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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5일부터 12일까지 학생 한 명과 인솔 교수 두 명이 이키시마 섬과 규슈 중부 지역을 사전 방문하고, 8월 31일부터 9월 8일까지 학생 9명과 인솔 교수 세 명이 규슈 중부 지역과 아마미오시마 섬을 찾아서 민속 답사여행을 했습니다. 이 두 여행을 통해서 보고 느끼고 겪은 일들을 '규슈기행'이라는 제목으로 정리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몇 차례 더 이어집니다. - 기자 말

   지금의 가고시마에서 출발한 시마즈 군대의 한반도 이동 경로(빨강색은 임진왜란, 푸른 색은 정유재란)입니다.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전 규슈의 세력 지도입니다. 맨 아래 지금의 가고시마의 사츠미한의 시마즈가 가장 넓은 세력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지금의 가고시마에서 출발한 시마즈 군대의 한반도 이동 경로(빨강색은 임진왜란, 푸른 색은 정유재란)입니다.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전 규슈의 세력 지도입니다. 맨 아래 지금의 가고시마의 사츠미한의 시마즈가 가장 넓은 세력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 박현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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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 오후 일본 규슈 남쪽 가고시마시 역사 자료 센터 레이메이칸(黎明館)을 찾았습니다. 가고시마현은 옛날 사츠마한(薩摩蕃)이 자리를 잡았던 곳으로 한반도와 중국과 뱃길을 통해서 자주 교류했던 곳입니다. 특히 임진왜란이나 정유재란 때에는 도요토미의 명령으로 이곳 시마즈(島津)가 군인 1만 명 이상을 이끌고 한반도로 진격하여 많은 도공을 끌어가기도 했습니다.

가고시마현은 규슈 맨 아래쪽에 있습니다. 이곳 가고시마시는 남쪽 아마미오시마 섬이나 오키나와 섬으로 가는 배들이 떠나는 곳입니다. 일본 다른 곳에서도 가지만 육지 부두와 가장 가까운 곳입니다. 이곳에서 뱃길로 아마미오시마 섬까지는 389km로 11 시간이 걸리고, 오키나와 섬 나하시까지는 675km로 25시간이 걸립니다.

   다노가미 신상입니다. 생김새나 재질은 다르지만 벼농사의 풍요를 기원하는 사람의 마음은 같았습니다. 다노가미 신상입니다. 돌로 만든 것으로 시루를 뒤집어쓰고 있습니다.
 다노가미 신상입니다. 생김새나 재질은 다르지만 벼농사의 풍요를 기원하는 사람의 마음은 같았습니다. 다노가미 신상입니다. 돌로 만든 것으로 시루를 뒤집어쓰고 있습니다.
ⓒ 박현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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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고시마시는 규슈 남쪽에 있는 지방으로 주위가 바다로 둘러싸여 있고 오래전부터 화산활동이 활발한 곳입니다. 시내 박물관에는 화산 활동으로 흘러나온 용암 가운데 유리성분이 굳어서 생긴 흑요석이 전시 되어 있었습니다.

흑요석은 날카롭기 때문에 옛날부터 칼로 이용하였고, 화살촉을 만들어 싸울 때 무기로도 사용하셨습니다. 특히 한반도 동해안 양양 지방에서 발견된 흑요석으로 만든 수술용 칼은 일본에서 온 것으로 그때 한반도에서는 조개와 바꾼 것으로 추정됩니다. 

가고시마현은 규슈 남쪽 땅과 다시 남쪽으로 바닷가 여러 섬으로 이루어 졌습니다. 이곳 메이레이칸 박물관에는 이곳의 역사, 문화, 사는 법 등에 대한 자료가 많았습니다. 특히 이곳에서 많이 볼 수 있는 섬사람들의 생활과 문화와 관련된 전시품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이곳에서는 다노가미라고 하는 밭의 신을 섬깁니다. 다노가미 신은 논을 지켜주고 벼농사의 풍작을 가져다주는 신입니다. 다노가미의 신상은 논둑이나 논이 내려다보이는 산기슭, 물 구멍, 집 안 등에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다노가미 신상은 뒷모습(오른쪽)이 남자 성기를 닮았습니다. 아마도 생산을 동일시해서 생긴 주술적 사고방식의 결과로 보입니다.
 다노가미 신상은 뒷모습(오른쪽)이 남자 성기를 닮았습니다. 아마도 생산을 동일시해서 생긴 주술적 사고방식의 결과로 보입니다.
ⓒ 박현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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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노가미 신상은 크기나 생김새, 재질 등이 여러 가지입니다. 사람 모습을 나무나 돌에 깎아서 만들기도 하고 도기나 자연석으로 신상을 삼기도 합니다. 생김새는 대부분 머리에 시루를 뒤집어쓰고, 손에는 주걱이나 작은 막대기를 쥐고 있습니다. 다만 뒷모습은 대부분 남자의 성기를 닮았습니다.

농산물 생산의 풍요와 번영을 위해서 밭에서 성교를 하는 풍습이 있는 곳도 있습니다. 남녀 교접에 의해서 아기가 만들어지는 것처럼 사람의 성기를 숭배하거나 신앙시하면서 풍요를 기원하는 것은 오래전부터 사람들이 가져온 신앙이기도 합니다. 

마을 사람들은 이 다노가미 신상에서 해마다 두 번 잔치를 엽니다. 음력 이월 첫 축일(丑日) 산신이 다노가미 신으로 논밭에 내려오는 것을 맞이하는 잔치를 열고, 음력 10월이나 11 월 첫 축일이나 해일(亥日) 다노가미 신이 산신으로 돌아가는 것을 축하는 잔치를 엽니다.

한반도와 관련된 자료로는 이곳 사츠마한의 시마즈가 군대를 이끌고 한반도에 진출했던 지도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들이 한반도에서 이순신이나 당나라 이여송의 대항으로 어려움을 겪었고 그 때 끌고 온 도공들에 의해서 사츠마 도자기가 만들어졌다고 쓰여 있다.  

        가고시마 지역에서 살아온 사람들은 화산과 바다를 무대로 살아왔습니다. 바다에서 나는 조개껍질로 만든 꾸미개와 흑요석으로 만든 여러 가지 도구입니다.
 가고시마 지역에서 살아온 사람들은 화산과 바다를 무대로 살아왔습니다. 바다에서 나는 조개껍질로 만든 꾸미개와 흑요석으로 만든 여러 가지 도구입니다.
ⓒ 박현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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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누리집> 역사자료센터 레이메이칸, http://www.pref.kagoshima.jp/reimeikan/, 2013.9.12

덧붙이는 글 | 박현국 기자는 일본 류코쿠(Ryukoku, 龍谷)대학 국제문화학부에서 주로 한국어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가고시마현#다노가미 신상#흑요석#임진왜란#레이메이칸 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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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일본에서 생활한지 30년이 되어갑니다. 이제 서서히 일본인의 문화와 삶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지금부터라도 한국과 일본의 문화 이해와 상호 교류를 위해 뭔가를 해보고 싶습니다. 한국의 발달되 인터넷망과 일본의 보존된 자연을 조화시켜 서로 보듬어 안을 수 있는 교류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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