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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박나무 한 관람객이 후박나무에 얽힌 일화를 읽고 있다.
▲ 후박나무 한 관람객이 후박나무에 얽힌 일화를 읽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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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박나무는 나무 껍질이 매끈하고 굵은 가지가 나무 밑동부터 뱀처럼 구불구불 솟아 올라 있어 이국적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 나무의 원산지는 우리나라 울릉도다. 후박나무에 얽힌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하나 있다. 후박나무 수액은 달콤하고 양도 꽤 많았던 모양인지 그 수액을 원료로 한 엿이 울릉도의 특산물이었던 적이 있었다. 그러나 후박나무 수액 채취가 금지되면서 울릉도에서는 후박과 발음이 비슷한 호박을 원료로 한 엿으로 특산물의 명맥을 이어갔다고 한다.

충남 태안해안국립공원은 만리포 해수욕장이 유명하다. 만리포에서 차를 몰고 15분 쯤 해안선을 따라 들어가면 천리포가 나온다. 해수욕장이나 마을의 규모가 만리포보다 작아서 천리포라 불리겠지 생각한다. 바닷가로 나가기 전, 왼편 차창 밖으로 아름답게 꾸며진 곳이 등장한다. 정원이라고 하기에는 규모가 큰 곳, 천리포 수목원이다.

민병갈 흉상 미국인이었던 칼 밀러(Carl Miller)는 1979년 귀화를 하게 됐는데, 민씨로 성을 정하면서 본관을 펜실베니아 민씨로 했으나 호적계 공무원이 난색을 표하는 바람에 여흥민씨가 되었다고 한다.
▲ 민병갈 흉상 미국인이었던 칼 밀러(Carl Miller)는 1979년 귀화를 하게 됐는데, 민씨로 성을 정하면서 본관을 펜실베니아 민씨로 했으나 호적계 공무원이 난색을 표하는 바람에 여흥민씨가 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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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수목원의 설립자는 민병갈(1921~2002)이라는 사람인데, 알고 보니 이 분은 한국전쟁 전후 미군 장교로 근무한 적이 있고, 이후에는 금융관련 업무로 우리나라와 인연을 이어간 칼 밀러(Carl Miller)라는 미국인이었다. 우리나라의 은행에서 근무하던 시절 만리포 해수욕장을 자주 찾던 민병갈은 1962년 우연히 천리포 해안의 땅 6000평을 매입했는데 이것이 현재의 18만 평 규모 수목원의 모태가 됐다고 한다. 수목원 사업은 한국에 뿌리를 내리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고 한다.

"천리포 수목원에는 1300종의 식물들이 자라고 있다. 목련류 410종, 감탕나무류 400종, 동백나무류 320종, 단풍나무류 200종 등인데 이 중 목련류는 수집 규모로 볼 때 단연 세계최고 수준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감탕나무류와 동백류 수집도 국제적인 규모로 평가되고 있다."(<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수목원> 42쪽)

지인들과 지난 6일과 7일 1박 2일 일정으로 다녀온 수목원은 자연의 아름다움에 감흥을 표현할 줄 모르는 내게도 깊은 인상을 남겼다. 일행 중엔 원예전문가도 있었는데, 그가 권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수목원>이란 책은 칼 밀러라는 백인 남성이 한국인이 되는 과정과 그가 해안선에 맞닿은 박토에 세계적인 수목원을 가꾸게 되기까지의 과정이 소개돼 있다.

천리포수목원은 보유하고 있는 수종과 계절별로 피는 꽃으로 사시사철 색다른 볼거리를 제공한다는 점 외에도 국내의 다른 유명 수목원과 다른 점이 있다고 한다. 지난달 내가 방문해 수목원길 따라 나무와 꽃구경을 할 때도 느낀 바지만, 이 수목원의 주인은 철저하게 나무와 꽃들이다. 길에 나무가 심어져 있다거나 가지가 드리워 질 경우 사람이 돌아가거나 피해야 한다. 길이 바뀌는 것이다. 여기에는 수목원에 대한 설립자 민병갈의 철학이 담겨있다. 책에 소개된 에피소드 가운데는 길 한가운데 자라고 있는 나무를 베어버린 직원이 즉각 해고된 적이 있다고 전한다.

베롱나무 꽃이 무려 100일을 간다하여 '목(木)백일홍'이라고 하고, 나무표면을 긁으면 나무 전체가 움직인다고 해서 '간지럼 나무'라고도 한다는 설명이 재미있다.
▲ 베롱나무 꽃이 무려 100일을 간다하여 '목(木)백일홍'이라고 하고, 나무표면을 긁으면 나무 전체가 움직인다고 해서 '간지럼 나무'라고도 한다는 설명이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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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에 청진기를 대고 들으면 물 흐르는 소리가 굉장히 크게 들려, 가만히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나무도 사람처럼 신진대사를 활발하게 하고 있는 거지"라고 원예전문가는 자신의 경험을 소개한다.

광릉수목원이나 서울대 관악수목원 등과 비교했을 때 규모와 인력 면에서 한참을 못 미치지만, 국제수목학회(The International Dendrology)는 아시아 수목원으로는 처음으로 천리포수목원에 명예훈장을 수여했다고 한다. 또한 미국호랑가시학회는 이 수목원에 '공인 호랑가시 수목원(Official Holly Arboritum)'이라는 인증패를 전했다니 우리나라에도 세계적인 수목원이 있다는 사실에 감사할 일이다.

수목원에서 바라본 낭새섬 천리포수목원 방문의 장점은 수목원에서 바다를 바라볼 수 있다는 것이다. 숲에서 만나는 바다 앞 전경으로 거북이처럼 누워있는 섬이름은 원래 닭섬이었던 것을 민병갈이 낭새섬으로 개명했다고.
▲ 수목원에서 바라본 낭새섬 천리포수목원 방문의 장점은 수목원에서 바다를 바라볼 수 있다는 것이다. 숲에서 만나는 바다 앞 전경으로 거북이처럼 누워있는 섬이름은 원래 닭섬이었던 것을 민병갈이 낭새섬으로 개명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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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안해안국립공원이니 독자들도 주말을 맞이해 하루 방문하고 돌아오는 것도 좋고, 천리포수목원 안과 밖에 있는 숙소를 이용해 일박을 하면서 여유 있게 즐기다 돌아오는 일정도 권할 만하다. 아침 일찌감치 나무와 꽃을 만나 대화를 나누는 일이 보람찬 것인 줄을 전에는 미처 몰랐으니 말이다.

덧붙이는 글 |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수목원>, 글 임준수, 사진 류기성, 1판 1쇄 2004년 11월 10일, 기사의 사진은 지난 6월 6일과 7일 제가 수목원을 방문한 때에 찍은 것입니다.



태그:#천리포, #민병갈, #칼 밀러, #낭새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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