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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성방송과 유튜브를 통해 미국 전역으로 금요일마다 생중계되는 <역사와의 대화>라는 프로그램이 있다고 한다. 이 프로그램의 진행자 해리 크라이슬러가 현재 시대정신을 선도하고, 각자의 영역에서 실천적 지성으로 활동하고 있는 20인의 사상가, 활동가 등과 나눈 인터뷰가 <진실에 눈을 뜨다>란 책으로 묶여 나왔다.

촘스키를 비롯해서 올리버 스톤 감독까지 20인 각각의 어린 시절, 부모님의 영향, 현재의 사상과 행동의 기폭제가 된 사건이나 상황 등에 대해 꼼꼼히 기술하고 있는데, 오에 겐자부로의 인터뷰가 특히 가슴에 와 닿았다.

왜 끊임없이 스스로를 주변부 작가라고 부르는가에 대하여, 그는 문학은 주변부에서 중심부를 향해 쓰여야만 하며, 우리의 신념, 주제, 상상력은 주변부적인 인간 존재에 관한 것이므로, 중심부에 위치해서는 아무 것도 쓸 것이 없다고 답변했다. 주변부가 되어야만 중심부의 문제를 통찰할 수 있다는 그의 단언은, 마음 속 깊은 곳으로부터 얼결에 주변부 교사가 된 나의 행운(?)에 대하여 깊은 감사를 끌어올렸다. 

학교에서 제일 많이 들은 말 "원래 그래"

처음 학교로 발령 받았을 때, 나는 문화 충격부터 흡수해야 했다. 병원 조직의 가장 큰 특징을 꼽으라면, '효율성'과 '정확성'에 대한 천착. 병원에서 근무하는 동안 금지됐던 문장은 '원래 그렇다'였다. 신속 정확의 효율성이 자리잡은 구조는 언제나 '더 효율적인 방법은 없는가, 더 신속하게 마무리할 수단은 없는가'를 찾았기에, '원래'라는 답변은 철저하게 터부시됐다.

반면 학교에 들어서자, '원래 그렇다'가 가장 적확한(?) 답변이 됐다. 임용 후 처음 교실에서 보건교육을 하겠다고 했을 때, '보건교사는 보건실에만 있어야 한다'가 답변이었다. 이유는 '원래 그렇다'였다. 학교를 기준으로 학교 밖에서, 학교 안으로 들어온 후의 충돌은 '원래'란 단어를 두고 그렇게 시작됐다.

언젠가 보건교사의 이미지를 두고 논쟁 아닌 논쟁을 한 적이 있었다. 보건교사가 편하다는 것. '편하다'의 함의는 결코 만만치 않은 깊은 구조적 이면을 가지고 있다고 논리를 펼쳤더니, 나중에는 웃으셨다.

현재 보건교사 및 보건교육정책을 주도하는 분들 중 학창 시절 보건실을 자주 찾아간  분들이 얼마나 될 것 같으냐는 질문을 하면서, 단언컨데, 거의 없을 것이란 답변을 덧붙였다. 소위 모범생들은 보건실에서는 거의 만나지 못하니까. 대도시에서 학교를 다녔다 하더라도 초중고 학창시절 총 세 분 남짓 보건교사를 만났을 테고, 다른 교사들처럼 1년 내내가 아니라, 손꼽을 정도로 몇 번 만난 기억이 이미지로 각인되는 함정이 있을 수 있다는 점을 말씀드렸다.

'원래'라는 이유로 보건실에 갖힌 보건교사

더불어 보건교사가 학교에는 단 1명뿐이고, 여성이라는 전제가 이미지 고착화 현상의 시작점이 될 수 있다는 점을 들었다. 일례로 학교의 주요 정책을 결정하는 부장교사 회의에 참여하는 보건교사는 7000여 보건교사 중 거의 없다. 법적으로는 보건교사도 부장교사가 될 수 있지만, 부장교사는 교장, 교감 승진시 가산점을 받을 수 있는 주요 보직이므로, 현재 교장·교감 승진을 제한하고 있는 보건교사-교과 교사의 교직 이수과정과 동일한 양성과정으로 배출되는 데도 승진을 제한하고 있다-는 당연히 부장교사에서 제외시킬 수밖에 없다.

교육과학기술부 또는 교육청의 장학사, 장학관이 학교의 교장, 교감으로 순환되는 제도 속에서 보건교사는 현장의 생생한 문제를 국가 정책으로 견인할 지위를 애초부터 가질 수가 없다. 더구나 초중등교육법 상 학교운영위원회의 심의 사항으로 학생 건강 문제와 보건교육은 법률로 규정되어 있지 않다. 초중등교육법에 따르면 졸업앨범, 체육복 구입 등은 학부모와 머리를 맞댈 수 있는 학교운영위원회에서 반드시 심의해야 하지만, 학생 건강 문제는 철저하게 의제화에서 소외되고 있는 것이다.

어떤 문제제기도 수용될 수 없는 '원래'라는 이유에 떠밀려 보건실에 갇힌 보건교사는, 교사들과, 학생들과, 학부모들과 마주하면서, 교육과정과 교육정책을 함께 고민하지 않는-실제로는 구조적으로 견고하게 소외되고 있는 것인데도- '편안한' 존재로 규정되고, 유포된다는 내 주장. 그 분은 내가 그렇게 속사포처럼 쏟아놓을 줄은 모르셨던 것 같다.

주변부 교사라서 그런지 주변부 아이들이 잘 보일 때가 있다. 승희(가명)는 선택 과목에 따른 학급 편성 때문에 1년 내내 학급의 유일한 여학생으로 생활하며, 괴로움을 토로했다. 명서(가명)는 성적 분포에 근거한 학급 분반에 따라 유일하게 친했던 친구와 다른 반으로 배정받으면서 학교 적응에 더 어려워했다.

상담 후 내가 내린 결론은 이 아이들은 깊은 상담이 필요한 게 아니라, 그저 다른 학급으로 재배치만 해 줘도 바로 괜찮아질 것이란 확신. 그런데, '원래' 학급은 선택 과목에 따라, 성적 분포에 따라 분반해야 하는 것일까, 그리고 학교에는 꼭 '학급'이 있어야 하는 것일까.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부천자치신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보건교사#진실에 눈을 뜨다#주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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