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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어느 쪽으로 머리를 굴려도 해석이 안 돼. 40대 두 남자가 거문도로 여행을 왔다?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여행객들이지."

 

지난 7월 25일 오후 4시 20분, 여수시 삼산면 거문도 선착장에 도착했습니다. 마중 나온 지인이 대뜸 내뱉은 첫마디입니다. 졸지에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여행객이 됐습니다.

 

그 소리에 한바탕 크게 웃었습니다. 두 시간 넘도록 흔들리는 배위에서 겪었던 고통이 순간에 날아갑니다. 항구를 빠져나와 가까운 의자에 앉았습니다. 습한 남풍과 갯냄새가 몸을 휘감습니다. 거문도에 도착했습니다.

 

이번 여행은 몇 달 전부터 계획한 일입니다. 그렇다고 한 작가에게 구체적인 날짜를 알려주지는 않았습니다. 그도 여름 손님이 얼마나 무서운지 충분히 알 테니까요. 혹시 미리 날짜를 알려주면 이 핑계 저 핑계로 거문도행을 막을까 염려됐습니다. 그래서 배타기 전날 거문도행을 알렸습니다. 그러니 날씨 궂다고 배를 안 탈 수가 없습니다.

 

중년남자 2명이 챙겨야할 1박 2일 짐은...

 

불타는 태양과 바다 밑 자갈도 셀 만큼 맑은 물빛, 거문도행 날짜를 고를 때 함께 상상한 그림입니다. 그러나 그날 아침 눈을 떠 창 밖 하늘을 본 저는 모든 희망을 내던졌습니다. 하늘이 수상합니다. 갈일이 갑갑합니다.

 

필요한 몇 가지를 챙겨 동행과 만났습니다. 서로 등에 진 짐을 보고 피식 웃습니다. 보기에 초라할 정도로 배낭이 가볍네요. 1박 2일 동안 중년의 남자 두 명이 챙겨야 할 짐이 얼마나 되겠어요. 인생 짐이 무거울 뿐이죠.

 

여수시 여객선터미널에 도착했습니다. 일렁이는 바다를 보니 배 타기가 더 싫습니다. 잿빛하늘에 구름은 낮게 내려 앉아 더 이상 내려 올 곳도 없습니다. 습한 느낌도 싫은데 바람까지 붑니다.

 

배 타기엔 최악의 기상 조건을 완벽히 갖춘 날입니다. 더 얄미운 일은 바람이 딱 '풍랑주의보' 발령 안 될 만큼만 부네요. 좀 더 심하게 불어주면 '풍랑주의보'가 떨어져 배가 뜨지 않을 텐데 말이죠.

 

"화장실도 안가고 물도 안 쓴다, 터미널이용료 돌려 달라"

 

건물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밖은 바람이 불어 그나마 시원함을 느끼겠는데 실내에 들어가니 숨이 턱 막힙니다. 찜통이 따로 없네요. 더위에 지친 여행객 얼굴을 타고 땀과 짜증이 흘러내립니다.


대형 선풍기가 좌우로 고개를 돌리며 힘을 보태지만 그 바람으론 한여름 더위를 제압 못합니다. 윙윙 소리와 함께 날개 뒤쪽 가열된 모터가 앞쪽으로 뜨거운 바람을 토해냅니다. 더위가 더 심해지네요. 참다못해 한 여행객이 소리를 지릅니다. 그제야 관리인이 나타나 냉방기를 돌리며 문을 닫습니다. 그렇게 한참을 더위와 싸우고 있는데 매표소 앞이 소란합니다.

 

한 여행객이 매표소 직원에게 목소리를 높입니다. 터미널이용료를 못 내겠답니다. 그 분은 "화장실도 안가고 물도 안 쓸 테니 터미널이용료로 책정된 돈 돌려 달라"고 소리 지릅니다.

 

그 말 듣고 승선권을 살펴봤습니다. 승선권 아래 깨알 같은 글씨로 '터미널이용료, 운항관리비 포함'이라고 쓰여 있네요. 구체적인 금액은 적어 놓지 않았습니다. 궁금증이 더 생깁니다. 결국 직원과 목소리를 높이던 그분은 800원을 돌려받았습니다. 직원은 돈을 건네며 단서를 답니다. "이 돈은 회사가 주는 게 아니라 제 호주머니 털어 주는 돈입니다"고 강조합니다.

 

소란 있은 후 유심히 전광판을 보니 신기합니다. 도서민은 승선비가 5500원이고 일반인은 3만6000원입니다. 승선비가 6배 이상 차이 납니다. 또 거문도 닿기 전 여러 섬을 거치는데 도서민은 어디가나 같은 돈을 냅니다. 곰곰이 생각하니 여수에서 서울까지 가장 비싼 심야 우등 고속버스 요금이 3만2000원입니다. 여수에서 여수로 이동하는데 서울 가는 버스 비용보다 더 드네요. 승선비가 이렇게 비싼 이유는 뭘까요?

 

또 도서민은 어느 섬이든 같은 돈을 내는데 일반인은 금액이 각각 다릅니다. 그 이유가 참 궁금합니다. 그러나 이곳저곳 물어볼 여유가 없어 여행 후 차분히 알아보기로 했습니다.

 

"아! 뱃멀미, 빠져죽더라도 바다에 뛰어들고 싶다"

 

 

오후 1시 40분, 배가 움직입니다. 위 아래로 약간 움직이는 정도의 느낌입니다. 이 정도면 4시간도 거뜬합니다. 그러나 출항한 지 한 시간도 못돼 너른 바다에 닿자 움직임이 장난 아닙니다. 그때 알았습니다. 배는 위아래로만 움직이지 않습니다. 상하좌우로 움직입니다. 몸속 모든 장기가 울렁거립니다. 구역질을 애써 참으며 옆 좌석을 보니 이 상황에서도 자고 있는 사람이 있네요. 대체 어떤 내공을 쌓은 걸까요?

 

결국 구역질을 참을 수 없어 선실을 뛰쳐나갔습니다. 다행히 선실밖엔 저와 같은 경험을 하고 있는 분들이 많더군요. 그런데 한곳에 여자 승객이 모여 있습니다. 그녀들은 모두 일렁이는 바다만 바라봅니다.

 

알고 보니 진귀한 구경하는 게 아니라 구역질을 참느라 한쪽에 몰려 있습니다. 우습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합니다. 그렇게 고통을 참고 있는데 한 아주머니가 외칩니다.

 

"아! 뱃멀미, 빠져죽더라도 바다에 뛰어들고 싶다."


두 시간이 넘도록 '고통의 바다'를 건너 거문 항에 도착했습니다. 배에서 내려 하늘을 봅니다. 머릿속에 책 한권이 떠오릅니다. 한 작가가 쓴 책인데 '인생이 허기질 때 바다로 가라'라는 책입니다. 다른 건 몰라도 제목 하나는 확실히 잘 뽑았네요. 절반은 맞으니까요. 그날 뱃길은 구역질을 많이 해서 허기가 졌거든요. 화려한 횟집을 지나 작가가 살고 있는 집으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집은 바다를 밑천삼아 글 쓰는 사람답게 바닷가에 있네요. 이곳에서 가장 요란했던 유림해수욕장 바로 옆입니다. 지금은 과거 화려함은 간데없고 파도만 밀려왔다 먼 바다로 돌아가는 조용한 곳입니다. 그런데 옆을 보니 모 업체에서 콘도를 짓느라 요란합니다. 한 작가 집에서 멀지 않은 언덕에 건물을 올리고 있는데 한 작가 심사가 영 불편합니다. 건물이 직사각형 깡통 같다며 어초로 쓰면 딱 좋겠답니다.

 

또, 며칠 전엔 집 옆 해수욕장으로 똥물 길을 낸다고 해서 한바탕 소란이 벌어졌답니다. 조용한 곳 찾아 고향에 왔는데 뜻하지 않은 일에 얽혔네요. 세상 살아가려니 이런저런 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게지요.

 

지금은 뼈째 썰어 먹는 자리돔이 최고

 

 

복잡한 사연을 듣는 사이 저녁 먹을 시간이 됐습니다. 자리를 털고 일어서며 어떤 고기가 제철인지 물었습니다. 돌아온 답은 자리돔 회랍니다. 뼈째 썰어 먹는 맛이 괜찮답니다. 자리돔 회에 맛난 저녁을 먹고 당구장에 들렀습니다. 이곳은 오래전 영국해군이 잠시 점령한 곳이라 '당구'를 일찍 접한 곳입니다. 그렇다고 역사적 의미를 찾으러 당구장 간 건 아닙니다.

 

다만, 날 저물어 어두운데 딱히 남자 셋이 할 일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편 나눠 재밌게 당구를 치고 돌아서는데 당구장 사장님이 닭 한 마리 먹고 가라네요. 억양이 달라 고향을 물으니 마산이랍니다. 거문도는 돌돔 낚시에 빠져 눌러 앉았답니다. 그러면서 장롱위에서 잡지책을 꺼냅니다. 먼지를 털더니 사장님 사진 나온 곳을 펼쳐 보입니다. 정말 큰 돌돔이 손에 들려있네요.

 

그렇게 모든 절차를 마무리 짓고 숙소에 들었습니다. 다음날, 거문도 등대를 향합니다. 시원한 바람 맞으며 걸으니 지난밤 술기운이 떨어집니다. 굳이 등대까지 걸을 일 없다며 너른 바위에서 파도 구경 실컷 했습니다.

 

다음 날 아침, 어제 자리돔을 맛나게 썰어 준 식당에 들었습니다. 아침으로 구운 참돔이 나옵니다. 이곳에서 온갖 호사를 다 누립니다. 한 가지 걱정이 생기는데 이 입맛 가지고 집에 가면 음식 타박 할 텐데 그러면 밥 굶기 딱 좋겠네요.

 

사십대 두 남자의 먹성에 아주머니는 연신 빈 찬그릇을 채웁니다. 그렇게 섬 인심을 맛보고 왔습니다. 돌아오는 뱃길도 파도가 드셉니다. 약간의 멀미는 했지만 든든한 아침 덕인지 크게 고통스럽지 않았습니다.

 

여행길에서 두 남자가 느낀 점이 있습니다. 다른 건 몰라도 맛있는 여행을 했습니다. 그래서 권합니다. 인생이 허기지신 분 거문도로 가세요. 맛난 아침 밥상이 준비돼 있습니다. 그리고 밥 먹고 다시 한 번 힘내는 겁니다.


#거문도#한창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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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아들 커가는 모습이 신기합니다. 애들 자라는 모습 사진에 담아 기사를 씁니다. 훗날 아이들에게 딴소리 듣지 않도록 노력합니다. 세 아들,아빠와 함께 보냈던 즐거운(?) 시간을 기억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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