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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동료 교사 간에 호감과 신뢰를 갖는 것은 참 좋은 일인 것 같습니다. 가령, 한 학생의 문제를 놓고 의견을 달리하거나 논쟁이 벌어졌을 때 쓸데없는 오해가 생길 여지가 적어지고 생산적인 대화를 할 수 있다는 점에서도 그렇습니다. 지난 6월 셋째주에 바로 그런 일이 있었습니다.

작년에 우리 학교에 양호 선생님 한 분이 오셨습니다. 지금의 양호실이 만들어지지 전이어서 교무실 바로 제 앞자리에 앉게 되었습니다. 전 양호 교사인 최 선생님을 앞 짝꿍이라고 부르곤 했지요. 짝꿍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전 교무실에 짝꿍이 많습니다. 앞 짝꿍, 뒤 짝꿍, 옆 짝꿍, 대각선 짝꿍 등등. 뭐 이런 식이니 많을 수밖에요. 가끔 후배 여교사들과 함께 식당에서 점심을 먹을 때도 이렇게 너스레를 떤답니다.

"그대 앞에서, 그대 옆에서, 그대 대각선에서 나 밥 먹고 있네. 아, 행복하여라!"

최 선생님은 올해 학기 초에 양호실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그것이 못내 섭섭할 만큼 우리는 친한 사이가 되었지요. 최 선생님 말로는, 우리 반 아이들이 다른 반에 비해 양호실 출입이 잦다고 합니다. 다른 반에 비해 조퇴도 많은 편이라 그나마 양호실이 있어서 다행이다 싶었는데 그런 말을 들으니 난감했습니다. 그날 머리가 아프다고 양호실에 갔다가 울면서 교무실로 찾아온 소리(가명) 때문에 최 선생님과 저 사이에 이런 대화가 오고갔습니다.

"소리는 안 아픈 것 같아서 제가 그냥 보냈어요."
"머리가 많이 아픈 것 같던데요. 조퇴를 시켜줄까 하다가 보낸 건데."
"어제까지도 친구들하고 쌩쌩하게 뛰어놀고 그러던데요... 뭐."
"어제는 안 아팠지만 오늘은 아플 수도 있잖아요."
"제가 보기엔 안 아픈 것 같았어요."
"선생님이 보시기엔 그렇지만 실제로 아플 수도 있잖아요."


"그럼 어떡해요? 양호실에 침대가 두 개뿐인데 오는 애들을 다 받아들일 수는 없잖아요."
"그것은 또 다른 문제에요. 그 문제는 그 문제대로 고민해 봐야겠지요. 만약 정말 아픈데 아프지 않다고 단정해버린 거라면 아이에게 상처가 될 수도 있잖아요. 99% 의심이 가도 1%의 가능성 때문에 함부로 말하기가 어려운 거죠. 그래서 아이들과 대화할 때는 우회전술을 써야 해요."
"우회전술이라니요?"

몇 해 전에 있었던 일입니다. 청소시간이면 꼭 화장실에 간다는 핑계를 대고 청소를 하지 않는 아이가 있었습니다. 하루는 녀석과 저 사이에 이런 대화가 오고갔습니다. 

"너 청소시간마다 화장실에 간다는데 네 말이 사실일 수도 있어. 뭐 장이 나빠서 그럴 수도 있고 습관상 그럴 수도 있으니까. 그런데 나는 왜 네 말이 거짓말처럼 들릴까? 그것이 네 잘못이야, 내 잘못이야?"
"제 잘못입니다."


이런 것이 우회전술이라고 말해주자 최 선생님도 수긍이 가는지 고개를 끄덕이며 모처럼 환한 표정을 지어보였습니다. 참 다행이다 싶었는데, 우리 앞에 또 하나의 관문이 남아 있었습니다. 쉬는 시간에 우연히 최 선생님을 만나 얘기를 하고 있는데 저만치서 소리가 서 있는 것을 보고 최 선생님이 소리를 불렀습니다. 아마도 사과를 하면서 아이들 달랠 생각이었을 텐데, 소리는 뒤만 한 번 쳐다보고는 대꾸도 하지 않고, 그냥 교실을 향해 가 버리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보기에도 민망한 장면이었으니 최 선생님의 표정이 굳어진 것은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한참 동안 아무 말이 없다가 이렇게 입을 열었습니다. 

"이런 일은 처음이라 당황스럽네요."
"전 늘 경험하는 일이에요. 풀면 또 쉽게 풀어져요."
"아무튼 선생님 고생이 많겠네요."

"오늘은 그냥 내버려 두세요. 지금으로선 그렇게 하는 것이 가장 좋을 것 같아요. 저도 지금 소리의 행동을 나무라야 할지 잘 모르겠어요. 만약 자기 진실이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에 대한 반응이라면 오히려 위로가 필요한 상황이니까요. 제가 한 번 얘기해볼게요. 아마 잘 될 거예요. 소리하고 그럴만한 일이 있었거든요."

소리는 모범생과는 거리가 먼 아이였습니다. 수업시간에 졸고 있거나 엎드려 자고 있거나 둘 중 하나인 경우가 많았습니다. 담임으로서 진로 지도를 할 때도 마치 그런 대화를 처음 해보는 아이처럼 물끄러미 절 바라보곤 했습니다. 그러다가 소리의 생일이 열흘 앞으로 돌아 온 어느 날, 우리 사이에 이런 대화가 오고갔습니다.

"소리야, 넌 생일 시 받으려면 선생님하고 메일 주고받아야 하는데 왜 메일 안 보내?"
"메일 보내야 해요?"
"지난 번에 말했잖아. 다른 애들도 다 그렇게 했고."
"전 집에서 인터넷 못 해요."
"그래? 그럼 문자라도 서로 교환하면 되잖아. 네가 먼저 보내야 돼."
"뭐라고 보내요?"


"네 꿈 이야기 하면 돼. 없으면 없다고 하고. 그러면 내가 답장을 할 거야. 알았지?"
"저 꿈 없는데요."
"없으면 없다고 하라니까." 
"어떻게 그렇게 해요."
"알았어. 그럼 내가 먼저 할게."


저녁 무렵, 저는 소리에게 문자를 보냈습니다. 뜻밖에도 곧바로 답장이 왔습니다. 

"소리야, 넌 뭔가 되고 싶은 것이 없었니? 네가 마음만 먹으면 뭐든 잘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널 가꾸기만 한다면... 근데 넌 널 가꾸지 않고 있지 그치?"

"맞아요. 전 아직 제 꿈이 뭔지 모르겠어요. 하고 싶은 건 되게 많은데 은행원도 되고 싶고 간호사고 되고 싶고 미용 쪽으로도 괜찮고 너무 복잡해요."

"되고 싶은 것이 많았다니 뜻밖이구나. 너무 복잡하게만 생각하지 말고 차분히 네가 할 수 있는 걸 찾아 봐. 우선 수업시간에 공책 정리부터 하면서... 지금도 늦지 않았지만 올해 넘기면 그만큼 더 힘들어질 거야. 너랑 이런 얘기 나누니까 넘 좋다."
"예 선생님."


다음은 그 다음날 상황입니다.   

"선생님 저요!"

누군가 했더니 소리였습니다. 그날 배울 새로운 단어를 퀴즈로 풀어보는 시간이었는데 녀석이 그걸 다 풀었다고 손을 든 것이었습니다. 100미터 단거리 육상 선수처럼 달려가서 보니 글씨도 예쁘고 단정했고 적어놓은 답도 모두 맞았습니다. 답을 확인한 뒤에 나와 3초가량 눈이 마주쳤습니다. 아이의 눈이 빛나고 있었습니다.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황홀한 눈빛이었습니다.

이런 내막을 모르고 있는 최 선생님은 제가 소리를 과대평가하거나 너무 감싸고 돈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소리가 자기를 찾아와 사과를 할 것이란 기대도 하지 않았겠지요. 사실은 저도 기대를 크게 갖지는 않았으니까요. 하지만 소리는 제 충고를 다소곳이 받아들였고, 그 다음 날 최 선생님을 찾아가 사과를 한 모양입니다. 다음은 최 선생님과 제가 그 후 주고받은 문자입니다.    

"선생님 고맙습니다. 모든 일이 잘 되었어요. 앞으로 학생들을 어떻게 대하고 만나야할 지 이번 일로 많이 배웠습니다. 감사합니다."

"잘 되었네요. 제가 더 감사합니다. 선생님이 제 말을 믿고 기다려주신 덕분입니다. 선생님이 잘 하신 거예요. 기분 좋은 날이네요."

며칠 뒤, 최 선생님과 나는 학교 급식실에서 함께 식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바로 옆자리는 아니었고, 그렇다고 앞자리도 아니었습니다. 대각선도 아니었습니다. 굳이 말하자면, 등 뒤 대각선이라고 해야 맞을 그런 위치였습니다. 저는 뒤를 돌아보며 최 선생님을 향해 이렇게 소리쳤습니다.

"등 뒤 대각선 짝꿍님! 점심 맛있게 드세요."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교육공동체 벗 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순천효산고 #교육공동체 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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ㄹ교사이자 시인으로 제자들의 생일때마다 써준 시들을 모아 첫 시집 '너의 이름을 부르는 것 만으로'를 출간하면서 작품활동 시작. 이후 '다시 졸고 있는 아이들에게' '세상 조촐한 것들이' '별에 쏘이다'를 펴냈고 교육에세이 '넌 아름다워, 누가 뭐라 말하든', '오늘 교단을 밟을 당신에게' '아들과 함께 하는 인생' 등을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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