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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화성 동아일보 스포츠 전문기자가 네 계절 내내 밥상을 아우르는 맛있는 추억이 담긴 음식 36가지를 다룬 <꽃밥>(동아일보사)을 펴냈다.
▲ 김화성 기자 김화성 동아일보 스포츠 전문기자가 네 계절 내내 밥상을 아우르는 맛있는 추억이 담긴 음식 36가지를 다룬 <꽃밥>(동아일보사)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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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호에서 칼춤을 추며 살고 싶었지만, 못난 놈들은 그저 구라만 풀어도 행복한 법"이라고 잘라 말하는 이가 있다. 그는 종이 위에 글자를 푼다. 그는 "한바탕 글자와 놀다보면 자기를 부르는 고향 산이 그리워져 그 품에 안기는 꿈을 꾼다"며 잔잔한 미소를 날린다. 그가 김화성 <동아일보> 스포츠 기자다.

그는 스포츠 전문기자지만 스포츠만 데리고 씨름하며 뒹굴지 않는다. 그는 여기저기 여행을 다니며 대자연과 더불어 논다. 저승에 계신 어머니가 가슴 아리도록 보고플 때면 음식에 포옥 빠져 논다. 그 좋아하는 막걸리를 마실 벗이 없을 때면 책에 취해 놀기도 한다. 전라도 말 그대로 "썩을 놈, 오살놈"이다.

이처럼 "썩을 놈, 오살놈"이다 보니 그에게 붙는 별명도 엄청 많다. '또랑광대' '광화문통장' '술꾼' '불별' '원사' '변방에 웃는 새' '주식회사(酒食會社) 사외이사' '술 익는 마을 촌장' '석양의 방앗간 참새' '단칼 제목' '못난이 도사' '눈 화장 전문기자' '여러문제연구소장' '장독대 해바라기' '간과 쓸개가 녹아버린 놈' '호랑이가 열두 번 채갈 놈' 등이 그것.

여기서 '눈 화장 전문기자'란 말은 그가 하도 '여러문제연구소장'이다 보니 여러 사람들과 '말 같잖은 문제'로 티격태격하다 눈두덩에 피멍이 자주 든다는 말에 다름 아닐 것이다. 나는 그런 그를 좋아한다. 아주 많이. 그와 가끔 어울려 인사동에 있는 술집에서 막걸리를 마시면 절로 흥이 난다. '거시기'로 시작해서 '거시기'로 끝나는 이야기에게 절로 빨려든다.

절로 침이 꼴깍 넘어가게 만드는 꽃밥이야기

이 책에 실린 글은 지난해 3월부터 올해 5월까지 동아일보에 ‘김화성 전문기자의 아하 이 맛’이라는 제목으로 연재됐던 기사내용을  젓가락으로 집고, 숟가락으로 가득 떠먹은 것이다.
▲ 김화성 꽃밥 이 책에 실린 글은 지난해 3월부터 올해 5월까지 동아일보에 ‘김화성 전문기자의 아하 이 맛’이라는 제목으로 연재됐던 기사내용을 젓가락으로 집고, 숟가락으로 가득 떠먹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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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은 똥이다. 삶은 죽음이다. 밥은 식도를 타고 흘러내려가 항문에 이르면 똥이 된다. 삶은 구르고, 깨지고, 내동이쳐지고, 패대기쳐져서, 만신창이가 되는 과정이다. 더 이상 깨질 게 없으면 죽는다. 삶은 결국 똥과 오줌이 되는 길이다. 창자는 하나의 생산라인이다. 밥이 입으로 들어가 항문으로 나오면 곧 똥이다. 입과 똥구멍은 하나다. 인풋과 아웃풋일뿐이다." - '저자 서문' 몇 토막 

김화성 <동아일보> 스포츠 전문기자가 네 계절 내내 밥상을 아우르는 맛있는 추억이 담긴 음식 36가지를 다룬 <꽃밥>(동아일보사)을 펴냈다. 이 책에 실린 글은 지난해 3월부터 올해 5월까지 <동아일보>에 '김화성 전문기자의 아하 이 맛'이라는 제목으로 연재됐던 기사내용을  젓가락으로 집고, 숟가락으로 가득 떠먹은 것이다. 

'봄-맛 따라 입 안에도 꽃이 핀다', '여름-상상만으로도 달고 시원하다', '가을-맛에 취해 절절한 그리움마저 잊는다', '겨울-함박눈 내리는 날, 추억을 먹는다'와 '사는 게 별건가? 음식에 인생이 있다', 부록 '피맛골 맛집은 다 어디로 갔나'가 그것. 김화성은 이 책에서 추억과 낭만을 끓이고 데치고 무치고 버무린다. 그래서일까. 이 책에 실린 글과 사진, 사진과 어우러진 삽화를 보고 읽으면 절로 침이 꼴깍 넘어간다.

21일 저녁, 서울 인사동 한 술집에서 만난 김화성은 "이 세상의 음식 맛은 어머니의 숫자만큼 있다"고 귀띔했다. 그래서일까. 그는 "나의 음식타령은 사모곡에 다름 아니다"라며 "만약 단 10분 만이라도 저승의 어머니를 다시 만날 수 있다면, 난 어머니가 해주시는 '하얀 사기그릇에 담긴 김 펄펄 나고 기름 자르르한, 연초록 풋콩이 점점이 박힌 고봉 쌀밥'을 배가 터지도록 먹고 또 먹을 것"이라고, 눈시울을 적셨다.

나는 첫눈에 그가 음식에 관한한 나보다 훨씬 고수라는 사실을 알았다
▲ 김화성 꽃밥 나는 첫눈에 그가 음식에 관한한 나보다 훨씬 고수라는 사실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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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동에서 정말 무시무시한(?) '맛객'을 덜컥 만나다

"갈치는 뭐든 잘 먹는다. 바다의 돼지다. 닥치는 대로 잡아먹는다. 심지어 제 꼬리까지 잘라서 먹는다. 오죽하면 갈치 꼬리를 잘라 갈치 낚시 미끼로 쓸까. 콩깍지를 태워 콩을 삶는 거나 똑같다. '갈치가 갈치 꼬리를 문다'는 말도 서로 꼬리까지 잘라 먹을 정도로 식성이 좋은 데서 나왔다는 것이다." - '심해의 깊은 맛, 희로애락과 함께 조려진다' 몇 토막
  
나는 한동안 우리나라에서 여러 가지 음식을 추억과 함께 사진에 비벼 글로 쓰는 사람이 '맛객 김용철'과 나 정도쯤인 줄 알았다. 맛객 김용철도 음식 이야기를 참 많이도 썼고, 지금도 많이 쓰고 있다. 나 또한 맛객 김용철 못지않게 우리나라 곳곳에 있는 음식 맛을 어지간히도 보았고 몇 백 편에 이르는 글도 썼다. 음식에 대해서는 남들에게 맛객과 함께 달인쯤으로 인정받고 있다는 그 말이다. 

그런 어느 날, 우연찮게 인사동 한 술집에서 정말 무시무시한(?) 맛객 한 사람을 덜컥 만났다. 지난 5월 끝자락 내가 펴낸 <막걸리>란 책이 끄나풀이 되어 만난 김화성 기자가 바로 그 '무시무시한 맛 구라'다. 자신만만하게 음식사냥을 하다가 자신보다 더 강한 음식 사냥꾼을 만나면 금방 알아보고 꼬리를 내린다 했던가.

나는 첫눈에 그가 음식에 관한한 나보다 훨씬 고수라는 사실을 알았다. 그는 그날 나와 막걸리를 나눠 마시는 내내 여러 가지 우리나라 음식에 대해 거침없이 '구라'(?)를 풀었다. 나는 슬쩍 끼어들지도 못했다. 그가 쓴 글도 그랬다. 한 문장이 20자를 좀처럼 넘기지 않는 짤막짤막한 단문체에 접속사가 없는 글까지 보자 주눅마저 들었다.

뚝배기가 자글자글 흐느낀다. 들썩들썩 어깨를 울먹이며 운다
▲ 청국장 뚝배기가 자글자글 흐느낀다. 들썩들썩 어깨를 울먹이며 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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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어깨 부여잡고 '시일야방성대곡' 하고 있는 청국장

"뚝배기가 자글자글 흐느낀다. 들썩들썩 어깨를 울먹이며 운다. 네모진 두부 조각들이 서로 어깨를 부여잡고 '시일야방성대곡' 한다. 빙 둘러 가장자리엔 덕지덕지 울어 넘친 '흙탕 눈물' 자국, 아하 어릴 적 무명 베옷에 물든 황톳물... 큼큼하고 고릿한 냄새, 시큼퀴퀴한 두엄자리 냄새, 저릿한 홍어 삭는 냄새..." - '모든 것 내주는 늙은 어머니의 품을 닮았다' 몇 토막

청국장 이야기도 그랬다. 청국장은 사나흘이면 먹을 수 있기 때문에 "청국장이 장이냐, 거적문이냐"는 말이 나왔다는 것이다. 그는 서울에서 청국장을 잘하는 집으로 여덟 집을 손꼽는다. 냄새 없는 청국장을 내놓는 안국동 별궁식당, 경상도식 청국장을 내놓는 가락동 문경집, 전주청국장, 사직분식, 서초동 진주청국장, 홍은동 할머니토종청국장, 성북동 신신식당, 논현동 두산청국장이 그곳이다.

"간장, 된장, 청국장은 모두 콩의 아들이다. 간장이 맏이, 된장이 둘째, 청국장은 막내다. 된장은 콩을 삶고 쪄서 만든 메주로 만든다. 볏짚으로 메주를 묶어 겨우내 매달아둬야 한다. 잘 띄운 메주를 염도 15% 정도의 소금물에 50일쯤 담가두면 국물이 우러난다. 바로 그것이 간장이다. 된장은 국물이 빠진 매주를 으깨어 항아리에서 숙성시킨 것이다... 청국장은 사나흘이면 먹을 수 있다." - '모든 것 내주는 늙은 어머니의 품을 닮았다' 몇 토막

"아버지 몸에선 청국장 냄새가 난다. 아이들은 코를 감싸 쥐며 머리를 절레절레 흔든다"고 말하는 김화성. 그는 "청국장은 끓인 것보다 날로 먹는 게 가장 좋다"고 쐐기를 박는다. 왜? 변비에 으뜸이기 때문이다. 그는 "생청국장은 영양분도 전혀 파괴되지 않는다"라며 "비위 약한 사람들은 먹기 힘들다. 그렇게 해서 나온 게 말린 청국장"이라고 귀띔했다.

겨우내 칼바람을 버텨낸 덕분인가. 뼛속까지 저미는 얼음물에서 다진 품격인가
▲ 김화성 겨우내 칼바람을 버텨낸 덕분인가. 뼛속까지 저미는 얼음물에서 다진 품격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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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태를 북엇국으로 거듭나게 한 속내 깊은 우리 마음

"4월, 미나리 살이 통통하게 올랐다. 줄기 속이 꽉 찼다. 날것을 한 입 깨물면, 아삭아삭 미나리 허리 부러지는 소리. 사각사각 사과 베어 먹는 소리, 상큼한 향기가 입 안 가득 퍼진다. 겨우내 칼바람을 버텨낸 덕분인가. 뼛속까지 저미는 얼음물에서 다진 품격인가. 미나리는 야들야들 부드럽고 여리다. 생명력은 들풀처럼 억세고 끈질기다." - 진흙탕에서 푸른 희망의 맛을 건져 올리다' 몇 토막

이 책에서 김화성이 '다시 태어나는 듯 생생한 그 맛'이라는 봄 음식은 6가지다. 주꾸미, 취나물, 바지락, 죽순, 통영 도다리쑥국, 미나리가 그것. 그가 첫 번째 내놓은 봄맛은 주꾸미다. 한입 깨물면 오도독 다이너마이트처럼 터지는 주꾸미는 입안에 착착 달라붙어 원기회복에 그만이라는 것이다. 취나물은 나물 가운데 왕이요, 향기 덩어리여서 그 상큼함에 세포들이 우우우 눈을 뜬다.

'더위를 잊게 하는 시원한 그 맛'이라는 여름 음식 9가지는 꽁보리밥, 쌈밥, 계삼탕, 냉면, 여수 서대회, 춘천 막국수, 장어, 비빔밥, 민어다. 고슬고슬 대소쿠리 보리밥을 강된장 찍은 풋고추와 함께 먹으면 달고 시원하다. 쌈밥은 한여름 텃밭을 그대로 입 안에 옮겨놓은 것 같다. 냉면, 춘천 막국수는 '입맛 피서'를 하게 만든다. 여기서 말하는 '계삼탕'은 '삼계탕'이다. 그는 '삼계탕'을 왜 '계삼탕'이라 부를까. 닭이 주재료이기 때문이다.

'그리움을 해소해줄 깊은 그 맛'이라는 가을음식 6가지는 전어, 세발낙지, 꽃게, 추어탕, 갈치, 김치다. 그는 "가을은 무엇인가 노릇노릇한 것이, 매콤한 것이, 진하게 고소한 맛이 필요하다"라며 "그런 맛을 찾지 못하면, 갑자기 서늘하게 불어오는 바람에 마음이 쪼그라들고 기운이 없어지게 되기 마련"이라고 못 박았다.

'꽁꽁 얼은 마음을 녹이는 뜨거운 그 맛'이라는 겨울 음식 10가지는 굴, 명태, 대구, 복국, 도루묵, 과메기, 꼬막, 홍어, 매생이국, 청국장이다. 그는 "겨울이 되면 가족이 보고 싶고 친구가 생각나고 싶고 어머니 품이 그립다. 한겨울 처마 끝에서 얼었다 녹았다를 반복하는 명태를 북엇국으로 탄생시킨 우리의 맛은 그런 마음을 고스란히 옮겨 놓은 게 아닐까"라며, 이러한 겨울 음식을 만들어낸 우리 조상님들에게 뜨거운 박수를 보낸다.

이 책에는 네 계절 음식 말고도 '그리고, 사는 게 별건가? 음식 속에 인생이 있다'에서 해장국, 잔치국수, 떡볶이, 전주막걸리, 피맛골 낙지도 잊지 않는다. 그는 전주막걸리에 대해  "오래된 시골 동무와 쭈욱~ 들이켜야 제맛"이라고 썼다. '피맛골 맛집은 다 어디로 갔을까' 란 부록에서는 피맛골 맛집을 자주 드나든 시인과 소설가, 수필가, 문학평론가, 아동문학가, 화가, 언론인, 사진작가, 피맛골 맛집 연락처까지 꼼꼼하게 적어놓고 있다.

'아이고, 이 썩을 놈아! 밥은 잘 챙겨먹고 댕기냐?'

"내가 맛을 어떻게 알겠는가. 그저 몸이 느끼는 대로 썼을 뿐이다. 어릴 때부터 먹었던 음식들을 되새김질했을 따름이다. 아무리 먹고 또 먹어도 달콤하고 황홀했다. 그 속엔 늘 어머니가 계셨다. 어머니는 '아이고, 이 썩을 놈아! 밥은 잘 챙겨먹고 댕기냐?'며 눈을 곱게 흘기셨다. 그렇다. 이 세상의 음식 맛은 어머니의 숫자만큼 있다. 나의 음식타령은 사모곡에 다름 아니다." - '맛은 아련한 기억의 저 편이다' 몇 토막

"맛은 추억이다"라고 자신 있게 말하는 김화성 기자가 펴낸 음식인문학 <꽃밥>. <꽃밥>은 봄, 여름, 가을, 겨울철에 더 그리워지고 맛이 깊어지는 어머니 꽃밥 36가지에 담긴 세상살이다. 숟가락과 젓가락 끝에 매달려 아름답게 피어나는 깊고 오묘한 '맛의 천국'이다. 우리들 혀를 요리조리 맘껏 희롱하는 맛으로 가는 지름길이다. 

김화성 기자는 전북 김제평야에서 태어나 <동아일보> 스포츠 전문기자를 맡고 있다. 펴낸 책으로는 <전주에서 놀다>(2009), <책에 취해 놀다>(2007), <박지성 휘젓고 박주영 쏜다>(2006), <CEO 히딩크 게임의 지배>(공저·2002), <한국은 축구다>(2002), <문득 고개 들어 세상 보니>(1998), <걷고 싶고 머물고 싶은 우리 길 21>(2010) 등 여러 권 있다.

KBS 'TV 책을 말하다' 자문위원, 손기정기념재단 이사, '육상월드' 편집위원으로 활동한 그는 기자협회가 주는 '이 달의 기자상'을 두 번 받았고, '한국편집기자대상'도 받았다. 그는 오늘도 심장에 남아 있는 동무와 누이들이 너무 보고파서 마음은 지금 고향인 전주로 가는 길 위에 있다.

이 책 사진을 찍고 그림을 그린 오금택은 낯선 것을 좋아하고 똑같은 것을 싫어하는 시사만화가다. 그가 그린 그림에는 항상 따뜻함과 그리움이 묻어난다. 그린 책으로 <공병호의 초콜릿> <콜드리딩> <에스프레소 그 행복한 사치> <지구인 상식사전> 등이 있다. 그가 꾸리고 있는 홈페이지 '와우툰'에 들어가면 여러 가지 작품을 만날 수 있다.


꽃밥 - 제133회 나오키상 수상작

슈카와 미나토 지음, 김난주 옮김, 예문사(2014)


태그:#김화성, #꽃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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