다.

오늘은 방조제만 3개 이상을 넘어야 한다. 방조제라는 게 대체로 다 같은 형태로 만들어져 있다. 이곳까지 오는데 이미 여러 개의 방조제를 건넜기 때문에 이때쯤이면 아무리 멋지고 웅대한 방조제라고 하더라도 별다른 감흥을 일으키기 힘들다. 더군다나 오늘 지나쳐야 할 방조제들은 자전거 여행자들에게 지나치게 불친절하게 만들어진 것들이어서 다소 지루하고 힘든 여행이 될 가능성이 높다.

 부곡국가산단 앞 갯벌에서 조개를 캐는 사람들.
 부곡국가산단 앞 갯벌에서 조개를 캐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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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해안 일대가 대개 그렇듯이, 오늘 여행을 하게 되는 당진 지역 역시 부곡국가공단 등이 들어서 있어 해안을 따라 대규모 공장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다. 안전에 유의하면서, 길을 잃지 않도록 정신을 집중할 필요가 있다. 다행이 이 길에 아름답고 정겨운 풍경을 자랑하는 포구와 항구들이 꽤 있다. 중간 중간 원기를 회복하는 기분으로 천천히 쉬어갈 만하다.

아산방조제를 넘으면 바로 충청남도다. 단순히 도를 나누는 경계를 넘는 것이기는 하지만, 이렇게 확연히 다른 지역에 들어서는 것만으로도 새로운 기분을 느끼기에 충분하다. 그런데 방조제 위로 올라가는 길이 따로 보이지 않는다. 할 수 없이 자전거를 끌고 가파른 방조제 비탈을 걸어서 오르는데 조금 위태롭다.

방조제 위로 자동차 한 대는 거뜬히 지나갈 수 있는 넓은 길이 열려 있다. 급할 것 없이 천천히 페달을 밟는다. 방조제를 건너서 바로 우회전하면 삽교천방조제까지 가는 해안길이 나온다. 그런데 그만 달리는데 열중하느라 그걸 발견하지 못하고 그냥 지나친다.

한참을 가서야 도로 오른쪽 아래로 붉은색 아스팔트를 깐 산책로가 있는 걸 발견한다. 그곳으로 다시 자전거를 끌고 내려간다. 이 산책로가 삽교천방조제까지 이어진다. 삽교천방조제 역시 아산방조제와 크게 다를 것이 없다. 두 곳의 방조제를 지나오고 나서, 사진으로도 아산방조제와 삽교천방조제를 구분하는 일이 쉽지 않다.

삽교천방조제에서 내려서면 바로 삽교호함상공원이다. 공원에 추석 차례를 지내고 나온 가족들이 바다가 바라다 보이는 공원 벤치에 앉아 차례 음식을 나눠 먹고 있다. 삽교호함상공원 주변으로 횟집 같은 음식점들이 꽉 들어차 있다. 추석 명절인데도 문을 열고는 명절 나들이를 나선 손님들을 맞느라 무척 분주하다.

 맷돌포구 근처 부교를 놓은 간이 포구.
 맷돌포구 근처 부교를 놓은 간이 포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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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맷돌포구
 맷돌포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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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안가 공원이 제법 잘 꾸며져 있다. 하지만 공원 안까지 들어와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은 그다지 많지 않다. 공원 끝 쪽에 해안으로 들어서는 좁은 길이 있다. 자동차 한 대가 겨우 지나갈 정도의 좁은 길에 자갈이 잔뜩 깔려 있다. 그나마 흙길이 아니어서 다행이다. 그 길로 맷돌포구 같이 이름조차 생소한 작은 포구들이 계속 나타난다. 크기가 작아서 더 정겨운 맛이 있다. 하지만 이 포구들은 곧 사라질 운명에 놓여 있다. 이 일대 일부 지역에서 조만간 준설 및 매립 공사가 시작될 예정이기 때문이다.

간척으로 소리 소문도 없이 사라진 포구들이 수도 없이 많다. 이제 이 포구들도 곧 그와 같은 전철을 밟게 될 것이다. 흔적도 없이 사라질 포구를 내려다보고 있으려니 더 더욱 짠한 느낌이다.

 삽교호함상공원에서 음섬포구까지 가는 해안소로.
 삽교호함상공원에서 음섬포구까지 가는 해안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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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길은 얼마 가지 않은 지점부터는 시멘트 길로 바뀐다. 요 며칠 계속 비가 온 탓에 길 위로 물이 흥건히 고여 있다. 물 위를 달리느라 좀처럼 속도를 내지 못한다. 이 좁은 해안도로는 서해대교와 행담도가 건너다보이는 음섬포구까지 계속된다.

음섬포구에서 돌아나와 한진항까지 가는 길은 부곡국가공단을 왼편에 두고 달리는 해안도로다. 추석을 맞아 대부분의 공장이 휴업을 한 까닭인지 도로 위로 운행 중인 화물차를 단 한 대도 보지 못했다. 공단이라고 여기지 못할 만큼 조용하고 한적한 분위기다. 가끔 공장 굴뚝 위로 흰 연기가 뿜어져 나오는 걸 보면, 완전히 공장 가동을 멈춘 것은 아닌 모양이다.

달리 쉬어갈 만한 곳도 없어 쉬지 않고 페달을 밟는다. 한진항을 지나 안섬포구까지 여전히 공단 해안도로다. 이 지역에서는 안섬포구를 눈여겨 볼 만하다. 공단 해안도로 끝에서 '안섬포구길'로 들어서면 마을이 하나 나오고, 그 마을 끝 높은 언덕을 내려가면 왼쪽에 방파제가 바다 한가운데로 곧게 뻗어나간 한적한 포구가 모습을 드러낸다.

언덕을 오르내리는 게 좀 힘들지만 공단 지역을 벗어나 잠깐 쉬었다 갈 만한 곳이다. 포구를 끼고 있는 마을이 꽤 안락한 느낌을 준다. 산비탈을 따라 작은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안섬포구 가는 길, 고대국가공단 앞 한가한 도로
 안섬포구 가는 길, 고대국가공단 앞 한가한 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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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섬포구 등대
 안섬포구 등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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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재미무침 일품' 성구미포구도 사라진다

 성구미포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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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구미포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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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섬포구를 나오면 석문방조제 가는 길이다. 석문방조제를 넘기 전에 꼭 가봐야 할 포구가 하나 더 있다. 성구미포구다. 간재미무침으로 유명한 곳이다. 포구가 꽤 독특한 모양을 하고 있다. 포구 바로 앞에 거대한 제철소 설비가 시야를 가로막고 있다. 그 설비가 아니었다면 한쪽에 검은 바위를 끼고 있는 포구가 더욱 아름다웠을 법하다.

포구로 자동차들이 끊임없이 밀려들어온다. 포구에 작은 어시장이 있어 그곳에서 신선한 회를 맛보거나 포장을 해서 가져갈 수 있다. 그런데 이 포구도 조만간 볼 수 없게 된다고 한다. 앞에 있는 제철소가 포구가 있는 곳까지 시설을 확장할 예정이다.

조만간 성구미포구를 볼 수 없는 날이 온다. 이미 반쪽이 난 포구가 이제 또 어떻게 변할지 알 수 없다. 한때 한국의 10대 미항 중에 하나로 불리던 성구미포구다. 하지만 이제는 이 모습이 마지막이 될 것이다. 성구미포구를 돌아서 나오는 기분이 씁쓸하다. 간재미는 산란기를 맞는 봄이 제철이다. 가오리과에 속하는 물고기로, 상어가오리가 정확한 명칭이라는 말이 있다.   

 석문방조제
 석문방조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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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구미포구를 나오면 바로 석문방조제다. 석문방조제는 당진군 송산면 가곡리에서 석문면 장고항을 잇는 방조제다. 길이 10.6km로 상당히 긴 방조제다. 그런데다가 내내 찻길을 달려야 해서 그런지 터무니없이 길게 느껴진다.

방조제 비탈이 너무 가파르고 높아 짐 실은 자전거를 끌고서는 도무지 위로 올라갈 방법이 없다. 할 수 없이 갓길을 달려야 하는데 갓길 위로는 또 불법 주차 차량이 끝도 없이 길게 늘어서 있다. 위험천만한 풍경이다. 할 수 없이 도로 위를 차들과 함께 달린다.

자전거가 방조제에서 차도로 달린다는 게 어떤 건지 설명하기 쉽지 않다. 뒤에서 갑자기 뭐가 덮칠지 알 수 없어 불안하기 짝이 없다. 길긴 또 왜 그렇게 길게 느껴지는지 나중에는 '지루함'으로 '두려움'을 극복했을 정도다. 무섭다기보다 지루해서 어서 이 길이 끝나기를 바라고 또 바랐다.

석문방조제의 단조로움에 지쳐서 나가떨어질 무렵, 장고항에 도착했다. 장고항은 실치회로 이름을 떨치고 있는 항구다. 이른 봄, 뱅어 새끼인 실치가 장고항 주변으로 몰려들고, 이때 잡아서 먹는 실치회가 맛이 그만이라는 소문이다. 실치는 5월이 되면 뼈가 굵어져 더 이상 회로 먹을 수 없고 포로 만들어야 한다. 그게 우리가 흔히 먹는 뱅어포다.

왜목마을의 명품 일출, 장고항 노적봉 덕분

 장고항 노적봉
 장고항 노적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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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고항, 국화도 가는 연락선
 장고항, 국화도 가는 연락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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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문방조제에서 장고항 넘어가는 길이 조금 길고 가파르다. 호흡을 가다듬는 게 좋다. 선착장으로 들어서는 길 왼쪽에 우뚝 선 바위섬이 노적봉이다. 왜목마을에서 보면 이 노적봉 사이로 해가 떠오르는 것을 볼 수 있는데, 그 장면이 절경이다. 황홀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그 장면을 보기 위해 매년 연말 엄청난 수의 인파가 왜목마을로 몰려든다. 노적봉의 주인은 어디까지나 장고항인데 그 덕을 순전히 왜목마을이 보고 있다는 게 조금 아이러니하다. 장고항 선착장 너머로 국화도로 들어가는 연락선이 접안하고 있는 것이 보인다.

장고항에서 왜목리로 넘어가는 해안도로가 꽤 가파르다. 언덕 아래에서는 보이지 않지만, 도로를 돌아 올라가면 그 위에 좁고 어두운 터널이 뚫려 있는 걸 발견할 수 있다. 차 한 대가 겨우 지나갈 정도여서 자전거가 들어설 공간이 거의 없다.

터널 앞에 멈춰 서 있다가 다른 차들이 다 지나갈 무렵 미등을 켜고 다시 출발한다. 하지만 언덕을 올라오느라 기어를 너무 저단에 놓아두는 바람에 중심을 잡고 서기가 쉽지 않다. 이래저래 상당히 위험한 구간이다. 터널은 만든 책임자가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자동차 중심 사고를 가진 사람이 틀림없다.

해가 질 무렵 왜목항에 도착했다. 왜목리는 일출과 일몰을 함께 볼 수 있는 독특한 지형을 하고 있다. 너른 바다에 '왜가리 목'처럼 튀어나온 까닭에 그런 현상을 지켜볼 수 있다. 백사장이 꽤 넓고 곱다. 이곳의 백사장은 원래 갯벌이었던 것을 3년 전 모래를 갖다 부어 만든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도 인공미는 전혀 찾아볼 수 없다. 백사장과 그 앞에 떠 있는 작은 배들과 그 너머 푸른 섬들마저 원래 모두 오래 전부터 그곳에 함께 있었던 것처럼 자연스럽다. 왜목항 바다 건너 왼쪽에 보이는 큰 굴뚝이 당진화력발전소다. 오늘 달린 거리는 75km, 총 누적거리는 583km이다.

 왜목마을, 하늘 위 붉은 노을.
 왜목마을, 하늘 위 붉은 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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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산방조제#삽교호방조제#성구미포구#안섬포구#왜목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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