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지난해 서울로 유학 온 한 일본 여성은 SBS의 <즐거운 우리들의 토요일>을 보던 중 깜짝 놀랐다. TV에서는 학생들이 옥상 위에서 하고 싶은 말을 외치는 내용이 방송되고 있었는데 이 코너가 일본의 V6가 진행하는 <학교에 가자!>와 똑같았기 때문이다.

일본의 시사 주간지 ‘아에라’는 지난해 말 한국에 사는 일본인의 말을 인용해 “한국 TV에는 일본 것을 그대로 가지고 온 것같은 프로그램이 너무 많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KBS 도쿄 특파원 왕현철 PD도 일본에 유학 온 한국 학생들로부터 “한국 방송사는 왜 그렇게 일본 프로그램을 많이 베끼냐”는 항의를 곧잘 받는다고 밝혔다.

일본 현지에서는 90년대 초 한국에 민영방송이 등장하면서 시청률을 둘러싼 방송사들의 치열한 싸움이 벌어져 그 후 작품에 대한 평가기준이 ‘좋은가, 나쁜가’에서 ‘재미있는가, 재미없는가’로 바뀐 결과 이미 ‘재미있다’고 평가받은 일본 프로그램 베끼기가 늘어났다고 보고 있다.

‘아에라’에 따르면 지난해 초 계획보다 빨리 막을 내린 MBC 드라마 <청춘>을 비롯해 오락과 드라마 프로그램을 중심으로 최근 들어서 30여편의 한국 TV프로그램이 표절 의혹을 받았다고 지적했다.

심지어 일본의 TBS 프로그램 대행사는 SBS의 <특명, 아빠의 도전>이 자사 프로그램인 <행복한 가족계획>을 표절했다는 이유로 법적 대응을 준비하는 한편 SBS측에 항의 편지를 보냈다며 한국 방송의 일본 TV 프로그램 표절의 심각성을 지적했다.

‘아에라’는 이어 일본 문화에 대한 저항감이 적은 한국의 젊은이들 사이에는 오히려 일본 문화를 예찬하는 경향도 있어 ‘비즈’, ‘글레이’, ‘루나씨’ 등 일본 가수가 높은 인기를 누리고 있으며 일본에서 화제가 됐던 <101번째 프로포즈>, <실락원>, <링구> 등의 책들도 한국에서 번역돼 영화화 됐다고 전했다.

한국 방송의 일본 프로그램 베끼기가 꾸준히 늘어나는 것과 관련해 일본에서는 그 심각성을 인정하면서도 당장 표절 문제를 공식화하지는 않을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 경제의 오랜 불황 속에서도 일본 방송사들이 아직까지는 높은 수익을 올리고 있기 때문에 한국과 마찰을 일으키면서까지 굳이 저작권료 문제를 일으키지는 않을 것이라는 논리이다.

왕현철 PD에 따르면 “일본은 한국 방송사에 프로그램 표절 이의를 제기해서 얻을 수 있는 저작권료 수입보다 일본 문화의 간접 수출 효과가 더 큰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한국 방송의 일본 프로그램 베끼기가 계속 될수록 일본 문화에 익숙해진 시청자들의 요구가 거세져 언젠가는 일본 프로그램을 사게 되는 날이 올 것으로 내다보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한국 방송의 표절 시비와 관련한 일본의 반응에 대해 국내의 현업 PD들은 일본 프로그램이 결코 한국 방송의 모델이 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이면서 표절과 모방의 기준이 명확하지 않은 상태에서 작품이 일부 비슷하거나 일본 TV의 소재를 프로그램 제작에 참고하는 것까지 ‘표절’로 몰아붙이는 것은 부당하다는 입장이다.

얼마전 표절시비에 휘말렸던 한 방송사 PD는 “조금 비슷한 부분을 가지고 ‘통째로 베꼈다’고 하는 비난의 화살이 쏟아져 일하는 보람마저 잃어버렸다”며 “프로그램을 베끼는 일은 결코 있어서는 안되지만 작품에 대한 표절 의혹도 함부로 제기해서는 않된다”고 주장했다.

방송위원회의 한 관계자도 “아직까지 표절의 기준이 명확하게 만들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표절에 관한 객관적인 판단을 내리는 것은 매우 어렵다”며 “한국 방송의 표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또다른 방송사 PD는 “프로그램을 만들 때 오해의 소지가 있다면 그것 마저도 피해가야 하고, 열악한 환경을 들이대는 것도 핑계다”라며 “제작여건이 나빠도 좋은 작품이 많이 나온다. 문제는 새로운 프로그램 제작을 두려워하는 방송가의 관행”이라고 꼬집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고등교육 공공성 강화, 대학 개혁을 위한 방안 등을 고민하고 있습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