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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비전향 출소장기수 손성모, 신광수씨의 새 천년 맞이
"북녘 처자 생각에 새해 첫날밤을 꼬박 세웠지요"

1999년 12월 31일. 20세기의 마지막날이던 이 날 아침, 대구와 광주교도소 앞에는 수십 명의 비전향 출소장기수들이 매서운 겨울바람을 뚫고 하나둘씩 모여들었다. 서울에서, 대전에서, 부산에서 밤기차를 타고 혹은 새벽 버스길로 달려온 이들의 얼굴에는 모처럼 환한 미소가 가득하다. 이제 곧 육중한 철문을 열고 그들이 걸어 나올 것이다. 마지막 남은 장기수 신광수(71), 손성모씨(70). 이 날이 오기를 모두들 얼마나 기다렸던가. 김대중 정부의 '밀레니엄 사면' 조치로 마침내 자유의 몸이 되는 그들이었다.

마침내 종지부를 찍은 야만의 시대

죽어서야 비로소 담밖으로 나올 수 있었던 비전향장기수들. 그들에게도 푸른 수의를 벗고 담장 밖 세상과 포옹할 기쁨이 허용된 것은 최근 몇 년의 일이었다. 하지만 98년 세계 최장기간이란 45년 동안 갇혀 있었던 김선명씨와 안학섭씨 등이 석방되었을 때도, 지난해 2월 40년을 복역한 우용각씨를 비롯한 17명의 비전향장기수들이 석방되었을 때도 기쁨은 번번이
분노와 좌절로 바뀌었다.

특히 지난 8·15 사면 당시 '복역기간이 20년이 안됐다'는 이유로 신광수, 손성모씨가 끝내 석방자 명단에서 빠졌을 때, 출소장기수들은 모두 허탈감과 공연한 죄책감에 시달려야만 했었다. 이젠 칠십을 훨씬 넘긴 백발성성한 노인들. 지팡이에 몸을 의지한 채 힘겹게 서 있던 그들은 말한다.

"이제야 밥을 먹어도 제대로 넘어가고, 잠을 자도 제대로 잘 것 같습니다. 이 두 사람을 놔두고 새 천년을 맞는다는 건 기만이지요. 뒤늦게나마 이루어진 남쪽정부의 결단은 민족의 화해와 통일을 위한 큰 초석이 될 것입니다."

오전 10시. 전국에서 모여든 민가협 회원과 사회단체 인사들, 그리고 청년학생들 1백여 명이 교도소 정문 앞에 늘어서 있었다. 여전히 감옥 안에는 한총련 학생들을 비롯한 1백30여 명의 양심수들이 남아 있지만 오늘만큼은 다들 마음이 들떴다.

"저기 나오십니다."

드디어 대구의 손성모씨, 광주의 신광수씨가 환한 웃음 지으며 걸어나왔다. 87년 6월 항쟁 이후 비전향장기수들의 실체가 공개된 뒤 10여 년. 자유를 향한 이들의 오랜 염원이 마침내 실현된 것이다. 사상과 정치적 신념을 이유로 수십 년 동안 혹독한 감옥살이를 강요하던 야만의 시대가 마침표를 찍는 순간이었다.

김대중 대통령의 말대로 이제 한국사회에는 더 이상 장기수가 없음을, 민족이 반목하고 대결하던 시절의 아픔이었던 비전향장기수의 석방문제가 20세기의 종결과 더불어 완전히 해결됐음을 확인하는 실로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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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지와 민족21에서 기자 생활을 했고, 현재는 (사)평화의길 사무처장으로 활동하며 유튜브 채널 명진TV를 총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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