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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2년, 사설 BBS를 이용해 통신을 하던 여중 2학년생이 채팅실에서 자신에게 쏟아진 원색적인 욕설에 충격을 받아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이 일어났다. 당시로서는 생소했던 넷 문화라는 새로운 환경에 우리 사회가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라는 문제를 심각하게 던져 준 사건이었다. 그러나 그로부터 7년이 흘렀고, 당시 어림잡아 1만명 안팎에 불과하던 통신 인구가 1백만 단위를 훌쩍 넘어섰는데도, 아직 이 문제는 해결의 실마리조차 찾고 있지 못하다.
지난 12월 23일 한겨레 토론마당에 올라왔던 짤막한 내용의 글은 네티즌의 시계를 7년 전으로 되돌려준다. "한겨레 게시판, 정말 실망스럽습니다"라는 제목으로 올라온 이 글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전철에서 자리를 양보하는 젊은이의 모습이 아름답더라는 글을 아버지께서 제게 부탁하셨습니다. 그래서 이곳에 들어와 보니 떠있는 그 끔찍한 제목들을 보고 저는 아버지의 담백하고 여린 글을 실지 않기로 했습니다."
어떤 제목들이 '김희영'이라는 이름을 쓴 이 네티즌을 그리도 끔찍하게 만들었을까. 문제의 글이 올라와 있는 목록만을 대충 훑어봐도 "돌대가리 새끼야", "초상 치를 준비해라", "또라이 짱구야", "주둥이들아", "빙충이들아"와 같은 원색적인 욕설이 눈에 들어왔다. 생활 속의 미담을 함게 나누고 싶었을 사람에게라면 틀림없이 끔찍하게 느껴졌을 법한 표현들이다.
물론, 그 끔찍한 제목의 글들의 내용을 보지 않은 상태에서 싸잡아 이야기할 문제만은 아닐 것이다. '사이버 테러'라고 밖에는 달리 지칭할 말을 찾기 힘든 그야말로 '또라이'들의 행패가 이미 도를 넘어섰으며, 그에 대한 지극히 개인적인 '분노'의 표현 외에는 별다른 대응방법이 없다는 현실을 냉정하게 돌아보자면, 무작정 자제만을 당부하는 것이 능사는 아니다.
다만, 김씨의 지적대로 "담백하고 여린" 글들도 함께 나눌 수 있는 넷 문화를 위해서 더 많은 고민이 이제부터라도 필요하다는 문제의식만큼은 네티즌들에게 숙제로 남겨져 있다. 앞으로 또 7년이 지난 후에도 여린 마음에 뜻하지 않은 상처를 받고 넷 문화에 대한 실망과 냉소로 돌아서는 사람이 생길 수 있다면, '새로운 공공영역'의 가능성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는 사이버 커뮤니티의 미래상도 한낱 백일몽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김씨의 실망을 이런 질문으로 바꿔놓으면 어떨까.
"우리는 이곳에서 누구와 만나고자 하는가. 그리고 정작 누구와 만나고 있는가.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과 맞상대를 하느라 정작 만나야 할 친구를 소외시키고 있지는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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