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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신봉승 작가 신봉승(80). 그가 ‘이성계의 위화도 회군’이라는 덧글이 붙은 정통역사소설 <혁명의 조건>(도서출판 선)을 펴냈다
▲ 작가 신봉승 작가 신봉승(80). 그가 ‘이성계의 위화도 회군’이라는 덧글이 붙은 정통역사소설 <혁명의 조건>(도서출판 선)을 펴냈다
ⓒ 도서출판 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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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경 밖에는 불빛이요
안주성 밖에는 연기로세
그 사이를 왕래하는 이원수(李元帥)여
원하건데 백성들을 구제하소.

-'목자득국', 소설집 111쪽

시, 에세이, 소설, 문학평론, 시나리오, 희곡 등 장르를 가리지 않고 숱한 작품을 쏟아내고 있는 작가 신봉승(80). 그가 '이성계의 위화도 회군'이라는 덧글이 붙은 정통역사소설 <혁명의 조건>(도서출판 선)을 펴냈다. 우리 나이로 올해 팔순이지만 조금도 지치지 않는 창작혼을 지닌 신봉승. 그가 우리 역사를 씨실과 날실로 파헤치는 소설은 언제 읽어도 늘 새롭게 다가선다.  

한 나라를 이끄는 지도자들은 그 시대가 낳는 것일까. 한 시대 정치를 주무른 지도자들이 살아낸 삶과 그들이 남긴 역사는 지금 우리 시대를 이끄는 지도자들과 무엇이 다를까. <혁명의 조건>은 위화도 회군으로 정권을 잡은 이성계가 살았던 고려 끝자락에 일어났던 보수와 진보 사이에 있었던 생사를 건 혈투를 실록에 바탕을 두고 쓴 정통역사소설이다.      

모두 17꼭지에 담긴 이 역사소설은 쿠데타와 혁명 그 차이가 무엇인지, 그때 지도자들은 어떤 당근(?)을 내밀고 정권을 잡을 수 있었는지 확실하게 보여주고 있다. 이 이야기는 지금 코앞에 다가온 대선을 앞두고 새누리당 박근혜 대선후보가 펼치고 있는 전략과 전술, 민주당 문재인 대선후보와 무소속 안철수 대선후보 사이에 벌어지고 있는 단일화 등이 지닌 속내까지 빗댈 수 있다.

'비 내리는 위화도', '정명론', '꼬이는 정국', '위장 전술', '목자득국', '마침내 회군',  '사느냐 죽느냐', '역전극', '창왕', '혼선', '꿈틀거리는 파도', '겨울의 불꽃', '왕 씨를 임금으로', '불타는 사전', '임종, 그 한', '선죽교', '새 왕조 탄생' 등이 그것. 

11월 19일 월요일 낮 12시. 종로구 인사동에 있는 한 음식점에서 만난 작가 신봉승은 "우왕은 공민왕 아들로 반야가 낳은 것이라는 주장도 있고, 신돈 아들이라는 주장도 있지만 나는 신돈 아들이라는 주장이 맞다고 본다"고 말문을 연다. 그는 "창왕은 우왕 아들이 맞다"라며 "이성계가 위화도 회군으로 정권을 주무르다 조선을 세운 것도 이러한 과정(왕 씨가 아닌 신 씨가 잠시 잡은 정권)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본다"고 귀띔했다.

그는 "이성계가 고려 끝자락에 모든 정권을 다 쥐고서도 3년 동안이나 왕위에 오르는 것을 사양한 것은 그 당시 여러 갈래로 복잡하게 얽혀 있는 다급한 정치상황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이는 곧 "쿠데타를 혁명으로 만들기 위해 이성계를 따르는 여러 학자들이 그렇게 기록한 것이라고 본다"는 것이다.       

혁명과 쿠데타, 그 차이는 무엇일까

신봉승 <혁명의 조건> 이 역사소설은 쿠데타와 혁명 그 차이가 무엇인지, 그때 지도자들은 어떤 당근(?)을 내밀고 정권을 잡을 수 있었는지 확실하게 보여주고 있다
▲ 신봉승 <혁명의 조건> 이 역사소설은 쿠데타와 혁명 그 차이가 무엇인지, 그때 지도자들은 어떤 당근(?)을 내밀고 정권을 잡을 수 있었는지 확실하게 보여주고 있다
ⓒ 도서출판 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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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계가 앉게 된 용상은 어느 나라의 임금이 앉는 자리인가. 엄격하게 따진다면 공양왕의 뒤를 이은 고려 왕조의 용상임이 분명하질 않던가. 그러나 방원을 비롯한 그를 추종하는 세력들은 새 왕조가 창업되었다고 믿고 있다. 그렇다면 새 왕조의 이름은 무엇인가. 아직은 정해진 것도, 논란된 일도 없다."

- '새 왕조 탄생', 같은 책 482쪽

이성계는 위화도 회군을 한 뒤 모든 권력을 쥐고도 왜 3년이나 왕위에 오르지 않았다고 기록되어 있는 것일까. "사전에 적힌 바에 따르면 이성계 장군이 고려왕조의 주궁인 수창궁을 에워싸고, 라이벌 최영 장군을 죄인으로 단죄하는 것을 기화로 왕위까지 찬탈하였다면 그의 행적은 쿠데타"가 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혁명과 쿠데타, 그 차이는 무엇일까. 정말 백지장 한 장에 불과한 것일까. 신봉승은 "혁명이냐 쿠데타냐를 가늠하는 사전적인 해석은 비교적 단순하다"고 귀띔한다. "혁명은 '①헌법의 범위를 벗어나서 국가의 기초, 사회의 제도, 경제의 조직을 급하게 근본적으로 고치는 일 ②이전의 왕통(王統)을 뒤집고 다른 왕통이 대신하여 통치자가 되는' 것이다, 쿠데타는 '지배 계급 내의 일부 세력이 무력에 의해 정권을 비합법적으로 빼앗는 일'"이라는 것.

오백년 도읍지를 필마로 돌아드니
산천은 의구한데 인걸은 간데 없네
어즈버 태평연월이 꿈이런가 하노라

- '새 왕조 탄생', 같은 책 483쪽

이 시조는 "친구 이성계의 간곡한 소청까지 사양한" 야은 길재가 고려가 망하는 모습을 바라보며 남긴 글이다. 야은 길재는 이 시조를 남긴 뒤 경상도 상주 땅으로 모습을 감추었다. 이성계는 비록 고려를 무너뜨리고 조선을 세웠지만 야은 길재는 물론 목은 이색을 비롯한 가까운 지식인들을 몽땅 잃어야 했다. 이 이야기를 하는 까닭은 이번 대선을 놓고 대선후보들이나 유권자들이 서로 티격태격하다가 가까운 벗이나 지식인들을 잃지 말라는 뜻에서다. 
 
아무리 잘 짜여진 픽션도 사실(史實) 능가할 수 없다

"소설 <혁명의 조건>은 위화도 회군을 단행한 이성계가 평생의 은인이나 다름이 없는 최영 장군을 처단하고, 고려 말 부패의 원천인 전제의 개혁을 완결하면서 새 왕조를 창업하여 왕위에 오르는 과정을 되도록 픽션(虛構)을 배재하고 사실에 근거하여 집필했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인물은 실제의 인물이며, 그들 주변에서 일어나는 음모, 배신 등의 이합집산까지도 역사적 사실에 근거하고 있다."

신봉승은 "아무리 잘 짜여진 픽션도 사실(史實)을 능가할 수는 없다"고 힘주어 말한다. 그는 "이 소설을 읽음으로써 고려 말의 정사(正史)를 정확하게 살필 수 있는 실리도 챙길 수가 있고, 또 소설을 읽는 재미까지도 만끽할 수 있으리라고 확신한다, 오랜 세월 동안 대하 역사드라마와 실록 대하소설을 써 온 필자에게는 사실과 픽션의 관계에 확실한 기준을 세워 두지 않을 수가 없었다"고 말했다.

신봉승 역사소설 <혁명의 조건>은 오는 12월 19일 새로운 대통령을 뽑는 선거를 앞두고 있는 지금, 지나간 고려 끝자락 역사를 통해 현재를 새롭게 바라보게 하는 대선 길라잡이라 할 수 있다. 이 책은 이성계가 조선을 세우는 과정에서 싸우는 보수와 진보, 그 지루하고 피 말리는 싸움이 역사 속에서만 있었던 일이 아니라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새롭게 일깨운다.    

작가 신봉승은 1933년 강릉에서 태어나 1960년 <현대문학>에 시와 문학평론을 추천받아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역사소설로는 <대하소설 조선왕조 5백년>(전 48권), <난세의 칼>(전 5권), <임금님의 첫사랑>(전 2권), <이동인의 나라>(전 3권), <소설1905>(전 2권) 등이 있으며, 시집 <초당동 소나무떼><초당동 아라리>를 펴냈다.

역사에세이로는 <역사 그리고 도전><양식과 오만><문묘 18현><조선의 마음><직언><일본을 답하다>가 있으며 <TV드라마 시나리오 창작의 길라잡이>, 자전적 에세이 <청사초롱 불 밝히고> 등이 있다. 한국시나리오작가협회 회장, 대종상, 청룡상 심사위원장, 공연윤리위원회 부위원장, 1999년 강원국제관광EXPO 총감독 등을 맡았다. 지금은 대한민국 예술원 회원, 추계영상문예대학원 석좌교수를 맡고 있다. 한국방송대상, 서울시문화상, 위암 장지연상, 대한민국 예술원상, 보관문화훈장을 받았다.

덧붙이는 글 | [문학in]에도 보냅니다



혁명의 조건 - 이성계의 위화도 회군

신봉승 지음, 선(2012)


#신봉승#도서출판 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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