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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이 아이한테 들려주는 아주 끔찍하고 무서운 말은 "넌 할 수 없어!"라고 느낍니다. "넌 왜 이렇게 못하니?"라든지 "넌 못할걸?"이라든지 "넌 할 줄 아는 게 없네?" 같은 말도 엇비슷하게 끔찍하고 무섭지 싶습니다.

학교에서 시험성적이 조금만 못 나와도, 달리기나 운동을 잘 하지 못해도, 말솜씨가 없거나 말을 더듬어도, 조금 굼뜨거나 느려도, 그릇이나 물잔을 떨어뜨려 깨어도, 어른들은 아이를 윽박지르거나 나무라곤 합니다. 부드러이 타이르거나 따스히 어루만지기도 하지만 말이에요.

이와 달리 어른이 아이한테 들려주는 아주 사랑스럽고 아름다운 말은 "넌 할 수 있어!"라고 느껴요. "넌 참 잘 하는구나"라든지 "해 보면 돼, 해 봐!"라든지 "즐겁게 했으면 되지!" 같은 말도 엇비슷하게 사랑스러우며 아름답구나 싶어요.

학교에서 말하는 시험성적은 바라보지 않고, 달리기나 운동을 잘 하거나 못 하거나 바라보지 않으며, 말솜씨가 적거나 말을 더듬어도 이를 바라보지 않는다면, 또 아이는 아이답게 천천히 자라는 줄 바라볼 수 있으면, 어른들 누구나 아이하고 즐겁거나 기쁜 살림을 지을 만하다고 느낍니다.

겉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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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느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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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위원인 포스터 선생님이 말했어요. "저런! 발이 보트만 하군!" 유명한 비평가인 조지 선생님도 말했어요. "꼭 오리발 같잖아!" 발레 잡지에 글을 쓰는 위노나 선생님은 빤히 쳐다보더니 고개만 저었어요. 벨린다는 춤을 춰 보지도 못했어요. 심사위원들이 이렇게 말했거든요. "돌아가세요. 그렇게 큰 발로는 절대로 발레리나가 될 수 없어요." (6쪽)

에이미 영 님이 빚은 그림책 <발레리나 벨린다>(느림보, 2003)를 읽습니다. 마땅하다면 아주 마땅한 이야기가 흐르는 그림책이요, 짠하다면 더없이 짠한 이야기가 흐르는 그림책이라고 느끼면서 읽습니다.

춤을 좋아할 뿐 아니라 더없이 사랑하는 벨린다는 춤꾼(발레리나)이 되고 싶다는 꿈을 키워요. 무대에 오르려고 시험을 받지요. 그런데 말이에요, 벨린다는 무대에 올라서 춤을 아예 춰 보지도 못합니다. 무대를 지켜보는 심사위원은 벨린다를 보더니 '발이 너무 커서' 안 된다고 잘라요. 벨린다가 보여주려는 춤은 하나도 쳐다보지 않는 마음으로, 그저 벨린다 발만 쳐다보아요.

어쩌면 심사위원은 '커다란 발'뿐 아니라 '뚱뚱한 몸'도 쳐다볼는지 몰라요. '못생긴 얼굴'이나 '매끄럽지 않은 몸매'나 '짧은 다리'도 춤꾼이 될 수 없다고 여길는지 몰라요. 심사위원 자리에 앉는 어른들은 처음에 생김새나 몸매가 아닌 '춤을 얼마나 즐겁게 잘 추느냐'를 쳐다보기는 어려울는지 몰라요.

속그림. 심사위원은 '발이 크다'는 까닭으로 무대에 한 번도 못 올랐어요. 심사위원이 하는 말을 가슴에 담으며 슬퍼합니다.
 속그림. 심사위원은 '발이 크다'는 까닭으로 무대에 한 번도 못 올랐어요. 심사위원이 하는 말을 가슴에 담으며 슬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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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그림. 꿈을 잃었다고 여긴 벨린다는 식당 종업원으로 일하기로 해요. 일은 재미있고, 손님이나 주방장 모두 벨린다를 좋아합니다. 그렇지만 마음속이 늘 허전해요.
 속그림. 꿈을 잃었다고 여긴 벨린다는 식당 종업원으로 일하기로 해요. 일은 재미있고, 손님이나 주방장 모두 벨린다를 좋아합니다. 그렇지만 마음속이 늘 허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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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서 악단이 아름다운 곡을 연주하자, 벨린다는 자기도 모르게, 춤을 추고 있었어요! 악단은 날마다 와서 연주를 했고, 벨린다는 손님이 오기 전까지 음악에 맞춰 춤을 추었어요. 그러던 어느 날, 프레드가 손님들을 위해 춤을 춰 달라고 부탁했어요. 벨린다는 살짝 웃으며 대답했어요. "좋아요!" (16∼18쪽)

무대에 오르지도 못하고, 심사마저 받지 못한 채 춤길을 꺾어야 하는 벨린다는 몹시 풀이 죽어요. 이러면서 심사위원들이 벨린다한테 들려준 말을 떠올려요. 이렇게 발이 커서는 춤을 출 수 없다는 말을 받아들이기로 해요.

그러나 벨린다는 이제껏 다른 길은 생각한 적이 없어서 뭘 해야 하는지 몰라요. 풀이 죽은 채 웃음을 잃고 헤매던 벨린다는 '식당 종업원'으로 일하기로 해요. '다른 일을 하는 재주'는 없더라도 그릇과 접시를 나르고 손님을 맞이하며 설거지를 하는 일은 할 수 있겠거니 여기거든요.

속그림. 어느 날 주방장 친구들이 찾아왔어요. 악단이에요. 한창 연주를 하는데, 벨린다는 처음에는 발장단만 맞추다가 이윽고 벨린다 스스로 모르게 춤이 터져나와요.
 속그림. 어느 날 주방장 친구들이 찾아왔어요. 악단이에요. 한창 연주를 하는데, 벨린다는 처음에는 발장단만 맞추다가 이윽고 벨린다 스스로 모르게 춤이 터져나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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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린다의 소문은 마침내 그랜드 메트로폴리탄 발레단장의 귀에 들어갔어요. 단장은 친구의 친구에게 꼭 가 보라는 말을 듣고 프레드 식당에 들렀어요. 벨린다가 춤을 추자, 단장은 감탄했어요. 가슴이 뭉클했지요. 너무나 감동해서 눈물까지 흘렸어요. (22∼23쪽)

그런데 말이지요, 벨린다는 식당에서 종업원으로 일하며 둘레에서 사랑을 받아요. 그동안 춤으로 다져진 몸이라 발놀림이 몹시 가볍고 일을 잘 하거든요. 벨린다로서는 스스로 몰랐을 테지만, 춤을 익히고 즐기던 기나긴 나날은 '벨린다가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사람'이 아니라 '벨린다가 스스로 하고픈 일이 있으면 훌륭히 해낼 수 있는 몸'이 되도록 다져 준 셈이에요.

이러던 어느 날 벨린다한테 새로운 일이 찾아와요. 식당 주방장으로 일하는 프레드(나중에 프레다는 벨린다한테 곁님이 됩니다)네 동무들이 찾아오는데, 프레드네 동무들은 '악단'입니다. 프레드 식당에서 노래를 들려주려고 찾아왔지요.

악단이 여러 가지 노래를 들려주는 동안 벨린다는 오래도록 잊고 지낸 '한 가지'가 꿈틀꿈틀합니다. 처음에는 악단 연주를 들으면서 발장단을 맞추었는데, 매우 아름다운 노래를 들려주자 벨린다 스스로도 모르게 춤을 추었다고 해요. 저절로 샘솟는 춤을 말이지요.

속그림. 사람들은 벨린다가 보여주는 아름다운 춤을 보려고 식당에 더 많이 몰려들어요.
 속그림. 사람들은 벨린다가 보여주는 아름다운 춤을 보려고 식당에 더 많이 몰려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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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당 주방장이자 곁님이던 프레드는 벨린다가 추는 춤을 보고 깜짝 놀라요. 벨린다는 그저 일만 잘하고 착한 줄 알았는데 이제껏 몰랐던 모습을 보았어요. 프레드는 벨린다 춤사위를 지켜보다가 여쭈지요. '손님들한테 이 멋진 춤을 보여주자'고 말이에요.

벨린다는 그랜드 메트로폴리탄 홀에서 프레드의 친구들이 연주하는 멋진 음악에 맞춰 춤을 추었어요. 정말 즐겁게 춤을 추었답니다! 심사위원들이 소리쳤어요. "훌륭합니다!" "하늘로 날아오르는 한 마리 새를 보는 것 같네요!" "푸른 들판을 달리는 영양 같지 않나요?" 심사위원들은 벨린다의 발이 크다는 것을 알아차리지도 못했어요. 벨린다의 춤을 보느라 정신이 없었거든요. (26∼27쪽)

그림책 <발레리나 벨린다>에 나오는 벨린다는 어떤 꿈을 꾸었을까 하고 생각해 봅니다. 벨린다는 '무대에 오르는 춤'이 아니라 '즐겁게 추는 춤'을 바랐어요. '심사위원 앞에서 점수를 잘 받는 춤'이 아니라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즐거운 춤'을 바랐어요.

지난날 벨린다는 무대에 서지도 못한 채 눈물을 삼켜야 했지만, 마음이 맞고 사랑으로 지켜보는 프레디를 만나면서 '식당이라는 자리에서 즐겁게 춤을 추는 삶'이 되었어요. 프레디 식당을 찾아오는 이들은 하나같이 '벨린다 춤'을 보며 기뻐했고 놀라워했어요. 손님들은 입에서 입으로 소문을 내면서 '벨린다 춤'을 보려고 몰려들었고, 이윽고 '그랜드 메트로폴리탄 홀'을 이끄는 단장까지 찾아와서 식당에서 '벨린다 춤'을 보고는 눈물을 흘렸다지요.

속그림. 꿈을 잃었다고 생각했으나, 그 꿈은 무대에만 올라야 하는 꿈이 아닌 줄 깨닫고는, 벨린다는 그야말로 기쁘게 춤을 추는 삶을 스스로 새롭게 지었어요.
 속그림. 꿈을 잃었다고 생각했으나, 그 꿈은 무대에만 올라야 하는 꿈이 아닌 줄 깨닫고는, 벨린다는 그야말로 기쁘게 춤을 추는 삶을 스스로 새롭게 지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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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을 늘 마음에 품고 살던 벨린다는 '무대'가 아닌 '춤'을 생각하고 살면서 어느 날 드디어 꿈을 이루어요. 즐겁게 춤을 추면서 웃고 노래하는 삶이 되니, 이러한 삶에서 흐르는 아름다운 사랑이 둘레로 퍼져서 마침내 '삶자리에서 즐기는 춤'을 넘어서 '무대에서도 선보이는 춤'을 출 수 있어요.

벨린다가 '무대에 서려는 생각'만 했으면 '커다란 발'은 늘 생채기나 응어리로 남았으리라 느껴요. 벨린다는 '무대에 서려는 생각'을 접고 난 뒤에 새로운 길을 걸었고, 이 새로운 길에서 꿈을 늘 마음에 품었기에 끝끝내 '꿈으로 가는 춤길'을 열 수 있었구나 싶어요.

온누리 아이들이 벨린다하고 동무가 되면 참 좋겠다고 생각해요. 언제나 꿈을 가슴에 품는 즐거운 동무가 되면 참 예쁘겠다고 생각해요. 우리가 선 삶자리에서 날마다 꿈을 꾸고 이 꿈을 사랑할 수 있는 사이좋은 어깨동무를 하면 참 아름답겠다고 생각해요.

덧붙이는 글 | <발레리나 벨린다>(에이미 영 글·그림 / 이주희 옮김 / 느림보 펴냄 / 2003.8.16. / 9500원)



발레리나 벨린다

에이미 영 글 그림, 이주희 옮김, 느림보(2003)


태그:#발레리나 벨린다, #에이미 영, #그림책, #삶짓기, #꿈짓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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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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