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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에 한번 정도 쉬는 시간을 갖는 친구와 함께 목포에 있는 해변가를 찾았습니다. 월요일이라 그 곳을 찾는 이들은 그리 많지 않았지요. 대학시절 좋아하는 사람이 생기거나 어딘가로 가고 싶다는 생각을 할 때 흔히들 찾는 이 곳은 늘 그렇듯이 바다를 끼고 분위기를 한껏 낼 수 있는 찻집이 있습니다.

해갈이를 할 무렵은 연인들의 모습이 너무도 자연스럽고 삼삼오오 짝을 지어 저마다의 추억을 만들기위해 찾는 곳이기도 하지요. 친구와 나는 해변가로 몰려드는 파도를 보며 모래로 장난도 하고 오랫만에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넓은 바다는 아니지만 한동안의 묵은 시름을 흘려보내기엔 그래도 이만 한 곳도 없다 싶었습니다.

사진을 잘 하는 친구가 이리저리 움직이는 나를 모델로 잡아 이런저런 사진을 찍고 있을 때였습니다.
"야아~ 잠깐만!"

교복을 입은 여학생과 남학생이 다정히 손을 잡고 걸어오고 있었습니다. 뭐 흔히들 볼 수 있는 풍경이지만 그 때 시간이 3시가 조금 넘은 시각이었으니까 어쩜 둘은 학교를 가지 않았다는 추측을 할 수 있었지요.

친구가 그랬습니다.
"저런 모습 처음 보니? 우리 시내에서도 봤잖아. 슬리퍼 신고 머리꽁지를 하늘로 해서 묶은 아이들, 그리고 반짝이는 핀들" 그랬습니다.

우린 너무나 자주 보는 모습이었지요. 다만 이 곳이 사람들이 쉬러오는 것이라는 걸 빼곤 말입니다. 하지만 전 괜히 걱정스런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래도 우리땐 남자친구를 사귀어도 사복으로 갈아입고 만나거나 - 학교에 사복을 가지고와서 끝날 시간이면 몰래 화장실에서 옷을 갈아입었지요. - 요즘 처럼 손을 잡고 걷거나 어깨동무, 심지어는 다른 여자친구들이 보는 앞에서 얼굴을 맞대고 비비거나 뽀뽀까지 할 정도입니다. 거리에서, 길목 어둑한 곳을 지나치며 예사로이 보이는 풍경이죠.

아이들의 부모격인 사람들은 보고 가면서 '쯔쯧!'만 할 뿐 어느 한 사람 야단(?)쳐 주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저 역시 그냥 멀뚱히 보고만 있다가 함께 있는 사람과 저래도 되냐는 말만 되풀이 할 뿐이었죠. 정말이지 불러 세워놓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 싶었습니다.

왜 선뜻 나서서 야단쳐주지 못할까 생각해 봤습니다. 그건 바로 '세대차이'라는 말로 대신 할 수 있을 듯합니다. 시대가 변해도 변하지 말아야할 것이 있다면 남녀의 분별이라고 생각했을 때, 바로 그 시각이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교복을 입은 남학생과 여학생이 수업을 받고 있어야할 시간에 바다가 보이는 해변가에서 손을 잡고 나란히 걷는 모습을 보고 그들의 이모격인 나는 정말 염려스럽고 너무 이르지 않나하는 생각을 하게 되는 반면에, 그들과 또래인 아이들은 이렇게 답합니다.

여기 그들과 또래인 남학생(고3)의 말을 들어봅니다.
"뭐 대수롭지 않아요. 저희 반엔 삼분의 일, 아니 절반 이상이 사귀는데요. 손 잡고 가는 건 예사예요. "
" 그럼 너두 사귀는 여자 친구가 있니? "
" 아뇨. "
" 왜? "
" 얼굴이 안따라주잖아요. "
" 그만하면 잘 생긴 얼굴 아닌가? 여자친구를 얼굴로 사귀니? "
" 아니지만, 솔직히 저두 그런 여자친구가 있으면(예쁘다는 전제) 해
보고 싶지요. 손잡고 가는 거 말구요. 함께 자기도 하는데요? "
" 어디서? "
" 자기 집에 데려가서 잔다고 개네들이 말해주던데요. "
" 부모님이 알아도? "
" 네... 알고도 놔둔데요. "
" 그건 바깥일을 많이 하시는 부모를 둔 아이의 경우일테지. "
" 자취하는 애들은 맨날 거기서 놀고 자고 그래요. "
" 그걸 믿니? "
" 지들 입으로 하는 말이니까요. 어어..정말 많은데......"
" 그걸 보는 너희들은 어떤 마음이야? "
" 사실 우리도 그러고 싶죠. 어른들은 다르게 보지만 우린 아무렇지
않게 봐요. 다들 그러니까요. 그리고 이상하지도 않아요. "
" 이건 미안한 질문인데 그럼 동정을 지키는 것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
해? "
" 헤헤..그거요. 제 짝궁은 지킨대요. (얼버무린다.) "
" ...... " (잠시 침묵)
" 그럼 수업은 잘 받니? "
" 아뇨. 입시랑 공부랑 하늘차이잖아요. 그래서 다들 자요. "
" 그럼 자기 앞날에 대한 걱정은 하니? "
" 예! 하죠. 하지만 워낙 어려우니깐...... "

이 이야기는 실제 한 학생과의 대화에서 이뤄진 것입니다. 물론 이 내용이 지배적일 순 없지만 중요한 것은 이런 사실- 도덕적 불감증, 미래에 대한 걱정만 있을 뿐 대책이 없는 아이들, 무관심한 부모들 - 들은 하루 아침에 치유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사진을 찍어 올리면서 마음이 착잡합니다. 어느 곳 하나 아름다운 모습일 수 없기때문입니다. 조심스러운 것은 30대의 가운데에서 눈높이를 아무리 같게 해보려해도 아직은 고운 시선일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미안합니다. 그들의 마음을 다 받아낼 수 없어서 말입니다.

다음에 이런 친구를 만난다면 이런 이야기를 해주고 싶습니다.
지금의 이 시간의 모습은 다신 오지 않는다고. 중학생, 고등학생의 모습은 아무리 바람직하지 않은 모습일지라도 다시 오진 않는다고. 그리고 인생은 연습이 없다고 말입니다. 나이가 들어 양갈래 머리를 하고 교복을 입은 모습은 그냥 지나온 시절에 대한 그리움을 쓰다듬는 일일 뿐이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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