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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암사 승선교   아름다운 절집의 무지개다리
▲ 선암사 승선교 아름다운 절집의 무지개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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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는 마을과 마을, 마음과 마음을 잇는 소통의 도구다. 다리를 통해서 마을사람들의 정이 오간다. 정(情)은 불교에서 혼탁한 망상이라 한다. 같은 정이라도 민간과 불교에서는 달리 받아들여진다. 일반 백성들에게 다리는 정이 오가는 소통의 수단이지만 불교, 절집의 다리는 정을 떨치는 곳이다.

절집의 다리는 상징성을 띠고 있다. 차안(此岸)과 피안(彼岸), 속계와 선계를 이어주기도, 구분하기도 한다. 다리를 건너면서 더럽고 추잡한 생각을 떨치게 되어 마음이 가벼워지고 깨끗해진다.

절의 경내로 들어서려면 다리 한둘은 건너게 된다. 서산 개심사와 같이 외나무다리를 건너는 경우도 있지만 대개 홍예교를 건너게 된다. 홍예교(虹霓橋)는 순우리말로 무지개다리를 말하는데 이름만큼이나 예쁘기도 하다. 물에 비치어 완전한 원이 되기고 하고 정자나 누각이 다리 밑에 비치어 운치를 자아내기도 한다. 남한 땅, 제일 북쪽인 건봉사 능파교에서 여수 흥국사의 홍교까지 퍼져 있어 어느 한 곳에 국한하여 유행한 스타일은 아니었다.
 
건봉사 능파교 능파교에서 욕심, 미련, 집착을 모두 버리고 가벼운 마음으로 부처님 곁으로 간다
▲ 건봉사 능파교 능파교에서 욕심, 미련, 집착을 모두 버리고 가벼운 마음으로 부처님 곁으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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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 땅 최북단에 자리한 건봉사. 이름도 금강산건봉사다. 금강산 일만이천봉의 한 줄기가 남서로 뻗어 이곳 건봉사에 이르렀다. 금강산은 건봉사의 뒷산인 셈이다. 멀리 금강산에서 출발한 물줄기는 건봉사를 극락전과 대웅전 영역으로 나눈다. 계류를 건너 대웅전으로 가려면 능파교를 건너야 한다.

능파(凌波)는 물결 위를 가볍게 걸어 다닌다는 뜻으로 미인이나 신선의 가볍고 아름다운 걸음걸이를 말한다. 무지개다리 위에서는 모두 미인이나 신선이 된다. 능파교를 건너면 세속의 때나 욕심, 미련, 집착을 모두 버리게 된다. 몸은 가벼워지고 걸음걸이도 가뿐하여 사뿐히 부처님 곁으로 다가서게 된다.

건봉사 능파교 능파교위에서는 누구나 신선이 된다
▲ 건봉사 능파교 능파교위에서는 누구나 신선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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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백산맥 끝자락 조계산 서쪽에 송광사가 자리 잡았다. 그 조계산에서 흘러온 물은 절 곁을 지나 극락교 밑을 지난다. 무지개다리 하나만으로 부족했는지 그 위에 청량각을 세웠다. 송광사에 들기 전에 청량각 의자에 앉아 극락교 밑을 흐르는 계류에 몹쓸 때를 씻어내라는 의미일 게다.

송광사 극락교·청량각  청량각에 앉아 극락교 밑을 지나는 물에 세속의 때를 씻어낸다
▲ 송광사 극락교·청량각 청량각에 앉아 극락교 밑을 지나는 물에 세속의 때를 씻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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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광사 본당에 들려면 극락교에 이어 다리 하나를 더 건너야 한다. 삼청교·우화각이다. 삼청교는 무지개다리이고 우화각은 삼청교 위에 지은 누각이다.

우화각에서 우화(羽化)라는 말은 번데기가 날개 돋은 성충이 되듯 사람의 몸에 날개가 돋아 하늘로 올라가 신선이 된다는 뜻으로 소동파의 <적벽부> "우화이등선(羽化以登仙)"에서 따온 말이다. 속계에서 선계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몸과 마을을 깃털처럼 가볍게 하여 순수한 마음을 가지라는 의미이다.

송광사 삼청교·우화각 신선이 노니는 곳답게 풍광이 수려하다
▲ 송광사 삼청교·우화각 신선이 노니는 곳답게 풍광이 수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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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청교 아래 임경당은 두 다리를 물속에 담그고 있고 삼청교 위의 건물인 침계루는 이름과 같이 계곡을 베개 삼아 누워 있다. 삼청교의 무지개는 물속에 비쳐 원형무지개가 되었다. 임경당, 침계루, 삼청교와 우화각이 빚어낸 풍광은 한 폭 그림 같다.

송광사 삼청교·우화각  우화각은 누각보다 이름이 더 예쁘다
▲ 송광사 삼청교·우화각 우화각은 누각보다 이름이 더 예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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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청교에서 삼청(三淸)이란 도교에서 신선이 산다는 옥청(玉淸)·상청(上淸)·태청(太淸)의 세 궁(宮)을 일컫는 것으로 이곳은 과연 신선이 노니는 곳답게 풍광이 수려하다. 우화, 삼청, 침계는 이곳 풍광만큼이나 이름도 멋지다.

선암사 승선교 쌍무지개 뜬 것 같다
▲ 선암사 승선교 쌍무지개 뜬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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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암사 길은 깊다. 계곡도 깊어 물소리도 방정맞지 않고 깊은 여운을 남긴다. 계곡길을 따라 걷다보면 계류를 건너는 무지개다리가 보인다. 하승선교(下昇仙喬) 혹은 아래 승선교라 불리는 작은 승선교와 큰 승선교 둘이 있다. 아래 승선교에서 위 승선교를 보면 쌍무지개가 뜬 것같이 아름답다. 

선암사는 작은 승선교-큰 승선교-강선루를 거쳐야 제 맛이다. 강선루로 곧바로 가는 큰길이 있지만 아름다운 승선교를 보고 그냥 지나치는 사람은 없다. 다리 아래에서 물에 비친 강선루를 보면 여기가 선계인가, 속계인가 가늠하기 어렵다.

선암사 강선루 선암사 강선루와 선암사 길
▲ 선암사 강선루 선암사 강선루와 선암사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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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선이 내린 바위라 하여 선암사(仙巖寺)라 하였던가. 선암사는 유독 신선과 관련이 깊다. 강선루(降仙樓), 승선교(昇仙橋) 모두 신선과 관련 있다. 이름으로도 신선이 노니는 장면을 그려볼 수 있다. 송광사 우화각(羽化閣)에서 하늘로 올라 신선이 되어(羽化登仙) 조계산 건너편 선암사 강선루에 내려((降仙) 승선교에서 노닐다 올라간다(昇仙).

불국사 청운교·백운교  직선으로 된 계단의 딱딱함을 무지개다리의 곡선이 누그러뜨리고 있다
▲ 불국사 청운교·백운교 직선으로 된 계단의 딱딱함을 무지개다리의 곡선이 누그러뜨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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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국사 경내로 들어서면 긴 석축이 보인다. 석축은 천계와 범부의 세계를 구분하는 벽이다. 석축 위가 천상의 세계요, 아래가 범부의 세계다. 부처님의 나라, 불국으로 오르기 위해서는 다리를 건너야 한다. 청운교·백운교다. 계단길, 청운교·백운교를 건너 자하문을 거쳐 피안의 세계로 들어가게 된다. 부처의 세계는 멀고도 험하여 물을 건너고 푸르고 흰 구름을 헤쳐 나아가야 한다는 점을 상징적으로 표현하였다.

청운교와 백운교는 33계단으로 이루어졌다. 33계단은 33천, 수미산의 정상에 위치한 도리천을 상징한다. 위쪽 16계단이 백운교이고 아래 17계단이 청운교다. 청운교 밑에는 예쁜 무지개다리가 있다. 직선으로 된 계단의 딱딱함을 무지개다리의 곡선이 누그러뜨리고 있다.

지금은 청운교·백운교 아래에 물이 없어 상징성을 띤 다리로 받아들여지지만 예전엔 실제로 물을 건너는 다리였다. 청운교·백운교 아래에 구품연지라는 연못이 있었다 전해지는데, 석축 가운데 있는 수구는 이 연못에 물을 대기 위한 장치로 보인다. 소나기 온 뒤, 수구 밑에서 일어나는 물보라는 햇빛에 반사되어 자줏빛 노을(자하, 紫霞)이 되기라도 하면 여기는 전설로만 여겨지는 신선이 사는 선계가 아니라 현실 속 선계였을 것이다. 

흥국사 홍교 홍교는 공업도시, 여수에서 좋은 쉼터다
▲ 흥국사 홍교 홍교는 공업도시, 여수에서 좋은 쉼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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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 영취산 흥국사를 찾아가는 길은 공업단지를 거쳐야 하므로 번잡하다. 그러나 흥국사 홍교를 건너면 분위기는 아주 달라진다. 홍교는 영취산에서 흘러내린 계류를 건너가는 무지개다리다.

이 계류는 여러 갈래 물줄기가 한데 모여 흐르므로 제법 크다. 흥국사 홍교는 절집의 무지개다리 중에 제일 크다. 홍교는 여름철 여수 시민의 한낮 쉼터로 시민들에게 매우 친숙한 곳이다. 공업도시인 여수에서 안식처와도 같은 다리다.

홍교는 인조 17년(1639년)에 세워져, 다른 홍예교보다 시기적으로 빠른 편에 속한다. 제일먼저 세워진 홍예교는 불국사 홍예교로 통일신라시대에, 선암사 승선교는 숙종24년(1698년), 송광사 삼청교·우화각은 숙종 26년(1700년), 건봉사 능파교는 숙종 30년(1704년)에 세워졌다. 흥국사 홍교를 제외하면 모두 숙종 때 세워진 것으로 그 당시 하나의 유행처럼 된 것은 아닌가 싶다.

절집의 무지개다리는 혼탁한 망상을 떨치고 차안에서 피안의 세계로, 범부에서 불국의 세계로 넘어가는 상징적 다리이다. 그러면서도 각 절집의 무지개다리는 주변의 풍광과 계류의 물색, 절집의 분위기, 무지개다리의 이름에 따라 표정이 달라진다. 불국사의 엄숙한 무지개다리는 선암사의 신비로운 무지개다리와 어울리지 않는다. 절집의 무지개다리는 각각 표정이 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pressianplus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홍예교#무지개다리#능파교#청량각#우화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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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不自美 因人而彰(미불자미 인인이창), 아름다움은 절로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사람으로 인하여 드러난다. 무정한 산수, 사람을 만나 정을 품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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