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ㄱ. 나의 기자로서의 직업윤리상

.. 고민 끝에 나는 결국 엔터 키를 눌렀다. 나의 기자로서의 직업윤리상 '다시는 그와 같은 성희롱 공무원이 나오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그 기사를 세상에 내놓을 수밖에 없었다 ..  <오연호-대한민국 특산품 오마이뉴스>(휴머니스트,2004) 159쪽

"고민(苦悶) 끝에"는 "생각 끝에"나 "걱정 끝에"로 손보고, '결국(結局)'은 '마침내'나 '끝내'나 '끝끝내'나 '그예'로 손봅니다. "엔터 키(key)를 눌렀다"는 "엔터를 눌렀다"나 "엔터 글쇠를 눌렀다"로 다듬고, '직업윤리상(-上)'은 '직업윤리로는'이나 '직업윤리를 보아'나 '직업윤리를 생각할 때'로 다듬으며, "나오는 것을"은 "나오지 않도록"이나 "안 나오도록"으로 다듬습니다. "방지(防止)하기 위(爲)해"는 "못하게 막고자"나 '막으려고'나 "막을 생각으로"로 손질하고, "그와 같은"과 "그 기사"는 "이와 같은"과 "이 기사"로 손질해 줍니다.

 ┌ 나의 기자로서의 직업윤리상
 │
 │→ 내가 기자로 일하는 윤리로는
 │→ 내 기자 윤리로는
 │→ 기자로 일하는 내 마음으로는
 └ …

사람들은 누구나 생각을 합니다. 오늘날에는 생각 없이 살아가는 사람이 많다고 하는데, 참말 이 말마따나 생각을 안 하며 말을 하고 글을 쓰며 사람을 사귀거나 일하는 사람이 많아 보입니다. 티끌만큼이나마 생각을 한다면 엉뚱한 일이나 잘못된 일이나 엉터리 일이나 몹쓸 일에 몸을 담글 수 없습니다. 터럭만큼이나마 생각을 한다면 짓궂은 일이나 뒤틀린 일이나 더러운 일에 손을 댈 수 없습니다. 스스로 옳고 바르게 살면서 스스로 옳고 바른 일을 찾기 마련입니다. 제아무리 돈벌이가 된다 할지라도 옳고 바른 일이 아니라면 해서는 안 됩니다.

스스로 성희롱 공무원처럼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성희롱 공무원이 있든 말든 아랑곳 않는 매무새입니다. 스스로 성희롱 공무원처럼 살아가고자 하지 않는다면 이와 같은 사람을 따끔하게 나무라면서 이이가 올바른 길로 거듭날 수 있게끔 도와주어야 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일뿐 아니라 우리가 늘 서로서로 주고받는 말마디에서 옳고 바르게 넋을 추슬러 옳고 바르게 낱말을 고르고 옳고 바르게 말투를 가다듬도록 마음을 기울여야 합니다.

 ┌ 나는 기자이기 때문에 이 기사를 …
 ├ 나는 기자임을 생각하며 이 기사를 …
 ├ 나는 기자임을 거듭 돌아보며 이 기사를 …
 ├ 나는 올바른 기자로 일하고 싶기에 이 기사를 …
 └ …

보기글을 돌아봅니다. 토씨 '-의'과 '-로서의'가 만나 글이 꼬였습니다만, 이 글이 꼬이지도 않았고 괜찮다고 느낄 분이 있으리라 봅니다. 우리 둘레에서 어렵잖이 듣거나 볼 수 있는 말투이니까요.

우리 스스로 얄궂은 말씨에 젖어들었기에 얄궂은 말씨이든 살가운 말씨이든 제대로 느끼지 못합니다. 우리 스스로 뒤틀린 말결을 버릇처럼 쓰고 있기에 뒤틀린 말결이든 참다운 말결이든 다스릴 생각을 못합니다. 한 번 꼬인 말이 제대로 풀리는 일이 없이 자꾸자꾸 꼬이고, 한 번 뒤틀린 글이 차분히 펴지는 일이 없이 더더욱 뒤틀리고 있습니다.

이 자리에서는 조곤조곤 풀거나 짧게 끊으면 어떨까 생각해 봅니다. "기자로서의 직업윤리"처럼 길게 쓰지 말고 '기자 윤리' 한 마디로 쓰면 어딘가 얄궂을 일이 없으리라 봅니다. 살짝 길게 적는다고 하면 "기자로 일하는 마음"쯤으로 적을 수 있겠지요. 아니면, "나는 기자이니까 이 기사를 세상에 내놓을 수밖에 없었다"처럼 단출히 적을 수 있어요.

ㄴ. 교육의 장으로서의 학교

.. 학교란 설령 그것이 사립학교라 할지라도 공교육을 실시하는 한, 기업으로서가 아니라 교육의 장으로서의 학교이다 ..  <찌까즈 께이시/김성원 옮김-참 교육의 돛을 달고>(가서원,1990) 88쪽

'설령(設令)'은 '비록'이나 '아무리'로 고쳐 줍니다. '그것이'는 덜어 내고, "실시(實施)하는 한(限)"은 "하고 있다면"이나 "하는 동안에는"으로 고칩니다. '교육(敎育)'은 그대로 두어도 되지만, 이 자리에서는 '배움'이나 '배우는'으로 손볼 수 있어요.

 ┌ 교육의 장으로서의 학교이다
 │
 │→ 배움터로서 학교이다
 │→ 배우고 가르치는 곳인 학교이다
 │→ 배우고 가르치는 곳이다
 └ …

이 보기글에서는 앞말을 아우르며 생각하면 좋겠습니다. "학교란 아무리 사립학교라 할지라도 공교육을 하고 있다면, 기업이 아니라 배우는 곳이다"나 "학교란 비록 사립학교라 할지라도 공교육을 하는 동안에는, 기업이 아니라 배움터이다"로 다듬으면 어떨까 합니다. 또는, "돈벌이를 하는 곳이 아니라 사람을 가르치는 곳이다"라든지 "돈장사하는 데가 아니라 배우는 데이다"로 다듬을 수 있어요.

알맞게 가다듬도록 마음을 기울이고, 알차게 추스르도록 마음을 쏟습니다. 내 생각을 알뜰살뜰 펼치도록 힘을 쓰고, 내 뜻을 어여쁘게 담도록 힘을 바칩니다.

ㄷ. 양배추의 약재로서의 효능

.. 의학자 디오스코리데스도 양배추의 약재로서의 효능을 칭찬하며 건강에 좋으니 되도록 많이 먹으라고 양배추 광고에 앞장섰다 ..  <요네하라 마리/이현진 옮김-미식견문록>(마음산책,2009) 158쪽

"약재(藥材)로서의 효능(效能)을"은 "약으로 쓰기 좋음을"이나 "약으로 좋음을"이나 "우리 몸에 좋음을"로 손질해 줍니다. '칭찬(稱讚)하며'는 그대로 두어도 되지만, 이 자리에서는 '이야기하며'나 '말하며'나 '들며'로 다듬을 수 있고, "건강(健康)에 좋으니"는 "몸에 좋으니"나 "몸을 튼튼하게 하니"로 다듬습니다. "양배추 광고(廣告)"는 "양배추 알리기"로 손봅니다.

 ┌ 양배추의 약재로서의 효능을
 │
 │→ 양배추가 약재로 효능이 있음을
 │→ 양배추가 약재로 좋음을
 │→ 양배추가 약으로 쓸 수 있어 좋음을
 │→ 양배추가 무척 좋음을
 │→ 양배추가 우리 몸에 무척 좋음을
 └ …

일본책을 잘못 옮기니까 '-의 -로서의' 같은 말투가 튀어나오고야 합니다. 우리 말투를 올바르게 살피지 못하니까 '-의 -로서의' 같은 말투가 튀어나오더라도 제대로 가다듬지 못합니다. 일본책을 우리 글로 옮기던 분도 못 느꼈고, 옮겨진 글을 다듬어 책으로 엮는 분도 못 보았습니다. 이렇게 얄딱구리한 일본 말투가 우리 글투인 듯 자꾸자꾸 책에 실리고 신문에 나오며 방송으로 흐른다면, 사람들은 우리 말투를 알맞고 바르게 쓰던 흐름을 놓치거나 잃습니다. 뒤죽박죽 꼬이고 만 말투를 이냥저냥 쓰면서 깊이 생각하지 못하고 널리 헤아리지 못합니다. 말을 잃으며 생각을 잃고, 생각을 잃다가는 삶을 잃고야 맙니다. 참글을 놓치며 참얼을 놓치며, 참얼을 놓치다가는 참뜻과 참삶까지 놓치고야 맙니다.

우리는 바늘 도둑이 소 도둑이 되고 티끌이 모여 큰산이 되는 줄을 지식으로는 다들 압니다. 그렇지만, 정작 몸으로는 모르거나 삶으로는 잊습니다.

덧붙이는 글 | - 글쓴이 누리집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cafe.naver.com/hbooks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 글쓴이가 쓴 ‘우리 말 이야기’ 책으로,
<사랑하는 글쓰기>(호미,2010)와 <생각하는 글쓰기>(호미,2009)가 있고,
<우리 말과 헌책방 (1)∼(10)>(그물코,2007∼2010)이라는 1인잡지가 있습니다.



태그:#-의, #토씨 ‘-의’, #우리말, #한글, #국어순화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