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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은 정권교체뿐 아니라 시대교체가 되어야 한다. 시대교체로서의 대선이란 5년 전의 민주정부 시대로 되돌아가는 것 이상을 의미한다. 노무현 정부, 김대중 정부를 되살리는 것이 아니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민주정부 10년에 더해 이명박 정부 5년 전체에 걸쳐 한국경제를 지배했던 신자유주의를 털어버리고 새로운 질서를 만드는 것이다.

시대를 읽지 못했던 민주정부 10년, 이명박 정부 5년

투기와 양극화를 양산하는 신자유주의가 정점에 이르렀을 때 민주정부 10년을 경험했던 것은 우리 사회의 비극으로 남았다. 민주정부는 사회복지를 늘려서 양극화를 막으려 했다. 하지만 그들이 적극 수용한 신자유주의 그 자체가 양극화를 구조적으로 확대하는 위험한 경제 질서라는 인식은 하지 못했다. 결국 시대의 변화를 이끌지 못한 민주정부는 '좌파 신자유주의자'가 되어 정권을 넘겨주고 말았다.

신자유주의와 친기업을 전면에 내세우며 집권에 성공한 이명박 정부는 신자유주의 질서의 근본적 위기를 알린 글로벌 금융위기에 직면했다. 불가피하게 재정을 확대하여 경기부양을 하고 얼마간의 외환 거시건전성 규제 방안을 내놓는 등 국가를 동원해 시장에 개입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더니 신자유주의 정부가 공정사회와 동반성장이라는 구호를 들고 나오는 상황에 이르렀다.

지난 15년 동안 우리 정부들은 철저하게 시대의 변화와 흐름에 역진해서 정책과 공약을 제시했고 결국은 국민과의 약속을 제대로 지키지 못했다. 그렇다면 2012년 18대 대선에 참여하는 후보들은 시대의 변화를 정확히 포착하고 있을까? 시대의 변화를 국민에게 이로운 방향으로 이끌어 갈 준비가 되어 있을까? 주요 후보들의 글과 발언에 기반하여 짚어보도록 하자.

박근혜 후보의 시대인식, 국가발전에서 국민행복으로

"우리는 지금 중요한 기로에 서 있습니다. 세계적으로 경기는 침체되고, 분열과 갈등이 커지고 있습니다. '원칙을 잃은 자본주의'가 중대한 도전에 직면해 있습니다. 국내적으로는 저출산 고령화, 저성장과 소득격차 심화라는 거대한 폭풍이 덮치고 있습니다. (중략) 이제,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합니다. 무엇보다 국정운영의 기조를 국가에서 국민으로 바꿔야 합니다. (중략) 저는 '경제민주화 실현', '일자리 창출', 그리고 '한국형 복지의 확립'을 국민행복을 위한 3대 핵심과제로 삼겠습니다."

박근혜 후보의 출마 선언문 중 일부이다. 그 내용을 보면 '자본주의 위기 → 소득격차 심화 → 국민 생활과 삶의 위기에 대처 → 경제 민주화, 일자리 창출, 복지'라는 논리 전개이다. 완벽히 진보개혁 진영의 언어와 논리구조를 차용해 왔다.

정작 자신이 그동안 주장해왔던 줄푸세가 "중대한 도전에 직면한 '원칙을 잃은 자본주의'"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다. 당연히 반성도 없다. 오히려 줄푸세가 경제민주화와 같은 맥락이라 오독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박근혜 후보의 시대인식은 몰역사적이다.

이 뿐 아니다. 그의 대표적 선거공약인 '100%국민 행복론'은 더욱 몰역사적인 주장이다. 지금 전 세계에서는 부를 독식하는 1%에 저항하는 99%운동이 확산되고 있다. 그런 마당에 100% 국민이라니, 왜일까? 정말 더 완벽한 국민행복을 강조하기 위해서일까? 아니다. 박근혜 후보는 100% 속에 1%를 슬쩍 합쳐버린 것이다.

'100%' 국민행복론을 들고 나온 진짜 이유는?

1%는 지금 시대를 설명하는 핵심어다. 1%는 1 대 99로 나눠진 지독히 불평등한 경제구조, 신자유주의가 만들어낸 심각한 폐해를 보여주는 말이다. 지금까지 99%에서 1%로 국민경제의 부가 지속적으로 착취되면서 우리사회와 세계 자본주의는 '1%에 의한, 1%를 위한 1%의 사회'가 되었다. 하지만 박근혜 후보의 100% 국민 속에서는 이런 진실이 드러나지 않는다.

때문에 박근혜 후보는 0.1% 재벌 대기업 집단과 슈퍼리치 고소득층으로부터 소득 재분배를 실현하여 경제 민주화를 하자는 부유층 증세를 반대한다.  '100% 국민행복론'으로 인해 내부의 분열과 양극화, 불평등은 감춰진다. 가해자도 독식자도 약탈자도 없어지고 마치 모두가 피해자인 것처럼 위장된다. 같은 방식으로 5.16에서 유신까지 박정희 독재에 대해서도 덮으려고 한다. 자신이 몸담은 새누리당 정권 5년의 과오도 무마하려 한다.

박근혜 후보가 진정 '국민행복'에 천착하려 한다면, 100% 속에 감춰진 1%, 아니 0.1% 재벌 대기업 집단과 기득권층의 각종 특혜와 이익의 편취에 대해 먼저 자각해야 한다. 현실부터 똑바로 봐야 한다는 뜻이다.

문재인 후보의 정권교체, 정치교체, 시대교체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는 공식적으로 단순한 정권교체를 넘어서 정치교체, 시대교체를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다. 일단 매우 긍정적으로 평가해야 마땅한 대목이다. 시대의 교체를 주장한다는 것은 노무현 정부를 포함하여 1997년 이후 15년의 신자유주의와 결별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자면 노무현 정부와 다른 시대를 만들겠다는 것을 구체적으로 말해야 한다. 문재인 후보는 그의 저서 <사람이 먼저다>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정치인 문재인은 정치인 노무현을 넘어서겠다고 말씀드립니다. 그가 멈춘 그곳에서, 그가 가다만 그 길을 머뭇거리지도 주춤거리지도 않고 갈 것입니다. 포기하지 말라던 그 강물이 되어 그가 꿈꾸던 바다에 닿을 것입니다."

그런데 노무현 정부도 역시 신자유주의 그늘 아래 있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특히 임기 중반이후 '금융허브 추진'이나 '한미 FTA' 추진은 가장 공격적인 의미의 신자유주의 정책을 자발적으로 강행했음을 보여준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그가 멈춘 곳에서, 그가 가다만 길"을 가서는 안 된다. 노무현 정부가 잘못 간 길은 무엇인지, 그래서 방향을 바꾸어 가야할 길은 무엇인지에 대한 뚜렷한 역사적 인식과 방향감각이 있어야 한다. 우리는 문재인 후보가 노무현 정부와 출발부터 다른 입각점에 서야할 지점이 어떤 것인지를 되돌아 보았으면 한다.

새로운 가치와 사회원리 제안했지만, 구체적 정책 부족

문재인 후보의 경우 신자유주의 붕괴의 역사적 전환기에 대한 인식에 더해서 승자 독식 이데올로기를 넘는 새로운 가치와 사회원리를 제안한 점도 눈에 띈다. 다음은 문재인 후보의 민주통합당 대선 후보 수락 연설문 중 일부이다.

"지금 우리는 '거대한 전환'의 시기를 맞고 있습니다. 기존의 사고, 과거의 낡은 방식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근본적인 문제들이 우리 앞에 놓여 있습니다. 지금까지 우리 사회를 지배해왔던 '경쟁', '승자독식', '강자지배'의 원리로는 빈부격차의 확대, 중산층과 서민들의 삶의 기반 붕괴, 중소기업과 자영업자들의 고통, 지역경제의 낙후, 경제성장의 잠재력 약화라는 악순환에서 빠져나올 길이 없습니다. (중략) 시대는 질서의 전환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경쟁과 효율'에서 '상생과 협력'으로의 전환입니다."

중요하게 평가할 대목이다. 그러나 이를 구체화한 정책과 구상이 뒤따라야 한다. 문재인 후보는 새로운 시대와 가치를 제안하는 것과 달리 아직은 공약 면에서 여타 후보들과 차별화가 되지 않고 있다. 예를 들어 그의 재벌개혁 및 경제민주화 공약은 그동안 나온 방안들을 반복할 뿐 새로운 경제질서수립과 연결되지는 못하고 있다. 문재인 후보는 시대교체에 대한 강한 의지를 갖고 있는 만큼 그 방안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것이 숙제로 남았다.

안철수 후보의  낡은 체제 청산과 미래가치

"자살률이 가장 높고 출산율이 가장 낮은 나라, 한마디로 지금 가장 불행하고 미래에 대한 희망이 없는 사회라는 얘기가 아닐까요? (중략) 사회적 약자의 인권을 외면하는 태도도 구체제이고, 성장과 효율성만을 앞세워서 경제력 집중과 양극화를 방치하는 것도 구체제이며, 청년들이 기회를 잃고 국민들이 불안에 떠는 현실을 도외시하는 것도 구체제라고 할 수 있죠."

안철수 후보가 자신의 저서 <안철수의 생각>에서 보여준 현실인식 대목이다. 핵심을 짚었다고 판단된다. 여기에 기반해서 안철수 후보는 낡은체제의 청산과 미래가치 실현을 주장한다. 박근혜, 문재인 후보와 달리 과거의 짐으로부터 자유로운 그가 강력히 주장할 수 있는 내용이다.

"지금 대한민국은 낡은 체제와 미래가치가 충돌하고 있습니다. 이제 낡은 물줄기를 새로운 미래를 향해 바꿔야 합니다. 국민들의 민의를 반영하지 못하는 정치 시스템, 빈부격차가 심해지고 일자리를 창출하지 못하는 경제 시스템, 계층 간의 이동이 차단된 사회시스템, 공정한 기회가 부여되지 않는 기득권 과보호구조, 지식산업시대에 역행하는 옛날 방식의 의사결정구조, 이와 같은 것들로는 미래를 열어갈 수 없습니다. 더 이상 이대로는 안 됩니다. 국민들은 이제 정치부터 바꿔야 한다고 이야기하십니다."

구체적 정책과 동력 마련해야

안철수 후보의 출마선언문 중 일부이다. 대한민국의 현실구조를 진단하면서 자신의 미래가치 비전을 설명하고 있다. 단연 안철수 후보는 지금 젊은 세대의 지지와 미래의 개념을 가장 강력하게 흡수하고 있는 대통령 후보다. 최근 한겨레 신문과 한국사회여론연구소의 조사를 보면 안철수 후보의 지지층 중 절반 이상인 53%가 20~30대이다. 반면 박근혜 후보의 지지자 중 20~30대 비중은 23.3%에 그친다.

그러나 그가 내세운 미래지향적 정책으로는 무엇이 있는지 아직 눈에 띄지 않는다. 출마선언에서 "정부 주도, 대기업 위주, 제조업 기반인 현재의 경제구조"를 바꾸겠다고 하며 혁신기반경제를 내세웠지만 지난 정부의 정책들과 무엇이 다른지 보이지 않는다. 안철수 후보는 자신의 삶과 존재로서 표현되는 젊은 세대와 미래의 상징성을 바탕으로, 실제 새로운 세대들의 에너지를 수렴하여 정치혁신의 동력으로 만들어야 할 숙제가 남았다.

여전히 굳건한 낡은 가치와 질서를 어떻게 깰 것인가?

그런데 새로운 가치나 새로운 시대는 빈 터 위에서 세워지는 것이 아니다. 낡은 가치와 낡은 시대의 질서를 해체하고 세워야 한다. 그 과정에서 낡은 가치를 대변하고 낡은 질서에서 이익을 보는 세력들의 강력한 저항이 따른다. 적지 않은 개혁들이 그 때문에 실패하게 되는 것이다.

특히 우리 앞에 놓여 있는 신자유주의 체제, 재벌중심의 독식체제는 비록 위기에 몰려 있다고는 하나 여전히 완고하게 버티고 있는 '낡은 체제'이며 여전히 전방위적으로 노동자와 시민을 압박하고 있는 체제이다. 한쪽에서는 세계화라는 이름으로, 그리고 다른 쪽으로는 기술혁신과 노동시장 유연화라는 이름으로, 또 다른 측면에서는 시장의 효율과 작은 정부론을 내세워 불평등과 양극화를 구조적으로 양산해왔고 지금도 그렇다.

이들 낡은 질서를 깨고 미래를 열기 위해서는 반대로 종합적이고 체계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대선 후보들이 제안하는 새로운 가치나 시대교체의 의지가 과연 낡은 가치와 낡은 질서를 깨는 강력한 무기가 될 수 있을까? 아직은 알 수 없지만 희망을 가지고 기대해본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새사연)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김병권 기자는 새사연 부원장입니다.



#2012 대선#박근혜 #안철수#문재인 #시대인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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