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혜화동 재능교육 본사 앞 백배서원 6월 11일 오전 8시 반, 혜화동 재능교육 본사 앞에서 재능교육 노조와 민주노총이 백배서원(소원을 정하고 하는 절)을 하고 있다.
▲ 혜화동 재능교육 본사 앞 백배서원 6월 11일 오전 8시 반, 혜화동 재능교육 본사 앞에서 재능교육 노조와 민주노총이 백배서원(소원을 정하고 하는 절)을 하고 있다.
ⓒ 여민희

관련사진보기


건너편 혜화동 재능교육 본사 앞, 절을 하는 사람들이 평소보다 많아 보였다. 내 앞에 두 명, 오수영(40)과 여민희(41)도 텐트에서 나와 절을 시작했다. 이들은 40일 전부터 매일 아침마다 백배서원(소원을 정한 후 하는 절)을 해왔다. 백배가 끝나자 건너편 쪽에서는 재능교육을 비판하는 기자회견을 시작했다. 마이크 속 음성은 오늘(11일)이 재능교육 노조의 농성 2000일이라고 알려줬다. 수영과 민희가 내 앞에, 혜화동 성당 종탑 지붕으로 올라온 지는 126일째다.

1960년 이후부터 나는 혜화동 성당 종탑 끄트머리에 몸을 붙인 채, 이곳 십자가로 살아왔다. 관리인들이 청소하러 일 년에 한두 번 오는 것을 빼곤, 이곳을 찾은 사람은 수영과 민희가 처음이었다. 이곳에 이렇게 오래 머문 이들도….

혜화동 성당 종탑에 달린 십자가 2013년 2월 6일, 여민희씨가 혜화동 성당 종탑을 기어 올라가 처음 만난 십자가.
▲ 혜화동 성당 종탑에 달린 십자가 2013년 2월 6일, 여민희씨가 혜화동 성당 종탑을 기어 올라가 처음 만난 십자가.
ⓒ 여민희

관련사진보기


눈 오는 2월, 25m 높이 종탑 위로 올라온 이들

재능교육 사태는
재능교육 노조는 해고자 전원복직(사망자 1인 포함) 및 노조 인정, 단체 교섭 체결을 요구하며 현재 사측을 상대로 농성 중이다.  2007년 12월부터 시작된 농성은 2000일을 넘어섰다.

재능교육은 작년 8월에 노조원들이 먼저 회사에 복귀하면 이후 문제를 논의하겠다는 협상안을 제시했다. 회사측 관계자는 "해고자들이 재계약으로 선생님 신분을 회복해야 그 후 상황을 진정시킬 수 있다"고 밝혔다.

노조는 단체교섭 체결을 선 조건으로 협의안을 거부하고 있다. 노조원 여민희씨는 "사회적 합의가 있던 한진 사태도 제대로 처리가 안되는데, 단체 교섭 없이 회사에 들어간다면 지금 약속한 것들이 뒤집힐 수 있다"고 말했다.
펑펑 쏟아진 눈이 내 몸과 종탑 지붕에 하얗게 앉았던 지난 2월 6일, 누군가 바닥을 열어젖히고 위로 올라왔다. 그때 민희를 처음 봤다.

이곳에 오려면 종탑 안쪽 벽에 박힌 쇠 턱을 붙잡은 채, 2층 정도 높이를 기어 올라와야 한다. 25m 높이 종탑에 젊은 여인이 무슨 일일까.

뒤를 이어 수영이 올라왔다. 민희는 주위를 둘러보더니, "잘 온 것 같아, 잘 될 같아"라고 말했다. 무슨 말이지? 나중에 수영에게 하는 말을 들어보니, 비록 종교는 없지만 십자가를 보고 희망을 느꼈다고 한다.

지난 53년 간, 수많은 사람들이 십자가인 나에게 평화와 구원의 기도를 올려왔다. 이 두 여인은 아래에서 비는 것으론 충분하지 않았던 걸까, 눈 쌓인 겨울날 이곳에 올라온 이들이 안쓰러웠다. 나중에야 알았다. 이들이 여기 온 이유는 재능교육 본사가 건너편에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이들은 재능교육이란 학습지 회사의 교사들이었고, 해고된 이후 부당함을 호소하며 농성을 이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농성이 1874일째 되는 날 성당 종탑으로 올라왔다. 얼마나 억울하면 이곳까지 왔을까…. 비록 해줄 수 있는 것은 없었지만, 그래도 내가 몸 담은 성당으로 이들이 온 게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적어도 언제 텐트가 철거될지 모른다는 두려움으로부턴 이들을 보호할 수 있으리.  

민희와 수영은 눈 쌓인 종탑 지붕에서 텐트를 치기 시작했다. 난간도 없는 이곳에서 눈에 미끄러지면 어쩌나, 걱정스러웠다. 지붕에 올라와 있는 못 군데군데 줄을 걸어 4인용 텐트를 완성했다. 그렇게 이들과의 동거가 시작됐다. 눈이 많이 온 날이면 민희와 수영은 텐트 밖으로 나오지 못했다. 대신 건너편 재능교육 본사 앞으로 이들을 응원하는 사람들이 오기 시작했고, 기자들도 종종 올라와 이들의 사연을 전하고 내려갔다.

처음에는 이들이 금방 내려가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한 달쯤 지나고 보니 그게 아니었다. 수영의 전화 통화를 들었다. 수영의 아들, 초등학교 2학년 채윤은 "엄마, 한 달 지났는데 왜 못 와?"라고 물었다. 수영은 한 달 있다 돌아가리란 편지를 아들에게 남겼다고 했다. "일이 풀리려면 좀 더 힘을 모아야 하는데 아직 힘을 못 모아서, 엄마가…"라며 수영은 뒷말을 잇지 못했다. 그녀의 눈가가 빨개졌다. 아들이 보고 싶은 게 분명한데 그녀는 내려가지 않았다. 오히려 구호를 외치며 버텼다. 재능교육은 노조를 인정하고 단체협약을 체결하며, 해고자 전원을 복귀시키라는 구호를 매일매일 외쳤다.

밤에는 소형 난로 위에 앉아 재능교육 쪽을 하염없이 바라봤다. 난로 속에 촛불을 넣고 그 위에 앉아 추위를 피했다. 난로 옆면에 나있는 하트, 마름모꼴 모양 구멍을 통해 촛불이 흘러나왔다. 그 빛이, 그들과 나와 밤을 밝혔다. 어느 때엔 아름다웠다. 그리고 어느 때엔 슬퍼 보였다. 너무나도. 솔직히 말하면 그 긴긴 겨울밤, 이들과 함께 있어서 덜 외로웠다. 하지만 그들의 처연한 모습을 보며, 더 이상 가만히 있을 순 없었다. 항상 기도를 받기만 했지만, 이번엔 내가 간절히 기도하게 됐다. 이들이 빨리 내려갈 수 있기를. 그렇게 그녀들의 겨울이 지나고, 봄이 왔다. 

혜화동 성당 종탑 지붕에서 보는 재능교육 본사 사진 아래 쪽의 여민희 씨와 오수영 씨가 머무는 갈색 텐트 너머로 재능교육 본사가 보인다.
▲ 혜화동 성당 종탑 지붕에서 보는 재능교육 본사 사진 아래 쪽의 여민희 씨와 오수영 씨가 머무는 갈색 텐트 너머로 재능교육 본사가 보인다.
ⓒ 곽승희

관련사진보기


여름이 온다. 겨울에 썼던 초가 녹았다

봄이 왔으나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다. 이들의 종탑 농성이 시작된 지 49일째, 민희는 절을 하기 시작했다. 예전 제주 강정에서 백배서원을 했을 때처럼 마음의 평화를 찾기 위해서였다. 수영과 다른 조합원들도 백배서원에 동참했다. 조합원들의 염원을 모아 소원문도 만들었다. 그러데 의도와 달리 민희의 마음은 안정되지 않아 보였다. 그녀는 절을 하다가도, 가끔은 멍하니 앉아 있고 가끔은 눈물을 흘렸다. 민희는 "이전과 달리 절을 할 때마다 온갖 걱정거리, 노조를 둘러싼 문제가 떠오른다"며, 수영과 속도를 맞추지 못하는 것을 미안해했다. 혼자 조용히 울고 있는 그녀를 보며, 눈물을 닦아 주고 싶었다.

수영 역시 계속 아들에게 미안해할 수밖에 없었다. 전화 속 아이는 "5월에는 내려올 수 있어?"라고 물었다. 수영은 "안될 것 같아"라고 답했다. "해결도 못할 거면서 거기 왜 있어, 내려와"라는 아이의 화난 목소리에 수영은 또다시 말을 잇지 못했다. 마음으로라도 그들을 토닥여주고 싶었지만, 나 역시 어떤 말을 해야 할 지 생각나지가 않았다.

재능교육과 그녀들 종탑 지붕에서 재능교육 본사를 내려보는 재능교육 노조원 오수영 씨와 여민희 씨
▲ 재능교육과 그녀들 종탑 지붕에서 재능교육 본사를 내려보는 재능교육 노조원 오수영 씨와 여민희 씨
ⓒ 곽승희

관련사진보기


노사 협상이 진행될 기미는 보이지 않은 채 여름이 오고 있다. 30도까지 올라간 며칠 전, 겨울에 썼던 난로 속 초가 녹은 채로 흘러나왔다. 한낮에는 태양이 너무 뜨거워서, 저녁에야 이들의 얼굴을 볼 수 있다. 해가 지고 시원해져도 벌레를 무서워하는 민희는 여전히 텐트 밖으로 나오기 어렵다. 더위와 더불어 좁은 공간에 단 둘이 있는 것도 이들을 힘들게 만드는 요소다. 민희와 수영 모두 서로 예민해져 있을 때는 대화를 하지 않는다. 이들의 심각한 대화를 들어본 지도 오래됐다.

매일매일 환자용 패드로 대소변을 해결하는 것 역시 이들을 지치게 만든다. 이들이 가장 견디기 힘든 것은 인터넷에 올라오는 정체를 알 수 없는 비방글이다. 재능교육 노조 사이트를 관리하는 수영의 입에서 요즘 들어 험한 말이 자주 나온다. 페이스북이나 SNS를 관리하는 민희의 얼굴이 자주 어두워진다.

그나마 민희와 수영이 버틸 수 있는 이유는 이들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매일 아침 나머지 노조원들이 건너편 재능교육 본사 앞에서 문제 해결을 바라며 절을 한다. 같은 해고자 처지라 그 심정을 알아서인지, 근처에 사는 전교조 해고 교사가 아침 겸 점심으로 집밥을 챙겨 온다. 종탑 내부 계단 끝에서 밧줄로 밥통을 묶어 신호하면 민희와 수영이 당겨 올린다.

현미와 콩, 찹쌀이 들어간 밥을 보며 민희는 "진짜 집밥을 먹는 것 같다"며 고마워했다. 노조 동료들은 저녁쯤 먹을거리를 사들고 온다. 매주 화요일에는 건너편 재능교육 본사 앞으로 예술가들이 찾아온다. 함께 시를 읽고 노래를 부르며 민희와 수영을 응원했다. 민희와 수영도 함께했다. 민희는 김남주 시인의 <자유>를, 수영은 종탑 위에 올라온 벚꽃잎과 모기를 보고 쓴 자작시를 읽었다.

며칠 전 찾아온, 민주노총 지도위원이라는 김진숙씨 역시 이들을 위로해주는 사람 중 하나다. 한진중공업 크레인 위에 올라갔던 그는 "아래에선 단식도 하고 삭발도 할 수 있지만, 고공은 내가 잘 버티느냐, 아니면 정말 죽어야 하냐, 이 생각을 갖게 된다"며 비슷한 경험을 했던 자신의 과거를 들려줬다. 아무도 모를 것 같던 마음을 알아준 그 덕분에 민희와 수영의 마음이 많이 풀린 것 같았다. 

두 사람이 속한 재능교육 노조가 농성을 시작한 지 2000일째인 오늘, 평소보다 백배서원을 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이곳 종탑에도 평소보다 많은 기자들이 다녀갔다. 오후에는 여러 가지 문화제도 열리고 저녁에는 재능노조를 응원하는 결의대회도 열린다. 그렇게 하루가 지나 내일이 되면, 재능교육 노조의 농성기간은 2001일, 종탑 위 시간도 127일로 늘어난다. 수영이 아들을 보지 못하는 시간도, 민희가 텐트 안에 숨어 있는 시간도 그만큼 늘어난다. 그리고 이제 곧 폭염과 폭우가 들이닥칠 것이다.

재능교육 노조와 혜화동 성당 십자가 전국학습지산업노동조합 재능교육지부 소속 해고노동자인 여민희(41)씨와 오수영(40)씨가 2월 6일 서울 종로구 혜화동 재능교육 본사 맞은편 혜화동성당 종탑에 올라가 해고자 전원 복직과 단체협약 원상회복을 요구하며 고공농성을 벌이고 있다.
▲ 재능교육 노조와 혜화동 성당 십자가 전국학습지산업노동조합 재능교육지부 소속 해고노동자인 여민희(41)씨와 오수영(40)씨가 2월 6일 서울 종로구 혜화동 재능교육 본사 맞은편 혜화동성당 종탑에 올라가 해고자 전원 복직과 단체협약 원상회복을 요구하며 고공농성을 벌이고 있다.
ⓒ 이주영

관련사진보기




#재능 교육 노조#재능 사태#재능 교육#종탑 농성#혜화동 성당
댓글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1,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