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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정당사를 보면 어지러울 정도로 정당의 이합집산이 많다. 특히, 선거를 앞두고서 그러한 이합집산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이런 현상에 대하여 일률적으로 말할 수 없지만, 국회의원선거에서는 기존 정당의 합당 또는 정당 간의 선거 공조보다는 새로운 정당의 출현과 각 정당의 각개 약진이 눈에 뛴다.

 

이것은 정당 내 갈등 등으로 인한 분열, 정당의 국회의원 후보자 추천과 국회의원에 대한 정치 수요의 증가와 관련이 있으며, 국회 의석 확보를 기반으로 대통령선거에서 승리하거나 캐스팅 보트 등 의미 있는 역할을 하겠다는 정당과 대통령 예비 후보자의 정치적 계산과 관련된 것으로 이해된다. 국회의원 후보자의 입장에서는 정당 추천이 자신에게는 정치 생명의 사활이 걸린 문제이며 소속 정당에서 추천을 받지 못하거나 공조․합당 등으로 추천이 불확실하거나 이를 양보하게 되는 것을 수용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또한, 비례대표 국회의원의 정당 투표 선출은 국회의원 선거에서 정당 간 공조를 어렵게 만든다. 지역구에 후보자를 내는 것이 선거 운동 등을 통해 정당 홍보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 설혹 후보자를 양보하여 내지 않는 경우에도 비례대표 후보자는 자신의 정당 소속 후보자를 지지해 달라고 하는 어색한 선거운동을 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대통령선거에서는 기존 정당의 분열도 있지만, 기존 정당의 선거공조, 나아가서 합당 등이 이루어졌다. 이것은 최고 권력을 장악하는 대통령 1인을 선출하는 대통령선거의 특징에 기인한다. 국회의원의 입장에서는 소속 정당의 대통령 후보자가 선거에서 승리해야만 한다는 대의명분에 승복해야 하지만, 합당이든 선거공조이든 간에 이것이 자신의 정치적 앞날에 미칠 영향을 파악하여 결정하는데 이를 당장의 큰 부담으로 여기지 않기 때문이다.

 

정당 간 공조의 모범적인 사례는 새정치국민회의와 자유민주연합 간의 공조이다. 국민의 정부 후반기에 공조가 깨졌지만 상당히 오랜 기간에 걸쳐 다양한 측면, 국회 운영, 정책, 재․보궐 및 지방 선거 등 각종 선거에서 일관된 공조가 이루어졌고, 이러한 공조를 바탕으로 대통령선거 후보자 단일화 및 공동정부 구성, 공동 선거공약 등에 합의하였으며, 집권 후에는 '국정협의회 운영규정'을 만들어 공동정부를 운영하였다.

 

이번 4․27 재․보궐선거에서 야당 간에 선거 공조 논의가 한창이다. 제18대 국회에 들어와 한나라당의 거대 여당에 맞서기 위하여 국회 운영과 관련하여 야당 간의 공조가 이루어져 왔고, 일부 선거에서 선거공조가 실현되었다. 그러나 만족할 만큼의 공조가 잘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번 4․27 재․보궐 선거에서 공조가 이루어지고 이어서 내년에 있을 제19대 국회의원선거, 나아가서 제18대 대통령선거에서 공조가 잘 이루어질지 확실하지 않다. 해당 정당이 처한 현실 등 객관적인 상황은 공조의 낙관을 불허한다. 특정 지역에 전통적으로 우세한 지지 기반을 갖고 있으며, 집권 경험이 있는 제1야당과 국회 소수 의석의 진보 정당 등과의 공조는 여러 가지 측면을 고려한 것이지만 우리 정당사에 있어서 새로운 경험으로 예상되는 많은 도전을 물리쳐야만 하는 쉽지 않은 일이다.

 

그래서 공조와 연대를 위해서 몇 가지 사항을 사전에 인식해야만 한다. 첫째, 공조와 연대가 성사되기 위해서는 그 필요성에 대한 깊은 성찰이 요구된다. 경우에 따라서는 공조와 연대가 시너지 효과는커녕 단순한 플러스 효과도 가져 오지 못하고 마이너스 효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 공조와 연대 없이 혼자의 힘으로 선거에서 승리할 자신이 있으면 공조와 연대는 불필요하거나 절박하지 않을 수 있다. 또한, 공조와 연대를 하더라도 선거에서 이길 가능성이 없으면 공조와 연대의 필요성은 그렇게 절박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공조와 연대를 해야만 승리할 수 있다면, 그 필요성은 매우 절실할 것이다. 이런 필요성의 정도에 따라 공조와 연대가 이루어지고 상호 요구사항이 조절될 수 있다. 공조와 연대가 절실하면 그만큼 상호 양보가 이루어질 것이다.

 

공조․연합 등의 성공 여부에는 여러 가지 요인이 작용하나 중요한 것은 필요성의 강도와 상호 신뢰, 그리고 요구사항의 조절과 합의 등이다. 공조가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를 보면, 상호 신뢰가 부족하고 요구사항이 타협되지 않는데, 요구사항을 살펴보면, 정치적 세가 큰 정당, 국회의석이 많거나 국민 지지도가 높은 정당과 후보자의 입장에서는 상대 정당에게 많은 것을 양보하지 않고 비교적 적은 것만을 주면서 합의를 이루려 하고, 반면에 상대적으로 세가 적은 정당과 후보자의 입장에서는 후보자를 양보하는 대신에 많은 것을 얻으려고 하기 때문에 합의가 잘 이루어지지 않는다. 세가 강한 큰 정당의 입장에서는 세가 약한 작은 정당의 요구가 세에 비하여 너무 많은 것을 요구한다고 불쾌하게 생각하며, 상대 정당의 입장에서는 후보자를 양보하게 되면, 정당의 존재 이유가 상실되는 등 여러 가지 불리한 입장에 처하게 되는데 이를 고려하지 않고, 이에 대한 정당한 대가를 치르지 않으면서 자신의 정당을 그냥 '공짜로' 집어 삼키려고 한다는 불신을 갖는다.

 

해당 정당이 공조와 연대 등의 이해타산을 면밀하게 검토한 후에 공조와 연대를 하겠다는 결정을 하면, 이와 관련된 큰 정치 그림을 그리는 등 계획을 세우고 하나하나 차근차근 치밀하게 실현해 나가야 한다. 상대 정당과의 갈등을 예방하며 인내심을 갖고 다양한 측면에서 여러 가지 공조로 꾸준히 신뢰를 형성해 나가야 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상대 정당에게 통 큰 양보를 하는 결단을 하여 신뢰를 구축해야만 한다.

 

소수 정당의 입장에서도 갑자기 무슨 호기를 만난 것처럼 생각하여 큰 이득을 취하려고 무례하거나 무리한 요구를 삼가야 한다. 공조를 긴 과정으로 보아 이번에 아니면 안 된다는 사생결단식의 벼랑 끝 투쟁적 협상이 아니라 상호 이해와 존중의 정신에 입각하여 최대한 객관성․공정성․합리성을 바탕으로 협상하되, 종국에는 상호 손실을 감수하는 정치적 결단을 해야만 한다. 공든 탑은 하루 아침에 쌓은 모래성 보다 내성이 강하다. 그러나 내심으로 공조를 하고 싶지 않은데 정치적 비난을 모면하기 위하여 어쩔 수 없이 하는 경우에는 상호 정치적 불신만 초래할 뿐 아니라, 격한 비방과 국민 지지의 동시 하락을 초래할 것이다.

 

둘째, 앞서 지적한 바와 같이 국회의원 선거에서 정당의 선거 공조는 쉽지 않다. 필요성에 의하여 공조를 하는 경우에도, 현실적으로 지역구 국회의원선거에서 가능하다. 선거법상 정당 연합으로 공동 후보자를 추천하는 것이 금지되어 있기 때문에 할 수 있는 방법은 특정 지역 예비 후보자에 대한 여론조사를 실시하여 가장 많은 지지를 받은 후보자를 해당 정당에서 추천하여 그 후보자만을 선거에 내세우는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어느 지역에 어떤 정당 후보자를 낼 것인가에 대하여 정당 간에 합의가 이루어져야 하는데 이것이 쉽지 않다. 통상 각 정당의 전통적인 우세 지역에서는 해당 정당의 '기득권'을 인정하고, 우열이 명확하지 않은 지역에서는 여론조사 등을 통하여 후보자를 결정하는 것이 합리적이지 않나 싶다.

 

그러나 이러한 방식으로도 후보자 결정이 되지 않으면, 상호 정당이 大를 위하여 통 큰 양보를 하는 정치적 결단의 방식으로 해결할 수도 있다. 이 경우 당 지도부가 리더십을 발휘하여 해당 지역 자당 소속 후보자를 설득해야만 한다. 후보 단일화는 선거 시작 전에 통일적으로 이루어져야만 하며, 선거 후에 후보자가 사퇴하는 방식으로, 투표용지에 후보자 이름이 인쇄된 이후에 후보 단일화가 되면, 그 효과는 반감되거나 역효과가 날 수도 있다.

 

셋째, 대통령선거에서는 국회의원 선거보다는 선거공조가 비교적 용이할 수 있다.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공조가 잘 이루어지면 그 탄력과 구축된 신뢰로 대통령선거의 공조가 잘 이루어질 것이다. 이 경우 참고할만한 선례는 전술한 새정치국민회의와 자유민주연합 간의 제15대 대통령선거 공조이다. 두 정당 지도자의 확고한 리더십과 경륜, 신뢰와 정치력을 구비한 대리인, 투명한 절차와 꼼꼼한 점검을 통한 합의, 합의 내용의 공개, 합의 내용의 준수 등이 필수적이다.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공조, 나아가서 제18대 대통령 선거에서 공조를 이룩하기 위해서는 이번 4․27 재․보궐 선거에서 공조가 잘 이루어져 정치적 신뢰가 형성되어야만 한다.  


#4.27 재보선#선거공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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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비서실 정무비서관, 부패방지위원회 및 진실화해위원회 상임위원 역임, 개혁적 입장에서 새로운 정보 등 취득 및 공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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