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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안방극장에서 돈 냄새가 진동을 한다.
다른 방송들도 마찬가지지만 특히 문화방송 드라마에서 돈냄새가 더 난다.
지난 주, 종영된 <이브의 모든 것>에서 윤영철 이사가 왕자의 전형을 보여준 데 이어, 이번 주 첫 방송된, <뜨거운 곳이 좋아>나 <新귀공자>에서도 왕자·공주들을 둘러싼 사랑놀음이 초반부터 뻔뻔스럽게 얼굴을 들이밀고 있다.
한참 상영 중인, <사랑은 아무나 하나>에서조차 돈 많은 집안을 둘러싼 사랑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점을 생각하면, 기가 찰 따름이다.
이러다가, 이른바 드라마왕국이라는 문화방송은 온통 신데렐라나 온달 이야기로 가득 찰 것이다. 도대체 돈 많은 사람들을 둘러싼 사랑 이야기가 아니면 풀어나갈 이야기가 그렇게도 없는지.
보통 사람에게는 눈에 잘 띄지 않는 귀공자, 소공녀들이 브라운관에 이렇게 지나치게 많이 비치는 것은, 청소년들에게 많은 해악을 끼칠 수 있다. 특히 우리나라와 같이, 부를 축적한 사람들에 대한 정당성이 결여되어 있는 사회구조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부자들이 부를 어떻게 축적해 왔나 하는 의문은 도외시하고, 부자들이 어떻게 살고 있나? 하는 모습만 보여줌으로써, 상류사회에 대한 막연한 동경심을 부추기고, 그곳에 다가가지 못하는 스스로를 필요 이상으로 비하시키는 안타까운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이번 주, 첫 방송된 <新귀공자>의 경우는, 보면 볼수록 가관이다.
재벌 회장이 딸의 결혼을 위해 매일 밤 선상파티를 여는가 하면, 비행기 예약이 힘들다는 이야기를 들은 재벌회장이, 그 자리에서 비행기를 보내라고 지시를 하고, 공주의 것처럼, 예쁘고 낭만적으로 꾸며진, 장수진의 침실에다, 사극의 상궁을 방불케하는 수행비서의 설정 등은 꼴불견이라는 생각까지 불러일으킨다.
이렇게 시청자들에게 눈살 찌푸려지는 재벌상을 잔뜩 불어넣은 작가는 감히, 이런 꼴불견의 본산인 재벌가에 좋은 인식을 심어주기 위한 기재들을 곳곳에 숨겨놓는 뻔뻔스러움까지 보여준다.
극 중, 장 회장이, 딸의 결혼에는 관심이 지대하나, 그 상대의 신분에 대해서는 별루 신경을 쓰지 않는다는 점을 내세워, 시청자들로부터, 장 회장에 대한 신임을 얻으려고 하는가 하면, 벤처사업가 강성일의 투명하고 성실한 모습에 호감을 갖는 장 회장의 모습을 부각시켜, 도덕적인 기업가라는 점을 강조하는 것도 부자연스럽고 뻔뻔스러운 모습이다.
특히, 재벌가의 유모를 지낸 아주머니의 입을 통해, '재벌가가 생각보다 그렇게 호사스럽게 지내지 않는다. 재벌도 우리들과 다를게 없다.'라는 의견을 직접적으로 나타내려고 한 것은 선상파티, 공주침실 등으로 시청자들을 잔뜩 기죽인 점과 대비해 볼 때, 작가의 의도가 도대체 어디에 있는지, 드라마의 일관성에도 의심을 품게 한다.
도대체 생각이 제대로 박힌 기업가가, 어떻게 자신의 딸의 결혼을 위해, 매일 밤 선상파티를 열 것이며, 어떻게 학생신분의 딸에게 전문여비서를 붙여서 수행토록 할 것인가. 이것이 우리 나라 상류사회의 현주소라면, 그건 정말 복장 터질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런 복장 터질 일을 "있을 수 있는 일"로 만들어내려고 하는 이 드라마가 복장을 뒤집어 놓는건 너무나 당연한 일 아닌가.
상류계층이 사회발전과 사회유지에 지대한 기여를 하고, 그러한 상류사회에 존경심과 동경심을 가지고 있는 대중들이 존재하는 서구사회와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는 많은 차이가 있다.
더구나 지금의 우리 사회에서 재벌은 동경의 대상이 아니라 개혁의 대상이 아니던가. 이러한 시대적 흐름은 나몰라라 하면서, 하나같이, 재벌과 상류사회를 동경케하는 드라마만을 만들어내는 일관된 태도를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좀, 추하고 구질구질하더라도, 사람 냄새가 나는 드라마, 건강하고 밝은 성공의 뒷 이야기들이 삶을 수 놓는 드라마, 이런 드라마들이 그리워지는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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