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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단시간 노동자는 주 15시간 미만 노동자로, 온갖 노동관계법의 예외 범주에 들어가 있는 사람들이다. 연차도 없고, 주휴수당도 없다. 퇴직금도 없고, 육아휴직도 없고, 2년 일하면 정규직 전환 대상이라는 기간제법에서도 예외이며, 건강보험 직장가입 대상도 아니다.

이런 조건이면 당연히 정규 노동자보다 우울하지 않을까? 그동안 장시간노동에 대한 연구는 많았지만, 초단시간 노동자의 건강 문제는 거의 다루어지지 않았다. 직접 근로환경조사 자료를 분석해 보았더니 초단시간 노동자가 정규 노동자에 비하여 선명하게 우울하다는 결과가 나왔다. 예상했던 결과지만 조금 아연해졌다.
  
 노동과 가사/돌봄 부담, 양쪽의 시간에서 줄다리기하는 것은 호락호락하지 않다.
 노동과 가사/돌봄 부담, 양쪽의 시간에서 줄다리기하는 것은 호락호락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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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시간 노동과 여성 노동 

단시간 노동자는 해외에서도 여성이 더 많다. 2008년 기준으로 유럽연합 15개국에서 단시간 노동자 중 여성이 차지하는 비율은 77.2%였다. 단시간 노동자의 대다수가 여성이니, 유럽 사법재판소는 단시간 노동자의 노동조건 문제는 여성의 고용문제로 볼 수 있다고 판단해왔다.

1981년부터 단시간 노동자의 보호를 성차별금지법의 법리 적용을 확대해 적용하고 있으며, 이에 비해 늦은 1990년대 후반에 단시간 노동자에 대한 지침이 만들어졌다. 그 이후로도 단시간 노동자에 대해서는 성차별금지법을 확대하는 법리를 주로 적용하고 있다1). 같은 맥락에서 영국에서는 단시간 노동자의 불이익처우에 관한 법령이 만들어지기 전까지 단시간 노동자는 남녀동일임금법, 남녀차별금지법을 적용해 왔다. 단시간 노동자의 다수가 여성이어서, 단시간 노동자에 대한 차별은 여성에 대한 '간접차별'에 해당되기 때문이었다2). 

한국에서도 단시간 노동자는 여성이 많다. 경제활동 인구조사 자료에 따르면, 초단시간 노동자는 2018년 109만 명에서 2022년 157만명으로 44%나 늘었다. 근로환경조사에 따르면 2017년 자료에서 초단시간 노동자는 여성이 43.2%였는데, 2020년 자료에서는 여성이 73%로 급증했다. 초단시간 노동자 자체가 늘었고 특히 여성의 비율이 늘었다. 노인일자리 등 단시간 일자리 자체가 정책적으로 늘어난 요인도 있지만, 두 시간대 사이에는 코로나19도 있었다.

모두에게 어려운 시간이었지만, 특히 여성들이 일터를 많이 잃었다3). 불안정한 일자리에서는 내쫓겼고, 감염병에 대한 봉쇄 조치로 어린이집, 학교 등이 아이들을 받지 못하자, 돌봄을 위해 "자연스럽게" 집으로 돌아가게 됐다. 그렇게 일자리를 잃은 여성들이 다시 원직으로 복귀하는 것은 요원하다. 코로나19 고용 충격에 대한 국내 보고서에 따르면, 기혼 여성이 일자리를 잃을 확률이 코로나19 때 증가했는데, 특히 초등학생 자녀가 있는 39-44세 연령대에서 두드러졌다4). 

노동시간의 성별에 따른 건강 영향 차이

노동시간의 건강 영향은 여성과 남성에서 차이가 있다. 교대제나 장시간 노동이 건강에 해롭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교대제와 정신건강에 대해 2019년 발표된 한 메타분석(기존 연구들을 종합하여 분석 결과를 내는 연구) 결과에서는 남성과 여성 모두 교대제를 하는 경우 정신건강이 나빠졌지만, 특히 여성에서 관련성이 훨씬 두드러졌다5). 가사, 돌봄 부담을 지는 여성은 시간 운용이 어려운 교대제에 더 큰 스트레스를 받을 것이다. 

노동시간 '길이'가 건강에 미치는 영향도 성별에 따라 다르다. 인구 집단 전체로 보면 노동시간이 일정 수준보다 길어져도 건강이 나빠지고, 짧아져도 경제적 여건 등 여러 요인으로 건강이 나빠진다. 오스트레일리아의 한 연구에 따르면 정신 건강 수준이 가장 높은 사람들의 노동시간대는 남성에서 43.5시간, 여성에서는 38시간이었다6). 그 시간 차이 만큼의 가사, 돌봄 부담이 여성에 더 지워져 있다고 해석할 수 있는 것이다.

국내에서 장시간 노동과 심장질환, 뇌졸중의 10년 발병 위험도를 분석한 연구에서도 역시 노동시간이 일정 수준보다 높아져도, 낮아져도 발병 위험이 높아지는데, 여기에서도 그나마 덜 위험한 노동시간은 여성이 남성보다 훨씬 낮은 지점에서 형성되어 있다7). 즉 여성의 보이지 않는 (돌봄) 노동시간이 신체적, 정신적 건강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장시간 노동과 단시간 노동, 돌봄노동의 쏠림

사회가, 회사가, 가정이 남성과 여성에게 요구하는 노동시간의 양상은 다르다. 이 사회는 남성에게는 장시간 노동을 강제하여, 가사일과 돌봄노동에 참여하지 않는 것에 당위를 준다. 여성에게는 단시간 노동과 돌봄 둘 다 하도록 강제한다. 초단시간 노동을 하는 사람들이 정규 노동을 하는 사람에 비해서 우울하다면, 초단시간 노동 관련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

그러나 그 뒤에 숨어 있는 시스템, 남성과 여성을 각각 장시간과 단시간 노동으로 내몰고, 돌봄노동의 성별 쏠림으로 위태롭게 유지되어 온(유지되지 못한다는 것이 여러 지표로 드러나고 있는) 이 시스템도 고쳐야 한다. 무엇 하나 쉽게 해결될 리 없지만, 노동시간과 돌봄의 성별 쏠림 문제, 장시간 노동과 단시간 노동의 문제는 연결되어 있다.

1) 심재진(2010), 유럽연합의 단시간 근로자들에 대한 법적 보호, 노동법학 34호
2) 김근주(2013), 영국의 단시간근로 현황과 문제점, 한국노동연구원 국제노동브리프 2013년8월호
3) 김지연(2021), 코로나19 고용충격의 특이성: 여성 고용을 중심으로, KDI 정책연구시리즈 2021-10
4) 앞의 논문(김지연, 2021).
5) Torquati L, Mielke GI, Brown WJ, Burton NW, Kolbe-Alexander TL. Shift Work and Poor Mental Health: A Meta-Analysis of Longitudinal Studies. Am J Public Health. 2019 Nov;109(11):e13-e20.
6) Dinh H, Strazdins L, Welsh J. Hour-glass ceilings: Work-hour thresholds, gendered health inequities. Soc Sci Med. 2017 Mar;176:42-51.
7) Lee DW, Hong YC, Min KB, Kim TS, Kim MS, Kang MY. The effect of long working hours on 10-year risk of coronary heart disease and stroke in the Korean population: the Korea National Health and Nutrition Examination Survey (KNHANES), 2007 to 2013. Ann Occup Environ Med. 2016 Nov 15;28:64.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양문영 님은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젠더와노동건강권센터 회원입니다. 이 글은 한노보연 월간 일터 7월호에도 실립니다. 한노보연 후원 문의 : 02-324-8633


#초단시간노동#돌봄격차#이중부담#여성노동#노동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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