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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바마 대통령의 연두교서 발표를 실시간으로 중계하고 있는 인터넷 신문 <허핑턴포스트>.
 오바마 대통령의 연두교서 발표를 실시간으로 중계하고 있는 인터넷 신문 <허핑턴포스트>.
ⓒ <허핑턴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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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는 승리를 위한 우리의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곳에 도달하기 위해 가만히 서 있으면 안 됩니다. 로버트 케네디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미래는 그냥 주어지는 선물이 아니다. 성취해야 하는 것이다.' 현상 유지를 하는 것으로 아메리칸 드림을 지킬 수는 없었습니다. 그것은 각 세대의 희생과 투쟁, 그리고 새로운 시대의 부름을 요구해왔습니다."

오바마 대통령이 25일(현지 시각) 연두교서를 발표했다. 취임 후 두 번째이지만, 의회 권력이 민주당과 공화당으로 나뉜 상황(상원은 민주당, 하원은 공화당이 다수)에서는 첫 번째로 이뤄진 연두교서 발표였다. 하원을 장악하고 상원에서도 강력한 힘을 가지게 된 공화당이 정부의 지출과 막대한 부채를 강력하게 비난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렇지만 이날 오바마는 정부 지출 동결을 제안하면서도 미국의 미래와 장기적 경제 성장을 위해 교육과 연구, 인프라 향상을 위한 지출만은 결코 줄일 수 없다고 강조했다.

"혁신과 교육에 대한 투자를 제거해 적자를 줄이겠다는 것은 마치 엔진을 없애서 무거운 비행기를 가볍게 해보겠다는 것과 같은 얘기입니다. (그렇게 하면) 처음에는 마치 높이 나는 것처럼 느껴지겠지만, 여러분들이 충돌을 느끼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을 것입니다."

오바마가 교육과 기술 혁신, 그리고 인프라 확대에 대한 투자를 강조하는 이유는 세계가 변했고 '규칙'이 바뀌었다고 보기 때문이다. 굳이 대학 졸업장이 없어도 자신이 사는 고장의 공장이나 작은 기업에서 일하는 것만으로 먹고사는 데 지장이 없었던 시기는 이미 지났다고 오바마는 말했다. 또한 지금의 제조업은 예전처럼 많은 인력을 필요로 하지도 않는다는 것.

따라서 오바마는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어내고 현 시대에 부합하는 사업을 일으키기 위해 기술 혁신과 교육, 그리고 다른 나라들과 관계를 강화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혁신과 교육에 대한 투자를 줄이는 건 비행기에서 엔진 없애는 격"

오바마는 지금이야말로 미국의 "스푸트니크 모멘트(Sputnik moment)"라며 기술 혁신을 위해 투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금은 우리 세대의 스푸트니크 모멘트입니다. (…) 몇 주 안으로 저는 우리의 목표를 달성하는 데 필요한 예산안을 의회로 보낼 것입니다. 우리는 생명의학 연구와 정보 기술, 특히 클린 에너지 기술에 투자할 것입니다. 이 투자를 통해 우리의 안보는 더 강화되고, 지구를 보호하며, 미국 국민들을 위한 수많은 새로운 일자리가 만들어질 것입니다."

'스푸트니크 모멘트'란 냉전이 한창이던 1957년 소련이 세계 최초의 인공위성인 스푸트니크 1호를 우주로 발사하는 데 성공하자, 우주 기술과 미사일 개발에서 세계 최고라 자부하던 미국이 정신적 공황에 버금가는 충격을 받은 때를 말한다.

당시 미국 의회는 1년이 채 지나기도 전에 국가방어교육법(National Defense Education Act)을 통과시켜 수십억 달러를 미국 교육 시스템에 투자했고, NASA를 설립했으며, 신세대 엔지니어를 육성하는 일 등에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이후 미국인들은 바로 이때의 스푸트니크 모멘트가 세계 초강대국 미국을 만드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평가해왔다.

특히 오바마는 향후 에너지 정책과 관련해 정유 회사에 대한 세금 보조를 없애는 대신 미래의 클린 에너지에 투자하겠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그는 2035년까지 미국에서 생산하는 전력의 80%를 수력과 풍력, 원자력과 천연가스 등을 통해 충당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한 고속 철로와 고속 인터넷을 확충해 미국의 구석구석까지 연결함으로써, 모든 미국인이 새로운 시대의 기회와 혜택을 얻을 수 있게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국에서는 교사가 '나라를 세우는 사람'"

이와 더불어 오바마는 미국이 미래에 승리하기 위해 교육에 대한 투자를 늘릴 것이라고 강조했다. 오바마는 향후 10년간 과학과 수학 과목에서 10만 명 정도의 교사를 더 배출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직업 선택을 위해 고민하는 이들 중 이 연설을 듣는 모든 젊은이들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만약 당신이 이 나라에서 변화를 만들고 싶다면, 한 어린이의 인생에 변화를 주고 싶다면, 선생님이 되세요. 여러분의 나라가 여러분들을 필요로 합니다."

오바마는 "한국에서는 교사가 '나라를 세우는 사람(national builders)'이라고 알려져 있다"고 소개하기도 했다.

오바마는 고등학교 이상의 고등교육에 대한 투자 차원에서 대학교 등록금을 보조하는 방식으로 4년 동안 1만 달러에 해당하는 세제 혜택을 줄 것이라 약속했다.

또한 부모가 불법 이민자라고 하더라도, 미국인으로 자라 교육을 받은 학생들이 부모 때문에 강제 출국을 당하는 일이 없도록 하겠다고 강조했다. 이어 미국의 여러 대학과 대학원에서 학업을 마친 많은 유학생들을 본국으로 돌려보내 결국 미국의 경쟁자로 만들어버리는 현재의 시스템을 개혁하겠다고 다짐했다.

"우리의 인프라는 한때 세계 최고였지만, 지금은 계속 처지고 있습니다. 한국의 일반 가정들에는 지금 우리보다 훨씬 더 훌륭한 인터넷이 갖춰져 있습니다. 유럽의 여러 나라들과 러시아는 우리보다 더 많이 도로와 철도에 투자합니다. 중국은 더 빠른 열차와 더 새로운 공항을 건설하고 있습니다."

오바마는 21세기에 걸맞은 인프라를 구축하기 위해 정부가 지난 2년간 기울였던 노력보다 훨씬 더 많은 투자를 앞으로 계속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를 통해 앞으로 25년 안에 미국 국민의 80%가 고속 열차를 이용할 수 있도록 하고, 5년 안에 미국인의 98%가 고속 무선 인터넷을 즐길 수 있게 하겠다고 말했다.

 오바마 대통령.
 오바마 대통령.
ⓒ 백악관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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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회에 한미FTA 조속한 비준 촉구

또한 2014년까지 미국의 수출량을 두 배로 늘리고 미국 내에 새로운 일자리를 더 많이 만들어내기 위해 정부가 적극적으로 노력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한 노력의 한 예로서 오바마는 한미자유무역협정(FTA) 체결을 높이 평가했다.

오바마는 한국과 자유무역협정을 체결함으로써 미국 국내에서만 최소 7만 개의 일자리가 생길 것이라며, 재계와 노동계, 민주당과 공화당이 모두 이례적으로 지지하는 협정인 만큼 미국 의회가 하루 빨리 이를 비준해달라고 촉구했다.

한편, 오바마는 미래를 위한 이 모든 노력들이 미국 정부의 막대한 재정 적자 때문에 발목이 잡혀서는 안 될 것이라며, 재정 적자 축소와 정부 구조 개혁에 대한 계획을 제시했다.

우선 오바마는 향후 5년간 정부 지출을 부분적으로 동결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것은 그가 작년에 제안했던 '3년간 정부 지출 부분 동결'에서 2년을 연장한 것이다. 오바마는 또한 국방비를 780억 달러 삭감하겠다고 밝혔다. 국방비는 본래 2010년의 3개년도 정부 지출 동결안에 포함되지 않았으나, 최근 로버트 게이츠 국방부 장관이 새로 마련한 국방비 절감 5개년 계획을 오바마가 승인한 것이다.

"가장 약한 계층에게 등을 돌리는 일은 하지 않겠다"

그러나 미국 재정에 가장 크게, 그리고 빠른 속도로 부담을 주고 있는 메디케어(만 65세 이상의 미국 시민들을 위한 의료보험)와 메디케이드(저소득층을 위한 의료보험), 사회 보장 제도와 국방 부분, 그리고 국가 부채 때문에 들어가는 이자는 이 5년간의 지출 동결 대상에서 제외된다.

오바마는 "나는 우리가 (그것) 없이도 충분히 살 수 있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없애버릴 의지가 있다. 그러나 우리 국민 중 가장 약한 계층에게 등을 돌리는 일은 하지 않을 것임을 분명히 한다"고 메디케어를 비롯한 사회 보장 비용을 대폭 삭감하지 않는 이유를 밝혔다.

오바마는 작년 3월에 통과된 의료 개혁안을 통해 메디케어와 메디케이드 등으로 들어가는 비용이 서서히 줄어들 것이라고 설명했다. 오바마는 이를 통해 2021년 회계연도까지 약 4000억 달러 이상의 예산 절감이 이뤄질 것으로 전망했다.

"미래 세대를 위한 사회 보장 제도를 강화하기 위해 우리는 양당이 지지하는 해결책을 찾아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현재의 퇴직자들과 가장 약한 계층, 또는 장애가 있는 사람들을 곤경에 빠뜨리는 일이 없어야 합니다. 미래 세대가 입을 혜택을 깎아서도 안 됩니다."

오바마는 이처럼 사회적 약자 및 미래 세대를 위한 재원은 보호해야 한다고 강조하는 한편, 상위 2%에 속하는 부자들에 대한 세제 혜택을 영원히 계속할 수는 없는 노릇이라고 말했다. 오바마는 "그들이 이룬 성공에 벌을 주자는 것이 아니라, 미국의 성공을 증진하자는 것"이라고 그 이유를 설명했다.

뿐만 아니라 오바마는 더 능률적이고 효율적인 정부를 만들기 위해 미국 정부 구조를 재편할 것이라고 밝혔다.

총기 규제 문제에 대해선 침묵

오바마는 안보 및 외교 문제에 대해서는 국내 문제에 비해 상대적으로 짧게 언급했다. 오바마는 이라크 전쟁이 끝나가고 있다고 말했으나 완전한 철수 시점이 언제일지는 밝히지 않았고, 알카에다를 상대로 한 전쟁에 대해서도 대략적인 진전 상황을 설명하는 것에 그쳤다. 북핵 문제에 대해서도 한국과 공조를 하고 있다고만 언급했다.

한편, 애리조나 총기 난사 사건이 발생한 지 채 한 달도 지나지 않았음에도 오바마는 총기 규제 문제에 대해서는 어떠한 언급도 하지 않았다. 그 대신, 대통령의 연두교서 발표 자리에 참석한 거의 모든 의원들과 행정부 각료들이 흰색 바탕에 검은색 줄이 그려진 리본을 달고 나와 희생자들을 추모했다. 또, 애리조나를 대표하는 하원의원들은 총기 난사 사건 피해자인 기포즈 의원의 자리를 비워두었다.

지난해 오바마의 첫 번째 연두교서 발표 때는 조 윌슨 공화당 하원의원(사우스캐롤라이나)이 "당신은 거짓말을 하고 있다!(You lie!)"고 소리쳐 장내를 소란스럽게 만들었지만, 이번에는 양당이 당적에 따라 떨어져 앉는 대신 공화-민주당 의원끼리 짝지어 앉은 탓인지 차분한 분위기 속에서 연두교서 발표가 진행됐다. 이러한 새로운 자리 배치는 애리조나 총기 난사 사건 이후, 양당 의원들이 반목하는 분위기를 줄이자는 뜻에서 이뤄진 것이다.

"이 순간은 우리가 오늘 밤 서로 함께 앉았다는 것으로가 아니라, 우리가 내일 함께 일할 수 있는가로 결정될 것입니다. (…) 정부는 양당의 (공동) 책임 아래 운영돼야 할 것이라고 국민들이 투표로 결정했습니다. 새로운 법들은 민주당과 공화당의 지지를 받을 때에만 통과될 것입니다."

 조 바이든 부통령과 나란히 선 존 베이너 신임 하원의장. 가슴에 애리조나 총기 난사 사건 피해자들을 추모하는 리본을 달고 있다.
 조 바이든 부통령과 나란히 선 존 베이너 신임 하원의장. 가슴에 애리조나 총기 난사 사건 피해자들을 추모하는 리본을 달고 있다.
ⓒ <뉴욕타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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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화당 "미국 부채는 붕괴 직전 무게"

오바마의 연두교서 발표 직후 폴 라이언 공화당 하원의원(위스콘신)은 공화당을 대표해 연두교서에 대한 응답 연설을 했다.

하원 예산위원회 의장이기도 한 라이언 의원은 예산위원회 회의실에서 미국의 부채가 "붕괴 직전의 무게"와도 같다며, 공화당이 미국 국민들에게 "더 나은 선택과 차별성 있는 비전"을 제시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라이언 의원은 이전에도 "워싱턴의 무분별한 지출 행위야말로 일자리 창출을 저해하고 우리 아이들, 손자들의 어깨에 빚더미를 더 올려주는 꼴"이라며 올해 초로 예정된 정부 부채 상한선을 올리는 일에 대해 "정부의 지출 규모 축소와 지출 개혁이 선행돼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그러나 공화당 하원의원들은 2008년 수준으로 미국 정부의 국내 예산을 삭감해야 한다고 주장해왔지만 구체적으로 얼마를, 어떤 부분에서 삭감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당론이 분열돼 있는 상황이다.

그런 까닭에 라이언 의원은 의료 개혁안 비판에 더 초점을 맞췄다. 라이언 의원은 "의료 비용이 미국 부채를 폭발적으로 증가시키고 있다. 대통령의 법안은 미국을 파산으로 빠르게 몰고 간다"고 질타한 후 "미국의 부채는 걷잡을 수 없게 됐다"며 의료 개혁안과 미국의 부채 문제를 연결시켰다.

공화당의 공식 입장은 아니지만, 미셸 바크만 공화당 하원의원(미네소타)도 티파티 지지자들을 대변하는 견해를 밝혀 화제다. 바크만 의원은 "지난 2년간 오바마 대통령이 오늘 저녁에 한 것과 같은 약속들을 해왔다. 그러나 여전히 우리는 고실업 상태에 있고, 집값은 하락한 상태이며, 자동차 연료값은 천정부지로 올랐다"고 오바마를 비난했다.

미래에 미국이 승리하기 위한 청사진을 제시하고 이를 실행하기 위한 양당의 공조를 부탁한 오바마. 그러나 당장 내일부터 공화당과 민주당은 이미 작년에 통과된 의료 개혁안을 두고 다시 힘겨루기를 해야 하는 상황이다.

 오바마의 연두교서에 대한 공화당의 의견을 전달한 폴 라이언 공화당 하원의원. 라이언 의원은 하원 예산위원회 의장이다.
 오바마의 연두교서에 대한 공화당의 의견을 전달한 폴 라이언 공화당 하원의원. 라이언 의원은 하원 예산위원회 의장이다.
ⓒ CN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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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바마#연두교서#스푸트니크#재정 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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