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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목 태백으로 가는 길에 만난 주목의 붉은 열매, 그 맛은 달콤미끈하다.
▲ 주목 태백으로 가는 길에 만난 주목의 붉은 열매, 그 맛은 달콤미끈하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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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백, 내비게이션에 목적지를 입력하니 350km라는 짧지 않은 거리가 안내된다. 목적지까지 3시간 30분이란다. 약속시간을 지키기 위해 조금 여유있게 집을 나섰다. 중부고속도로, 영동고속도로, 중앙고속도로를 갈아타고 제천IC를 통과하니 가을정취가 물씬 풍기는 듯하다.

그러나 길은 여전히 자동차전용도로이므로 도로의 최고속도로 달려주지 않으면 다른 차들이 앞질러 간다. 속도경쟁에서 잠시 이탈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억새축제가 열리는 민둥산역 주변에 차을 세웠다.

주목이 빨간 열매들을 주렁주렁 달고 있다. 저 열매는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은 탓인지 마치 앵두처럼 주렁주렁 많이 달렸다. 두어 개를 따서 입에 넣어보니 달콤미끈하다. 참으로 달다.

두문동재 태백으로 가다 옛길로 들어섰다. 맑은 날씨에도 불구하고 해발 1000미터에 이르자 안개가 자욱했다.
▲ 두문동재 태백으로 가다 옛길로 들어섰다. 맑은 날씨에도 불구하고 해발 1000미터에 이르자 안개가 자욱했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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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이른 점심으로 곤드레나물밥을 먹고 태백으로 향하다 자동차전용도로를 벗어나 옛길로 접어들었다. 이차선도로로 뱁처럼 구불거렸지만, 길가에 가을꽃들이 한창이다. 곤드레나물이라고 불리는 고려엉겅퀴, 곰쓸개보다도 더 쓰다는 용의 쓸개맛을 지녔다는 '용담', 쑥부쟁이가 지천이다.

해발 1000m를 알리는 푯말이 있다. 꽤나 높은 곳이구나 생각하는 순간 갑자기 안개가 밀려온다.

두문동재 정상 직전에 있는 간이 휴개소 앞에 있는 표지석, 안개가 자작나무의 하얀 빛을 무색하게 할 정도로 자욱하다.
▲ 두문동재 정상 직전에 있는 간이 휴개소 앞에 있는 표지석, 안개가 자작나무의 하얀 빛을 무색하게 할 정도로 자욱하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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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이 어딜까 궁금했는데 간이 휴게소 앞에 '백두대간 두문동재'라는 푯말이 있다. 처음 간 곳이지만, 길을 잘 들었다.

자동차전용도로로만 갔다면 목적지까지 빨리갈 수는 있었겠지만, 이런 풍광들을 만나지 못했을 것이다. 조금 천천히 간다고 결코 손해보는 것이 아님을 경험하는 순간이다. 경쟁사회에 시달리다보니 느릿느릿의 삶을 잃어버리고 살아간다. 그 삶이 결코 실패한 삶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이 사회는 그렇게 내재화시켜 버렸다.

느릿느릿 산다는 것, 그 자체만으로도 많은 용기가 필요한 시대를 살아가는 것이다.

두문동재의 가을 백두대간의 가을은 이만큼 왔다. 단풍이 든 나무들도 있지만, 아직은 푸른 빛이 더 많다.
▲ 두문동재의 가을 백두대간의 가을은 이만큼 왔다. 단풍이 든 나무들도 있지만, 아직은 푸른 빛이 더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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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 오는 흔적은 여기저기에 편만했지만, 아직 여름의 흔적도 많이 남아있다. 딱 이정도의 날씨와 기온이 나는 좋다. 차를 세우고 백두대간 두문동재의 기운을 호흡한다. 가슴이 시원해진다.

도시에서는 그냥저냥 이런 기운을 맞이할 새도 없이 하릴없이 시간을 보냈구나 생각하며 시간을 보니 정오가 조금 넘은 시간이다. 이 시간쯤이면, 사무실 근처의 식당을 두리번거리며 오늘은 무엇을 먹을까 시덥지 않은 고민이나 하고 있을 시간이다.

도시에서 벗어나니 시간의 질이 달아짐을 느낀다. 안개는 작은 풀잎들마다 이슬이라는 선물을 주었다.

뱀무 한 시절을 다한 뱀무에 이슬이 송송거리며 맺혀있다. 고지대에서 한낮에 만난 행운이다.
▲ 뱀무 한 시절을 다한 뱀무에 이슬이 송송거리며 맺혀있다. 고지대에서 한낮에 만난 행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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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무 아직 지지 않은 꽃이 있다. 아마도 여름부터 피어나기 시작한 뱀무는 마지막이 아닌가 싶다. 가을 꽃들이 한창이다.
▲ 뱀무 아직 지지 않은 꽃이 있다. 아마도 여름부터 피어나기 시작한 뱀무는 마지막이 아닌가 싶다. 가을 꽃들이 한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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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무, 여름부터 피어나던 뱀무다. 이곳에선 아마도 마지막 뱀무가 아닐까 싶다. 가을꽃들도 하나 둘 지고 있는 중인데 여름에 피어난 꽃치고는 너무 오래 피어있다.

안개가 선물한 이슬방울들은 송송히 맺고 있다. 약속만 없었다면 실컷 바라볼 수 있었을 터인데 하는 아쉬운 마음은 들지만, 옛길로 들어선 덕분에 만난 선물이니 그것만으로도 행복하다.

이슬 작은 풀잎에 맺힌 이슬들이 장관이다. 약속시간에 쫓기지 않았다면 종일이라도 저 이슬들과 놀았을 터인데 하는 아쉬뭄이 남는다.
▲ 이슬 작은 풀잎에 맺힌 이슬들이 장관이다. 약속시간에 쫓기지 않았다면 종일이라도 저 이슬들과 놀았을 터인데 하는 아쉬뭄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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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 이슬은 자기의 색깔을 주장하지 않는다. 그게 이슬의 아름다움이 아닐까?
▲ 이슬 이슬은 자기의 색깔을 주장하지 않는다. 그게 이슬의 아름다움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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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지껏 이슬이 맺힌 것들을 많이 봐왔지만, 이 풀에 맺힌 것만큼 신비스럽게 보인 적은 없는 것 같다. 이슬이 맺혀 전혀 다른 존재로 변한 듯한 사초과의 풀, 그들을 다시 만나기 위해서라도 이 길을 다시 찾아와야 겠다.

여러가지 조건들이 갖춰져야지만 볼 수 있는 풍광이다. 해발 1000m, 그 정도면 여느 곳보다 이런 풍광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을 것 같다. 한낮에도 이러한데 조금 서둘러 이른 아침에 온다면 이슬천국일 터이다. 그들을 통해 이전에 보지 못했던 아름다움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내가 도시에서 치이면 살아갈 때에도 그들은 늘 그렇게 피어났을 것이다.

미국쑥부쟁이 그들의 잘못은 아니건만, 이제 토종 쑥부쟁이보다 더 많이 눈에 띄는 미국쑥부쟁이가 조금은 얄궂다.
▲ 미국쑥부쟁이 그들의 잘못은 아니건만, 이제 토종 쑥부쟁이보다 더 많이 눈에 띄는 미국쑥부쟁이가 조금은 얄궂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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쑥부쟁이 미국쑥부쟁이 사이에서 듬성듬성 자라나는 토종 쑥부쟁이가 조금은 가련하게 보인다.
▲ 쑥부쟁이 미국쑥부쟁이 사이에서 듬성듬성 자라나는 토종 쑥부쟁이가 조금은 가련하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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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은 쑥부쟁이의 계절이다. 우리가 흔히 '들국화'라는 부르는 것들이 구절초 아니면 쑥부쟁이나 노란 감국이나 산국 같은 것들이다. 사실 들국화라는 식물명은 없다. 그냥 들에 피는 국화과의 통칭이 들국화인 것이다.

거반 7~8년 된 것 같다. 미국쑥부쟁이가 눈에 보이기 시작한 것이. 그리고 지금은 한반도 전역을 미국쑥부쟁이가 점령해가고 있는 중이다. 쑥부쟁이 피어나던 곳에는 어김없이 미국쑥부쟁이가 점령을 했고, 드문드문 쑥부쟁이가 피어있을 뿐이다.

우리네 역사와 관련지어 생각하지 않으면 그냥 예쁠 꽃들이 조금 불편하게 보이기도 한다. 어울려 살지 못하고, 오로지 자기의 영역만 넓히는 것 같은 불편함, 제국주의의 속성을 보는 듯한 불편함을 거기서 보는 것이다.

본래 자기 땅이었으면서도 겨우겨우 피어나는 쑥부쟁이는 내년을 기약할 수는 있는 것인지 위태롭다.

내비게이션의 안내에서 일탈하여 들어선 백두대간 옛길, 그곳에서 나는 직선의 도로에서 만나지 못했던 가을 풍광들을 만났다. 80km의 속도가 보여주지 못한 것들을 본 것이다. 그 절반의 속도 혹은 그 이하의 속도로 달린 덕분에 나는 잊지 못할 것들을 마음에 담고 돌아올 수 있었다.


#태백#백두대간#옛길#쑥부쟁이#이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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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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